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연간 사업 손실액이 1000억원을 넘을 것으로 추정되는 KBS가 판을 바꾸기 위해 새로운 예능 프로그램을 연달아 선보인다. 뉴미디어 시대, 공영방송에서 내놓은 위기 극복법은?
제 2의 꼬꼬면 신드롬 <신상출시 편스토랑>
이경규와 이영자가 ‘먹는 방송’에서 만났다. 연예계 소문난 미식가들이 모여 혼자 먹기 아까운 필살의 메뉴를 개발하고, 메뉴 평가단의 선택에 따라 승리한 메뉴가다음 날 전국 편의점에 신메뉴가 출시된다. 첫 번째 우승 메뉴인 이경규의 마장면은 출시 열흘 만에 50만 개가 판매되면서 실시간 검색어를 장악해 <나 혼자 산다>, <신서유기 7>와 어깨를 겨루는 금요 예능의 신흥 강자로 떠올랐다. 예능적 재미도 있다. 이경규는 대만, 태국 등을 돌아다니며 미식 기행을, 이영자는 시장 맛집 투어를 하며 중독성 있는 먹방을 선보이며, 정일우와 김나영은 의외의 요리 실력와 그간 고백하지 않았던 속내를 드러내며 웃음과 감동을 넘나든다. 방송이 끝난 후엔 출연진이 다녀간 맛집과 레시피가 유튜브, 블로그 등으로 2차 가공되어 퍼지며 화제성을 더하고 있다.
Good 화면으로 입맛만 다시던 시청자들도 방송 바로 다음 날, 전국 편의점에 맛 볼 수 있다는 게 치트키다.
Bad 이경규의 <배틀 트립>, 이영자의 <맛있는 녀석들>, 김나영의 <슈퍼맨이 돌아왔다>, 정일우의 <나 혼자 산다>가 어색하게 같은 배를 탄 느낌.
씨름판 쇼미더머니 <태백에서 금강까지 – 씨름의 희열>
SNS를 뜨겁게 달군 씨름 아이돌이 공중파에 입성했다. <태백에서 금강까지 – 씨름의 희열>은 올해 최고의 성적을 낸 태백급(80kg 이하), 금강급 선수(90kg 이하) 16명이 출전해 경량급 씨름의 최강자를 가리는 서바이벌 프로그램이다. 경기 시간은 단 1분. 찰나의 순간에 벌어지는 팽팽한 힘 겨루기와 치열한 수 싸움이 손에 땀을 쥐게 한다. 특히 경량급 씨름에서는 빠른 스피드와 기술로 역전이 가능하기 때문에 승부를 점칠 수 없다는 게 관전포인트다. 첫 방송에서 유튜브 조회수 200백만의 슈퍼스타 황찬섭, 씨름계의 옥택연 손희찬, 승부사 허선행이 등장하며 이목을 집중시켰다. 조만간 80~90년대 인간 기중기, 뒤집기의 달인을 응원하던 어르신부터 씨름을 몰랐던 세대까지 모두의 마음 속에 ‘원픽’이 생길 것으로 예상된다.
Good 그간 KBS에서 갈고 닦아온 씨름 중계 노하우가 빛을 발하는 순간. 거기다 씨름 선수들의 캐릭터가 더해져 더욱 경기에 몰입하게 된다.
Bad 토요일 밤만 목 빠지게 기다리는 팬들을 위한 비하인드 영상이 필요하다.
착한 국민 캠페인 <개는 훌륭하다>
천 만 반려인 시대, 백종원에 버금가는 영향력을 지닌 개통령 강형욱이 <개는 훌륭하다>에 출연한다. 어릴 때 수의사를 꿈꾸기도 했던 이경규와 개를 좋아하지만 키워본 적 없는 4천 만 비반려인 대표 이유비가 반려견 훈련사와 함께 전국을 돌아다니며 새로운 반려견 문화를 정착시킨다는 취지다. 쉽게 말해 강아지판 <대국민 토크쇼 안녕하세요>, <사랑과 전쟁>이라고 할 수 있다. 전국을 돌아다니며 문제가 있는 반려견 가정의 고민을 듣고 다양한 해결책을 제시한다. 언뜻 <세상에 나쁜 개는 없다>와 과 비슷한 형식처럼 보이긴 하나 강형욱의 발언은 이전보다 묵직하다. 식용견 농장 구조 활동을 돕고, 열악한 시골 개의 환경을 지적하고, 유기견 보호소에 대해 ‘우리가 소비한 강아지의 마지막 쓰레기장이다’고 소신있게 발언하는 훈련사의 모습이 사회에 경종을 울리길 바란다.
Good 강형욱과 이경규의 티키타카가 예상외의 재미다. 강형욱이 이경규를 못살게 굴수록 웃음이 배가 된다.
Bad 다큐와 예능 사이에 자리한다. 가볍게 웃고 넘길 예능을 기대한다면 같은 시간대 <마이 리틀 텔레비전 V2>가 낫다.
월화 드라마를 제친 편성 <정해인의 걸어보고서>
KBS 월화 드라마 <조선로코 녹두전> 종영 후 드라마 대신 예능이 방영된다. 파격적인 편성이다. 월요일엔 <개는 훌륭하다>, 화요일엔 <정해인의 걸어보고서>가 자리했다. <정해인의 걸어보고서>에서 배우 정해인은 첫 단독 리얼리티에 도전한다. KBS 1TV <걸어서 세계속으로>를 예능으로 재탄생시켜 ‘걸어서 여행하고 기록하는 다큐멘터리’를 선보이겠다는 각오다. 정해인은 난생 처음 뉴욕으로 떠나 여행 프로그램 PD와 출연자로 고군분투한다. 힐링을 앞세운 프로그램답게 폴킴이 직접 작사, 작곡한 OST ‘하루에 하나씩’을 배경으로 아름다운 뉴욕의 풍경이 쉴새없이 이어지지만, 최근 넘쳐나는 여행 프로그램과 비교해 특이점이 있는지는 두고 볼 문제다.
Good 정해인이 공원에 앉아 햄버거 먹는 것만 봐도 미소가 지어지는 꿀노잼 방송.
Bad 정해인에 관심이 없다면 볼 필요가 없다. 방송 내내 정해인에 대한 TMI가 이어지기 때문이다.
경제 프로그램의 탈을 쓴 관찰 예능 <슬기로운 어른이 생활>
선을 넘는 진행자, 장성규가 KBS까지 진출했다. 소위 ‘어른이’로 불리는 2030대 사회 초년생의 경제 고민을 나누고 경제 지식을 쉽고 재미있게 설명하는 프로그램이다. 장성규와 함께 러블리즈 미주가 나이만 먹었지 경제 용어도 어려운 20대를, 치타가 차근차근 조언해주는 30대를, 은행원 출신의 유튜버 댈님이 실용적인 꿀팁을 전해주는 전문가를 대변한다. 자칫 딱딱해질 수 있는 경제생활 프로그램 진행자로 장성규를 발탁한 것부터 트렌드를 따라가려는 KBS의 노력이 느껴진다. <워크맨>처럼 배꼽 빠지게 웃기진 않지만 전월세 보증보험, 통장 쪼개기 등 사회 초년생이 알아야 할 꿀팁이 있어 유용하다.
Good 어려운 경제 용어를 몰라도 충분히 이해할 수 있을 법한 내용이다. 자본주의사회에 사는 사람이라면 관심이 생기는 게 당연지사.
Bad 회식비로 하루 저녁에 93만원을 지출하거나, 연간 차량 유지비로 2천 5백만원을 쓰는 연예인의 씀씀이를 지켜보며 공감하기란 쉽지 않을 거다.
- 에디터
- 글 / 김윤정(프리랜스 에디터)
- 사진
- KB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