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필순은 제주도에 산다. 거기서 텃밭을 가꾸고, 노래를 부른다.
요즘 서울에 오면 어때요?
어쨌든 고향이니까 반가운 마음 반, 어지러운 거 반. 오면 며칠을 어지러운 상태로 있다가 가는 거 같아요. 익숙한 곳인데. 일 마치고 제주공항에 딱 내리면 머리 아픈 게 싹 없어져요. 희한하죠? 이번엔 스케줄이 많아서 오래 있으니까 몸살이 왔어요.
3집 ‘강남 어린이’부터 새 음반의 ‘1동 303호’까지 도시생활의 외로움에 대해 노래했죠.
회귀본능 같은 게 있는 것 같아요. 요즘엔 사람 만날 때 맘을 잘 못 트지 않나요? 제주도에선 지금도 남의 집 대문 열고 인사하고 그러더라고요. 9년짼데 거기까진 적응을 못하고 있어요.
거기선 여전히 도시 사람이죠?
그분들이 보기엔 너무 도시사람인 거예요. 어쩌면 거기도 곧 변하겠지만 아직은 사람의 순수한 부분을 건드리는 곳이라고 생각해요. 서울에서 난 여기랑 안 맞아, 못 견디겠어 하면서 40년을 버텼는데 제주도에 가니까 왜 좀 더 일찍 안 왔을까? 그리고 나 같은 사람이 일찍 왔다면 여기도 거기도 더 좋아졌을 텐데,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하루 일과는 어떻게 시작되나요?
일어나면 텃밭 들여다보고, 고추랑 아침 먹을 것 따고 그래요. 키워서 딱 따서 먹으면 진짜 맛있거든요. 이게 우리가 알고 있는 고추 맞나 싶어요.
장도 직접 담그나요? 음반 속지에 “맛있는 고추장으로 후배들한테 산나물을 비벼주고 싶다”고 썼잖아요.
공부하는 중이에요. 이웃 어르신들이 눈만 마주치면 이것저것 주세요. 얼마 전엔 보리를 빻아서 만든 고추장을 얻었는데, 그렇게 맛있을 수가 없어요.
제주도에서도 노래 연습을 하나요?
거의 안 했던 거 같아요. 공연 하면서 하죠. 2, 3년 전부터.
요즘 목소리는 맘에 들어요? 바싹 마른, 물기 없는 목소리. 5집, 6집 내며 점점 더 그렇게 부르고 싶다고 했던 말을 기억해요.
네. 물기 다 빠졌죠. 반반이에요. 요즘엔 노래를 잘하려고 하지 않아요. 느낌이 좋으면 그게 더 좋은 노래라는 새 기준이 생긴 거죠. 예전엔 음이 나가면 안 되고, 박자가 어떻고, 호흡을 어디서 끊고 그런 걸 생각했는데 지금은 호흡도 짧아졌고….
그래서 더 극적이죠.
뭘 하기 위해서 나를 바꾸는 게 아니라 생긴 대로 불러요. 살짝 위험해도 가사 전달이 잘된 것 같으면 그걸 쓰고. 노래만 생각하는 사람들한테는 힘든 결정이겠죠. 녹음하면서 노래 몇 번 안 했어요. 대신 녹음하기 전에 곡을 천 번도 더 들었어요.
역시나 가을에 듣기 좋은 음반이죠?
제가 가을을 좋아해요. 여자는 봄 탄다고 하잖아요. 전 가을. 서울 살 때도 차 몰고 가다가 가로수 잎이 떨어져서 막 구르면 운전하다 그렇게 울었어요. 눈물이 많거든요. 근데 가을이 점점 없어지고 있잖아요. 짜증나 죽겠어.
좋아하는 계절에 일만 하는 건 억울한데요.
그러게요. 근데 저는 쉴 때 언제든 바람하고 같이 있으니까. 마당에 나무가 많거든요. 동네 분들이 함부로 심는 거 아니라고 뭐라고 하셨어요. 근데 전 그게 너무 좋은 거죠. 그래서 집에 해가 안 들어요. 제주는 더워서 나무가 빨리 커요.
전력투구한 6집 에 대한 반응이 기대만큼 따라주지 않았고, 거기에 대한 실망으로 제주도로 떠났다는 얘기가 있었어요.
평론가들이 한 얘기예요. 그런 분들이 음반에 대한 값어치는 충분히 쳐줬죠. 가난한 음악가라고 하는데, 저는 그렇게 표현하고 싶지 않고, 그냥 그만하는 게 낫겠다고 생각했어요. 사랑하는 일이지만, 내 생활이기도 해야 하니까.
‘가난한 음악가’ 같은 표현이야말로 이기적이지 않나 싶어요.
맞아요. 어디에 더 무게를 두느냐의 차이일 뿐이지 다 생활이잖아요. 그래서 내려갔는데, 몇 년 전에 CCM 음반을 하게 됐어요. 함춘호 오빠가 와서 아주 담판을 지으시더라고요. 그때 다시 기타를 좀 쳐보고….
은 11년 만의 새 음반인데, 많이 미뤄졌죠?
밖에서는 미뤄졌다고 하는데, 저희는 하던 대로 해서 나왔어요. 오히려 서두른 거예요. 음반 커버니 뭐니 마무리할 때.
장필순의 음반이 조동익의 프로듀싱으로 나온다는 얘기를 작년에 들었어요.
마음의 준비가 2년. 동료들은 꾸준히 내려와서 음반 얘기를 했어요. 그러다 푸른곰팡이라는 새 공동체도 생기고, 동익이 형이랑 힘이 될 수 있는 부분이 없을까 고민하다 내게 됐죠. 조동익 씨랑은 음반 다섯 장을 같이 했으니 이젠 제가 감기 걸렸을 때 어떤 목소리가 나오는지도 알아요.
싸우기도 하나요?
옛날에는 정~말 많이 싸웠죠. 처음 작업할 때는 틀어져가지고 녹음하다가 다 접고 그랬어요. 센 사람들끼리 만나면 양보가 어렵더라고요. 이젠 그런 거 거의 없죠.
지난 엔 날카로운 기운이 있었어요. 커버 사진에서도 까만 옷을 입고 카메라를 노려보고 있죠. 이번엔 곡과 노랫말 모두 좀 부드러워진 인상이에요.
나이 탓일 수도 있고… 6집엔 비관적이고 우울한 표현이 많았어요. 이번 음반도 그런 것에 대해 얘길 하고 싶긴 했죠. 그래서 첫 곡을 (조)동진 오빠의 ‘눈부신 세상’으로 골랐어요. 굉장히 슬픈 가사거든요.
‘눈부신 세상’이 1번 곡으로 나오는데, 조동익의 ‘엄마와 성당에’가 대번 떠올랐어요.
연주를 좀 그런 분위기로 했죠. 웅장하다기보다는 뭐랄까, 전혀 가요 같지 못한. 하하.
5집부터 ‘싱어송라이터 장필순’이 주목받기 시작했어요. 이번 음반은 단숨에 그런 욕심을 내려놓은 것처럼 보여요.
동익이 형이랑도 그런 얘길 했어요. 처음엔 두 사람 곡이 다였어요. 그런데 싱어송라이터, 뮤지션 같은 말에 꽂히다 보면 집착하게 되거든요. 그래서 오랫동안 교류한 사람들의 곡을 펼쳐보기로 했어요. 이규호, 박용준, 고찬용 씨 노래를 처음 하게 됐죠.
이소라 음반에는 이규호 노래가 있는데, 되레 장필순 음반에는 이규호 노래가 없었죠.
규호도 그랬어요. 20년이 되도록 일을 가장 많이 했고, 피 터지게 싸웠고, 사생활까지 아는 친구인데 이런 작업은 해본 적이 없다고. 옛날 하나음악은 가족적이었거든요. 음악적 개성은 세지만 결혼하기 전부터 알고, 그 안에서 결혼하고 애를 낳고 그런 생활이 거기 있는 거예요.
조동익의 아들 조민기가 새 음반의 ‘휘어진 길’에서 랩을 하는 것처럼요.
또 커버는 딸이 했잖아요. 조경윤 씨가. 그렇다고 누구를 키워줘야지 하는 마음은 없는 것 같아요. 오히려 고생을 좀 해봤으면, 하고 바라요. 눅눅한 지하실에서도 자면서 녹음도 해보고. 그런 경험이 음악을 만들어낸다고 생각하거든요. 아픔이 있어봐야 너무 아픈 사람을 쓰다듬을 수도 있고.
그런데 조동익 씨를 형이라고 부르세요?
오락가락하는데 오빠라고 더 많이 해요. 다 그렇게 부르는 걸 좋아해요. 동아기획 때부터 여자가 없었잖아요. 봄여름가을겨울, 들국화, 김현식, 어떤날, 신촌블루스, 조동진, 김현철, 박학기…. 제가 목소리는 이래도 귀염둥이였죠.
데뷔곡 ‘어느새’에서 “어느새 내 나이도 희미해져버리고 이제는 그리움도 지워져버려…” 라고 노래했죠. 15년이 다 됐는데, 꼭 지금 하는 말 같아요.
옛날엔 노처녀 주제곡이라 그랬어요. 음악 시작할 때부터 그런 가사와 멜로디를 불러서 그런지 몰라도 나이 먹는 걸 잘 못 느껴요. 한 번 아프면 그제야 좀 생각나죠. 본격적으로 음악을 시작하면서 만난 인연들이 아직도 저보다 선배가 훨씬 많아요. 그래서 여전히 막내 같아요.
그간 포크에 머무른 적은 없지만, 대부분 포크와 함께 언급되는 건 어떤가요?
항상 한두 곡쯤 들어 있었는데, 옛날엔 여자가 통기타 치면서 노래하는 게 흔치 않았으니까요. 근데 기타 친다고 다 포크가 아니잖아요. 전 노래할 때 이념 없이 하는 걸 좋아해요. 대신 시대를 읽을 수 있어야 하죠. 옛날엔 그랬구나, 싶은…. 예를 들어 미래에 매미가 없어질지도 모른다고 치면, 먼 미래에 누군가 ‘맴맴’을 들으며 옛날엔 매미란 곤충이 있었나 보지? 라고 생각해볼 수 있겠죠. 동시대를 살며 느끼는 정서를 우선으로 두고 싶어요. 그게 포크라고 생각하고요.
장필순은 아직 포크 뮤지션인가요?
정신적인 면에서 줄을 놓을 이유는 없죠. 잘 맞으니.
- 에디터
- 유지성
- 포토그래퍼
- 신선혜
- 스탭
- 어시스턴트 / 문동명
- 기타
- 가수/ 장필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