끝없이 술이 솟아나는 맥주 텐트와 입술이 닳도록 술잔에 입을 맞추는 사람들. 신화 속 이야기가 아니라 진짜다.
백발이 성성하고 두꺼운 검정 뿔테 안경을 쓴 외국인이 나를 뚫어져라 쳐다본다. 그의 동그란 눈은 내가 “에.딩.거”라고 또박또박 말하자 더 커진다. 서너 번 더 반복하자 그가 허허허 웃는다. 부드러운 연륜이 느껴지는 미소. 그가 나에게 말한다. “Erdinger!” 잘 조율된 악기의 소리처럼 그의 발음에는 탄력과 리듬이 실려 있다. 들리는 대로 따라 하지만 혀가 자꾸 꼬인다. 에르덩, 에딩어…. 아 모르겠다, 맥주나 마시자. 커다란 잔을 쭉 들이킨다. 지금 나는 독일 밀맥주 브랜드의 이름을 뭐라 발음해야 하는지 현지인에게 배우고 있다. 이곳 독일에서 에딩거를 주문할 때마다 식당 직원들이 알아들을 수 없다는 표정을 지었기 때문이다. 뭐가 문제지? 알고 보니 정확한 발음은 ‘에딩거’가 아니라 ‘에르딩어’. 한국어가 서툰 외국인이 막걸리를 ‘마크갈릭’이라 주문한다고 상상해보자. 나를 바라보던 독일 사람들의 답답한 마음이 비로소 이해된다.
술은 마치 모험의 왕 같다. 알코올의 불가사의한 힘은 36.5도의 체온에 달아오르는 흥취와 가슴 뜨끈한 용기를 불어넣기도 하지만 우리를 새로운 곳으로 이끌기도 한다. 이를테면 이런 거다. <GQ> 10월호에는 ‘서울 곳곳에 숨겨진 보물 같은 술’을 다룬 흥미로운 칼럼이 실렸다. 이걸 보고 휘황한 술들이 보관된 아지트로 후다닥 달려가는 사람이 있을 것이다. 물론 나도 포함된다. 세상의 절반은 물, 나머지는 술이라 믿고, 술에 인간성을 압도당하지 않는 한 취하면 인생이 풍부해진다고 믿고 싶은 나는 디오니소스적 모험심을 발휘해 좀 더 멀리, 독일 남부의 에르딩으로 떠났다. 바이에른의 주도인 뮌헨에서 차로 30분 거리에 위치한 에르딩은 인구가 4만 명 조금 넘는 소도시다. 하지만 매년 9월이 되면 하루아침에 독일에서 최고로 흥겹고 요란한 지역으로 급변한다. ‘헙스트페스트(Herbstfest)’라 불리는 맥주 축제를 찾아 20만 명이 넘는 사람이 이곳으로 몰린다. 아침에 눈을 뜨면 맥주 한잔, 허기진 갈증에 한잔, 어딜 가든 생동하는 축제 분위기의 장단에 맞춰 벌컥벌컥. 맥주를 찾아온 사람들로 열흘 동안 도시 전체가 생기로 충만해진다. 맥주의 본고장 독일에서 열리는 맥주 축제라니. 듣기만 해도 동경과 설렘이 청량한 맥주의 기포처럼 차오른다.
스쳐 지나가는 사소한 만남부터 긴 인연까지, 잔과 잔이 맞닿은 자리는 뜻하지 않은 관계의 즐거움을 선사한다. 에르딩에서도 이 법칙은 유효했다. 헙스트페스트가 열리기 하루 전, 에르딩에서 나고 자라 이곳에서 반세기 넘도록 맥주만 만들어온 노신사와 자리를 함께 하게 됐다. 우리는 16세기에 지었다는 맥주 양조장의 분위기를 그대로 살린 식당에 있었다. 정오가 안 된 시간이었지만 맥주잔을 쥔 사람들로 꽤나 북적였다. 에르딩에선 뻔한 듯 흔한 풍경. 노신사는 점잖게 서버를 불러 “여기 한국인 친구에게도 마실 것 좀 가져다줄래요? 일단 밀맥주로 시작합시다”라며 에르딩의 대표 맥주 에딩거 바이스비어를 주문했다. 이내 찰랑이는 황금빛 물결 위에 눈송이같이 부드럽고 하얀 거품을 얹은 크고 기다란 잔이 내 앞에 놓였다. 기다렸다는 듯이 그가 맥주 한잔에 자신의 이야기를 술술 풀어냈다.
백발에 뿔테 안경을 쓴 노신사는 올해로 나이가 여든 살이라고 했다. 아버지 때부터 독일 전통 밀맥주를 만들기 시작해 양조장을 놀이터 삼아 뛰어다녔고, 열일곱 살 때 처음 맥주의 맛을 알게 됐으며, 20대 후반에 가업을 이어받았다는 얘기까지 듣고 나니 맥주 거품이 절반쯤 부서져 있었다. 나이로 가늠해보니 그가 에르딩에서 맥주를 만들기 시작한 건 1960년대. 그를 알아본 동네 사람들이 인사를 건네고 안부를 묻는 게 이상한 상황이 아니었다. 노신사는 진한 갈색 흑맥주로 목을 축이고 안경을 고쳐 쓴 뒤 다시 옛 추억을 끄집어냈다. “어릴 때부터 아버지한테 맥주 만드는 지혜를 배웠습니다. 항상 원칙을 지키고, 양보다 질을 최우선 원칙으로 삼으라고 강조하셨어요. 요즘은 맥주도 그렇고, 무엇이든 빨리빨리 만들려고만 해요. 그렇지만 나는 품질은 절대 타협하지 않습니다. 우리 브랜드가 하수구에 쓸려 내려가는 일이 없도록 말이죠.” 그의 첫 잔이 시원하게 비워졌다.
두꺼운 안경알 너머 노신사의 무구한 눈빛에서 오랜 시간 발효된 진정성이 느껴졌다. 그의 이름은 베르너 브롬바흐. 자신의 아버지가 그랬던 것처럼, 에르딩에서 전통 방식을 고집하며 밀맥주를 만든다. 그 맥주가 바로 에르딩에 ‘Beer City’라는 명성을 가져다준 에딩거다. 브롬바흐 회장은 서둘러 빈 잔을 치우고 에딩거 우르바이스를 주문했다. 에딩거가 탄생한 1886년의 레시피로 제조한 정통 바이에른 스타일의 밀맥주다. “지금도 그렇지만 예전에도 독일 전역의 많은 사람이 라거를 만들었습니다. 하지만 우린 밀맥주에만 집중했어요. 독일에는 ‘지붕 위의 비둘기보다 손 안의 참새가 더 낫다’는 말이 있습니다. 오직 하나에 집중해 최고를 만들고자 노력했고, 현재 열에 아홉은 밀맥주 하면 에딩거를 떠올립니다.” 과거 바이에른 지역을 넘어 독일 전역에 최초로 판매된 밀맥주라는 성취를 거둔 에딩거는 현재 독일 프로 축구팀 FC 바이에른 뮌헨에 이어 가장 큰 규모의 팬 클럽을 보유하고 있다. 밀맥주가 맥주 시장에서 10퍼센트가 안 되는 점유율을 보이는 것을 감안하면, 에딩거의 부드럽고 깊은 풍미와 쌉쌀한 향에 대한 충성도는 굉장히 높다.
팬 클럽은 에딩거가 수출되는 전 세계
1백7개국에도 산재해 있다. 반면 에딩거를 생산하는 양조장은 세상에 딱 하나다. “정말 여기에만 있나요?”, “단 한 병도 다른 지역에서 생산하지 않아요. 전 세계에서 판매되는 맥주는 에르딩에서 완성됩니다. 그래야 품질 관리를 확실하게 할 수 있어요. 맥주를 위생적으로 병과 배럴 통에 옮겨 담기 위한 설비에 큰 투자를 했어요. 양조장은 바닥에 떨어진 음식을 집어 먹어도 될 정도로 깨끗합니다.”, “맥주 원재료인 맥아, 홉, 물, 효모 이외에 어떤 재료가 들어가나요?”, “5백 년 전 바이에른주는 정해진 곡물 외에 다른 걸 넣지 못하도록 ‘맥주 순수령’을 공표했어요. 우리는 현재까지도 엄격하게 기본 원칙을 지키며 어떠한 첨가물도 쓰지 않아요. 맥주는 올바른 방식으로 만들어야 합니다.”, “품질을 위해 고집하고 있는 방식으로 또 뭐가 있나요?”, “샴페인처럼 병에 맥주를 담기 직전에 효모를 한 번 더 넣습니다. 그다음 창고에서 한 달간 2차 발효를 거칩니다. 시간과 비용이 들더라도 인위적이지 않게 탄산과 신선함을 더하는 작업입니다.”, “그렇다면 당신과 에딩거 중 누가 누구를 닮았나요? 이에 대한 답은 듣진 못했으나, 순수하고 전통적인 밀맥주 에딩거와 세련되지 않았으나 원칙과 정직함 그 자체를 추구하는 브롬바흐 회장이 서로 닮은 존재임엔 틀림이 없다. 세 번째 맥주잔이 바닥을 드러내자 우리의 대화도 마침표를 찍었다.
에르딩에서 가을은 결코 쓸쓸한 계절이 아니다. 79회째를 맞는 헙스트페스트가 막을 올리던 날, 이를 깨달았다. 헙스트(Herbst)는 독일어로 ‘가을’이란 뜻. 초가을 햇살처럼 윤기 나는 말갈기를 뽐내며 잘생긴 말들이 에딩거 맥주통을 실은 마차를 끌고 에르딩 시내를 통과했다. 이를 신호로 도시의 체온이 급격히 달아올랐다. 뮌헨 옥토버페스트, 로젠하임 가을 축제와 더불어 독일의 3대 맥주 축제로 손꼽히는 헙스트페스트는 에딩거가 주최한다. “맥주를 만드는 데는 큰 의미가 없습니다. 그저 삶의 기쁨을 세상에 퍼뜨리고 싶습니다. 예전에는 하루가 저물 때면 사람들이 단골 술집으로 모여들었어요. 다 같이 맥주를 마시는 모습은 오랜 전통이자 독일을 알리는 이미지가 됐습니다. 세월이 흘러 그런 전통이 예전만 못하지만 사람들이 좋은 맥주를 마신 다음 날, 전날 밤에 얼마나 즐거웠는지 떠올리 수 있길 바랍니다.” 동화 같은 브롬바흐 회장의 꿈은 판타지 영화의 클라이맥스처럼 현실이 됐다. 끝없이 술이 솟아나는 대형 맥주 텐트, 그곳에 물감처럼 번지는 밴드의 음악, 전통 의상을 입고 맥주잔을 든 사람들, 노래를 부르고 소리 내어 웃고 있는 사람들, ‘프로스트(Prost)’를 외치며 건배를 하고 입술이 닳도록 맥주잔에 입을 맞추는 사람들. 지금 이 순간, 이곳이 아니라면 다시는 보지 못할 수 있는 광경이었다. 그들처럼 전통 의상을 갖춰 입은 것도 아니었고, 독일어로 함께 떼창을 할 수도 없었지만, 영원의 순간으로 채집하고 싶은 장면의 일부가 되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았다. 내 손에는 1리터에 달하는 맥주잔이 들려 있었고, 이 발음도 입에 차지게 붙었다. “에르딩어.”
- 에디터
- 김영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