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 대의 스쿠터로 한 달을 보냈다. 익숙했던 길에서 매일 모험담이 생겨났다.
NIU N PRO
극심한 주차난에 시달리다가 새로운 출퇴근 수단을 찾아본 적이 있다. 공유 킥보드가 눈에 들어왔다. 하지만 스마트폰을 봐가며 킥보드의 위치를 찾는 과정은 지난한 보물찾기에 가까웠다. 공유 경제의 합리성엔 공감하지만, 정신없이 바쁜 직장인에게 무소유라는 개념은 아직 요원한 이야기였다. 적은 유지 비용, 손쉬운 주차, ‘내 것’이라는 만족감을 모두 충족시킬 교통수단에 대해 고민한 끝에 니우에서 제작한 전동 스쿠터에 도달했다. 니우 앤 프로는 유럽에서 먼저 성공한 모델이다. 수많은 스타트업이 전동 스쿠터 제작에 뛰어드는 유럽에서 앙증한 디자인으로 빠르게 1위 자리를 선점했다. 3일간의 출퇴근 길에서 드러난 장단점은 명료했다. 최고 시속이 60킬로미터에 지나지 않아 정체가 없는 도로에선 다소 민망한 상황이 발생했다. 하지만 충전 방식은 이를 무마할 만큼 간편하다. 스쿠터 본체에 충전 코드를 직접 꽂을 수 있고, 전력 공급이 여의치 않으면 배터리만 꺼내 집에서 충전하면 그만이었다. 2019년 기준으로 보조금 혜택을 받으면 1백44만원에 구매할 수 있다는 사실도 니우 앤 프로에 더 구미가 당기게 했다.
SYM WIDESTAR 125
125cc 스쿠터 중엔 별다른 존재감 없이 조용히 묻힌 모델이 많다. 일제 바이크, 특히 혼다 PCX가 휘어잡은 통에 제대로 된 평가를 받을 기회가 드물었다. 와이드 스타도 그중 하나였다. 와이드 스타를 처음 본 순간 엉뚱하게도 작은 왜건이 연상됐다. 아담하지만 허리를 길쭉하게 늘린 덕분에 짐을 잔뜩 싣고도 여유 공간이 넘치는 듬직한 짐차. SYM의 와이드 스타는 미니 스쿠터라는 체급의 한계를 왜건처럼 실용적인 구조로 극복했다. 주행 중 발을 올려두는 부분을 평평하게 만들고, 면적까지 훌쩍 넓혀 필요할 시 화물 적재 공간으로 활용할 수 있다. 2개로 분리된 시트 중 뒤쪽을 들어 올리자 라이더를 위한 등받이로 변신하는 동시에 커다란 상자도 거뜬히 짊어질 만한 공간이 생겼다. 상업용이 아닌 이상 스쿠터에 짐을 실을 일은 많지 않다. 하지만 꼭 의도된 방향으로 사용하지 않더라도 와이드 스타의 넉넉한 품은 장시간 주행의 피로를 절감해줄 만큼 편안한 자세의 토대가 됐다. 10마력 남짓한 최고출력과 제동 성능은 평이한 수준이지만, 3백만원이 되지 않는 가격을 고려하면 준수하다는 표현이 더 적합할 듯하다.
GOGORO 2 UTILITY
1년에 한 번은 대만을 찾는다. 그때마다 모터사이클이 도로를 점령한 모습이 새롭다. 그런데 5년 전부터 타이베이를 비롯한 대도시에 생경한 풍경이 하나 더 생겨났다. 도시 곳곳에 보온 도시락통처럼 생긴 배터리가 수십 개씩 끼워진 시설물이 등장했다. 사람들은 스쿠터를 세워 시트를 들어내더니 배터리를 꺼냈고, 충전이 완료된 배터리로 교체했다. 월정액제로 배터리만 빌려 쓴다는 발상에서 시작한 서비스였다. 대만의 전기 바이크 시대를 앞당긴 고고로가 서울에도 진입했다. 기발한 배터리 대여 시스템도 그대로 들여와 서울에 벌써 열다섯 곳의 충전소 ‘고 스테이션’이 설치됐다. 고고로 2 유틸리티를 당분간 눈여겨봐야 하는 이유는 이 외에도 많다. 형태는 125cc급에 해당하는 미니 스쿠터지만, 두 바퀴 달린 테슬라라고 해도 전혀 손색이 없다. 전기차의 특성을 고스란히 이식한 듯 머리가 뒤로 젖혀질 정도로 순식간에 가속했다. 후진이 가능한 모터사이클도 고고로 2 유틸리티가 처음이었다. 시속 90킬로미터까지 끈질기게 가속하는 뒷심마저 경험하고 나니 내연기관 스쿠터가 예상보다 일찍 밀려날지 모르겠다는 생각이 번뜩였다.
VESPA SPRINT 125
클래식 스쿠터의 디자인은 모두 한 끗 차이다. 엠블럼만 가리면 구분하기 어려울 정도로 비슷한 스쿠터가 세계 각지에서 생산된다. 이들의 기원을 타고 올라가다 보면 모두 한 지점에 수렴한다. 이탈리아의 스쿠터 베스파다. 그럼 수많은 아류작을 양산해낼 정도로 베스파가 인기를 끈 배경은 뭘까? 우선 스쿠터라는 장르를 처음 만들어냈다는 익히 알려진 이야기가 ‘오리지널리티’를 소유하고 싶은 심리를 자극한다. <로마의 휴일>을 통해 심어준 로맨틱한 환상은 구구절절하게 말할 것도 없다. 거의 변하지 않은 디자인도 누군가에겐 매혹적인 속성일 수 있다. 오드리 헵번이 타던 베스파와 현재의 베스파는 반세기 넘는 시간차가 무색할 정도로 유사하니까. 스프린트 125는 베스파 중에서도 각지고 날렵하게 조각한 스쿠터다. 핸들 바를 틀어가며 서울 곳곳을 휘젓다 보니 어느새 도심보단 변두리로, 고층 빌딩 사이보단 좁다란 골목으로 빨려 들어가고 싶었다. 풍경과 포개어져 달리고 싶었다. ‘모든 게 빨리 돌아가는 서울에서 클래식 스쿠터를 탄다는 것은 어떤 의미일까?’라는 평소의 의문이 말끔하게 해소되는 순간이었다.
- 에디터
- 이재현
- 포토그래퍼
- JDZ Chun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