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ULTURE

장영남에게 놀라지 마라 1

2012.09.04GQ

장영남이 망사 스타킹을 신고 짙은 아이섀도를 칠했다. 그렇게 서럽게 울던 재인이 엄마, 그 장영남이 말이다.

 

검정색 민소매 상의는 릭오웬스, 검정색 힐은 구찌, 귀고리는 엠주, 클러치백은 버버리 프로섬

검정색 민소매 상의는 릭오웬스, 검정색 힐은 구찌, 귀고리는 엠주, 클러치백은 버버리 프로섬

작정하고 화장을 했다.
최근엔 우는 역할이 많아 제대로 화장한 적이 없다. 낯설지만 재미있었다. 망사 스타킹 신은 건 15년 전 공연 때 이후 처음이다.

목화에서 데뷔해 17년이 지났다. 그동안 완곡하지만 완벽하게 바뀌었을까?
아주 많이 변했다. 목화에서 처음 연극 할 땐 정말 어리바리했다. 사실, 목화가 어떤 극단인지도 몰랐다. 처음엔 극단 선배들이 내 얼굴 보고 좀 이따 나갈 애라고, 신경 쓰지 말라고 했다.

혹시 너무 예뻐서? 예전에 서울예전 이영애였다고.
하하. 그 정돈…. 당시엔 좀 괜찮았다.

극단에선 연예인 지망생이라고 생각했을까?
아마도. 사실 처음에 들어가자마자 <로미오와 줄리엣>에서 줄리엣이 됐다. 이국적인 외모도 한몫했겠지. 그런데 너무 못해 바로 잘렸다. 다행히 2001년에 다시 줄리엣 역을 맡아서 상까지 받았지만.

연예인이 되겠다는 생각은 안 했나?
전혀 안 했다. 내가 부끄러움이 너무 많다. 드라마를 하려면 오디션에서 단박에 보여줘야 하니까 겁부터 났다. 마냥 무대가 좋았다.

이제 무대만큼 영화도 편하지 않나?
영화도 처음엔 너무 힘들었다. 연극은 무대에 오르면 조명 때문에 관객이 잘 보이지 않는다. 무대 위엔 외로움이 있고, 그런 기운으로 응축된 긴장이 있다. 반면 영화는 스태프들이 다 보이는 공간에서 연기를 하니까 집중하기 어려웠다. 무대 위에선 조명 하나만으로 부엌이 되고, 바다도 되지만, 영화는 부엌을 짓고, 바다로 간다. 영화의 모든 것이 실제라면, 연극은 상상을 믿는 과정이다.

영화에서도 상상을 믿는 과정이 있었다. <헬로우 고스트>에서 영화 내내 울기만 할 땐, 과장된 연기 같아 부담스러웠는데, 영화 마지막에 차태현을 안으며 “엄마야”라고 말하니 모든 것이 믿어졌다. 영화 내내 엄마라고 믿었구나 싶었다.
그런 점은 극단 골목길 박근형 선생님한테서 배웠다. <너무 놀라지 마라>같은 작품을 통해 극사실주의 연기를 배웠다.

정통 연극 연기와 메소드 연기 사이에서 자신만의 교차점을 찾았을까? 아니면 연극과 영화를 분리하는 쪽을 선택했나?
이젠 구분 짓지 않으려고 한다. 원래는 구분 지었다. 하지만 그럴수록 매체(영화, 드라마)를 가까이 못하는 거 같아 그런 마음을 없애버렸다.

요즘 일을 많이 하기 때문은 아닐까? 최근 꽤 많은 작품을 했다.
썩 그런 것 같진 않은데.

다 찾아볼 수 없을 정도로 많다.
하하. 사실 남자 배우들이 더 다작하지 않나?

그만큼 40대 여배우들이 존재하기에 힘든 상황이기도 하고, 여배우가 없기도 하다. 어떤 식으로 존재해야겠다는 고민을 했을까?
아니. 그런 고민은 안 했다. 단지 나한테 주어진 상황만 볼 뿐이다. 욕심은 많지만, 겉으로 표현할수록 힘들어자는 걸 아니까.

욕심만큼 기회가 없으면 고통스러우니까?
작품도 할 만큼 하고, 고생할 만큼 했는데, 왜 이 정도밖에 못 왔을까 싶을 때가 있다. 그럴 땐 아직 멀었나 보다, 하고 그냥 뚝 떨어뜨려 버린다. 계속 자신을 내려놓을 수밖에. 이걸 20대에 깨달아, 30대엔 조바심 내지 않았다. 오히려 마흔이 되니, 숨이 좀 가빠진다. 지금의 욕심은 어렸을 때와는 다르니까

마지막 기회라는 불안감일까?
나이는 들고…. 이제 엄마 역할도 많이 한다. 처음에 엄마 역할 할 때는 굉장히 속상했다. 특히 <영광의 재인>에서 박민영 씨 엄마 할 땐 너무 속상해서, 소속사에 화도 냈다. 그땐 결혼도 안 했을 땐데, 만약 결혼하게 되면 시어머니가 나를 얼마나 나이 든 며느리라고 생각할까, 걱정도 되고. 앞으로 나를 한 오십 대로 보겠구나, 생각했다. 작품을 하면서는 금세 잊었지만.

앞으로도 계속 누군가의 ‘엄마’일까?
꺼리진 않을 거다. 이번에 개봉하는 <이웃사람>에서도 새론이 엄마고, 앞으로 개봉할 <늑대소년>에서는 박보영 씨 엄마다. 가끔은 엄마를 시작하기 잘했단 생각도 한다.

    포토그래퍼
    유영규
    스탭
    스타일리스트/김봉법, 헤어/ 황상연, 메이크업 / 이가빈, 어시스턴트/ 유미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