둘 중 하나를 선택하라면, 송일국은 어려운 걸 택한다. 그러고는 불태운다. 일희일비하지 않는다. 이미지가 어떻고 캐릭터가 어떻고 하는 문제는 그의 소관이 아니다. 그런 채 도전한다. 국립극장에서 막을 올린 연극 <나는 너다>는 송일국의 첫 번째 무대다. 첫 상연을 보름 앞둔 날, 그는 연신 걱정했다. 말 모양이 씩씩해서 걱정으로 들리진 않았다.
촬영하는 동안 거의 말을 하지 않았다. 기분이, 어제 연극 연습하는데, 정말 엉망이었다. 연출 선생님께 싫은 소리 듣고. 뭐 오늘은 괜찮다. 날씨도 좋고.
집에서 뭐가 보이나? 남산이 이렇게 보인다. 흑석동인데, 올림픽대로 타고 가다 보면….
장동건 고소영 부부가 산다는 그 빌라. 아니다. 장동건 씨는 그 언덕 위의 굉장히 고급빌라고 나는 그냥 아파트다. <주몽> 하기 전에 올림픽대로에서 대형사고가 났다. 창밖에서 퍽퍽 소리가 나서 봤더니 차 세대가 전복돼 있었다. 연기 연습하느라 항상 카메라가 준비돼 있는데, 그걸로 사고 영상을 찍었다. 앵글을 좀 아니까 풀샷, 미디엄샷, 타이틀샷, 119 오는 거랑 구조하는 것까지 또 풀샷, 타이틀샷, 다양한 앵글로 찍어서 직접 MBC에 제보했다. 뉴스에 ‘자료제공-송일국’이라고 자막이 나왔다. 그러고 나니 KBS쪽에서 이 사람 저 사람 연락이 오는데, 나중엔 <해신> 감독님한테서까지 연락이 왔다. ‘너 그걸 MBC에만 주면 어떡해!’ SBS에서는 아파트 경비사무실로 와서 방송을 했다. ‘혹시 사고를 촬영하신 분은…’사는 동네 얘기하다 별 얘기를 다한다.
미안한데, 당신이 좀 엉뚱할 거란 생각은 했다. 나는 잘 모르겠는데, 엉뚱하다고들 한다.최근엔 같이 연극하는 배해선 씨가 나한테 무지하게 엉뚱하다고 그랬다.
연극한다는 얘기는 엉뚱하지 않다. 무식하면 용감하다고, 연극 무대가 처음인데 이렇게 어려운 걸 맡았다. 3면이 관객에게 드러나는 무대에다 1인2역이다. 어제는 너무 안 돼서 돌아버리는 줄 알았다. 하필 제일 부족하다 싶은 부분을 하는데, 모친과 여동생과 매제가 간식거리를 들고 왔다. 하필이면 그때! 하다 말고 뛰쳐나갔다.
연극은 처음이라지만 그래도 ‘연기’인데, 당신이 그랬다니. 손에서 대본이 떠나지 않는다. 드라마를 이렇게 열심히 했으면 만날 대상 탔을지도 모른다. 걱정이다. 잠을 못 잔다.
못 믿겠다. 이러다 무대에서 완벽하게 하려고 괜히 그러는 거 아닌가? 아니다. 연극이라는게, 언젠가는 꼭 하고 싶었다. 진정한 배우 예술이니까.
드라마 <신으로 불린 사나이>에서의 당신에 대해 스스로 교만했다고 말했다. 연극은 어떤 성이자 각오 같다. 출연 제안은 <신불사> 전이었지만, 마음을 굳힌 건 <신불사> 후다. 기본으로 돌아가서 다시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결정했다. 내가 언제 박정자라는 이름과 함께 무대에 서보겠나. 그리고 연출은 윤석화 선생님이다. 많은 것을 디테일하게 배울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고, 배우는 중이다. 대본 리딩할 땐 TV랑 비슷했다. 근데, 동작이 들어가니 죽을 것 같았다. TV는 오버하면 어색하다. 화나는 연기라면 마음속에 화를 품으면 표현된다. 근데 연극은 밖으로 뿜어야한다. ‘오버’라는 것에 대한 연극적인 관점이 힘들다. 우왕좌왕한다. 어제도 그랬다.
연극이 시작되면 평가에 직면할 것이다. 그런 걸 신경썼으면 안했을 거다. 이미 많이 배우고 있고, 그것만으로도 큰 소득일 것 같다.
안중근 의사에 관한 알려지지 않은 이야기, 정도로 내용이 알려졌다. 어떤 작품인가? 안중근 의사가 대단한 분이라는 건 다 안다. 하지만 그 이면의 가족들이 당했던 고통에 대해서는 잘 모른다. 나도 직접 겪진 못했지만, 할머니께 들은 얘기로는 할아버지께서 아흔아홉 칸짜리 집을 팔아 학교를 세우고, 노비문서를 모두 불태웠다고 한다. 그분은 영웅이라 불리겠지만, 누가 가족들의 고통을 알겠나. 이 연극에선 안중근 의사의 아들 안준생을 통해 또 다른 생각을 이끌어내게 될 것이다.
지금 또 다른 연극 제의가 온다면? 안 한다(웃음). 마라톤 뛰는 심정이다. 처음 10킬로미터까지는 그냥 간다. 근데 30킬로미터 지나면, 내가 미쳤지 이걸 왜 뛰고 있어! 그러다가 골인지점 통과하는 희열로 고통을 잊는다. 연극도 그렇지 않을까? 무대에 서고, 관객의 박수를 받으면 어려움을 잊지 않을까? 하지만 지금은 30킬로미터다. 다시는 안 한다.
그런 걸 즐기는 쪽 아닌가? 웬만한 목표치로는 도전 자체를 하지 않을 것 같다. 당신이 말한 모든 부담감은 사실 극복하는 즐거움을 주는 대상 아닌가? 그럴지도 모른다. 재밌다. 스트레스 받으면서도 재밌다. 여튼, 무대에 서고 나서 말할 문젠 거 같다. 송일국 하면 <해신>과 <주몽>이 떠오른다.
개인적으로는 <애정의 조건>의 ‘나장수’를 기억하고 싶다. 좀 더 인간적인 매력이 있는. 하하, 그게 원래는 내가 주인공이 아니었다. <해신>도 막판에 뒤집어졌다. 그러면서 주인공 잡아먹는 뭐라고 소문나고 그랬다.
- 에디터
- 장우철
- 포토그래퍼
- 장윤정
- 스탭
- 스타일리스트 / 민희철, 헤어/ 영석(포레스타), 메이크업 / 이가빈, 어시스턴트 / 김규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