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지나 자격과 상관 없이 원하는 일을 고를 수 있다면 뭘 할지, 질문을 다시 받았다. 또래 몇이 모여 와인을 세 병쯤 마시다 보면 더러 나오는 주제이고, 전에도 같은 물음에 답을 한 적이 있으니 딱히 참신할 것도 없었다. 무료 성형 기회를 준다면 어딜 고치겠냐는 질문보다는 건설적인건가 얼핏 생각하고, 그보다는 아란치니에 올리브를 넣는 게 과연 권장할 일인지부터 당장 셰프에게 묻고 싶어지는 게 보통의 순서였다. 그런데 이번엔 다른 생각이 들었다. 여러 가지 일로 완전히 지쳐있는 데다, 최근 들어 평생 하나의 직업만 가진 자와 죽을 때까지 애인이 단 한명인 자, 둘 중 누가 더 안 섹시한 건지 숙고해봤으며, 가장 모던한 유행이자 전통의 트렌디한 재해석, 그 정점인 ‘퇴사’를 고려하지 않는 스스로가 현대 도시 생활자로서의 자격이 있는지 불온한 의문이 생겼기 때문이다. 그래서 아랍 에미리트 공화국 절세미녀, 나일강 뱃사공, 초파리 조련사 같은 그간의 허황한 대답은 치우고, 진지하게 생각했다. 인생의 플랜 B, 라기엔 자격이나 능력이 필요 없단 전제가 있으니 진지한 계획보다는 맹랑한 소망 정도일 테지만. 저녁 식사를 거의 끝내고 디저트 삼아 상세르에 굴 튀김을 먹을 때쯤, 결론을 내렸다. 그날 따라 내가 지닌 어떤 점들을 아주 후하게 쳐준(내가 낼 차례였고, 계산서는 신속히 와 있었으니) 친구들의 추천 이유가 솔깃하기도 했지만, 차분히 생각해보니 그것이야말로 제대로 해보고 싶은 일이었다. 상담치료사, 심리상담가, 카운슬러…어떤 게 정확한 명칭인지 모르겠고 전문 지식이 없으니 치료와 상담의 명확한 구분도 알 수 없지만, 일의 형태는 분명했다. 말하지 못한 얘기들을 들어주는 것. 세상에는 굳이 대답을 바라지 않는, 꺼내놓을 수만 있어도 좋을 이름과 계절과 기억이 있고, 마음 속 어두운 단어 하나가 밖으로 나오지 못한 채 타르처럼 굳어 한 사람의 세월을 온통 검게 만드는 일도 적지 않다. 그리고 누구에게든 차라리 낯선 사람에게 모든 걸 털어놓고 싶을 때가 있고. 아직 서울엔(다소 이세상 일이 아닌 같은 이슈들이 벼락처럼 쏟아지는 도시건만) 이럴 때 찾아갈 선택지가 드물다. 어떤 친구는 물어 물어 어렵게 찾아간 상담소에서 얼룩진 인조 가죽 소파에 앉아 바짝 마른 벤자민 잎이 뚝뚝 떨어지는 걸 보면서, 가짜 까르띠에 시계를 찬 강팍한 얼굴의 여자에게 결국 할 말은 못하고 얼렁뚱땅하다 나왔다고 고백했다. 고루하고 을씨년스러운 분위기와 실패의 냄새가 짙게 밴 인테리어도 말문을 막히게 했지만 지나치게 높고 명랑하며 카랑카랑한 상담사의 목소리가 더 문제였다. “니 목소리는 화나고 마음이 쓰릴 때, 듣기 좋잖아.” 를 시작으로 내가 있는 상담소에 대한 무리의 상상이 쌓였다. 따뜻하게 데워진 잔디 정도로 온도를 맞춘 폭신한 소파, 녹색과 베이지색의 교양 있는 실내 장식, 신경이 천천히 풀어지는 템포의 음악, 잘 구운 비스코티와 뜨거운 에스프레소 혹은 화이트 와인 한잔, 오후의 빛이 길게 들어오는 큰 창, 이니셜이 새겨진 포플린 손수건과 단정한 나무 탁자, 그리고 넘치지않되 충분한 동의. 장소는 창 밖으로 아이들 노는 소리가 멀리서 들리고 현관문을 조금 열어두어도 방해 받지 않는 깨끗한 건물의 2층이면 좋겠다. 이곳에서 누구든 있는 마음 속 검고 굳은 단어들을 꺼내 깃털 같은 감촉으로 잘 닦아서 창 밖으로 가볍게 날려주고 싶다. 눈송이처럼.
- 에디터
- 강지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