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이 어둠을 뒤집어쓰면 하성운은 심야의 온기를 나누는 목소리가 된다.
창밖으로 보이는 야경이 멋지네요. 어젯밤엔 뭘 했나요? 이곳 네이버 나우 스튜디오에서 오디오 쇼 심야아이돌을 진행했어요.
오늘과 다르지 않네요. 인터뷰 끝나고 방송을 한다고 들었어요. 월요일부터 금요일까지 평일 밤이면 여기로 출근 도장을 찍어요. 심야아이돌은 가급적 생방송으로 하려고 해요.
지난 8월 스튜디오에 처음 들어왔을 때 기억나요? 아무래도 낯설었죠. 앞으로 매일 와야 하는 곳이구나, 하며 둘러보는데 그땐 텅 비어 있었어요. 저기 보이는 카메라도 없었고, ‘NOW’라고 쓰인 네온 간판도 없었어요. 디지털 피아노, 화분, 노래방 기기도 나중에 생겼어요. 말하고 보니 스튜디오가 성장하는 과정을 함께했다는 느낌이 들어요.
첫 방송을 시작하면서 했던 얘기가 흥미로웠어요. “처음이니까 긴장 안 할게요. 앞으로 하면서 긴장해야지.” 이건 무슨 의미로 한 말인가요? 나름의 마인드 컨트롤이었어요. 처음부터 긴장하거나 위축되면 방송을 망칠 것 같았고, 적응한 뒤에는 풀어지지 않도록 약간의 긴장감을 가져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이제 좀 편안해졌어요? 내 것 같은 느낌이 생겼어요. 스튜디오에 오는 시간이 그냥 즐거워요.
방송에서 심야아이돌을 뷔페에 비유하며 다양한 재미를 갖췄다고 했어요. 그중 으뜸은 뭔가요? 하성운이겠죠. 하하. 리스너들과 출연 게스트를 즐겁게 해줘야 한다는 마음이 커요. 이 프로그램을 제안받았을 때 고민은 하나였어요. 나 혼자 잘 이끌어갈 수 있을까? 저를 믿고 찾아줬으니 좋은 모습을 보여줘야 하잖아요. 책임감이 느껴져요.
누구든 마찬가지일걸요. 그래도 무대와 예능을 보면서 하성운은 분위기를 잘 푸는 사람이라고 생각했어요. 확실히 그렇긴 해요. 어린 시절부터 외향적이었어요. 분위기를 돋우거나 적극적으로 의견을 내곤 했어요. 제 생각에 자신이 있었고, 제 의견을 따라서 결과가 좋으면 성취감을 맛봤어요.
심야아이돌을 캐릭터로 떠올리면 역시 하성운인가요? 짱구 같아요. 아무도 못 말리는 방송이니까요.
라디오의 고정 게스트를 하기도 했잖아요. 오디오 쇼는 기존 라디오 프로그램과 어떤 점이 다르다고 생각해요? 가장 큰 차이는 글자수죠. 라디오는 세 글자, 오디오 쇼는 네 글자.
정말 그거예요? 하하. 뭐랄까, 심야아이돌은 목소리의 비중이 크다고 생각해요. 라디오 프로그램에 비해 노래를 트는 횟수가 많지 않고, 토크쇼처럼 호스트와 게스트의 이야기에 집중하는 편이에요. 그리고 심야아이돌을 방송하는 네이버 나우는 라이브 오디오 스트리밍 서비스로 네이버 앱을 통해 들을 수 있거든요. 새로운 플랫폼에 맞게 오디오 쇼라는 특별한 이름이 필요하지 않았을까요?
방송 시간에도 제약을 두지 않던데요. 한 시간이든 한 시간 반이든 눈앞에 보이지 않는 사람들에게 이야기를 한다는 건 어떤 기분인가요? 처음에는 되게 힘들었어요. 사연을 읽고 제 생각을 이야기하는데 아무 대답도 없으니까 좀 민망했죠. 혼자 떠들고 있는 듯한 기분, 있잖아요. 지금은 편해요. 채팅 기능에 적응해서 리스너들과 실시간으로 소통을 하거든요. 그보다 요즘은 말의 중요성을 의식해요. 한마디라 할지라도 제 말을 수많은 사람이 들으니까요.
중요하죠. 그러고 보니 지난 1년은 자신의 이야기를 마음껏 했던 시간이었을 것 같아요. “제 이야기를 하고 싶었어요”라며 앨범 <My Moment>와 <BXXX>를 발표했고 이렇게 오디오 쇼도 하고 있어요. 맞아요. 제가 바라는 걸 90퍼센트쯤 이뤘어요. 2019년의 목표는 솔로 활동을 잘하고 팬들과 더 많이 소통하는 거였는데 저를 보여주고 제 이야기를 들려줄 수 있는 기회가 많았어요.
자신의 이야기를 하다 보면 스스로를 좀 더 알게 되잖아요. 스스로 생각하는 하성운은 어떤 사람인가요? 자기 주관이 뚜렷해요. 원하는 게 확실하고 쉽게 흔들리지 않아요. 하고 싶은 건 바로 해야 해요. 음악도 제가 좋아하는 걸 사람들에게 들려주고 싶은 욕구가 강해요. 또 사람들이 그걸 같이 좋아해주길 바라죠. 진심으로요.
지금은 자신이 하고 싶은 게 있으면 할 수 있지만, 그러지 못한 시절도 있었겠죠? 맞아요. 그때는 너무 하기 싫은 일도 해야 했고, 상처도 많이 받았어요. 근데 돌아보면 그런 경험도 필요해요. 어떻게 처음부터 자기가 하고 싶은 것만 할 수 있어요? 하기 싫은 일도 하면서 자신에게 무엇이 맞고, 도움이 되는지 정확한 답을 깨달을 때가 있어요.
아이돌이란 단어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나요? 정확한 의미보다 어떤 이미지나 하나의 현상으로 뭉뚱그려 소비되는 경향이 있는데요. 글쎄요. 잘은 모르겠지만 개인적으로 아이돌이란 단어는 제게 꿈이었어요. 되고 싶은 존재였죠.
물어본 이유가 있어요. 심야아이돌에서 게스트로 나온 뮤지션들과 합을 맞추거나 즉석에서 곡을 만드는 걸 들으면서 하성운이란 뮤지션을 아이돌이란 단어로는 다 설명할 수 없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아이돌은 이렇다, 아티스트는 저렇다 다른 갈래로 구분하기도 하는데 저는 신경 쓰지 않아요. 아이돌이라 해도 춤이든 노래든 자기 것을 직접 만든다면 아티스트와 크게 다르지 않다고 생각해요. 저도 “이런 가사를 써 봐”, “멜로디는 이렇게 해”, 같은 소리를 들으면 그 곡이 제 것이라 느껴지지 않아요. 제 장점을 보여줄 수 있는 음악, 제 이야기가 담긴 가사를 만들려는 열망이 커요.
자기 것이라고 할 수 있는 무언가를 남들에게 보여주는 건 용기가 필요한 일인 것 같아요. 전에는 멋있고 좋은 모습만 보여주려고 했어요. 완벽하고 싶은 건 당연한 욕구이니까요. 하지만 혹독하게 부딪히고 스스로 부족한 점을 알아야 성장하고 단단해질 수 있어요. 못 하는 게 있다고 해서 숨기면 안 돼요. 배우고 채우면 되거든요.
가장 혹독한 부분은 역시 음악인가요? 그렇지만은 않아요. 사람들이 하성운이란 이름을 듣고 멋있는 아이돌이나 아티스트를 떠올리는 것도 좋지만, 우선은 정말 괜찮은 사람이 되고 싶어요. 사람 안에 음악이 있다고 생각해요. 좋은 생각을 지니고 긍정적인 에너지를 주는 사람은 음악도 그와 닮은 것 같아요. 그런 좋은 사람이 주위에 많아요.
하성운의 목소리를 들으며 즐거워 하고 위로를 받는 사람들이 있듯이 무엇으로부터 힘을 얻곤 하나요? 팬들의 칭찬이 저를 움직이는 원동력이에요. 제 이름을 검색했을 때 나오는 좋은 글과 응원 메시지를 보면서 더 열심히 살아야겠다고 다짐해요. 제가 하는 일들을 좋아하는 분들이 없다면 음악을 하고 이렇게 방송을 하는 게 아무 의미가 없을지도 몰라요.
자정이 지날 무렵 방송이 끝나는데 하루가 바뀌는 시간에 집으로 돌아가는 기분은 어때요? 뿌듯하죠. 하루를 꽉 차게 보낸 것 같아요. 다들 집으로 돌아간 뒤에도 나는 하루의 끝까지 남아서 할 일을 했다고 느껴져요.
‘Lonely Night’에 이런 가사가 있어요. ‘창문을 한껏 수놓은 별은 날 비추고 오직 나의 취향 가득, 두 귀를 간지럽히는 Playlist 눈을 감고서 고갤 끄덕여요’. 심야의 플레이리스트는 무엇인가요? 제 노래를 듣는 편이에요. 제목이나 가사 없이 작업 중인 음악을 듣기도 하는데 요즘은 곧 선보일 노래를 듣고 있어요. 겨울 시즌에 어울리는 곡이에요.
어떤 이야기가 있는 노래인가요? 눈사람의 입장을 상상하며 만들었어요. 나를 만들어준 사람을 기쁘게 하는 게 나의 행복이자 삶의 목적이지만 한편으로는 그들처럼 평범하게 살아보고 싶은 마음을 담았어요. 가사가 좀 귀여워요.
하성운의 이야기처럼 들리네요. 지금의 저도 팬들이 만들어줬으니까요. 근데 저만의 이야기는 아니라고 생각해요. 누구나 잘해야 한다는 부담을 갖고 살잖아요. 목표를 이루고 좋은 결과를 내야 한다는. 그런 마음의 짐을 잠시 내려놓고 평범하게 일상을 보내고 싶은 바람이 있을 거예요.
물론 그런 게 있죠. 어떤 평범한 삶을 꿈꾸나요? 좋은 음악을 해야 한다는 부담 없이 마음 편하게 여행을 가고 싶어요. 창작은 즐거움만으로 할 수 없어요.
하성운답게 인터뷰를 마칠까요? 하루를 달달하게 마무리할 수 있는 방법은 뭘까요? 오늘 하루 좋은 일이 생긴 분들도 있지만, 그렇지 못한 분들도 있을 거예요. 너무 걱정하지 마세요. 저도 걱정을 많이 했었는데 걱정하는 것 자체가 더 힘들게 만들더라고요. 오늘의 일은 잠시 잊고 자기 자신에게 고된 하루를 잘 보냈다고, 격려를 해주세요.
듣다 보니 심야아이돌을 듣고 있는 것 같아요. 내일 밤 11시에도? 그럼요. 심야아이돌에서 만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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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에디터
- 김영재
- 포토그래퍼
- JDZ Chun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