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 세계 IT 공룡들이 클라우드 게이밍으로 맞붙었다. 가장 먼저 서비스를 시작한 구글은 예상치 못한 역풍에 체면을 구겼다.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아직은 생소하지만 전 세계 IT 기업들이 달려들고 있는 분야가 있다. 바로 클라우드 게이밍이다. 구글, 마이크로소프트, 엔비디아, 소니, 텐센트 등 이름만 들어도 쟁쟁한 경쟁자가 시장을 선점하기 위해 전력투구 중이다. 하나둘 시범 서비스가 이어지며 지난 몇 년간 물밑에서 경쟁하던 이들의 전장은 이제 전 세계로 확대됐다.
클라우드 게이밍의 개념은 간단하다. PC는 서비스사의 것을 사용하고 화면만 내 기기를 쓴다. 게임은 각 회사의 서버에서 구동되고 화면을 스트리밍한다. 사용자는 게임 화면만 자신의 PC나 TV, 모바일 기기로 보며 조작한다. 일종의 원격 조종이다. 사용자는 게임을 구동하기 위해 PC를 맞출 필요도, 자신의 기기에 게임을 설치할 필요도 없다. 가장 큰 걸림돌은 흔히 ‘랙’이라 부르는 지연 시간이다. 영상은 일시적으로 화질이 떨어지거나 재생이 잠시 중단돼도 시청에는 큰 문제가 없다. 좋은 경험은 아니겠지만 기다리면 될 일이다. 하지만 게임은 다르다. 조작에 실시간으로 반응해야 한다. 입력에서 반응까지 0.5초만 걸려도 플레이에 지장을 준다.
기술 발전과 함께 클라우드 게이밍 시장은 급물살을 탄다. 국내에서도 5G 서비스망 경쟁이 격화되며 통신 3사 모두 통신 환경 홍보 도구로 클라우드 게이밍을 선택했다. 가장 먼저 LG U+가 엔비디아 지포스 나우와 손을 잡았다. 곧이어 SKT가 마이크로소프트의 프로젝트 엑스클라우드, 마지막으로 KT는 대만의 유비투스와 계약하고 자체 플랫폼 서비스를 발표했다. 빠르면 올해 1분기부터 이를 통한 게임을 즐길 수 있을 것으로 예상한다.
업계에서는 클라우드 게이밍의 대중화로 시장 확대를 기대하고 있다. 지금까지는 패키지나 콘솔 게임을 하려면 기기를 사거나 PC를 주문 제작하는 등 초기 비용이 필요해 접근성이 좋지 않았다. 하지만 요즘은 스마트폰만으로도 패키지 게임을 할 수 있는 세상이다. 지금껏 고민만 하던 잠재적 소비자를 시장으로 끌어들일 수 있다.
현재 세계 IT 업계에서 가장 치열한 경쟁은 구글과 마이크로소프트가 벌이고 있다. 두 회사 모두 전 세계에 자사의 서버를 보유한다. 자본력은 넘치고, 풍부한 네트워킹과 클라우드 기술력도 가지고 있다. 하지만 자신만만하던 구글이 삐끗했다. 자사의 클라우드 게이밍 ‘스태디아’가 첫 서비스 지역인 북미 유럽에서 혹평받으며 체면을 구겼다. 다른 회사들은 스태디아의 고전을 타산지석 삼으려는 모양새다. 빠르게 움직여 서비스로 시장을 선점하려던 구글은 예상치 못한 역풍을 맞았다.
구글 스태디아에 쏟아진 혹평의 가장 큰 원인은 지연 시간이었다. 많은 사람이 몰렸기 때문인지는 몰라도 북미 매체와 스트리머, 사용자는 입을 모아 조작 지연 시간이 심해 게임이 불가능할 정도라 말했다. 유선 네트워크 환경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오히려 무선 와이파이를 사용해야 지연 시간이 더 짧은 웃지 못할 상황도 벌어졌다. <워싱턴 포스트>는 동영상에서 점프 키를 누르자 1초 뒤에 뛰는 캐릭터를 생생하게 보여줬다. ‘IGN’에서는 스태디아 체험 라이브 방송을 켰지만 몇 시간 동안 게임을 구동하기 위해 고생만 한 담당자가 짜증 내는 모습만 담겼다.
불안한 네트워크 환경은 그래픽에도 악영향을 끼쳤다. 스태디아는 처음 발표 당시 모든 기기에서 최상급 그래픽을 보여주리라 공언했다. 현실은 달랐다. 미묘하게 다운그레이드된 그래픽에 더해 ‘계단 현상’이 나타났다. 캐릭터가 찢기기도 하며 극단적으로 플레이가 느려지는 일까지 벌어졌다. 구글이 제공하는 안정적인 서비스를 기대했던 사용자는 실망할 수밖에 없었다. 작년 E3 마이크로소프트의 엑스클라우드 시연 당시 640킬로미터 떨어진 데이터 센터를 사용해도 지연 시간이 전혀 없었던 것과는 대조적인 모습이다. 사전 예약자에게 지급될 코드가 오히려 출시 이후 구매자보다 더 늦게 발송되는 등의 운영적인 부분은 차치하고라도 스태디아는 기술적으로 최악의 첫인상을 남겼다. 물론 지연 시간과 그래픽 깨짐 현상은 출시 두 달가량 지난 지금은 개선되었다고는 하지만 스태디아가 넘어야 할 산은 그뿐만이 아니다.
스태디아의 결제 모델은 두 가지다. 클라우드 게이밍 자체는 무료다. 달마다 비용을 지불하면 더 좋은 그래픽으로 게임을 즐길 수 있다. 여기까진 괜찮아 보인다. 무료 게임을 제공하지만 최신 게임을 플레이하려면 타이틀을 구매해야 한다. 물론 게임을 구매해야 한다는 점은 다른 회사의 서비스도 마찬가지다. 때문에 각 회사는 사용자 유인을 위해 수십~수백 가지의 무료 게임을 제공한다. 비록 몇 년 된 게임이라 해도 GTA5나 위쳐3처럼 AAA급 히트작도 다수 포함되어 사용자를 유혹한다.
현재 시장에 서비스되는 대부분의 구독 모델은 구작을 무료로 제공하면서 최신 게임의 구매와 소유를 유도한다. 구독자에게 할인 혜택을 제공하기도 한다. 클라우드 게이밍은 넷플릭스처럼 100퍼센트 구독 시스템으로 운영하기 어렵다. 드라마나 영화처럼 여러 방식의 판로가 있는 콘텐츠와는 다르게 패키지 게임은 타이틀 판매에서 얻는 수익이 절대적이다. GTA5는 약 2천5백억, 위쳐3는 약 1천억의 제작비가 들어갔다. 물론 이 정도 제작비 지원은 IT 공룡 기업에 어려운 일이 아니다. 하지만 개발사는 다르다. 두 게임 모두 발매 첫날 제작비 이상의 매출을 올렸다. GTA5는 2018년 말 기준 총 매출액이 약 6조다. 만약 넷플릭스와 콘텐츠 제작사의 관계처럼 클라우드 게이밍 서비스사의 지원을 받아 게임을 개발하고, 구독자에게 무료로 제공한다면? 수익은 보전할 수 있겠지만, 대박을 노리긴 어렵다. 클라우드 게이밍이 일반화되더라도 AAA급 게임 개발사는 타이틀 판매를 지속하리라고 예상하는 가장 큰 이유다.
여기서 스태디아의 약점이 드러난다. 사용자 입장에서 마이크로소프트나 소니, 스팀에는 이미 게임을 구매한 이력이 있다. 딱히 월마다 돈을 내고 구독하지 않아도 내가 산 게임들은 언제든 할 수 있다. 클라우드 게이밍을 선택할 때 내 게임이 0개인 곳과 5개인 곳이 있다면, 그리고 그 둘의 가격이나 서비스 품질이 비슷하다면 어느 쪽을 선택하겠는가. 예를 들어 지포스 나우는 자체 게임 플랫폼이 없다는 약점을 사용자의 스팀 계정을 연동할 수 있도록 열어주는 방법으로 극복했다. 프로젝트 엑스클라우드는 엑스박스 게임패스와 연동된다. 물론 콘솔 기기나 PC가 있어야 하겠지만 다운로드 플레이를 지원하기 때문에 네트워크 환경이 좋지 않은 곳에서도 아무 지장이 없다.
하지만 스태디아는 다르다. 별도의 다운로드와 기기 플레이를 제공하지 않는다. 즉, 내가 구매한 게임이라 해도 네트워크 연결이 없다면 플레이할 수 없다. PC 성능과 관계없이 네트워크에 따라 게임 환경이 결정된다. 어차피 게임을 한다면 최상급으로 세팅된 스태디아 서버로 하는 게 더 좋지 않냐는 반문이 나올 수 있다. 그러나 사용자들은 인간의 소유욕 같은 철학적 접근이 아니라 현실적 이유로 구매를 고민하고 있다. 바로 스태디아가 서비스 초반 보여준 실망스러운 모습이다. 혹 게임을 구매했는데 제대로 즐기지 못하면 어쩌나 하는 불안감이 결제를 고려하게 만든다. 다소 느리고 그래픽이 나쁘더라도 내가 가진 콘솔 기기나 PC에서 즐길 수 있는 다른 업체를 이용하는 편이 좋지 않겠냐는 합리적 의구심이 강하게 작용하고 있다. 신뢰의 문제다. 이를 극복하는 게 스태디아가 직면한 가장 큰 과제다. 클라우드 게임 서비스를 준비하는 회사들이 가장 주의해야 할 점이기도 하고.
아마 다른 업체들도 스태디아의 실패에서 원인을 찾고 분주하게 움직이고 있을 것이다. 스태디아에 가해지는 혹평과 비난은 그만큼 큰 관심을 의미한다. 게임의 미래를 향한 첫발을 상징적인 기업이 내딛었다. 후발 주자들이 무섭게 추격하는 상황에서 스태디아는 어떤 선택을 내리고 어떻게 발전할까? 구글이 이대로 물러설 리는 없다. 위에서 말한 약점과 단점들은 모두 극복 가능하다. 세계를 주름잡는 IT 기업들의 전장에서, 쟁쟁한 선배들이 그득한 이 바닥에서 신입이나 다름없는 구글이 지금까지의 성공 신화를 이어갈 수 있을까? 기업의 경쟁은 고객의 이익인 만큼, 마이크로소프트처럼 구글도 게임에서 손해를 보더라도 짱짱하게 버텨줬으면 한다. 그래야 무료 게임이 더 많이 풀리지 않겠나. 글 / 김강욱(게임 칼럼니스트)
- 에디터
- 이재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