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이 ‘올해의 남자’라고 말했더니, 대뜸 상을 달라고 했다. 그는 상장보단 트로피를 원했다.
일기장을 잃어버렸다고 들었어요. 찾았어요?
아직 못 찾았어요. 올해 저에 대한 내용이 전부 거기 있는데.
올해를 평생 기억해야 할 텐데요.
그러니까요. 일기랑, 글이랑, 전시할 그림이랑 정말 많은데. 아, 너무 괴로워요.
대단한 해였죠?
다 좋았어요.하지만 지금은 다리를 다쳐서 재활하다 보니까 또 일상으로 돌아간 느낌이에요. 올해 사랑받은 게 좀 오래가야 될 텐데. 하하.
액땜 한번 제대로 하네요. 최근엔 영화 <터치>가 문제였어요. 영화를 보기 힘들 정도로 상영관이 없네요.
너무 안타깝죠. 결국 상영 접는 걸로 얘기됐어요. 마케팅도 열심히 했는데. 민병훈 감독이 친구라 더 아쉬웠죠. 다음 번엔 작품으로 승부를 내서 제대로 만들자고 했죠.
<넝쿨째 굴러온 당신> 얘긴 지겹죠? 오히려 <다른 나라에서>의 유준상이 더 좋았어요. 방귀남은 남자가 공감할 수 없는 캐릭터예요.
하하. <다른 나라에서>의 평가가 전작에 비해 안 좋았어요. 외국에서는 꽤 좋은 평가를 받았는데. 언젠가 또 좋은 평가를 받겠죠?
10년 전 <어사 박문수>에 출연했던 게 생각나네요. 평가는 좋았는데, <야인시대> 때문에 시청률이 정말 안 나왔죠?
지금으로 따지면 그렇게 안 나온 것도 아닌데, 그때는 시청률이 아주 중요했어요. 위안이 있다면, 첫 번째 퓨전 사극이었다는 점이에요. 말을 편하게 한 최초의 사극이었죠. 다들 왜 그렇게 하냐고 욕도 많이 했는데, 지금은 그게 보편적이죠.
올해는 칭찬으로 가득했어요. 얼마나 갈까 하는 걱정은 없어요?
없다고 하면 거짓말이죠. 이번에 뮤지컬 하는데, 그렇게 공연을 많이 했는데도 또 설레고 떨리고 겁이 나요. 사실은 얼마 전 공연에서 가사를 잊어버려 하늘이 노랗게 보였거든요. 그 이후로 정말 긴장 많이 했어요. 그걸 극복하려니 힘들더라고요. 요즘은 모든 게 그래요. 항상 불안해하고 극복하고. 그런 과정이 너무 힘들어요.
이제 잃어버릴 게 많아서는 아닐까요?
글쎄요…. 생각해봐야 되겠네. 이번에 일기장 잃어버렸잖아요, 이거 못 찾잖아요, 머릿속에 계속 그 공책에 썼던 글과 그림이 맴돌거든요, 그런데 다시 그려보려고 하면 안 그려져요. 하지만 새로운 그림이 그려져요. 한 번도 안 그렸던 그림이 그려지는 거죠. 그러면서 또 얻는 것이 있고, ‘나 느는 것 같아’ 할 때도 있어요.
그럼 올해를 잊어야 내년에 더 나은 유준상으로….
하하하. 아니죠. 그렇다고 올해를 잊으면 안 되죠. 어떻게 해서든 ‘요거’를 잘 버텨야 한다고요. 요령 피우는 건 아닌데, 어떻게 하면 지금의 좋은 상황을 잘 버틸 수 있을까, 이런 생각을 많이 하는 것 같아요. 다들 상황이 좋다고 말씀하시니 정말 좋긴 한 것 같은데, 저는 또 워낙 오랫동안 이 생활을 해서 이게 또 금방 시들 것도 알고 있어요. 알고 있으면서도 그러지 않기를 바라는 게 사람 마음인 거죠. 한편으론 ‘아, 노력 안 하면서 어떻게 하면 안 될까’ 하는 생각도 하고. 하지만 노력 안 하고도 되는 건 아무것도 없다는 걸 확실히 아니까.
가늠이 될까요? 몇 년 더 할 수 있을지.
원래는 한 칠십, 팔십까지 계속하고 싶었는데, 요즘엔 몸이 좀 힘들고 그러니까, 아… 여행을 1년 갔다 와야 되나, 하는 생각도 들어요. 나이 때문에 두려움이 더 많아지는 것 같아요. 이젠 다른 것과의 싸움이 아니라 내 스스로와의 싸움이 너무 커요. 근데 다쳐서 좋은 것도 있어요. 일을 안 하니까. 이런 생각도 할 수 있고. 재정비할 수 있는 거죠, 오늘도 계속 그런 생각만 하다가 하루 다 보냈어요. 나약해지지 말고 열심히 해야지, 할 수 있어, 스스로를 북돋워주고.
영화, 드라마, 뮤지컬 전부 다 해낸 해였어요. 아픈 손가락이 있을까요?
요즘은 작곡한 걸 편곡하고 있어요. 그 작업들이 너무 재미있어요. 곡 써놓은 걸 이제 완성시키는 단계예요. 얼마 후에 전시회하는 작품 마무리하고 그랬죠.
노래와 그림이 추가됐네요.
그런 것들은 아픈 상태에서도 할 수 있으니까요. 요즘 집중하고 있죠.
‘종합 예술인’ 같은 말도 괜찮나요?
예전엔 한 우물만 파는 시대였는데, 저는 좀 왜 그래야 하나 싶었어요. 여러 가지를 할 수 있다고 생각했죠. 오래 걸리겠지만 분명 다 도달한다고 생각했어요.
이제 그 각각의 우물들이 어느 정도 깊어졌을까요?
하도 오랫동안 하다 보니까 조금씩 조금씩 결실을 맺는 지점이 생겼어요. 최근엔 기타랑 피아노 레슨을 받고 있거든요. 이게 또 너무 재미있는 거예요. 그래서 재활 치료 갔다가 음악학원 가서 레슨 받고 돌아와요. 레슨 받으면서 물론 다리는 좀 아픈데, 또 새로운 걸 배워야 해요. 올해 마지막까지 지루하지 않으려면.
뜨거움만으로 올해의 남자를 꼽으라면, 유준상밖에 없겠네요.
상 좀 만들어주세요
상이요? 봉황새 그려진 상장 같은 거요? 그냥 한 권으론 만족이 안 되나요?
책에는 이름이 조그맣게 쓰여 있잖아요.
하하. 참….
아이 참, 조그만 트로피 하나 만들어주세요. 애들한테 자랑하게. 아하하하.
- 포토그래퍼
- Kim Jung Ho
- 스탭
- 스타일리스트 | 정주연(D12), 헤어 / 이순철, 메이크업/ 아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