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쉐린 가이드>의 절대 권위가 조금씩 마모되고 있다. 미식의 기준을 제시하던 미쉐린의 별은 지금 어디로 굴러가나.
“분명 왔다 갔는데… 별이 나오려나….” 손에 땀을 쥐고 요리사 A가 말했다. 레스토랑 업계의 눈치 빠른 이들은 <미쉐린 가이드>의 비밀스러운 평가원들의 행동 패턴을 이미 파악했다. 어떤 부류의 사람이 어떤 몸짓으로 와서 어떻게 먹는지, 다들 안다. “별을 준다면 어느 분류일지도 궁금하단 말이지.” 머리를 쓸어 넘기는 표정엔 그래도 여유가 있었다. 별을 받고 싶다는 희망과, 별을 받을 만큼 잘하고 있다는 자존감이 그 두툼한 손에 난 땀을 말렸다.
우리가 맛있는 식당에 대해 “미슐랭 3스타”라는 관용구로 설명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그리고 인스타그램 피드에 지천인 ‘먹슐랭’ ‘백슐랭’ 등 수많은 개인적 오마주가 등장하는 데서도 알 수 있듯이, <미쉐린 가이드>는 그 자체로 상징적이다. 요리사 지망생이라면 누구나 <미쉐린 가이드>의 별 셋이 해맑은 장래희망이다. 이제 서울의 요리사가 꾸는 미쉐린 별의 꿈은 우주인이 되고 싶은 아이의 꿈보다 한층 현실적이고, 살갗에 느껴질 정도로 가깝다.
그리하여 봄부터 <미쉐린 가이드>는 요리사의 마음을 쥐락펴락. 평가원들이 본격적으로 레스토랑 순회에 나서면 업계에 이야기가 즉시 공유된다. 언제 오나? 오긴 오나? 왔었나? 안 온 건 아니겠지? 마지막 순서로 오려나? 그러는 동안 레스토랑의 여름이 훌쩍 간다. 가을로 접어들어 여름까지의 서스펜스로부터 벗어나 이미 결과를 알게 된 요리사들은 진작 다 알면서, 발간이 임박하면 집요하게 캐묻기 시작하는 기자와 칼럼니스트들과 숨바꼭질을 벌인다. <미쉐린 가이드>가 발간일까지 철저한 비밀 엄수를 요구하기 때문이다. 나는 요리조리 답변을 회피하는 그들의 표정을 ‘염화미소’와 ‘모나리자의 미소’로 분류해 결과를 예측하곤 한다. 전자는 “말은 못 하지만 알아줘요. 나 별 땄어요”라는 의미, 후자는 “올해도 별을 못 땄으니 작작 좀 물으시죠!”라는 의미인데 이게 꽤 잘 맞아떨어진다. 아무튼 둘 다 미소는 미소다. 후자의 미소에도 “별을 못 땄어도 자부심은 변함없어요”와 같은 낙관은 분명 들어 있다.
순진한 꿈과 희망 이야기 말고, 자본주의 경제 논리로 설명하자면 <미쉐린 가이드>의 경제 효과는 드라마틱하다. 한국을 놓고 보면 더욱더 그렇다. 때가 잘 맞았다. <미쉐린 가이드> 서울 편은 첫 발간한 2016년 당시의 한식 열풍에 고성능 연료를 주입했다. 한식은 서울의 식문화 자본이 됐다. 전 세계 푸디들이 품은 한식에 대한 관심이 재화로 환산되고 있다. 한식을 먹으러, 서울에 온다. 그중에서도 <미쉐린 가이드>가 별을 준 레스토랑에 온다. 한식에 대한 연구가 더욱 넓고 깊어지게 된 계기이기도 했다. 팔도의 재래 식재료를 재발굴하고, 고조리서를 연구할 수 있는 원동력은 넓어진 시장의 넉넉함으로부터 왔다. <미쉐린 가이드>가 마중물 역할을 했다.
전부터 존재했으나 진정한 의미로 뒤늦은 태동기를 맞았던 파인 다이닝도 <미쉐린 가이드>로 인해 척박한 서울 시장에 안전히 연착륙했다. 말로만 듣던, 또는 비유로만 사용하던 ‘미쉐린 스타 레스토랑’을 쉽게 방문할 수 있다는 경천동지는 누군가의 첫 파인 다이닝 경험을 끌어내는 바탕이 됐다. 그중 일부는 파인 다이닝을 일상의 특별한 이벤트로 받아들였다. 파인 다이닝을 뮤지컬이나 발레 공연을 보는 것과 같은 문화 향유 행위로 즐기는 이들은 확실히 <미쉐린 가이드> 도입 이후 증가했다. 모든 사회현상이 그렇듯 이 외에도 다양한 인과관계가 존재하지만, <미쉐린 가이드> 서울 편이 확고한 역할을 했음은 분명하다.
시의적절했던 <미쉐린 가이드> 서울 편 이후 레스토랑 시장의 저변이 국내외로 확장됐다. 모호했던 정체성이 한식으로 규정됐다. 레스토랑 수가 늘자 요리사 사이의 지식 경쟁이 심화됐고, 그로 인해 식문화는 내실 있는 발전기를 맞고 있다. 질적, 양적 성장에 걸맞은 경제성 확대도 따랐다. 쉽게 말해, <미쉐린 가이드>로 인해 돈을 번 레스토랑이 늘었다. 명예도 얻고, 돈도 벌고. 좋지 아니한가.
그리하여 언제나 잔치의 어두운 곳에는 초대 받지 못한 자의 울분이 도사린다. <미쉐린 가이드> 서울 편에 대해 좋지 않은 평판도 떠돈다. 1900년에 시작된 이 레스토랑 평가서가 갖는 권위의 요체는 지금까지도 철저한 비밀주의다. 밖으로 드러내는 레스토랑 평가 기준은 다섯 가지. 재료 수준, 요리법과 풍미의 완벽성, 창의성, 가격의 합리성, 메뉴와 맛의 일관성이다. 명확하지만, 동시에 모호하기도 하다. 이 좁은 레스토랑 업계에서 제아무리 조심한다 해도 평가원이 완벽히 정체를 숨기기는 어렵다. 이제까지는 그들의 비밀주의가 근사한 스파이 영화 같았지만, 합리를 앞세운 매서운 눈앞에선 비리와 부정의 온상으로 의심되기도 한다.
<미쉐린 가이드> 서울 편은 전 세계에서 28번째, 아시아에서는 4번째로 발간된 지역 에디션이다. 확인된 대로, 한국관광공사가 5년간 20억원의 광고비를 집행하고 있다. 어느 시점 이후 <미쉐린 가이드>는 파리, 프랑스, 유럽을 벗어나 미국과 아시아 등 전 세계로 시장을 확대하기 시작했다. 타이어 회사가 소비자의 자동차 이용을 늘려 타이어를 빨리 마모시키기 위해 시작한 여행, 미식 가이드는 120여 년이 흐르는 사이 그 자체로 미쉐린의 주요 사업 중 하나로 글로벌화된 것이다.
서울 편이 발간된 것은 버거킹이 현지화 메뉴로 불고기 와퍼를 파는 것과 다름없는 기업의 정상적인 이윤 추구 행위다. 버거킹이 불고기 와퍼 패티와 소스를 개발한 것처럼, <미쉐린 가이드>도 내국인 평가원을 한식 레스토랑 평가에 참여시키는 등 현지에 맞춤한 전략을 펼쳐 서울 편을 내고 있다. 분명, 첫해 2017년판과 2018년판까지는 현지 적응 훈련이 덜 된 리스트를 내놓았다고 생각한다.
손발이 맞지 않는 군무처럼 여러 기준이 혼재된 듯한 모습이었다. 그러나 지난해 11월 발표한 2019년판 리스트는 딱히 손색이 없는 리스트였다. <미쉐린 가이드>만의 기준이 일관되게 명확히 읽혔고, 매일 서울을 먹는 대중의 평가와도 동떨어지지 않았다.
다시 자본주의 경제 논리다. <미쉐린 가이드>는 위기에 처해 있다. 전 세계적인 일이다. ‘월드 50 베스트 레스토랑’과 ‘아시아 50 베스트 레스토랑’이 셰프 커뮤니티를 중심으로 치고 올라와 새로운 영향력을 행사 중이고, ‘라 리스트’는 빅 데이터로 전 세계 레스토랑 순서를 매긴다. 프랑스의 유력 인사가 출범시킨 이 평가 매체는 <미쉐린 가이드>의 대항마로 흔히 불린다.
이 두 경쟁자가 아니더라도 <미쉐린 가이드>는 이미 숱하게 타이틀 도전자를 맞아야 했고, 어느 지역에서는 타이틀 방어에 실패하기도 했다. 뉴욕의 요리사들은 미쉐린 별 셋보다 <뉴욕 타임스>의 리뷰를 받는 것을 더 큰 영예로 받아들이기도 한다. <미쉐린 가이드>의 터전인 유럽에서도 ‘별 스트레스’를 호소하며 별을 반납하는 요리사가 꾸준히 등장하고 있다.
무엇보다도 이제는 매스 미디어의 시대가 아니고, 문화가 톱다운으로 흐르는 시기도 종말이 보인다. 정보는 유튜브로 검색하고 SNS에선 매일 ‘M단위’ 팔로어를 거느린 새로운 권위가 태어난다. 유명 먹방 유튜버의 식당 평가가 <미쉐린 가이드>
별 만한 영향력을 미칠 수 있다는 의미다. 권위의 헤게모니가 바뀐다는 것은 권위를 기본 전제로 깐 평가서에 닥친 가장 큰 위협이다. 그런 상황에서 나는 음모론에 대한 질문을 받을 때마다 상식을 질문한다. <미쉐린 가이드>가 현명하다면 비리와 부정, 적폐가 여실히 드러나는 공감할 수 없는 평과 결과를 내놓을까? 방송인 이영자도, 외식 사업가 백종원도, <수요미식회>도, <맛있는 녀석들>도, 그리고 수없이 많은 유튜버와 인플루언서와, 물 빠진 블로거조차도 자신의 공신력이 흔들리지 않게 하기 위해 그토록 애쓰고 있는데, <미쉐린 가이드>라고 해서 본질과 욕망이 다를까? 맛없는 것을 맛있다고 거짓말해서 오래 가는 블로그나, 인스타그램이나, 유튜브, 방송, 평가 매체가 단 하나라도 있었던가? 소비자가 더 이상 믿지 않게 되면 그 콘텐츠는 팔리지 않는데도?
스스로 대중의 비웃음을 사는 권위라면 자연 도태될 것이고, 왕관의 무게를 버틸 수 있는 권위라면 스스로 존중받을 수 있는 길만을 더욱 견고히 밟을 것이다. 그러니까 재벌 걱정, 연예인 걱정, <미쉐린 가이드> 걱정은 굳이 하지 않는 것이 좋다. 글 / 이해림(푸드 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