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성웅은 <신세계>에서 ‘형님’이었다. 신작 <황제를 위하여>에서도 형님이다. 배우 박성웅이 골프 클럽이라면, 인간 박성웅은 야구 배트와 친밀하다. 그는 “야구에서 너스레와 허세를 뺀 것”이 연기라고 말했다. 앞으로도 손을 씻을 생각은 없어 보였다.
<황제를 위하여>의 시놉시스만 본 사람이라면 이렇게 물을지도 모르겠다. 또 건달 역할이네? 건달이지. 사채업자니까. 하지만 <신세계> 때와는 좀 다른 면이 있어서 거기에 중점을 뒀다.
보통 사채업자가 좀 더 악랄하지 않나. ‘정상하’라는 캐릭터는 그래도 인간적이다. 웃는 모습도 많이 나온다. 비열하게 웃는 것 말고. 이환(이민기)을 여유로운 미소로, 친동생 보듯이 한다.
시나리오만 먼저 봤는데, 영화 바깥에서 박성웅이 말하던 이상적인 남성상과 겹쳐 보였다. 강한 사람이지만 자기 역할을 정확히 알고 어떤 순간에 낮추거나 빠질 수 있는 남자. <황제를 위하여>의 엔딩이 당신을 <신세계>와는 좀 다른 이미지로 완성한다. 완전 다르다, 완전. 엔딩 보고 <황제를 위하여>를 선택한 거나 마찬가지다. 모든 신에 최선을 다하지만, 엔딩 신에서는 특히 공을 많이 들였다. 나의 베스트 오브 베스트를 하려고 한 신이다.
<황제를 위하여>를 선택할 즈음에 건달 말고 다른 역할은 없었나? 아니다, 다양하게 있었다. 오히려 센 역할이 <찌라시>밖에 없었다. 건달은 하나도 없었다. 의사 역할도 있었고, 코미디 영화도 들어왔다. 사실 하반기에는 코미디 영화가 대기하고 있다.
<태희 혜교 지현이>를 보고 왔다. 코미디 연기는 어떤가 싶어서. 의외로 자연스러운데 웃기진 않았다. 하하, 짐 싸서 집에 가야겠다.
자연스러운 것도 놀라웠다. 막 대놓고 웃기는 역할은 아니었으니까. 그 역할이 실제 성격이랑 많이 닮았다.
요즘 여자들에게 상당한 인기를 얻고 있는 배경에는 영화 바깥의 넉넉한 모습도 큰 것 같다. 여자들은 당신을 ‘좋은 남편감’이라고 생각하는 것 같던데? 아, 품절남인데, 무슨 또. 애아버지임에도 불구하고 좋아해주고 응원해주셔서 항상 감사드린다. 무대인사 가서 내 플래카드를 들고 있으면 전부 아이 콘택트를 한다. 내 식의 감사 표현이다. 영화에선 되게 세게 나오기 때문에 실제로는 조금만 잘해줘도 굉장히 다정다감하다고 생각하고 좋아해주시는 것 같다.
아들과 아내에게 극진하지 않나. 극진까지는 아니다. 다른 남편들이랑 똑같다. 다른 분들도 자기 자식 눈에 넣어도 안 아프고, 안 쫓겨나려고 아내한테도 잘하고 그러지 않나. 하하. 두 사람이 내 삶의 원동력이다.
이미 누군가의 남편인 채 좋은 남편감이라면 어떤 기분일까? 이혼하라 소린가? 하하. 어리벙벙하다. 왜 이렇게 봐주시나. 못 먹는 떡이 맛있어 보여서 그런가.
‘좋은 남자친구감’이 부럽진 않고? 결혼한 지 오래 되니까, 그런 건 이제 생각도 안 한다. 좋은 오빠? 응원이 되는 오빠? 힘이 돼주는 오빠? 였으면 좋겠다. 팬 미팅 자리에서 항상 얘기한다. “나는 일상생활에 충실한 팬이 최고다.” 한 달 중 이틀은 무대 인사를 오더라도 나머지 28일은 자기 자신에게 충실하라고.
어른의 아이돌답다. 아이돌? 중년돌? 돌중년? 흐흐.
이젠 거의 액션 신이 없는 것 같다. <황제를 위하여>에서는 조금 나오는 것 같던데, 점점 ‘형님’ 역할만 맡으면서 <태왕사신기>처럼 굉장한 액션을 볼 일이 없어졌다. 어후, 그때는 죽는 줄 알았다.
액션스쿨 1기로서 좀 섭섭하지 않나? 사실 내 꿈이 죽이는 액션영화 하나 찍는 거다.
어떤 액션영화? 스타일리시한 액션영화랄까. 옛날로 가면 <테러리스트>. <짝패>나 <아저씨> 같은 영화.
작년은 박성웅에게 굉장한 한 해였다. <신세계>가 있었고…. 작년보다 올해가 더 굉장하다. <신세계>가 TV에서 방영된 후부터, 그러니까 작년 12월 말부터 팬이 급증했다. 올해 아주 정신이 없다.
또 LG가 정규 시즌 2위를 했으니까. 에효, 그건 말도 못한다. 올해 성적이 안 좋아서 선수들과 연락도 끊겼다. 연장에서 져서 술 먹고, 1점 차로 져서 술 먹고. 스마트폰 보고 내가 ‘웁!’하면 스태프들이 ‘뭐야, 뭐야’ 하면서 깜짝깜짝 놀랐는데 LG가 이겼을 때였다.
어째 영화 얘기보다 더 흥분해서 말하는 것 같다. 하는 것도 좋아하지 않나? 19년 했다.
주로 나가는 포지션이 뭔가. 19년이면 다 한다, 다.
좋아하는 포지션은? 1루수. 타격하는데 부담이 없어서. 대학생 땐 4번 타자였다. 마흔 넘으니까 공이 잘 안 보이는데 지난달에 만루홈런 한 번 쳤다. 하하.
연기보다 야구 욕심이 더 큰 것 같다고 말하는 건 뭘 모르고 하는 소린가? 표를 안 내서 그렇다. 야구는 즐긴다. 물론 연기도 즐기지만, 직업이 야구 선수는 아니니까. 잘하면 좋고, 못해도 그만이다. 그래서 너스레나 허세가 들어간다. 하지만 연기는 그런 걸 쪽 빼야 한다. 진지해져야 한다. 이번 영화에서는 부산 사투리에 도전했다. 다음 영화에는 올 누드 액션이 있어서 어제부터 다이어트를 시작했다. 매번 도전이 하나씩 있다. 나는 아직 더, 더, 더 배워야 하고 죽을 때까지 배워야 한다고 생각한다.
정확히 말하면 욕심이 잘 안 보인달까. 정말 없거나, 자기절제거나. 타인에게서 장점도 배우지만 단점도 배운다. 연기에 대해 후배 붙들고 조언하는 분들이 있는데, 별로 안 좋아 보였다. ‘아, 저렇게 표내는 건 별로구나.’ 내가 뭐 잘하는 건 아니지만, 후배에겐 후배만의 길이 있다. 조언을 구하면 얘기는 해준다.“나는 이렇게 할 텐데 이게 정답은 아니다” 정도로.
송강호가 했듯이? 맞다, <반칙왕> 때 내게 한 것처럼.
사투리 연기는 만족스럽게 나왔나? 부산에 살면서 하다 보니까 처음엔 괜찮았던 것도 나중에 보니까 이상했다. 그래서 감독님께 건의해 다시 녹음했다. 보스 역할이다 보니 억양을 너무 세게 하면 안 어울려서 차분하게 눌러서 했다.
참고한 영화나 배역이 있나? 뭘 참고하면 그쪽으로 좇아간다. 내 연기 아니고 흉내낸 게 나올까 봐 나는 리메이크작을 해도 원작을 안 본다. 대신에 대본 놓고 읽고 또 읽는다. 가끔 술 한 잔 마시면서 읽다가 옆에 별의별 희한한 말도 쓰고. 아침에 보면 100개 중에 한 다섯 개쯤 건지는 말들. 하하.
밤에 쓴 연애편지? 그렇다. 감성이 막. 술 먹고 쓰면 바로 결혼하자, 나오지. 하하.
뭐가 됐든 혼자 가보겠다는 건가? 그렇지, 독고다이. 뭐 여태까지 독고다이로 왔다. 하지만 영화 보면서 괜찮은 설정이나 톤은 기억해놓는다. 정재영이 <거룩한 계보>에서 이걸(팔을 위로 올리면서 소매를 끌어당기는) 했는데, 그런 것들. 언젠가 내 걸로 만들어서 써먹을 수 있지 않을까 싶다.
지금까지의 얘기로 미뤄볼 때, 필모그래피를 관리한다는 생각은 전혀 없을 것 같다. 관리 안 한다. 앞만 보고 간다. 인물은 다르게 보이려고 노력하지만. 극중에서 정상하가 담배를 많이 피우는데, ‘코로 들어가면 절대 안 돼, 물레방아 절대 안 돼’ 하면서 되뇌었다. 이중구와 겹치지 않게 하려고.
모델 촬영을 하면서 처음으로 가슴이 뛰었다고 말한 적이 있다. 오늘 촬영하면서 든 생각인데, 왜 모델이 아니고 배우였을까? 나는 배우니까.
설마, 배우로 태어났다고 생각하나? 태어난 건 그냥 엄마, 아빠 아들이고, 직업을 배우로 선택한 거지. 자기가 잘할 수 있는 일과 하고 싶은 일이 딱 맞으면 최고 아닌가. 배우를 하고 싶었고, 제일 잘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모델 라인 시험에 합격하고도 안 갔다.
배우 인생에서 <신세계>로 방점을 찍었다. 이 영화는 3부작으로 알려져 있다. 다음 편이 그들의 어린 시절 얘기라고 알고 있는데, 이중구의 어린 시절은 어땠을 것 같나? 위에서 시키면 제일 먼저 칼 들고 나가는 사람. 꼭대기 하나만 바라보고 살고, 웃음기 없는 얼굴이고. 그때나 20대 때나 똑같았을 것 같다.
박성웅도 그 나이 때 바라보던 꼭대기가 있었나? 꼭대기가 있었는데 이젠 그 꼭대기가 아니다. 지금은 뭐랄까, 정점이 넓을 것 같다. 수많은 사람이 있는 넓은 꼭대기. 아직 올라가는 중이다. 아까 얘기했듯이 죽을 때까지 올라갈 거다. 끝은 없으니까.
- 에디터
- 정우영
- 포토그래퍼
- 장윤정
- 스탭
- 어시스턴트 / 이채원, 메이크업 / 이가빈, 스타일리스트 / 정혜진, 김정미(EUPHORIA), 헤어 / 김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