CULTURE

나도 모르게 조금씩 1

2012.06.13GQ

오디션 프로그램 첫 우승, 몇 장의 싱글 앨범으로 서인국을 가늠할 수는 없다. 그는 불안과 여유를 같이 말했고, 이제야 뭔가를 극복한 것 같았다.

회색 체크 수트는 입생로랑 by 쿤, 흰색 셔츠는 버버리 프로섬, 티셔츠는 엠시큐 by 퍼블리시드, 팔찌는 에이치 알, 반지는 스타일리스트 소장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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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뷔 4년째다. 대중이 어떤 집단인지 짐작이 좀 되나?
신선한 시도를 반기는데, 그게 어색하면 색안경을 낀다. 그때 듣는 심한 말에 상처를 받기도 했다. 하지만 그 신선함에서 자연스러움이 묻어나면 오히려 좋아하는 것 같다. 드라마 <사랑비>를 하면서 느꼈다. 가수로서 거의 3년을 지내다 연기를 했다. 처음엔 겁을 많이 먹었다.

반응을 예측할 수 없어서?
촬영분이 방송된다는 생각을 딱 하니까 너무 겁이 났다. 가수가 연기를 했을 때 피할 수 없는 어떤 편견들, ‘발연기’라는 소리를 들을까 봐. 그런 얘긴 거의 없어서 천만다행이다 싶었다. 자신감도 많이 찾았다.

너무 의식한 거 아닌가?
그보다 <사랑비>의 ‘김창모’ 역 최고의 매력은 대리만족이었다. 일상에선 감정을 제대로 표현 못하니까. 누구 앞에서 짜증을 낼 수 있나? 다 때려 부수고 싶어도 꾹 누르고 살아야 한다. 좋아서 미쳐 버리겠는데 꾹 참고 덤덤하게 사는 게 생활이다. 정말 힘들어서 짜증이 나도 서인국은 “아, 괜찮아요” 하고 무덤덤하게 넘어가는데, 창모로서는 그걸 표현할 수 있었다. 너무 시원했다.

사투리 연기도 자연스러웠고, 지질한데 솔직하고 익살스러운 캐릭터였다.
배우로서 첫걸음이 아니라 그냥 서인국 인생에서 ‘김창모’라는 캐릭터를 만나서 너무 감사하다. 거기서 해답을 찾았다. 다 해소됐고, 감정적으로도 편안해졌다.

연예인으로 사는 게 좀 익숙해질 때 아닌가? 스튜디오에 들어오면서 차리는 예의가 겸손해 보였지만 억눌려 있는 것 같기도 했다.
예를 갖추는 건 부모님께 어렸을 때부터 배운 천성이다. 신인일 때는 막 90도, 100도 인사하고 그러지 않나? 그 정도는 아니지만, 내 감정을 일상에서 지나치는 사람들한테 표현할 수 없는 부분들이 있다. 직업 때문에 더 조심하는 것 같다.

데뷔 전에도 그랬나?
이제 아니까, 옛날에는 뭣도 몰랐다. 사실 작년에 좀 심했다.

스스로 억누르는 게?
너무 갑갑했고, 풀어줄 수 있는 사람도 없었다.

그렇게 하고 싶었던 노래를 하게 됐는데도?
노래를 취미로 즐기면서 하면 분명히 해소되는 게 있다. 그런데 프로페셔널이라고 생각하면 엄청난 스트레스를 받는다. 그래서 ‘Broken’, ‘Shake It Up’ 같이 발산하면서 불렀던 노래들이 부자연스러워 보였던 걸까? 많이 눌려 있었다. 옛날을 지우고 싶었다기보단 더 멋진 모습을 보여줘야 한다는 생각. 하지만 나는 무대에서 내 감정을 노래로 표현하는 직업을 가진 사람인데, 그걸 발산하지 못했다. 바깥에서 영감을 받을 기회도 적었다. ‘Shake It Up’은 정말 막 난리치면서 노는 분위기였다. 아니, 일상이 억눌려 있는데 그걸 갑자기 표현하자니 더 혼란스러웠다.

누가 서인국을 그렇게 눌러놨나?
하하, 누가 있는 건 아니고. 일단 내가 원하는 음악이 대중적인 것 같지 않았다. 그런 스트레스가 있다. 정말 내가 꿈꾸던 음악이 있는데, 그게 ‘가요’가 아니라 마니아 음악이 되는 상황에 대한.

가수 서인국보다 기획이 더 보였고, 역량에 비해 성과는 미미한 것 같았다. 그래도 하고 싶은 노래를 찾고 있다는 느낌이 있었고 당신이 굉장한 고집쟁이라고 생각했다. 민숭민숭한 거 말고, 진짜 진한 거 하고 싶지 않나?
정말 짙은 R&B를 하고 싶다. 그런 고집이 있다. 이번 앨범 1번 트랙인 ‘BAD’라는 곡이 좀 진하다. 제일 좋아한다.
진하게, 더 끈적끈적하게 부르지 그랬나? 여자가 듣기만 해도 옷을 막 벗을 것 같이. 기회가 되면 정말 그런 음악을 해보고 싶다. 듣기만 해도 어우, 막 그런 거.

사람들이 당신한테 반했던 건 풋풋한 와중에 딱 꽂히는 어떤 끼였다. 지금까진 오히려 훈련을 좀 받은 느낌이었다.
시간이 조금 더 필요했다. 훈련됐다기보다 적응했다고 표현하고 싶다. 내 연기를 보고 나 자신에 대해 알게 됐다. 그래서 이번 무대에서는 내가 무대에서 뭘 하고 있는지도 알았고, 자신감과 여유도 많이 생겼다. 근데 약간 슬프기도 하다. 전엔 무대 위라는 행복 때문에 모든 게 마냥 좋았는데.

지금은 안 그런가?
계산을 한다는 게 약간 슬프다. 이게 프로의 느낌인 것 같다. 나는 관객한테 많이 다가가려 한다. 공연에서도 관객의 눈을 보면서 노래를 부른다. 그들을 보는 게 힘이 되고, 그게 참 즐거운데, 요즘은 좀 과도기인 것 같다.

이젠 방송사마다 하는 오디션 프로그램의 열풍을 보면 어떤 생각이 드나?
되게 좋다. 나도 오디션 엄청 많이 다녔다. 다 탈락하고 불합격했다. 그러면 사람이 ‘나는 안 되나 보다’ 싶은 마음에 빠진다. 슬럼프도 오고, 살도 막 찌고, 술만 먹고 다니기도 했다. 나는 꿈이 컸다. 오랫동안 준비했고 자신도 있었다. 그런데 현실에 부딪혀 보니 나를 필요로 하는 사람이 아무도 없었다. 와장창 다 깨진 거다, 인생이.

그래서 바닥까지 갔나?
왜지? 왜 나를 몰라주지? 준비가 모자랐나? 처음엔 그랬다. 계속했는데도 안 됐다. 그때까지 갖고 살았던 꿈이 무너졌다. 허망함을 주체하지 못했다.

그때 어떻게 했나?
그냥 술 먹고 스스로한테 ‘꼬장’을 부렸다. 진짜 많이 먹었다. 스스로에 대한 배신감 때문에 일부러 혹사시켰다. 많이 망가진 상태로 <슈퍼스타K>를 만났는데, 1차 전화 오디션에 붙었다. 전화 예선이니까 다들 합격하나보다 하고 2차에 갔다. 노래하려고 부스에 들어갔을 때 많이 떨렸지만 이제 잃을 게 없다고 생각했다.

꼭 그럴 때 뭔가 이뤄지는 것 같지 않나?
맞다. 떨어지면 군대 갔다 와서 직장을 구하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근데 3차까지 갔다. 약간 자신감이 붙었다. 여기서 전환점을 찾나 생각하니 그동안 스스로한테 고통을 줬던 시간이 또 허무했다. 그러다 합격 티셔츠를 받았고, 4차 예선에서 2박 3일 합숙을 했는데 양현석 사장님이 나보고 잘생겼다고 했다. 말도 안 되게, 완전히 망가져 있는 상황인데! 정말 주체할 수가 없었다. 1등은 바라지도 않았고 톱 10까지가 내 운이라고 생각했다. 방송에서 내 모습을 보여주면 누군가 날 찾아주지 않을까, 그런 행복한 고민을 하긴 했다. 근데 대뜸 1등을 해버린 거다. 물론 죽을힘을 다했지만. 인생의 전환점이었다. 짧지만 강하게 인생을 돌아본 계기였다.

우승, 데뷔, 연예인 생활, 향락과 쾌락으로 이어지는 세계를 엿보기도 했나?
즐기는 걸 좋아하는 천성이 아니라서 천만다행인 것 같다. 클럽도 안 다니고, 그냥 포장마차가 좋다. 치킨, 맥주, 소주, 막걸리. 처음엔 겁이 났다. 아무것도 아닌 내가 스스로 뭔가 된 것 같은 기분을 느끼지 않을까 경계했다.

당신과 조문근은 거리에서 막 튀어나온 것 같았다. 지금 오디션 참가자들은 몇몇을 제외하면 내내 연습실에 있던 사람들 같다.
그때는 아무도 모를 때 발굴되는 상황이었으니까. 두 번째 시즌에는 사람들이 더 많은 희망을 가진 것 같았다. (조)문근이 형이나 나나 정말 일반 사람 입장에서 가수의 꿈을 이룰 수 있게 됐으니까. 음악을 좋아하던 사람들이 다 무대로 나오진 않는다. 순수하게 도전하다가도 꿈이 갈린다. 가르치는 쪽으로 가려는 사람도 있고 무대 위가 좋은 사람도 있다. 나는 무대가 좋았다.

한편, 오디션 입상 이후 허각이나 존박이 웬만큼 칼을 갈고 나온 느낌이었다면, 당신은 툭 던져진 느낌이었다. 그게 잔인하다는 걸 알면서도, 오디션 프로그램이 지름길이란 걸 부정할 순 없는 것 같다.
맞다. 시청자 입장에선 그게 재미고. 그때 정말 죽는 줄 알았다. 한 달에 서너 번을 생방송으로 대중 앞에서 노래해야 하는 상황인데 연습할 시간이 없었다. 방송 입장에서는 재미있는 요소를 만들어야 하니까. 새로운 곳도 많이 갔다. 그럼 우리는 다 촌놈이니까, 그 반응을 얼마나 찍고 싶었겠나. 그런 상황 속에서 스트레스가 굉장했다. 생방송해야 하는데 가사 까먹고, 부들부들 떨기도 했다. 요즘은 그 지름길을 아는 분들이 몇몇 있는 것 같다. 자기 인생의 드라마를 일부러 보여주려고 하는 분도 있고. 보면서 느껴지는 것들이다. 우리는 다 숨기고 싶었다. 나는 아직까지 부모님 얘기 꺼내는 게 굉장히 싫다. 좋은 일이든 나쁜 일이든 내가 모르는 사람들 사이에서 부모님 얘기가 오간다는 게 기분 나쁘다.

부모님 인터뷰를 보고 울었던 장면 말인가?
펑펑 울었다. 너무 힘들 때 부모님을 봬서 그랬는데 끝나고 생각해보니 기분 나빴다. 왜 동의도 없이 부모님을 찍었지? 그 뒤로 많이 힘들었고, 너무 시달렸다. 어떤 인터뷰에서는 부모님 얘길 또 하기에 나도 모르게 “아니, 기자님 부모님 얘기를 제가 지금 막 꺼내면 기분 좋으시겠어요?” 그랬다. “아, 죄송합니다. 가족 얘기는 좀 안 했으면 좋겠습니다.” 그렇게 얘기하면 됐는데.

    에디터
    정우성
    포토그래퍼
    박세준
    스탭
    스타일리스트 / 박지석, 헤어 / 윤지(스와브17), 메이크업 / 이가빈(스와브 17), 어시스턴트 / 정혜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