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가가 호텔에 갔다. 구름이 눈앞에 있는 93층 객실에서 보낸 어느 하루.
작가는 언제 호텔에 갈까. 피츠제럴드처럼 화려한 전성기를 보낸 작가라면, 호텔을 집으로 삼을지 모르겠다.(그는 전성기에 뉴욕 플라자 호텔에 장기 투숙했는데, 현재 이 호텔의 스탠더드룸은 한화로 1박에 1백80만원 정도 한다.)
하지만 내가 아는 한 그런 작가는 피츠제럴드뿐이다. 간혹 호텔을 집필실로 삼았다는 유의 지폐 냄새 풍기는 글을 읽었지만, 그 역시 당사자는 대부분 마감에 닥쳐 하루 이틀 자신을 ‘글 감옥’에 결박한 것이었다. 아니면, 출판사가 값비싼 객실을 잡아, 작가에게 부담을 주며 원고 독촉을 한 경우였거나.
그렇기에 작가의 일상은 호텔과 동떨어져 있다. 열심히 쓰는 작가라면 더욱 그렇다. 작가들은 골방이나 부엌 테이블에서 고독과 싸우며 쓴다.
또는 카페에서 소음과 싸우며 쓴다. 형편이 좋은 작가라 해도, 작업실을 얻어서 쓸 뿐이다. 나는 카페를 두 시간마다 전전하며 쓴다. 그렇다면 다시 첫 질문을 되새겨보자. 작가는 언제 호텔에 갈까.
나는 책을 한 권 완성하면 호텔에 간다. 가서 수영을 하고, 달리기를 하고, 푹신한 침대에 쓰러져 하룻밤을 푹 잔다. 좋아하는 옷을 챙겨 입고 소파에 푹 기대어 커피를 마신다. 이게 책 한 권을 끝낸 나에게 건네는 위로이자, 일과 휴식의 균형을 유지하는 방법이다. 이렇게 말을 꺼낸 이유는 최근에 내가 책을 한 권 끝냈기 때문이다. 대개는 몇 달이 걸리지만, 이 책은 자그마치 3년이 걸렸다. 육체적으로도 심리적으로도 완전히 탈진했다. 하여 이번에는 특급 호텔 ‘시그니엘 서울’에 가서 하룻밤 쉬어볼까 싶었다. 그것도 서울에서 가장 높다는 호텔에서 말이다.
가는 날이 장날인지, 비가 억수같이 쏟아졌다. 그 탓에 도착하니 곧 저녁 시간이었다. 마침 호텔 측에서 프렌치 레스토랑 ‘스테이’의 식사를 예약해줬다. 미쉐린 1스타 셰프가 선보이는 요리라는데, 거절할 이유가 없었다. 오히려 그냥 먹기가 미안할 정도였다. 그 흔치 않은 식사에 늦으면 안 되니, 식사 전까지 할 것이라고는, 간단히 러닝머신 위를 달리는 것뿐이었다. 하여 일단 85층에 있는 ‘짐(Gym)’으로 갔다. ‘가는 날이 장날’이라는 속담은 원래 안 좋은 의미로 사용됐지만, 훗날 일부에서 긍정적 의미로 사용되기도 했다. ‘아무 생각 없이 가보니 장이 서서 좋다’는 의미로. 이 속담은 내게도 긍정적 의미로 변용되었다. 폭우가 쏟아진 후에 85층에서 달리니, 대형 유리창 밖이 온통 흰색이었다. 내 발밑에 구름이 깔려 있는 것이었다! 난생처음 구름 위를 달리는 기분을 느꼈다. 바람이 구름을 어딘가로 데려갈 때마다, 내 몸을 중심으로 방사형처럼 뻗은 한강 다리가 드러났다. 그 기분을 뭐라 해야 할까. 구름을 보며 달리다, 유리창을 뚫고 나가면 다리 위에 있을 것 같은 느낌이라 할까. 러닝머신에서는 에어컨 바람이 나왔다. 눈앞에 펼쳐진 자연을 만끽하며, 인류가 이륙한 기술의 진보를 접하다니. 정말 구름 위를 달리는 것처럼 땀도 별로 나지 않았다. 땀이 났다면 그건 달리기로 인한 체온 상승 때문이 아니라, 이 비일상적 경험을 내 육체가 생경하게 느꼈기 때문이었다.
샤워를 하고 81층 레스토랑에 가니, 어느덧 구름이 걷히고 해가 눈높이에 걸려 있었다. 저녁 6시부터 약 두 시간에 걸쳐 코스 요리를 느긋하게 즐겼는데, 그 시간 동안 해는 하늘을 도화지 삼아 자신이 빚어낼 수 있는 모든 색을 선보였다. 처음에는 투명한 물잔에 떨어뜨린 잉크가 퍼지듯 태양은 자기 주변을 노랗게 물들였다. 그 뒤에는 예열이 끝났다는 듯 온 세상을 붉게 태웠다. 노을이 지는 시간에, 81층 높이에 있으면 새로운 사실을 알게 된다. 땅에서는 서서히 일어나는 변화가 이곳에서는 급격히 일어난다. 하늘은 색상표 중 노란색에서 빨간색으로 이동하는 단계의 모든 색상을 2분마다 보여준다. 프랑스인 매니저가 다가와, “미스터 초이. 지금 대화에만 몰두하면 후회합니다”라고 조언했다. 잠시 포크를 내려놓고 하늘을 보니, 신은 하늘을 캔버스 삼아 2분마다 새로운 물감으로 채색하고 있었다. 그러다 어느 순간 내 눈앞이 온통 붉어졌고, 그 위로는 서서히 노랗게 번져가고 있었다. 만약 하늘이 액체라서 그 하늘을 한 잔 떠낼 수 있다면, 그건 데킬라 선라이즈가 될 것 같았다. 내가 즐긴 것은 이 풍경일까, 아니면 미쉐린 1스타 셰프의 요리일까. 당연한 말이지만, 둘 다였다.
예약해둔 스파 시간이 30분 남아, 79층에 있는 라운지 ‘살롱 드 시그니엘’에 가봤다. 다들 샴페인을 한 잔씩 즐기고 있었다. 알고 보니 샴페인은 투숙객들에게 제공되는 것이었다. 하여 나도 한잔 받을 수 있는지 물어보니, 직원은 “방금 서비스가 끝났습니다”라며 아쉬운 듯 답했다. 시계를 보니 8시 2분이었다. 아마 서비스는 8시까지였으리라. 사실 나는 샴페인 생각이 없었기에 “그렇군요”라고 하니, 직원은 뭔가 마음에 걸렸는지 “그런데 오늘 웬일인지 제 시계가 늦게 가는군요”라며 샴페인을 한 잔 따라줬다. 그러고 보니, 이 호텔의 직원들은 모두 친절했다. 밤 11시쯤에 79층의 콘시어지에게 편의점 위치를 물어본 후 엘리베이터를 타고 1층에 내리니, 1층 직원이 외부 편의점 위치를 안내했다. 묻지도 않았는데 말이다. 무전으로 79층 직원이 1층 직원에게 연락을 해둔 것이었다.
배려는 사람에게서만 묻어나오는 게 아니었다. 객실에는 화장실이 2개 있었는데, 작은 화장실은 문을 열면 변기 뚜껑이 자동으로 열렸다. 좀 더 큰 화장실에서는 변기에 다가가야 뚜껑이 자동으로 열렸다. 손만 씻고 나갈 수 있으니까 말이다. 커튼도 한 번 쓱 밀면, 자동으로 ‘스르르’ 열렸다. ‘짐’에 있는 헬스 기구도 한 번 사용하면 자동으로 덤벨의 무게와 운동한 횟수가 기구 화면에 떴다. 사우나를 마치고 화장대에 앉았을 때는, 의자 아래에서 다이슨 선풍기가 회전하며 하반신을 말려주었다. 인간의 손길이 닿기 어려운 곳에서는 기술이 직원들을 대신해 배려하고 있었다.
독자의 입장에서 보면, 샘이 날 수도 있다. 하여 노파심에 내가 겪은 고충 하나를 소개하겠다. 호텔 측의 배려로 스파 서비스를 받게 됐는데, 이는 간단히 말해 ‘오일 마사지’였다. 나는 나체가 된 후 가운 안에 검은색 일회용 속옷만 입은 채 나란히 마사지 침대에 엎드렸다. 내 속옷은 사각 트렁크였는데, 마사지사가 등장하더니 내 가운을 벗기고 속옷도 어느 정도(?) 내린 후 “유럽산 *&6543@!8 오일입니다(들리지 않았다)”라고 한 후 허리 부위를 집중적으로 마사지했다. 문학적으로 비유하자면, 내 육체가 한반도라 가정했을 경우, 관리사가 압력을 행사한 곳은 DMZ였다. 무수한 지뢰가 심겨 있고, 야생동물이 살고 있어 보호해야 하는 구역. 그저 자기 일을 직업적으로 할 뿐인 마사지사의 행동반경이 실수로라도 ‘나의 38선’까지 확대된다면, 내 신체 시스템은 자동적으로 방어기제를 작동해 ‘군사적 긴장 상태’에 돌입할 것이다. 나는 머릿속에 떠오르는 찬송가 ‘내게 강 같은 평화’를 우렁차게 불렀다. 주기도문도 수십 번 되뇌었다. 마사지가 끝나자 어쩐지 기도원에 다녀온 심정이 었다.
사실 나는 그나마 호텔에 익숙한 작가다. 종종 기행문을 쓰기 위해 해외 취재도 다녀오고, 작업을 위해 해외에 몇 달씩 체류하기도 했다. 그럴 때 호텔에 머무르지만, 그건 대부분 일상적으로 머무르는 숙소다. 즉, 상대적으로 호텔을 종종 이용하는 작가라 해도, 특급 호텔에 갈 일은 흔치 않다. 게다가 93층에서 잔 적은 아예 없었다. 그저 그런 작가에게 선사해준 과분한 환대 덕에 여운이 쉬이 가시지 않았다. 한강 다리가 손바닥 크기로 보이는 높이에서, 때로는 구름이, 때로는 태양이 눈높이에 걸린 객실에서, 커피를 마시고 잠을 자고, 미쉐린 스타 셰프가 정성껏 만든 요리를 먹고, 긴장감(?)도 선사하는 스파 서비스를 받고, 산으로 둘러싸인 서울의 진짜 얼굴을 보며 목욕을 한, 이 모든 것의 가치를 따져보았다. 피츠제럴드가 누린 일상과 다를 바 없었다. 최근에 내가 끝낸 책은 피츠제럴드에 관한 것이다. 뉴욕에서 그의 생을 취재하면서도, 정작 중요한 것들은 상상으로 해결해야 했다. 그의 일상은 내가 감당할 수 있는 수준이 아니었으니. 그런데 마침내 하루를 피츠제럴드처럼 보낸 것이다. 게다가 적어도 하나는 그 역시 못 해봤을 것을 했다. 나는 당신이 지금껏 읽은 이 글을, 구름 위에서 썼다. 글 / 최민석(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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