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면에 나오면 멈추고 쳐다본다. 무대에 서면 순간 주목한다. 마침내 말하면 귀를 기울인다. 배우는 거기서 시작함을 새삼 알았다. 올해, 박근형으로부터.
올해, 특별한 한 해였습니까?
작년에 한 6개월을 쉬었어요. 쉬니까, 왜 요새 젊은 배우들 우울증 생긴다고들 하잖아요? 그런 거 비슷하게 저도 조급증이 생기더라고요. 아, 이렇게 소외되나? 나이가 이렇게 먹었는데도 감정은 마찬가지더라고요. 2012년에는 열심히 해서 뭐든지 다 해내야 되겠다, 그러다 보니 금년에 다작이 된 거예요.
봄엔 연극을 하셨죠? 제목은 <3월의 눈>이었습니다.
백성희 선생님은 제가 어머니처럼 모시는 분입니다. 어느 날 저한테 전화를 하셔서는, 아범아 이거 좀 해라, 이러시기에, 네 어머니 제가 할게요. 아무것도 안 따지고 무작정 들어간 작품이었습니다.
백성희와 박근형이라는 뉘앙스 때문일까요? ‘고전적’이라는 말이 앞서려고 합니다.
보기엔 그랬을 겁니다. 그런데 배우로서는 좀 달랐어요. 지금의 연극이라는 게 예전과는 많이 다르더라고요. 각자의 이즘에 따라 표현하는 연기는 좀 무시되고, 그걸 연출로 통합해 표현하는 식이었어요. 작품과 표현 사이의 괴리랄까요? 대본이 사실주의인데 연기는 상징주의처럼 한다든가, 그런 부분을 많이 고민했습니다. 그러니까 저는, 제가 학습하고 익힌 배우라는 입장에서 벗어나는 걸 퍽 두려워하는 것 같습니다.
그걸 ‘박근형의 정도’라고 해도 될까요?
그렇죠. 예술엔 단 한 가지 해답이 있는 게 아니지만, 내가 생각하는 답은 있어야죠. 한 가지 방법만 있는 게 아니지만, 내가 판단한 정도를 따르려는 거죠. 그걸 향해 나아가는 것이기도 하고요.
모든 배우가 그런 식이진 않습니다.
저 역시 어쩌다 보니 뭔가 쌓인 거죠. 연극과 텔레비전과 영화를 거치면서 오십 몇 년 하다 보니, 의식하든 안 하든 제 안에 뭔가 만들어져 있는 거 같아요. 극복하는 힘도 거기서 생겨났죠. 난제가 벌어져도 어렵다고 느끼거나 좌절하거나 그러지는 않아요. 제 생각이 작품 속에 담기느냐 담기지 않느냐에 따라 어려움을 겪거나 겪지 않거나 하지만, 그 역시 내가 좋아서 하는 일이기 때문에 항상 도전하는 마음이 생기죠.
그리고 <추적자>가 있었습니다.
한바탕 잘 뛰었죠. 칭찬은 작가가 받아야 해요. 그걸 배우가 대신 받는 것도 사실 이상하죠. 짧은 시간에 제작하는 어려움이란 요즘 드라마에 내린 형벌이지만, 그런 와중에도 논리적이고 타당한 작품을 만들겠다는 노력이 중요하죠. 논리와 타당성이 있기 때문에, 내내 하던 아버지, 회장님 연기라도 그런 주제로서 방어할 수 있는 거죠. <추적자>는 전적으로 작가의 공입니다.
<3월의 눈>과 <추적자> 말고도, 드라마는 <맛있는 인생>, <판다양과 고슴도치>, <제3병원>, <못난이 송편>이 더 있고, 영화도 한 편 개봉을 앞두고 있습니다.
다작은요, 나오는 역할마다 다른 표현을 못한다면 마땅히 비판 받아야 합니다. 근데 배우로서는 백 가지, 천 가지 역할에 다 도전해야 해요. 실패하기도 하죠. 하지만 도전하지 않을 수는 없는 거예요. 저는 주제가 무엇이든 캐릭터가 무엇이든, 연기로 표현하고 싶다면 잡아요. 그래서 다작이 되죠. 한번 해봤더니 인기가 좋아서 같은 패턴으로 하는, 그런 다작은 경계합니다. 작품마다 대하는 태도가 다르냐는 문제를 따져야죠.
그럼에도 불구하고 좋은 작품은 드물다고 느낀다면요?
배우로서 욕심이 왜 없겠습니까? 그런 작품이 나오지 않는다는 갈증은 배우로서 당연히 있죠. 제가 젊었을 때 한운사 선생, 조남사 선생, 그런 분의 작품이 내는 빛이라는 건 이루 말할 수 없이 좋았습니다. 시대가 변하면서, 세상을 관통해서 보지 않는 젊은이들이, 작가라기보다는 구성작가 식으로 써놓으니까 메시지도 감동도 증발하는 거죠. 배우로서 내가 하고 싶은 건 이만큼인데, 하라는 건 겨우 요만큼인 작품이 많죠. 그런 작품만 많죠.
<추적자>에서는 경상도 사투리를 쓰셨습니다만. 고향은 전라도 정읍이시죠?
중학교 때까지 거기서 자랐습니다. 지금도 매달 모임이 있어서 내려가지요. 장학회 모임 하나 있고, 운동 모임 하나 있어요. 정읍을 위해서, 고향을 위해서 뭔가 하려고 애쓰고 있다는 생각이 들어요. 그게 참 저를 좋게 만들어줘요.
화면에 박근형이 나온다는 게, 그 박근형을 본다는 게, 꿈틀거리도록 좋은 한 해였습니다.
고맙죠. 근데 계속 그래야죠. 살아 있는 것들끼리 끊임없이 꿈틀거림을 주고받아야죠. 배우는 배우로 시청자는 시청자로 함께하는 겁니다. 곧, 코미디를 시작합니다.
- 에디터
- 장우철
- 포토그래퍼
- 목정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