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가정환경에서, 건강하게, 부족함 없이 자랐다. 그럼에도 가장 낮은 자리에 있는 사람들의 비참과 우수를 연기한다. 그게 어떻게 가능한지 알겠어서, 한번 불러본다.
영화에서는 늘 다르지 않았나 싶은데, 혹시 연기 변신이랄지, 그런 걸 생각하나요?
제 이미지를 벗어나기 위해 작품을 했던 적은 없어요. 배우한테 왜 변신을 요구하는지 잘 모르겠어요. 제가 맡았던 캐릭터와 캐릭터 사이의 간극이 그렇게 중요한가요? 제가 앞에 했던 작품과 전혀 상관없이, 지금 작품에서의 캐릭터를 표현해요. 각각 다른 캐릭터고요.
배우의 입장에서 말하자면, 한 가지 이미지로 고정되면, 맨날 똑같은 역할만 하다가 나중엔 아예 선택지도 없지 않을까 하는 두려움이 있는 것 같아요.
저는 아닌데, 저를 좀 더 위에서 보는 사무실 식구들은 그렇게 생각할지도 모르겠어요. 근데 아직 할 작품도 많고, 갈 길도 멀어요. 앞으로 할 수 있는 것들이 아주 많고요. 참 긍정적이네요? 하하.
<클로저>의 앨리스 같은 캐릭터를 해보고 싶다고 들었어요. 그 역할이 왜 탐나나요?
가끔 <클로저>를 다시 보는데, 볼 때마다 느낌이 달라요. 예전에는 앨리스란 캐릭터가 좋았는데, 최근에는 줄리아 로버츠가 맡은 안나가 매력적이더라고요. 근데 제일 좋아하는 건 래리예요. 줄리아 로버츠 남편 역. 남자 캐릭터를 할 순 없으니까. 하하.
왜 래리죠?
승자잖아요. 제일 승자 같고, 속내를 알 수 없고. 복잡한 매력이 있어요.
지금 앨리스나 안나 역할이 들어온다면 어때요?
저야 하고 싶지만, 우리나라는 여자 연예인에게 너무 완벽한 잣대를 들이대는 것 같아요. 앨리스랑 안나가 내뱉는 대사나 행위들이, 절대 이상한 건 아니지만 노골적이잖아요. 그런 대사를 우리나라 여자 연예인이 한다면, 엄청 말이 많을 것 같아요. 여자 연예인을 모든 기대를 반영한 조각상처럼 생각하면서, 한편으론 연기를 잘하길 바라는 게, 사실 좀 이해가 안 돼요.
사실 여배우에 대한 기준 같은 거 사람들한테 없을 걸요? 말을 너무 쉽게 해서 그래요. 주변 사람들이 생각하는 자기 평판을 낱낱이 알 수 있다면, 아마 그 사람은 미쳐버릴 거예요. 생각한다고 다 말하지 않으니까, 다행인 거죠. 근데 배우에 대해선 용기 없이도 말할 수 있죠. 아주 심각한 것도, 쉽게요.
남 얘기하는 걸 왜 그렇게 좋아할까요?
당신이 좀 더 대담한 여배우 상을 보여주는 건 어때요?
그러고 싶은데, 제 한 걸음, 한 걸음이 제 의지만은 아니어서요. 그럴 수도 있지만, 좀 더 고민해봐야 할 게 아직 많아요.
그래도 조금은 원하는 방향으로 가고 있는 거예요?
원하는 게 뭔지는 점점 더 알겠어요. 근데 이건 정말 마라톤처럼 긴 싸움이다 보니, 하고 싶은 대로 속력을 낼 수가 없어요. 천천히 가든, 가다 말든. 하하. 한참을 다른 데로 가다가 관둘 수도 있겠죠.
드라마로 유명해진 배우가 영화에서 어려움을 겪는 경우가 있어요. 작품을 잘못 만났을 수도, 영화 연기의 핵심을 놓치고 있을 수도 있죠. 하지만 굳이 다 섭렵하고, 잘할 필요 있나요? 하나만 잘하기도 얼마나 힘든데. 당신 생각은 어때요?
저도 그렇게 생각해요. 사실 좀 이해가 되면서도, 도대체 뭘 어쩌라는 건지 모르겠을 때가 더 많아요. 근데 뭐 그러려니 해요. 저는 제 삶을 가장 앞에 두는 편이라서요. 아무리 훌륭한 여배우가 되어 길이길이 남는 대도, 한쪽을 굳이 선택해야 한다면, 행복한 삶을 택할 거예요.
이번 영화 <알투비: 리턴 투 베이스>는 자신 있나요?
1년 전에 찍은 건데, 지금 보니까 제가 되게 어려 보이고, 느낌이 또 달라요. 재미있게 찍었어요. 특별히 큰 고민 없었고요.
배우가 1년 전에 찍은 작품 속의 자기 얼굴을 보는 느낌은 어떤가요? 이를테면, 어떤 상황에서 들었던 노래가 있다면, 그 노래를 다시 들을 때 그 상황이 순간적으로 확 떠오르잖아요?
냄새나 공간까지 기억나죠! 하지만 과거는 어느 정도 미화되잖아요. 가슴 쓰린 느낌이 없진 않지만, 그런 기억들이 다 그리 나쁘지는 않은 정도로 기억된달까? 어떤 점에서 기억을 수집하고 있다는 생각도 들어요. 너무 슬픈 일을 겪어서 막 울고 있다가도 유체 이탈한 것처럼 또 하나의 제가 저를 보고 기억해요. 약간 이상하죠?
뭔가를 만드는 사람에겐 당연하지 않을까요? 자신을 대상으로, 거리를 두고 볼 수 있어야죠. 근본적으로, 자신을 거울로 삼지 않는 작품은 없으니까요.
슬픈 일을 겪을수록 스스로 표현할 수 있는 폭과 깊이가 어쨌든 조금씩 확장돼 가는 희열이 있어요.
- 에디터
- 정우영
- 포토그래퍼
- 안하진
- 스탭
- 스타일리스트/이보람, 헤어/조수민, 메이크업/김주희, 어시스턴트 / 정혜원
- 기타
- 의상협찬/ 데님셔츠는 스타일리스트의 것, 팬츠는 시위데님, 흰색 톱은 헬무트랭, 오버롤은 체사레파쵸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