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ictorial

린킨파크 조한이 서울에 온 이유

2019.07.29GQ

조 한이 지금까지 짊어지고 온 것들을 눈앞에 성큼 풀어놓았다.

코트, 슈즈, 모두 펜디. 양말은 스타일리스트의 것.

슬리브리스, 재킷, 팬츠, 스니커즈, 모두 에르메네질도 제냐 XXX. 네크리스, 존 하디. 링은 스타일리스트의 것.

슬리브리스, 에르메네질도 제냐 XXX. 재킷, 뮌. 팬츠, 펜디. 스니커즈, 반스. 양말은 스타일리스트의 것.

JTBC <슈퍼밴드>의 마지막 생방송 무대가 끝난 지 12시간이 채 지나지 않았어요. 우승을 차지한 ‘호피폴라’는 린킨파크의 ‘One More Light’로 결승 무대를 꾸몄는데 미리 알고 있었나요? 연주가 시작되기 직전까지 몰랐어요. ‘One More Light’는 개인적으로 굉장히 각별한 곡이에요. 린킨파크의 팬들에게도 그럴 거예요. 심사위원이 작업한 곡을 연주하는 건 리스크가 큰 결정이에요. 더 정확한 평가와 세심한 분석이 따를 수밖에 없죠. 그런데 음악에 감정이 잘 담겨 전달되는 경우 이성적 판단 대신 마음으로 듣게 돼요. 어제 무대가 그랬어요. 호피폴라의 곡 해석이 마음에 들었어요. 편곡을 다르게 했고 가사도 조금 바꿨어요. “나” 대신 “우리”라고 바꿔서 불렀는데 그 때문에 보편적인 정서가 느껴지고 공동체를 대변하는 듯했어요.

그들에게 우승은 끝이 아니라 본격적인 시작이에요. 음악을 계속 하면서 많은 상황을 겪게 될 텐데 어떤 조언을 해주고 싶어요? 무엇보다 음악의 즐거움을 잊지 않았으면 해요. 누구에게나 각자의 길이 있어요. 때로는 앞서 그 길을 개척한 사람들 덕분에 기회가 생기기도 하고요. 그렇다고 해서 그들을 무작정 따라 할 필요는 없어요. 위대한 밴드가 되려면 독립성을 지켜야 해요. 조언을 듣거나 기회를 잡는 것도 좋지만 음악에 관한 원칙은 고수할 필요가 있어요. 훈련을 통해 도달하는 재능과 아티스트로서 타고난 재능은 다르다고 봐요. <슈퍼밴드>에서 만난 친구들은 아티스트로 성장할 소질이 있어요. 단순히 잘 팔리는 음악이 아닌 자신들이 진심으로 사랑하는 음악을 추구하고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았으면 해요. 그리고 또 한 가지, 당장은 한국 활동에 집중해야 하지만 세계 무대를 겨냥하면 좋겠어요.

젊은 음악인들을 가까이 보면서 처음 밴드를 시작했던 시절을 떠올리기도 했을 것 같아요. 1990년대 중반 린킨파크의 전신인 밴드 제로(Xero)에 DJ로 합류했는데 그때가 그립나요? 처음에는 밴드에 들어가고 싶다거나 음악을 전업으로 하고 싶다는 생각은 하지 않았어요. 그저 음악을 엄청 좋아했을 뿐이죠. 오히려 제가 추구했던 건 미술이었어요. 디제잉을 배우고 있긴 했지만 일러스트레이터가 되기 위해 미대에 들어갔고, 린킨파크의 멤버인 마이크 시노다를 알게 됐어요. 힙합이나 헤비메탈 등 음악 취향이 같아서 친해졌죠. 그때만 해도 음악 장르가 엄격하게 나뉘어 있었는데 우리는 좋아하는 장르들을 자연스럽게 섞기 시작했어요. 낯선 시도였기 때문에 사람들에게 우리 음악을 알리는 게 쉽지는 않았어요. 결국 모든 걸 직접 하기로 했어요. 음악을 만들고 작은 무대에서 공연도 하고, 온라인에서 사람들을 만났죠. 기획사와 계약할 무렵에는 소규모 팬층도 있었어요. 운이 좋게 음악을 하면서 미술도 같이 할 수 있었어요. 뮤직비디오를 연출하거나 무대 디자인의 콘셉트를 잡고, 마이크와 함께 앨범의 아트워크를 디렉팅했거든요. 그래서 참 즐겁게 일했던 것 같아요.

고등학생 때 처음 시작한 디제잉은 여전히 즐거운가요? 처음 시작했을 때는 파티에서 음악을 트는 것보다는 턴테이블과 LP로 할 수 있는 것들에 대한 관심이 더 컸어요. 턴테이블도 하나의 악기구나 싶었어요. 기존 트랙의 진행 방향이나 속도를 조작하고 조합해 입체적인 음악을 만드는 거잖아요. 그 당시 디제잉은 엄청 창의적이었고 DJ들도 자기만의 테크닉을 만들어냈어요. 사운드에 대한 인식 자체를 바꿔놓았죠. 팬의 입장에서 다양한 테크닉을 따라 했어요. 엄청 좋아하기만 했지, 잘하는 편은 아니었어요. 그러다가 린킨파크의 멤버들과 함께 곡을 만들면서 턴테이블을 본격적으로 활용하기 시작했어요. 턴테이블과 이펙터를 사용해서 사운드를 디자인하고 리듬을 만들고 주파수를 변조하는 등의 시도를 했는데, 그때까지 배운 것들을 한 단계 끌어올리는 계기가 되었죠. 그 와중에도 기술은 계속해서 발전했어요. 그래서 요즘 디제잉은 옛날과 완전히 다른 차원인 것 같아요. 과거와는 다른 방식으로 음악을 들려줄 수 있어 굉장히 흥미로워요. 질문이 뭐였죠? 아, 디제잉은 여전히 즐거워요. 원하는 대로 온갖 장르를 믹스해서 들려줄 수 있기 때문이죠. 린킨파크 초기에 했던 것처럼 말이에요.

오는 8월에 열릴 ‘유어 썸머’ 페스티벌의 라인업에 포함됐어요. 디제잉을 할 때는 어떤 마음인가요? 여러 생각이 들어요. 하고 싶은 것을 하는 동시에 관객의 반응도 살펴야 해요. 반응이 좋으면 계속 그 방향으로 가고, 별로다 싶으면 다른 곡을 틀어야 하니까요. 관객의 얼굴을 바라보며 그들이 계속 즐길 수 있도록 하는 게 저한테는 중요해요.

페스티벌이 개최되는 파라다이스 시티에서 린킨파크의 가장 최근 월드 투어인 ‘One More Light’를 기록한 사진들로 전시를 선보이기도 해요. 인스타그램에 직접 찍은 공연 사진을 올리곤 했는데, 전시를 기획한 특별한 이유는 뭔가요? 마지막 투어 6~7개월 전부터 촬영을 하기 시작했어요. 미국에서 시작해 유럽과 남미를 돌았는데 굉장히 의미 있는 작업이었어요. 투어를 마치고 나서 멋지다 싶은 사진들을 인스타그램에 올렸어요. 그러면서 이 사진들을 여러 사람과 나누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인스타그램의 사진은 크기가 작잖아요? 사진의 매력은 디테일한 부분까지 보는 데 있거든요. 관객 하나하나의 얼굴까지 알아볼 수 있는 그런 거요. 그렇기 때문에 사진을 크게 출력해서 사람들이 가까이 들여다볼 수 있게 하고 싶었어요. 어떻게 보면 린킨파크 멤버들의 일상을 공개하는 거나 다름없죠. 무대 아래에서 우리가 친하게 지내는 모습이나 다른 밴드들과 어울리는 모습 등을 통해 유대감 같은 것을 보여주고 싶었어요.

보통 공연 사진이라고 하면 무대 밖에서 밴드를 정면으로 찍은 장면이 일반적인데, 멤버들과 무대에 올라 그들의 바로 뒤에서 사진을 찍었죠. 덕분에 사람들로 꽉 찬 객석이 압도적인 스케일로 느껴져요. 그 광경을 처음 봤을 때 어떤 기분이 들었나요? 우리의 첫 곡인 ‘One Step Closer’가 미국뿐 아니라 유럽에서도 좋은 반응을 얻으면서 독일 최대의 페스티벌 중 하나인 ‘록 암 링(Rock am Ring)’에 서게 됐어요. 그래서 유럽 투어를 하기로 했는데, 그전까지 승합차에 악기를 싣고 투어 다니며 1천여 명의 관객 앞에서 공연을 하다가 8만 명 앞에 서니까 관객의 힘이 크게 느껴지더라고요. 설명하기 어렵지만 그 정도로 많은 사람이 모였을 때 느껴지는 힘이 있어요. 일단 소리의 속도가 눈에 보이기 시작하죠. 무대 양쪽에 설치된 스피커에서 소리가 뻗어나가고 관객이 반응하는 모습이 마치 일렁이는 바다 같아요. 게다가 8만 명이나 되는 관객이 뛰는 건 그야말로 엄청나죠. 그런 힘을 우리가 만들어냈다는 게 믿기지가 않았죠. 절대로 잊을 수 없는 기분이고, 눈 앞에서 펼쳐지는 그런 엄청난 광경을 사진에 담고 싶었어요. 사진을 찍으며 알게 된 건 우리와 관객 사이에 어떤 연결점이 있다는 사실이에요. 관객들이 우리를 바라보는 것처럼 우리도 그들을 보고 있거든요.

사진전은 중국에서 먼저 선보였어요. 팬들의 반응은 어땠나요? 지난 20여 년간 알고 지낸 팬들이 찍힌 사진들도 있어요. 우리 공연을 가장 많이 본 친구도 있고요. 공연에 오면 항상 반가웠죠. 아르헨티나에서 공연했을 때의 에피소드인데, 식당에서 식사를 마치고 나왔는데 남자 몇 명이 우리를 따라오는 거예요. 처음에는 강도인가 싶었어요. 계속 따라오기에 우리는 걸음을 멈췄죠. 그러자 무리 중 한 명이 우리에게 다가와서 갑자기 소매를 걷어 팔을 보여주는 거예요. <The Hunting Party> 앨범의 아트워크를 새긴 타투가 있더군요. 우리에게 타투를 꼭 보여주고 싶었던 거예요. 그와 찍은 사진도 전시에 포함시켰죠. 린킨 파크를 벌써 20년 가까이 해왔고, 우리의 음악과 함께 자라난 팬이 많아요. 어렸을 때 우리의 팬이었다던 경찰관을 만난 적도 있어요.

자신의 음악이 많은 사람에게 영향을 미친다는 것을 깨달았을 때 음악을 대하는 태도나 생각에 변화가 일어나기도 했나요? 처음부터 그런 영향을 의도하지는 않았지만, 결과적으로 그게 린킨파크가 하는 음악의 의미가 되었죠. 우리 음악은 좌절감 속에서 인생의 의미를 찾으려는 절박한 시도에서 비롯되었어요. 어린 나이에 만들었기 때문에 좌절감의 흔적이 많이 묻어 있고 절박한 심정을 여러 방식으로 표현하고 있죠. 그게 사람들에게 일종의 치유가 되었던 것 같아요. 팬들에게 이런 얘기들을 많이 들어요. 정말 힘들 때 우리 음악을 들으며 힘을 냈다고요. 부정적인 것들에 대해 이야기함으로써 긍정적인 효과를 낼 수 있는 것도 음악의 힘이라고 생각해요.

1집 앨범명인 <Hybrid Theory>는 린킨파크가 지금까지 해온 음악적 정체성을 가장 잘 드러낸 타이틀이기도 해요. 거친 메탈 사운드와 힙합을 섞은 장르로 큰 성공을 거둔 후, 과감하게 랩을 빼기도 하고 전자음을 강조한 곡이나 가벼워진 사운드를 선보이는 등 팬들조차 예상치 못한 변화를 시도했어요. 가장 애착이 가는 앨범은 뭔가요? 네 번째 정규 앨범인 <A Thousand Suns>를 많이 아껴요. 그 당시 우리가 어떤 틀을 계속 반복해오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거든요. 그래서 “이젠 그렇게 하지 말자.”라는 얘기가 나오게 됐죠. 우리의 창작물에 우리가 구속되어서는 안 된다는 생각이었어요. 전부 다 뒤집고 새로운 것들을 해보자는 마음으로 만든 게
<A Thousand Suns>예요. 우리는 이미 지구 곳곳을 돌아다닌 후였고, 더 이상 고등학교를 갓 졸업한 어린애들도 아니었어요. 경험을 쌓았고 사람들이 어떻게 살아가는지를 알게 됐죠. 그래서 인간으로서 우리가 마주하고 극복해야 하는 공포나 불확실성에 대한 얘기들을 앨범에 담았어요. 그 후로는 그런 방향으로 계속 진화해온 것 같아요.

이번 전시에는 ‘One More Light’ 월드 투어 도중 세상을 떠난 멤버 체스터 베닝턴의 마지막 모습이 담겨 있어요. 팬들뿐만 아니라 개인적으로도 특별할 수밖에 없을 것 같은데요. 전시 제목을 <Carry On>이라 지었어요. ‘들고 다니다’라는 뜻인데, 투어를 다닐 때마다 꼭 챙겨야 할 짐이 카메라였던 거죠. 제목에 담긴 또 다른 의미는 ‘계속 나아가라’는 거에요. 지금이 인생의 갈림길이라는 깨달음이 들었거든요. 비극적인 사건이 일어나면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게 되잖아요. 사진들을 보며 고통스럽기도 했지만 제 삶을 계속 살아가야 한다는 것을 이해하게 되었어요. 과거를 잊지 않되 미래를 향해 가야 한다는 거죠. 그리고 팬들이 우리에게 전하고 싶은 얘기도 바로 그런 거라고 생각해요. 린킨 파크의 멤버들은 물론이고 우리를 많이 지지해주고 격려해주는 팬들도 함께 살아갔으면 하는 바람으로 전시를 준비했어요.

베닝턴의 갑작스런 사망 이후 린킨파크의 활동은 2년 가까이 중단된 상황이에요. 이후 스티브 아오키의 ‘Waste it on me’ 뮤직비디오를 연출하고 사진전을 준비하며 한국의 음악 경연 프로그램에 출연했어요. 린킨파크로 활동할 때와 지금의 조 한은 같은 사람인가요? 다른 사람들 눈에는 어떻게 보일지 모르겠지만 같은 사람이에요. 저는 제 자신을 잘 알아요. 다양한 부분이 모여 전체를 이룬다고 생각해요. 지금 상황도 저의 일부일 뿐이에요. 린킨파크의 음악도 그런 면에서 특별해요. 우리는 스튜디오에서 종종 인생에 대한 얘기를 나눠요. 멤버들이 겪은 여러가지 일과 시행착오들을 모두 가져와 꺼내놓죠. 그러다 어느 순간 “이제 음악을 만들어보자”로 이어져요. 린킨파크의 음악은 우리의 관계에서 나온 것이기 때문에 사라지지 않을 거예요. 그리고 각자 개인 활동을 하는 것도 밴드에는 도움이 돼요. 다양한 경험을 쌓고 돌아오기 때문이죠. 마지막 월드 투어 직후 마이크는 솔로 앨범을 작업하기 시작했어요. 트라우마를 극복하기 위한 일종의 심리치료와 같았죠. 그리고 마이크가 앨범을 낸 것 자체가 팬들의 의문이나 질문들에 대한 답이 된 것 같아요. 린킨파크가 계속 음악을 할지 어떨지 다들 궁금했을 거예요. 딱히 기자회견을 하지 않았거든요. 왜냐하면 지금으로서는 우리도 모르기 때문이에요. 하지만 마이크가 앨범을 냈기 때문에 그런 질문에 대한 답이 됐어요. 새 앨범을 공개하는 날이 온다면 지금의 이 비극적인 일과 무관하게 음악으로만 얘기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해요. 물론 아예 언급을 안 할 수는 없겠지만요.

특수 효과 디자이너로 일한 경험을 바탕으로 린킨파크의 뮤직비디오들을 직접 연출하고 단편영화를 찍었어요. 또 티셔츠를 디자인하고 일러스트 작업을 하거나 사진을 찍고 있는데, 이 많은 일을 소화할 수 있는 파이팅은 어디서 나오나요? 제가 만든 걸 다른 사람들과 나눌 수 있다는 게 즐거워요. 어느 순간 즐겁게 하던 게 일이 되어버리면 멀어지곤 하잖아요? 다행스럽게도 저는 여러 활동 사이에서 균형을 유지할 수 있어요. 사진도 사진이지만, 이미지를 통해 스토리를 전달하는 작업에 관심이 있어요. 패션, 영화, 그림 다 좋아해요. 틈날 때마다 스케치를 하기도 해요. 음악을 하다 지치거나 피곤할 때면 잠시 멈추고 다른 일을 할 수 있다는 게 좋아요. 그렇게 음악을 만들지 않을 때도 제 뇌는 계속 움직이고 있어요. 그런 식으로 시각적인 작업을 하면서 음악적 영감을 얻는 게 가능하고, 반대로 음악을 하면서 시각적인 영감이 떠오르기도 해요.

린킨파크의 성공이 뒷받침되지 않았더라도, 지금처럼 하고 싶은 일을 마음껏 하며 살 수 있을까요? 좋은 질문이네요. 린킨파크를 떼어놓고 보면 저는 음악과 미술 그리고 영화를 만드는 평범한 사람일 뿐이에요. 이런 예술 형식들은 감정을 풍부하게 만들고 상상력을 발휘하게 하죠. 어릴 때부터 이것저것 상상해내는 걸 좋아했어요. 미술을 하고 싶어서 미대에 갔고 1년 다니다 그만둔 후 특수 효과 쪽 일을 시작했어요. 살면서 기회를 잡을 준비가 되어 있어야 하고, 뭐든 해보고 부딪혀보는 게 중요해요. 일이 잘 풀리기도 했지만 어느 순간 모든 게 싫어지더라고요. 맨날 똑같은 것만 해야 했거든요. 혼자 틀어박혀 일만 하니까 사회성도 없어지고 사람들과 대화하는 것도 어려워졌죠. 평생 이렇게 혼자 작업을 할 순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많은 시도를 하려 했어요. 그리고 그때의 경험을 바탕으로 지금의 제가 있는 것 같아요.

<슈퍼밴드>를 촬영하는 동안 2주에 한 번씩 서울에 왔다고 들었어요. 지금 서울에서는 무엇이 가장 흥미로운가요? 20년쯤 전에도 한국에 와서 뭔가를 해보려고 기회를 찾고 있었어요. 그런데 당시의 한국은 지금과 많이 달랐어요. 문화적으로 조금 갇혀 있었다고 해야 하나, 제가 낄 자리가 없어 보였어요. 이제는 상황이 다르죠. 많은 면에서 열려 있고, 새로운 세대가 등장했어요. 그리고 한국이 세계에 미치는 영향도 커졌죠.

조 한은 누구의 엄청난 팬이고, 무엇에 열광하나요? 박찬욱 감독과 봉준호 감독을 좋아해요. 최근에 XXX라는 밴드를 만났는데 인상 깊었어요. 실험적이고 대담한 음악을 들려주는 것 같아요. 그라피티도 좋아하고, 어릴 때부터 봐온 만화는 지금도 각별해요. 최근에 본 <스파이더맨: 뉴 유니버스>가 정말 좋았어요. 히어로 얘기가 나왔으니 말인데, 직접 만들려는 히어로물 영화가 있어요. 과연 히어로란 누구인가에 관한 얘기예요. 아직 구상 단계이기 때문에 여기까지만 말씀드릴 수밖에 없어요. 어린 시절 마블이나 DC 코믹스를 많이 봤는데 나이가 들면서 조금 다른 시각을 갖게 되었죠. 지금 만들고 싶은 것도 그런 거예요. 다른 시각에서 바라본 히어로물.

사람들은 잘 모르는 특별한 능력이 있다면 뭔가요? 바비큐를 잘해요. 캔자스시티 스타일의 립이 주특기예요. 또 하나는 좋은 아빠가 되는 능력이죠. 세상에서 가장 좋은 아빠가 되는 게 저한테는 중요해요.

운동신경도 나쁘지 않죠? 인스타그램에서 돌려차기로 병뚜껑을 여는 ‘보틀캡챌린지’ 영상을 봤어요. 몇 번이나 시도했어요? 세 번 만에 성공했어요. 실은 물병을 꽤 낮은 곳에 세워뒀어요. 젊었더라면 조금 더 높이 찰 수 있었을 거예요.

    에디터
    김영재
    포토그래퍼
    채대한
    스타일리스트
    류용현
    헤어 & 메이크업
    김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