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ULTURE

미녀가 있고 야수가 있다

2008.09.01GQ

미녀가 있고 야수가 있다. 여배우가 있고 이종격투기 선수가 있다. 네 명의 여자와 네 명의 남자. 모두 뜨겁고, 가장 새롭다.

끝이 모피로 마무리된 원피스와 티 스트랩 구두는 모두 질 스튜어트

끝이 모피로 마무리된 원피스와 티 스트랩 구두는 모두 질 스튜어트

이은성 꼼짝 말라고 말한 뒤 세상의 모든 각도에서 쳐다보고 싶은 얼굴. 참 묘하다. 눈과 코와 입과 귀가 남들과는 다른 감각기관이라도 되는 것 같다. “이제까지 캔디 스타일 캐릭터는 안 했어요. 안 어울리니까. 그런데 안 어울려도 어울리게 해야 하니까 그럼 어울리게 되겠죠.” 역시 묘한 얘기다. 자신감이기도 하고 입장이기도 하고 즐거움이자 취향이기도 한. 그리고 그는 갑자기 ‘푸하’ 웃는 스타일이다“. 묘하다는 이미지를 얻었으니 이젠 섹시하다 청순하다 이런 거까지 다 얻어와야죠. 다 내 거니까, 다 내 거예요.” 이럴 줄 알았다. <다세포소녀>에서 앙칼진 눈으로 ‘두눈박이’ 를 연기했을 때 이미,‘ 저는 이것도 모자라고 저것도 부족해서 연기를 배우는 중이에요’ 같은 헛소리하지 않을 줄 알았다. <은하해방전선>과 <얼렁뚱땅 흥신소> <더 게임>을 통과하고 있는 그는 너무 당연하게도 스무 살이다. “ 이제 어른이 되어야겠죠. 어른 같지 않은 어른이 정말 많아요. 같이 일하면서 왜 저렇게 어른답지 못할까 하는 생각을 수천 번도 더 했어요. 되게 힘들여서 멋진 어른이 되고 싶어요 이젠.” 좋은 영화를 보면 좋은 사람이 되는 게 맞다고 말했다. 솔직하지 않은 연기는 죽어도 할 수 없다고도 했다. 어떤 충동으로부터 시작하는 말들과 이내 그것을 확신하는 표정들. 이은성은 속속들이 뚜렷하다. 묘해 보이는 이유도 같다. 그는 확대한다고 입자가 깨지는 그림파일이 아니다. 뭔가 더 진하게 커질 뿐이다.

 

모피 목도리는 폴더 by 홀 페이퍼가든, 체인 목걸이는 퍼블리카, 바지는 제너럴 아이디어 by 범석

모피 목도리는 폴더 by 홀 페이퍼가든, 체인 목걸이는 퍼블리카, 바지는 제너럴 아이디어 by 범석

강경호 어릴 땐 어땠냐고 물었더니, 맞지도 않고 때리지도 않았다는 시시한 대답이 돌아온다. “ 집에서 고무찰흙으로 조그만 캐릭터 만드는 거 좋아했어요. 피카추 같은 거.” 부산 사투리가 어눌하게 섞인 말투, 웃으면 금세 초승달이 되는 눈, 게다가 피카추라고? 모르고 봐선 어디 주먹 한번 날릴까 싶다. “ 도장 다닌 지 6개월 되었을 때, 관장님이 ‘니는 센스가 보인다’고 하셔서 바로 시합나갔어요. 나가서 이겼어요.”그에게 ‘헝그리 복서’ 류의‘악으로 깡으로’ 같은 건 없다. 겁이 없었을 뿐이다. 눈이 그렇게 큰데도.“감정이 무뎌졌다고 할까요? 시합 나가도 무덤덤하고 이겨도 무덤덤해요. 한 방 맞아도‘내가 아픈가?’이래요. 시합한 거 동영상 보면 저게 내 맞나? 낯설어 보여요.” 통합전적 9전 9승, 별명은‘미스터 퍼펙트’, 스피릿 MC 웰터급 타이틀 도전자, 모두가 무색하게 그는 연신 싱글벙글이다. “도장 동생들이 자주 놀리고 괴롭혀요. 제가 좀 산만해요. 잘 웃고, 둔해요.”그를 자극하거나 힘들게 하는 건 뭘까. 어떤 불의? 부상의 악몽? 상대선수의 몸놀림?“ 할머니가 아침마다 삼겹살을‘꾸’워주시는데요. 3개월째 먹으니까 이젠 막 헛구역질이 나요.”또 웃는다. 그렇다면‘육식동물처럼’이라는 포토그래퍼의 한 마디에 이런 표정을 지은 건, 관장님도 알아봤다는 센스일까, 아님 본능일까.

 

모피가 달린 카메라 줄은 블랭크 에이 리미티드 에디션, 트레이닝 팬츠는 나이키

모피가 달린 카메라 줄은 블랭크 에이 리미티드 에디션, 트레이닝 팬츠는 나이키

권아솔 2007년 8월 19일, 그는 링 위에서 쓰러졌다. 연장까지 가는 접전이었고, 언론은 대한민국 이종격투기사에 남을 명승부였다며 관전평을 쏟아냈다. 하지만 그는 바닥에 등을 대고 누워있었다. 승자가 아니었다. 곧바로 여럿이 그를 둘러쌌고 볼펜만한 라이트로 동공을 비추는 모습이 보였다. 무슨 소리를 들었을까? 정신이 있긴 했을까? “ 콜라랑 맥주 마시고 싶었어요.” 권아솔은 이렇게 말하는 남자다. 엉뚱하다고 쥐어박고 싶지만 그게 다는 아니다. 목포에서 항구 바람 제대로 맞으며 자랐고, 링 위에선 벼락 같은 타격을 선보이는 그는 자신이 하는 일이 ‘싸움’ 이 아님을 단호하게 말하는 남자이기도 하다“. 그냥 길거리 싸움같이 싸움 좀 한다고 링 위에 올라오면 아마 한 명도 제대로 이길 수 없을 거예요. 훈련하고 열정을 쏟으면서 경기를 치르는 거죠. 다른 스포츠와 뭐가 다르죠?”그의 경기는 시원시원하다. 다시는 지지 않겠다는 각오 속에서 더욱 그렇다. 두려울 게 없다. 망설일 일도 없다. 복수는 그의 것이니까. 목포 사나이니까. 다만 한 가지“, 저는 쥐가 정말 싫어요. 죽은 쥐도 싫고 뛰어가는 쥐도 싫고 가만히 있는 쥐도 싫어요. 쥐를 볼 수도 없어요.” 그가 쥐와 싸울 일은 없을테니 일단 다행이다.

 

새틴 드레스는 아이잗 콜렉션, 스틸레토 힐은 미우미우

새틴 드레스는 아이잗 콜렉션, 스틸레토 힐은 미우미우

이민정 “배우는 우선 말하는 게 멋있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모델이 아니니까요. 한 시간 얘기하면 두 시간 얘기하고 싶은 사람, 연기하는 걸 보면 도저히 자리를 뜰 수 없도록 하는 사람, 이게 배우라고 생각하지, 얼굴 이쁘고 안 이쁜 건 솔직히 잘 모르겠어요.”예쁜 여자가 하는 말은 일단 믿지 말라고 했는데, 이 말도 그 범주에 속하는 걸까? 색(色)과 계(戒)가 오목조목한 얼굴에 목소린 습기가 배어 있다. 그의 말을 좀더 듣는다“. 사실 아직도 무대가 편해요. 연극 작품수가 월등히 많은 건 아니지만 온몸으로‘진짜 연기’를 하고싶어요. 카메라는 그걸 다 잘라내잖아요.”한 아파트 광고에서 ‘수정 씨’로 불린, 그리고 내년 봄 시작하는 드라마 <일지매>의 여자주인공에 캐스팅된 이민정은 풋내기들의 어떤 어리석음으로부터 일찌감치 걸음을 내디딘 듯하다. 욕심 낼 것에 욕심 내고, 버려도 좋을 것에 가차없고, 미래에 대해서도 감을 잡으니까“. 처음에 아버지께 ‘배우 할 게요’ 말씀드렸더니, 평생 길거리에 침 한 번 못 뱉고 살아도 괜찮냐고 물으셨어요. ‘저 원래 침 안 뱉어요’라고 답했어요. 조금 더 지나면 어떻게 될까 생각하죠. 미리 걱정해 놓으면 나중에 편한 거 같아요. 지금은 나를 소진시킬 만큼 매력적인 작품에 빠지고 싶어요.” 가만히 보고 있는데도 잘 기억나지 않는 얼굴이다. 누군가 여럿을 닮은 것도 같고, 전혀 다른 사람인 것도 같다. 이민정은 그렇게 시작하고 있다.

 

크림색 드레스는 플로체, 목걸이는 제이 에스티나, 토 슈즈는 에린 브리니에

크림색 드레스는 플로체, 목걸이는 제이 에스티나, 토 슈즈는 에린 브리니에

유연지 톡 쏘는 맛이란, 홍어나 샴페인, 식초나 사이다에만 허락된 게 아니다. “시트콤은 거의 자기 본 모습이 나온다고 하잖아요. 톡톡 내뱉고 새침하고. 원래 제 캐릭터랑 비슷해요.”<김치 치즈 스마일>에서 긴 생머리에 미니스커트를 입고 나오는 여자애, 유연지는 지금 자기 얘길 하고 있다“. 스물 셋에 미스 춘향 선이 되었어요. 말하자면 자격증을 따는 기분으로 미인대회에 나갔어요. 연기를 할 생각은 없었어요.”그는 대회에서 가장 눈에 띄는 존재가 되었다. 심사위원들 앞에서, 미인대회에 나왔는데 왜 이리 연기를 시키냐고 이해가 안 간다고 말해버렸다“. 제 성격이에요. 처음 EBS 드라마에 캐스팅되었을 때 주연이 아니었거든요. 그런데 회사에서 주연이 아직 정해지지 않았다면서 주인공을 따오라는 거예요. 그걸 어떻게 따와요. 막무가내로 다시 감독님을 찾아갔어요‘. 감독님, 주인공이 하고 싶습니다. 연기를 하나 준비해왔는데 한번 보시죠.’그러고 펑펑 우는 연기를 했어요. 하다가 민망해서 멈췄는데 그때 감독님과 눈이 마주쳤죠. 찌릿.”그는 사극에 남다른 애정이 있다. 하고많은 미인대회 중에 미스 춘향에 나간 것도 쪽진 머리가 예쁘다는 말을 듣던 차라서였다“. <황진이>를 하면서 하지원 언니가 참 부러웠어요. 기회가 된다면 김철규 감독님과 윤선주 작가님과 좋은 작품 해보고 싶어요.”겉만 번지르한 얘기, 뻔히 드러날 저능함, 싹부터 틀려먹은 자의식, 불결한 내숭…. 그에겐 하나도 해당되지 않는다. 세상에서 세 번째로 좋은 질문을 했다. 지금 뭘 먹고 싶냐고. 3초 정도 생각하다가 입술을 오므리고 내는 소리는 이랬다“. 음, 꽃등심?” 이를 어쩐다? 사주고 싶었다.

 

푸른색 여우털 조끼는 퓨어리, 트레이닝 팬츠는 아크네 진 by 에크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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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광희 그가 경기하는 모습을 한 번이라도 봤다면 과연 별명에 무릎을 칠 것이다‘. 크레이지 광’이광희는 지금 스피릿 MC 웰터급 챔피언이다. 흡사 돌도끼를 든 선사시대의 사냥꾼처럼 곰이라도 때려잡을 듯 상대에게 달려든다. 그에게 일격을 당한 상대는 모두 어안이 벙벙한 표정을 짓기 일쑤다. 아담한 키에 뱃살도 볼록해서 얼핏 보면 귀여운 남동생 같은데 말이다“. 어릴 땐 만날 맞고 다녔어요. 처음엔 태권도장을 한 2년 다녔는데 너무 약하더라고요. 태권도를 해도 맞고 다녔으니까요. 회비 뜯기고, 오락실에서 동전도 뺏기고. 그래서 킥복싱으로 바꿨어요. 중 1때 어떤 애랑 한판 붙었는데 이겨버렸어요.”그는 뺏기지 않는 사람이 되었고 이기는 사람이 되었고 마침내 챔피언이 되었다. 이젠 방어전에 나선다. “(강)경호랑 (권)아솔이랑 다들 친하게 지내요.” 어떻게 그럴 수 있을까? 막말로‘죽일듯이’달려든 상대와 어떻게 어깨동무를 하고 사진을 찍을 수 있는 걸까? 간단하다. 이건 쇼가 아니라 스포츠기 때문이다. 첫 방어전을 앞둔 그의 싸이월드 미니홈피엔‘독하게 마음 먹자’라고 써있다. 도전자인 강경호의 미니홈피는‘all in’이라는 말과 함께 모든 항목이 닫혀 있다. 1월 20일, 둘 중 한 사람은 챔피언이 될 터, 쉬어가는 의미에서 가볍게 물었다. 돌도 씹어삼킬 것 같은 모습인데, 방에 혼자 있을 때 바퀴벌레가 나오면 어떻게 하느냐고. 그의 대답은“의자 위로 올라가 누나를 불러요”였다“. 벌레는 정말 너무 싫어요.” 그는 몹시도 인상을 찌푸렸다.

 

검정색 모피 조끼는 사바티에, 베이지색 털 코트는 스타일리스트 소장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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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동현 그는 심드렁하게 말했다. 꿈이 없었다고. 그냥 고등학교 2학년이었다고.“친구 세 명이랑 학교 근처 체육관에갔어요. 처음에 내는 안 가고 애들 먼저 보내서 분위기 보고 오라 했어요.”경상도 남자는 무뚝뚝하다고 했다. 아니라고도 했지만. 그는 무뚝뚝했다. 사람들이 이종격투기에 대해 갖는 편견에 대해서도 그는 땅에 떨어진 나무토막을 치우듯 그런 게 아니라고 툭, 말했다“. 잘 몰라서 그래요. 치고 박고 하는 싸움이라고 하겠지만, 누워서 사람 비틀고 하는 거 보면 이상해 보이겠지만, 또 누운 사람을 공격하는 게 비신사적이라고 하겠지만, 다 몰라서 하는 소리예요. 누웠다고 불리한 게 아니거든요 이게.”2007년 그는 상대와 싸운 것보다 부상과 싸운 날이 더 많았다. 깁스를 했다 풀었다 또 했다. 경기에 링에 땀에 펀치에 또 승리에 갈증이 많다. 하지만 포토그래퍼를 애먹이기로는 이미 챔피언이었다. 험상궂게 인상을 쓰면 이내 웃는 얼굴이 되었기 때문이다. 기합소리까지 넣어가며 내 천 자를 이마에 새겼지만 촬영된 사진은 유감스럽게도 ‘영구 없다’ 였다“. 아 이게 아닌데.” 순간 그의 눈이 번쩍했다. 그 눈빛을 보여달라고 했다. 미동도 없이 그는 계속 카메라를 쳐다봤다. 살아있는 먹이를 보듯이.

 

블라우스와 구두는 모두 제인 바이 자인 송, 오버롤 원피스는 비터 앤 스위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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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다민 ‘우윳빛 살결’이라는 말은 한낱 이미지일 뿐일까? 아니다. 직접 보면 그게 그러니까 음…. 한다민은 <왕과 나>에서 공혜왕후를 연기했다. 착하디착한 캐릭터였고 일찍 죽는 비련의 여인이었고 소복이 잘 어울렸다“. 솔직히 아직은 카메라가 무서워요.”떨리는 목소리가 아니었는데도 새장 속의 새가 내는 소리처럼 애처롭다. “배우니까 연기를 잘해야 하잖아요. 그런데 저한텐 저 자신을 깨는 게 더 중요한 것 같아요. 남한테 뭘 드러내는 걸 싫어해요. 거울도 잘 안봐요. 그래서 욕도 좀 먹어요. 연예인이 뭐 그러냐고. 자질이 없는 건지도 몰라요. 제가 누군지도 잘 모르겠어요.” 이런 말이 어떻게 들리느냐 하면, 순수하게 들린다. 그러니 다음 질문은 프루스트의 소설이나 연필로 그린 드로잉의 부드러움, 들꽃의 꽃말 등에 관한 것이라야 할까? “농구랑 배구를 너무 좋아했어요.” 그러니까 한창 연세대가 날리던 시절 이상민이나 우지원의 팬이었다는 얘기? 배구라면‘김세진 오빠’겠고“. 레이업슛도 할 줄 알아요.”드리블로 치닫다가 두 발짝 디디고 튀어올라 림에 쏙 집어 넣는 그 슛 말인가? 그의 목소리가 조금 다르게 들렸다“. 체육대회를 2박3일 하는 학교에 다녔는데 제가 서브를 넣으면 남자애들이 제발 힘 조절 좀 하라며,저만치 뒤에 가서 넣으라고 했어요.”우윳빛 살결은 그대로다. 볼에 홍조가 좀 생겼을 뿐. 앞으로 그에게 어떤 모습을 기대해야 할지 기분 좋게 난감해졌다.

    에디터
    장우철
    포토그래퍼
    이동욱
    스타일리스트
    실비 K
    헤어 & 메이크업
    염선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