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고의 시즌을 보낸 이영하는 최고를 꿈꾼다.
촬영 중간중간 게임을 하던데요. 게임을 즐겨해요. 배틀그라운드, 서든 어택, LoL 등 이것저것 다 해요. 며칠 동안 원정 경기를 가도 그렇고요. 다음 날 경기 때문에 술을 마실 수 없으니 팀 선배들과 PC방에서 게임을 하면서 시간을 보내요. 야구 선수처럼 게임 열심히 하는 사람들도 없을걸요.
야구 게임은 안 해요? 절대요. 경기장 밖에서는 야구 생각은 조금이라도 안 하려고 해요. 24시간 야구에 얽매이면 잘 풀릴 경기도 꼬여버려요.
스프링 캠프가 시작될 때까지 시간이 조금 남았어요. 비시즌 기간에도 훈련을 하나요? 지난 시즌 공을 많이 던진 탓에 훈련보다는 회복에 집중하고 있어요. 필라테스를 하면서 뻣뻣해진 몸을 풀고, 웨이트 운동으로 근육량을 키우기도 하고요. 실전 같은 투구는 하지 않고 망투 정도만 해요. ‘네트 스로우’라고도 하는데, 그물에 아주 살살 공을 던지죠. 어깨의 긴장을 풀어주고 감각을 유지하는 데 좋아요.
2019 시즌은 특별하게 느껴질 것 같아요. 처음 선발 투수로 뛰었는데 자평을 한다면? 100점 만점에 70점 정도? 정규 리그와 한국시리즈에서 모두 우승했고 개인 성적도 좋았지만, 여름에 지쳐서 많이 흔들렸어요. 뜻대로 되지 않은 경기도 있었죠. 완벽한 시즌이란 있을 수 없다는 걸 알면서도 아쉬워요.
언제나 이길 수는 없어요. 투구 중 교체가 될 때 마운드에선 어떤 이야기가 오가나요? 상황에 따라 뉘앙스가 조금씩 달라요. 점수를 많이 내준 상황이면 코치님이 “여기까지 하자. 운이 없었다.”라고 말씀하세요. 잘 던졌는데도 위기에 몰렸으면 “고생했다. 뒤를 믿어보자”라고 하고요.
선발 경험은 불펜 투수 때와 어떻게 다르던가요? 책임이 무겁죠. 제가 잘 던지면 이기고, 못 던지면 지니까. 또 선발 투수는 어딜 가도 주목받아요. 팀 내에서도, 팬들 앞에서도 더 신중하게 말하고 행동해야 해요. 선발로 뛰기 시작하면서 루틴도 바뀌었어요. 5일마다 공을 던져야 하잖아요. 경기를 치른 후 다음 경기 전까지 어떻게 운동하고 회복할지 시행착오를 겪기도 했어요.
선발 투수로 뛰게 된다는 사실은 언제 알았어요? 2019 시즌 전 스프링 캠프 때였어요. 저도 기사를 보고 알았어요. 감독님이 저한테 끝까지 말씀을 안 해주셨어요.
전혀 예상하지 못했나요? 선발 자리를 두고 여러 투수가 경쟁한다는 사실은 암묵적으로 알고 있었어요. 그중에 누가 될지 몰랐던 거죠.
선발 투수는 모든 투수가 원하는 자리인가요? 꼭 그렇지는 않아요. 저도 원래 마무리 투수가 꿈이었어요. 오승환 선수처럼 게임이 끝나는 순간에 마운드에 선 투수가 멋져 보였어요. 위태위태한 상황에서 팀을 구해내면 더 그렇죠.
NC 다이노스와의 정규 시즌 마지막 경기에서 예상을 깨고 마무리 투수로 등판했어요. 9회초 동점 상황이었는데 무실점으로 틀어막았죠. 그 기세를 몰아 두산 베어스가 SK 와이번스를 밀어내고 극적으로 우승을 차지했고요. 2019 시즌에 치른 경기 중에서 가장 어려웠어요. 우승 하나만 생각하고 팀원 모두가 143경기를 달려왔는데, 제가 밀리면 다 끝이니까. 9회에 올라가 던져야 할 공이 많지 않았는데도 체력적으로 부담이 컸어요. 이틀 전에 6이닝을 던져 몸이 회복될 시간이 부족했거든요. ‘막아야 이긴다’라고 생각하면서 목숨 걸고 던졌어요.
몸 상태를 팀에서도 알고 있었겠죠? 코치님들은 웬만하면 안 내보내려고 했어요. 그런데 감독님이 “영하가 나가라”라고 하시더라고요. 후반기 들어서 나가는 경기마다 이길 정도로 페이스가 좋아서 믿고 등판시킨 것 같아요. 저도 ‘동점 되면 내가 나간다’라고 생각했어요. 자신 있었거든요.
그 경기도 잠실 구장에서 열렸죠? 잠실에서 유독 성적이 좋아요. 15차례 등판해서 한 번도 패하지 않았어요. 구장이 크니까 확실히 심리적으로 안정되긴 해요. 마운드에 서면 뒤가 정말 넓게 느껴져요. 하지만 상대팀 투수도 같은 조건에서 던지잖아요. 특정 투수에게 유리하거나 불리하다고 할 수 없어요.
가장 상대하기 힘들었던 팀은 어디였나요? 한국시리즈에서도 만났던 키움 히어로즈요. 박병호 선수, 김하성 선수…. 쉬운 타자가 없어요. 1번부터 9번 타자까지 다 힘이 좋아요.
이영하 선수도 포심 패스트볼을 던져 힘으로 눌러버리는 승부를 자주 하잖아요. 맞아요. 그래서 어렵지만 재미있기도 해요. 어릴 적부터 빠른 공으로 밀어붙이는 투구를 좋아했어요.
190센티미터가 넘는 신체 조건도 투구 스타일에 영향을 미쳤을 것 같아요. 키가 작다고 해서 투구 스타일이 바뀌지 않았을 것 같아요. 신체 조건보다는 성격의 영향이 커요. 자신만만하게 정면으로 부딪히길 좋아하거든요.
2020년에는 프로 데뷔 5년 차가 돼요. 팀의 주축으로 평가 받고 있는데 에이스로 거듭나기 위해 반드시 해결해야 하는 숙제는 뭔가요? 제구력요. 개선해야 할 점이 아직 많아요.
문제점을 보완하기 위해 참고하는 롤모델이 있나요? 특정 선수를 콕 집어 닮으려고 하거나 누군가를 롤 모델로 삼지는 않아요. 모두 개성이 있고 성격이 다른데, 제가 똑같은 사람은 될 수 없으니까요. 대신 팀 내 선배들에게 틈날 때마다 조언을 구해요. 훈련법, 몸 관리법, 하다못해 시시콜콜한 일까지도요. 이를 테면 배영수 선수에게 체력 관리에 대해 질문하고, 린드블럼과 후랭코프에게 이상적인 루틴에 대해 계속 물어봤죠. 선배들의 조언대로 해보고, 저와 잘 맞으면 제 것으로 만들려고 해요.
KBO 최고의 원투 펀치로 불렸던 린드블럼과 후랭코프가 두산 베어스를 떠나게 됐어요. 그들의 공백은 이영학 선수에게 어떤 의미일까요? 기회라고 생각하나요? 일단 아쉬운 마음이 가장 크죠. 함께 웃고, 훈련하고, 우승까지 하면서 정이 많이 들었거든요. 그리고 린드블럼과 후랭코프의 빈자리를 기회로 연결 짓고 싶지 않아요. 그렇게 생각한 적도 없고요. 개인이 아니라 팀 차원에서 생각해야 할 문제죠. 제가 해야 할 일은 그들을 응원하는 것과 다음 시즌에도 등판하는 경기마다 최선을 다해 던지는 것뿐이에요.
한국시리즈가 끝나고 ‘프로야구 대상’에서 인기상을 받았어요. 팬들이 직접 뽑는 상인데 어땠나요? 성적 덕분이라고 생각해요. 경기를 마치고 인터뷰는 가급적 재미있게 하려고 해요. 사인 요청도 다 받아주고요. 그래서 팬들이 친근하게 느끼는 듯해요.
프로야구 대상 외에 ‘일구상’에서도 최고투수상을 받았어요. 최고타자상을 받은 NC 다이노스의 이정후 선수에 대해 평가한다면요? 확실히 뭔가 다른 후배예요. 타격 센스가 진짜 좋아요. 어떻게든 방망이에 공을 맞힐 줄 알아요. ‘진짜 천재인가?’ 싶더라고요.
두산 베어스는 베테랑 선수가 유독 많은데 선배들에게 어떤 후배인가요? 늘 까불고, 장난쳐요. 때때로 장난이 너무 심해서 혼나기도 해요. 그래도 두산 베어스가 선후배 관계가 참 좋아요. 선배와 단 둘이 있어도 전혀 어색하지 않을 정도로요. 오래전부터 이어져 내려온 팀 분위기라고 들었어요.
원래 입단하고 싶었던 팀이 두산 베어스였나요? 물론이죠. 거짓말 아니에요. 거의 매해 한국시리즈에 진출할 정도로 평균 전력이 가장 강한 팀이잖아요. 한국시리즈를 한 번도 경험하지 못하고 은퇴하는 선수도 많아요. 잘하는 팀에서 뛰고 싶은 욕심은 운동선수로서 당연한 마음이에요. 고등학교 때부터 ‘저 팀에서 살아남으면 한국에서는 이미 순위권이다’라고 생각했어요.
졸업과 동시에 프로 구단에 입단했어요. 엄밀히 말하면 직장 생활을 일찍 시작했다고 할 수 있죠. 대학생 친구들이 부럽지는 않나요? 당연히 부럽죠. 운동과 별개로 대학 생활을 꼭 해보고 싶었거든요. 스무 살이 넘어서 새롭게 사귀는 친구들은 어떨지, 대학교 축제 때는 어떨지 궁금해요. 미팅도 재미있을 것 같고요. 그래도 통장을 확인할 때마다 ‘내가 열심히 잘 살고 있구나’라는 생각이 번쩍 들어요.
경기장 밖에서 이영하는 어떤 사람인가요? 평범한 스물네 살 남자요. 친구들과 노래방에서 놀고, 당구장이나 PC방에 가요.
경기 때처럼 죽을 힘을 다해 당구 치고 게임하나요? 그게 참, 승부욕이 정말 없어요. 야구만 빼고요.
지난 성적을 고려하면 연봉이 크게 오를 것 같아요. 사고 싶은 게 있다면 뭔가요? 언제 살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집을 장만하고 싶어요. 일 끝나면 귀가해서 혼자 조용히 쉴 수 있는. 그런 거 있잖아요. 제 또래 애들이 꿈꾸는 독립. 그러면 17승 이상도 할 수 있을 것 같아요.
- 에디터
- 이재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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