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TYLE

에르메네질도 제냐 XXX 2020 여름 컬렉션

2019.08.03GQ

에르메네질도 제냐가 생각하는 새로움은 다르다. 재가공을 통해 재창조하는 것, 그래서 더 오래 지속되는 것.

언젠가부터 에르메네질도 제냐 컬렉션은 밀라노 남성 패션 위크의 시작을 알리는 쇼가 됐다. 본격적인 패션 위크가 시작되기 하루 전날, 말하자면 전야제에 열리는 이 쇼를 보기 위해 공항에서 짐 가방을 끌고 헐레벌떡 뛰어오는 게스트도 있고, 굳게 닫힌 철문 앞에서 터덜터덜 돌아선 아쉬운 기억도 있다. 게다가 이번처럼 시내에서도 꽤 떨어진 곳에서 쇼가 열리면 멀리서 오는 손님들은 평소보다 일찍 서둘러야 한다. 하지만 제냐 쇼는 그럴 만한 이유가 충분하다.
에르메네질도 제냐 XXX 2020 여름 컬렉션의 장소는 마치 자본주의의 역풍을 제대로 맞아 쇠락한 도시처럼 보였다. 지붕만 간신히 덮은 거대한 규모의 폐공장은 차 바퀴만 살짝 움직여도 흙모래 바람이 토네이도처럼 솟구칠 기세였고, 매끈한 검정 세단은 먼지를 뒤집어쓴 채 체면을 구겼다. 실제로 이곳은 이탈리아 근대 철강산업을 발전시킨 기념비적인 곳이었지만 지금은 쇠퇴하여 도심 속 황무지가 됐다. 하지만 곧 주변 녹지대, 주거 단지와 함께 새롭게 재조성될, 의미 있는 곳이기도 하다. 이 장소가 주는 의미는 기존의 소재를 새로운 원단으로 만들고 전통 기술을 재해석해 현대적 테일러링 기술을 개발하는 제냐의 철학과 닿아 있다. 에르메네질도 제냐의 아티스틱 디렉터인 알레산드로 사르토리는 항상 사회 일원으로서의 책임감에 대해 얘기하곤 했다. 기존의 것을 다시 사용하고, 지속적으로 혁신적인 테일러링 기술을 개발하고, 버려진 곳을 창조의 장소로 바꾸는 것을 의무라고 여겼다. 사르토리의 신념은 이번 컬렉션의 슬로건인 ‘Use The Existing’을 통해 더 확고해졌다. 그는 제냐가 보유한 자원으로 재가공한 원단을 이번 쇼에 가능한 한 많이 활용하려고 했는데, 그중에서도 아킬 수트는 제냐의 아킬 농장에서 수트를 제작하는 공정 중 남은 울을 재가공하고 다시 직조해서 만든 것으로, 완전한 지속 가능 공정을 거친 결과물이었다. 그의 이러한 신념은 컬렉션 전반의 색도 결정지었다. 시멘트, 철강, 석탄 등 여러 광물의 색을 혼합해 의미를 살렸고, 매트한 블랙과 골드, 레드, 브라스, 러스트, 샌드로 남성성을 더한 후, 옅은 톤의 누드, 아쿠아, 리프 그린의 밝은색으로 생기를 넣었다. 그리고 블루종, 셔츠, 폴로 등 캐주얼 상의를 중심으로 한 실용적인 수트도 잔뜩 선보였다. 모두가 기본적인 테일러링에 충실하되 밀레니얼 세대의 취향에 맞게 발전시킨 수트였다. 디자인은 과감했지만 실루엣은 단정했다. 박시한 블루종, 살짝 부풀린 형태의 코트, 날카로운 스리 버튼 블레이저와 원 버튼 재킷은 부드러운 팬츠들과 잘 어울렸다. 물론 스포티한 룩에서도 테일러링을 놓치지 않았다. 예민하고 가벼운 울과 실크는 분명 조심스러운 소재임에도 불구하고 제냐만의 정교한 공정을 거쳐 실용적인 룩으로 변했다. 그래픽 프린트와 스트라이프 패턴은 컬렉션에 리듬감을 더했으며, 넓은 패턴의 미네랄 염색을 통해 만든 데님은 탁월하게 예뻤다. 액세서리도 빼놓을 수 없다. 볼드한 굽 장식의 프린팅 부츠, 더비 슈즈, 이제는 제냐의 시그니처가 된 새로운 컬러의 클라우디오 스니커즈는 거친 흙길에서도 당당했고, 댄디한 미니 백은 이번 시즌에도 다시 등장했다.

    에디터
    박나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