팔짱을 꼈는지는 기억나지 않지만, ‘얼굴은 그만하면…. 어디, 연기는 얼마나 하나 보자’ 하는 마음이었던 것은 확실하다. <태왕사신기>의 ‘수지니’ 이지아와의 첫 대면은 대개 그런 식이었을 테다. 당대의 유력한 여배우들 이름이 오르내리던 배역에 덜컥 듣도 보도 못한 신인 여자애가 등장했으니 그럴만도 했다. 그런데 이지아는 모두의 의심을 모두의 호기심으로 바꿨다. 그리고 모두의 시선을 이끌었다. 아직은 거기까지다. 지나치지도, 미흡하지도 않은 관심, 어쩌면 모든 배우들이 가장 동경하는 지점일지도 모르는 야릇한 시간, 이지아는 지금 그곳에 있다.
어려서부터 연예인이 되는 게 어떻겠냐는 얘기가 아주 많았다던데 그때는 왜 안 했나?
연예인의 사생활에 관한 안 좋은 얘기를 너무 많이 들었다. 게다가 텔레비전에서 본 몇몇 연예인들은 매일 거울만 볼 것 같았다. 말하자면 동경의 이미지가 아니었다. 그때는 내가 해낼 수 있는 일로 느낄 수 없었다. 그러다가 나이가 들자 이제는 내가 스스로 만들어나갈 수 있겠다는 생각과 그래서 다를 수 있지 않을까 하는 마음이 생겼다.
김종학 감독의 테스트가 서른 번이나 이어졌다. 매일 했다면 시험만 한 달을 본 셈이다. 당신이 맡은 역할에 김태희, 김희선, 하지원 등이 거론되었고 또 많은 여배우들이 탐냈다는 후일담이 전해졌다. 그런 역할을 연기 경험이 전무한 당신이 하게 된 것이다.
김종학 감독의 야심작이었고 대작이었다. 게다가 여배우라면 누구라도 하고 싶어할 역할이었다. 내게는 과분했다. 그래서 더 열심히 해야 했고, 열심히 했다.
배용준과 같은 소속사 식구이기 때문이라는 추측도, 혹은 배용준의 연인이기 때문이라는 소문도 있었다.
아니다. 기사도 나오고 그랬지 않나. 그런 얘기가 들릴 때, ‘아, 정말 연예계라는 세계가…’했다. 하하. 더 잘해야지, 정말 정말 열심히 해야지, 했다.
그런 얘기를 들으면 어려서 연예인을 하지 않으려고 했던 때의 우려가 떠올랐을 것 같다. 스스로를 어떻게 독려했나?
막연히 보면, 무슨 작품할 때마다 남녀 주인공에게 소문이 생기는 것 같았다. 그래서 내가 배우가 되면 그런 소문을 아예 없애야겠다, 오빠 동생도 하지 말아야겠다고 했다. 막상 내게도 그런 얘기가 나오니 까 앞으로 더 조심해야겠다고 생각했다. 배용준 선배와의 얘기는 소속사가 같아서 나온 얘기가 아닐까?
그럴 것이다. 그런데 연예계에 대한 막연한 불신과 두려움이라는 게 막상 겪어 보니 몇몇 뜬소문을 제외하고는 괜찮다고 생각하나? 아니면 역시 그런 곳이라 더욱 몸을 사려야겠다는 생각이 드나?
다행히 내가 있는 공간은 다르다고 느끼고 있다. 만족하고 좋다. 감사한 일이다.
연기 연습을 아주 오래 하며 꿈을 키워 온 배우도 그 시작은 주인공 동생의 친구 등으로 첫선을 보이는데 비해 당신은 주인공인 데다가 역할도 두 개였 다. 부담만으로 잠들지 않아도 가위에 눌릴 것 같았는데, 현장에서 들리는 소리는 ‘위풍당당 이지아’였다.
못하면 안되는데, 정말 잘 해야 하는데 하는 부담감은 크게 없었다. 준비기간이 길었던 작품이라 나름대로 준비를 했던 부분도 있고, ‘하면 하는 것’이라고 크게 생각했다. 부담감이 겉으로 드러날 정도의 준비로는 막대한 자본과 엄청난 선배 배우들 앞에 나서면 안된다고 생각했다.
배용준뿐만 아니라 박상원, 최민수, 문소리 등의 선배 배우들과 함께 3년 가까운 시간을 보냈다. 현장에서의 그들은 완벽하고 다감하고 무섭고 결을 얻기 어려운 사람들이었나?
한국 방송을 많이 못 봐서 그분들의 여러가지 이미지를 다양하게 두루 알고 있지는 못했지만 챙겨봤던 주요 작품들에서 느꼈던 것과 그 분들의 실생활은 같았다. 최민수 선배는 정말 인상적이었다. 너무 좋았다. 자신의 인생을 정말 자신의 뜻대로 영위하시는 삶의 태도가 멋있었다. 배용준 선배도 완벽주의자라는 말에 어울리는 현장 분위기를 보여주었고 다른 선배님들 모두 따뜻하고 좋았다.
그럼 연기를 할 때는 어땠나?
마지막에 대장로 역할의 최민수 선배와 딱 한 번 함께 하는 장면이 있었는데, 그 순간을 잊을 수 없다. 대장로가 수지니의 목을 조르는 장면이었는데 선배의 얼굴은 정말 눈앞에 나타난 악마의 얼굴이었다. 손에 힘은 하나도 들어가 있지 않은데 최민수 선배의 표정 하나만으로 나는 이미 숨이 넘어가는 것 같고, 목이 졸리는 것 같았다. 상대 배우로 인해 연기가 힘을 얻는 순간을 경험했다. 나와 선배의 두 얼굴이 두 개의 카메라로 동시에 잡히는 장면이었다. 모든 에너지를 다하고 있는데, 그가 숨이 막히는 듯한 느낌으로 눈에 힘을 잃어가고 있는 내게 작은 입 모양으로 ‘눈’이라고 했다. 선배의 말을 알아채자 바로 눈에 힘을 싣게 되었고 대장로와 ‘싸우는’ 수지니를 완성할 수 있었다. 또 배용준 선배는 테크닉에 관한 지도를 많이 해주었다. 감정에 빠져서 어린애처럼 카메라와 상관없이 막 하고 있을 때 기술적으로 카메라를 고려하는 방법 등을 알려주었다. 문소리 선배는 발성과 표현 등에 대해 계속 가르쳐주었다. 특히 그녀의 몰입하는 모습은 정말 본받고 싶었다.
김종학 감독은 당신을 심은하의 미모와 고현정의 당당함을 갖춘 배우라 표현했다. 솔직히 너무 좋았을 것 같다.
맞다. 너무 좋았다. 당대 최고 배우들의 장점으로 나를 표현해주셨다는 것에 정말 감사했다. 흔한 말로 제2의 누구, 제3의 누구라는 말보 다 훨씬 기뻤다.
승부욕이 강한가?
그런가? 아닌가? 하하. 누구와 비교해서 저 사람을 이겨야지, 더 잘해야지 그런 마음은 없는데 내가 내 자신을 용납 하기가 어려울 때가 있다. 상대가 있다면 어떻게 해서든지 이기면 그만인데, 그러면 편해지는데, 지금은 남을 생각하기보다 내가 더 문제다. 나는 눈이 계속 높아져가는데 그래서 만족할 수 있는 기준이 올라가고 있는데, 막상 나는 그대로인 것 같아 속이 상한다.
당신은 승부욕이 강한 사람 맞다. 배우로 살게 되면서 가장 가까이에서 느끼는 변화는 무엇인가? 사람 들이 많이 알아보는 것?
조금씩 알아보시는 것 같지만 그렇다고 생활이 달라질 정도는 아니다. 시간이 없어서 여행을 많이 못 간다는 것 정도가 변화라면 변화 같다. LA에 가서 콘치즈도 먹고 싶고 친구들도 보고 싶고 그런데 못 가고 있다. 1월에 갈 예정이다.
아직 오래되진 않았지만 배우로 사는 것은 어떤가? 지금 행복한가?
재미있다. 좋아하는 일을 하면서 지내니 행복하다. 좋아하는 일을 직업으로 가질 수 있게 되어 행복하다.
당신은 어떤 배우가 되어야만 하나?
틀에 갖히지 않는 배우, 이름을 떠올리면 어느 한 이미지가 아니라 여러 이미지가 동시에 떠오르는 배우였으면 좋겠다. 어떤 상황이나 조건에 끌려가는 배우가 아니라 내가 좋아하는 것을 마음대로 만들어가도 되는 배우였으면 좋겠다. 이런 생각을 따로 시간 내서 해보지는 않는데 인 터뷰라는 것을 하게 되니 생각하게 된다. 이런게 바로 배우가 되어서 달라지는 점인 듯하다. 그렇지 않나? 당신은 어떤 기자가 되고 싶다라거나 어떤 목표가 있다 같은 얘기를 누가 물으면 곧바로 대답할 수 있나?
나는 배우가 아니다. 그러니 인터뷰를 당할 일도 없다. 당신 같은 인터뷰이를 만나지 않는다면 말이다. 배우가 되고 나서 그렇게 달라진 것이 또 뭐가 있나?
사람에 대해 생각하게 되었다. 예전에는 나만 생각하면 되고, 보던 사람만 보면 되는 나였다면 아주 많은 사람들을 보게 되고 또 알게 된다. 그때는 누구를 믿어야 하나? 말아야 하나를 생각할 일은 없었다. 지금은 그런게 힘들게 느껴진다.
당신은 어떤 사람인가?
솔직한 사람이다. 그게 내 장점이고 또 단점이다. 외향적인 척하지만 내성적이기도 하고.
그런 성향도 바뀌었나?
솔직한 점이 덜해졌다고 해야 할까? 표현을 아끼게 되었다고 하는 것이 맞겠다. 그러면서 내가 속물이 되나? 계획적이고 나쁘고 주도면밀한 사람이 되는 걸까? 하는 생각에 속상한 적도 많았다. 그냥 지금은 어른이 되어가는 거라고 생각한다. 지혜롭게 사는 것을 터득하는 중이라고 여기고 있다.
당신의 인생을 송두리째 바꾸어 놓았을 <태왕사신기>가 끝났다. 으레 사람들은 CF와 인터뷰 등으로 바쁜 당신을 상상하고 있다. 그런 와중 당신이 하고 싶어서 새로 손을 댄 것은 무엇인가?
홈페이지 작업을 하고 있다. 소속사에서 하는 것도 있지만 배우 이지아를 포함한 나 이지아 에 대한 개인 홈페이지 제작은 내가 직접 하는 것을 허락받았다. 디자인부터 실행까지 모두 하고 있는데 힘들지만 재미있다.
자신을 표현하는 재주가 남다른 것 같다. 이제는 배우가 그래픽 디자이너에 비해 더 좋은 게 어떤 건지 말할 수 있나?
뭔가를 해서 사람의 마음을 만지고, 움직일 수 있는 일을 하고 싶었다. 모든 예술이 결국 사람을 위로하고 또 기쁘게 하기 위해 존재한다면 연기는 가장 즉각적이고 직격적으로 그 일을 해내는 것 같다. 연기는 글이나 음악이나 미술이 주는 것보다 훨씬 빠르고 강력한 것 같다.
그런 배우의 직업을 중심으로 두고, 요즘 엔터테이너와 배우, 배우와 스타 이렇게 나누어 얘기하는 것을 자주 보게 된다. 당신은 어느 쪽인가?
엔터테이너로서의 자신을 발견하기도 하나? 텔레비전 오락 프로그램에 나가서 또다른 즐거움을 주고 재미를 줄 수 있다면 좋겠는데 나는 그렇게 못할 것 같다. 엔터테이너라는게 여흥 을 위한 장점을 많이 가진 사람이라면 나는 그 건못 된다. 그저 배우이고 싶다.
배우와 스타를 나누는 구분에 대해서는 어떤가?
당신은 스타보다는 배우가 되고 싶나? 일단 그렇게 나누는 것에 대해 동의하지 않지만 말하자면 배우가 더 되고 싶다. 스타이면서 배우일 수는 있지만 배우라고 해서 모두 스타가 되지는 않는다고 생각한다. 스타는 좋은 건데 왜 싫겠나? 다만 스타를 위해 배우를 버리고 싶지는 않다는 말이다. 난, 이지아라는 사람을 통해서 배우를 더 많이 볼 수 있었으면 좋겠다.
똑똑하기까지 한 당신, 사랑에 빠지면 어떤가?
마음을 쉽게 열지 않지만, 열면 마음을 다 보여준다. 재고 달아보고, 감춰두고 하는 것, 난 안 한다.
어떤 남자에게 마음을 여나?
어떻게만 하면 마음을 연다고 말할 수는 없지 않겠나? 하하. 사람의 관계가 그런 것만으로 충족되는 것도 아니고. 나는 남자다운 남자를 좋아한다. 박력있고 강인한 그런 식의 남자다움이 아니라 비겁하지 않고 거짓말하지 않는 남자가 남자다운 남자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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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에디터
- 컨트리뷰팅 에디터/ 조경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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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스타일리스트/서은영(Agent de Bettie), 헤어&메이크업/원조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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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컨트리뷰팅 에디터/ 조경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