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를 관통하는 드레스 워치 키워드 3.
1. 더 얇아진 컴플리케이션
시계는 케이스 두께가 얇을수록 더 포멀한 느낌을 준다. 원래 럭셔리 스포츠 워치로 분류되는 불가리 옥토의 울트라신 모델들이 드레스 워치 같은 인상을 주는 것이 이러한 사실을 증명한다. 그래서 쇼파드의 L.U.C 플라잉 T 트윈처럼 전형적인 드레스 워치의 디자인을 하고도 케이스가 얇다면, 그것은 범접하기 어려운 우아함으로 표현된다. 더군다나 플라잉 투르비용과 같은 하이 컴플리케이션 기능을 더했을 때 시계의 가치는 한층 더 높게 평가받는다. L.U.C 플라잉 T 트윈에 탑재한 인하우스 무브먼트 L.U.C 96.24-L은 오토매틱 와인딩이지만, 마이크로 로터를 사용해 무브먼트 두께가 3.3mm에 불과하다. 그래서 케이스 두께도 7.2mm로 매우 얇다. 이름에서 짐작할 수 있듯이 트윈 배럴을 적용해 65시간의 롱 파워 리저브 사양이다. 시계의 정확도를 증명하는 크로노미터 인증과 하이엔드적인 요소를 평가하는 제네바 실을 모두 획득했으며, 공정 채굴로 얻은 페어마인드 골드 소재를 사용했다.
브레게 또한 클래식 투르비용 엑스트라-플랫 스켈레트 5395를 통해 울트라신 투르비용을 발표했다. 이 시계는 2013년 발표 당시 ‘세계에서 가장 얇은 오토매틱 투르비용’ 타이틀을 거머 쥔 5377의 스켈레톤 버전인 셈이다. 다만 5377의 케이스 두께 7mm보다 0.7mm 두껍게 완성됐는데, 이것은 스켈레톤 워치의 제작 난이도 때문으로 풀이된다. 이 시계의 스켈레톤화는 다이얼 왼쪽을 시원하게 비워냈을 만큼 과감하다. 배럴과 투르비용 케이지의 디자인도 상하 대칭을 이룬다. 이런 점들이 시계에 극적인 아름다움을 부여한다.
2. 극도의 복잡성
퍼페추얼 캘린더, 투르비용, 스플릿 세컨드, 미니트 리피터, 천문 시계 등의 하이 컴플리케이션 기능 3개 이상을 하나의 시계에 담아낸 것을 그랜드 컴플리케이션이라고 한다. 500만원대 이하의 시계에 주력하는 미들레인지 브랜드의 경우 하나의 기능만을 더한 하이 컴플리케이션 워치도 거의 만들지 않기 때문에 극도로 복잡한 그랜드 컴플리케이션은 하이엔드 워치 메이커 중에서도 매뉴팩처의 역량이 특출난 브랜드만의 전유물이다.
바쉐론 콘스탄틴은 그랜드 컴플리케이션 모델을 레귤러 컬렉션에 포함시키는 극소수의 브랜드다. 올해 발표한 트래디셔널 트윈 비트 퍼페추얼 캘린더 역시 그렇다. 이 시계는 앞서 말한 하이 컴플리케이션 기능은 퍼페추얼 캘린더만을 갖추고 있어 전통적인 그랜드 컴플리케이션으로 보기 어렵지만, 이때까지 시계 업계에서 누구도 시도하지 못한 놀라운 메커니즘을 접목한 최초의 시계다. 그 기능은 밸런스의 진동수를 변경 가능한 것. 그래서 밸런스 휠이 두 개다. 다른 브랜드에서도 이미 2개 이상의 밸런스 휠을 갖춘 시계들을 선보이긴 했지만, 그것은 엄밀히 말해 심미적인 과시를 위해 존재하는 메커니즘이었다. 하지만 이 시계는 평상시에는 5Hz의 하이 비트로 시계가 작동하며 극도의 정확성을 지니고, 시계를 손목에서 풀러 거치할 때 1.2Hz의 극단적인 로우 비트로 전환해 파워 리저브를 65일(1560시간)로 대폭 늘린다. 65시간의 파워 리저브라는 것은 손목시계로서 가장 긴 기록이다. 이 시계의 무브먼트인 핸드 와인딩 칼리버 3610 QP는 동력을 밸런스로 전달하는 기어 트레인이 완벽하게 분리되어 두 개의 무브먼트를 하나로 합친 것이나 마찬가지다. 파워 리저브가 어마어마 길기 때문에 퍼페추얼 캘린더의 고질적 문제인 시계가 멈춰 새롭게 날짜를 세팅할 때 극도로 주의해야 하는 단점을 개선했고, 로터를 더해 두께를 늘일 필요도 없게 됐다.
예거 르쿨트르는 브랜드가 자랑하는 다축 투르비용, 웨스트민스터 미니트 리피터, 퍼페추얼 캘린더를 하나의 시계에 담은 전통적인 그랜드 컴플리케이션인 마스터 그랑 트래디션 자이로투르비용 웨스트민스터 퍼페추얼을 선보였다. 이 시계는 케이스 두께가 14mm로 얇은 편이며, 복잡한 기능들이 작동할 때 시간의 오차 발생을 최대한 억제하기 위해 콘스탄트 포스 메커니즘으로 토크를 유지한다. 퍼페추얼 캘린더 기능이 있는 매뉴얼 와인딩 무브먼트의 단점을 최대한 없애기 위해 파워 리저브 사양도 52시간으로 짧지 않게 했다. 미니트 리피터임에도 50m 방수가 가능한 것도 사용자의 편의를 고려한 설계다.
랑에 운트 죄네도 플라이백 크로노그래프, 퍼페추얼 캘린더, 투르비용을 하나로 합친 다토그래프 퍼페추얼 투르비용을 발표했다. 일반적인 투르비용과 달리 다이얼에 오픈 워크 처리를 하지 않은 것은 자외선으로 인한 윤활유의 증발을 막기 위한 것이기도 하고, 다이얼의 가독성을 높이기 위한 조치로 볼 수도 있다. 최근 시계 업계에서 유행하는 샐먼 핑크 다이얼과 브랜드 특유의 디지털 빅 데이트 인디케이터가 매력을 어필한다. 케이스백을 통해 완벽하게 가공된 매뉴얼 와인딩 무브먼트의 아름다움을 감상할 수 있다.
3. 다채로운 다이얼 컬러의 유행
화이트, 실버, 블랙, 그레이, 블루 등은 시계의 전통적인 다이얼 컬러다. 하지만 최근 그 어떤 색상을 머릿속에 떠올리더라도 찾을 수 있을 정도로 다이얼 색상이 풍부해졌다.
모저 앤 씨는 극도로 미니멀한 다이얼의 시계를 매년 선보이는 브랜드다. 스위스 알프 워치 미니트 리피터 콘셉트 블랙처럼 다이얼 위에 아예 핸즈가 없고, 미니트 리피터 소리로만 시간을 알리는 극단적인 모델까지 갖추고 있을 정도다. 올해 발표한 인데버 투르비용 콘셉트 코스믹 그린은 최근 유행하는 그린 컬러를 다이얼에 적용한 시계다. 하지만 다이얼 외곽으로 갈수록 색이 어두워지는 그러데이션 효과를 선레이 가공과 더해 입체적이면서도 신비로운 느낌으로 차별화를 보인다. 브랜드 로고와 인덱스가 생략된 미니멀함이 다이얼의 컬러감에 집중할 수 있게 만들며, 6시 방향에 오픈 워크 처리를 통해 투르비용 케이지의 모습도 볼 수 있다.
피아제는 가장 진귀한 다이얼 소재 중 하나로 꼽히는 운석에 블루, 그레이, 골드 컬러를 더한 알티플라노 40mm 운석 다이얼 컬렉션을 선보였다. 케이스는 모두 로즈 골드 소재이며, 내부에는 울트라신 셀프 와인딩 무브먼트 1203P를 탑재했다. 사실 블루와 그레이, 골드 컬러는 모두 흔하게 찾을 수 있는 드레스 워치의 다이얼 색상이지만, 운석에 컬러를 더한 것은 매우 특별한 것이기에 일반적이라고 여길 수 없다.
롤렉스는 럭셔리 드레스 워치 컬렉션인 데이-데이트 36의 핑크 오팔 다이얼 버전을 내놨다. 이 다이얼은 천연 스톤을 얇게 잘라내 만든 다이얼로 변색과 산화가 일어나지 않으며, 흔치 않은 소재이기에 소장 가치가 높다. 케이스와 브레이슬릿은 화이드 골드 소재이며, 베젤과 인덱스는 다이아몬드로 장식했다.
오리스는 컬러 다이얼 트렌드에 가장 멋진 포트폴리오를 보여주는 브랜드다. 올해는 본래 파일럿 워치로 탄생했지만, 현재는 드레스 워치적인 성격이 강해진 빅 크라운 컬렉션의 포인터 데이트 라인을 통해 암적색의 다이얼 모델을 출시했다. 지름 40mm의 케이스는 스테인리스 스틸 소재이며, 레더 스트랩 베리에이션도 만날 수 있다.
- 에디터
- 김창규 (컨트리뷰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