낮에도 커튼을 내리는 습관을 말할 때도, 자신을 애 취급하는 남자를 가소로워할 때도, 가인은 시종일관 상냥하고 경쾌하다. 이제 스물여덟 살, 알 건 다 알지만, 모르는 게 부끄럽지도 않다는 이 숙녀의 야무진 말들.
아까 눈이 잠깐 왔어요. 진짜요? 아예 몰랐어요.
겨울 좋아해요? 근데 겨울이 좋을까 여름이 좋을까 생각하면, 여름은 이래서 싫고 겨울은 이래서 싫고, 그런 것부터 생각나요. 아무튼 저는 어두운 게 좋아요. 아침엔 불안해요. 저녁이 되면 편안해지고요. 집에 있을 땐 밖을 안 봐요. 방에 있는 모든 커튼을 내리고 있어요.
그런 얘기를 느리고 무겁게 하는 게 아니라, 오히려 밝고 가볍게 하네요. 솔직하구나, 왠지 그런 느낌이 드네요. 이런 인터뷰를 할 땐 마음을 놔요. 그냥 제 얘길 하고 싶어져요.
일방적으로 질문을 받는 게 불편하거나 답답하진 않고요? 답답함은 전혀 없어요. 이제 저도 이 일을 시작한 지 꽤 됐잖아요. 좀 노련해졌달까? 일상에서도 제가 주변 사람들한테 뭘 물어보는 편은 아니에요. 제가 말하기 바쁜 편이지, 남 얘기 듣는 걸 좋아하지 않거든요.
남들이 재밌는 얘길 안 해주나 봐요. 텔레비전이나 인터넷 매체처럼 짧게 ‘따는’ 인터뷰는 질문이 비슷해요. 사실 매년 똑같죠. 항상 제 이미지를 한정시키고 질문하는 것 같아요. 정말 언제나 똑같다는 생각이 들어요. 저는 그걸 깨려고 노력했어요. 질문에 대한 답이든 제 이미지든, 제가 만들어갈 수도 있는 거니까 나름대로 변화를 줬어요. 근데 사람들은 그런 변화를 안 좋아하는 것 같아요. 나이가 들었으니 생각이 바뀌는 게 당연한데, 사람들은 그냥 어느 정도만 말해줬으면 싶은가 봐요. 그러니 결국 제자리죠. 제가 스물여덟이에요 그저 솔직하고 싶어요. 일부러 재밌자고 얘기를 지어내고 싶지는 않아요.
사람들이 보는 자신에 관심 있어요? 관심은 있죠. 귀가 얇은 건 맞거든요. 근데 금방 잊어버려요. 관심이 없다고 해야 할까요? 충격은 받는데, 거기에 갇히진 않아요. 전형적인 B형이에요. 한 귀로 듣는데 한 귀로는 이미 흘러나가고 있어요.
귀가 예쁜가? 얼굴은 마음에 들어요? 뭔가 좀 부족한 얼굴이잖아요. 그렇게 제가 가진 게 모자라서 예뻐지려고 노력하다 보니 뭔가 발전할 수 있었던 거라고 봐요.
예뻐지려고 노력한다는 건. 포기할 건 빨리 포기해요. 머리 크기를 막 어떻게 할 순 없잖아요. 대신 저는 눈코입 예쁜 것보다 피부가 좋은 게 좋아요. 눈빛이 좋거나, 머릿결이 좋거나, 손발 관리를 잘하거나….
지금 자기 얘기 하는 거예요? 하하, 기준이 그렇다 보니 저도 모르게 따라가고 있나 봐요. 한번은 친구가 저더러 윤여정 선생님처럼 늙을 자신 있냐고 묻더라고요. 저는 자신이 없었어요. 그 나이가 되면 뭔가 시술도 받을 것 같고요. 정말 멋있는 게 뭔지 알고 싶어요.
그건 그 사람 자체의 매력이 아닐까요? 아무리 성형을 많이 해도 멋있을 수 있죠. 쉐어 같은 가수에게 성형 때문에 멋이 없다고 말할 수 있을까요? 그러고 보니 그렇네요.
어쨌든 그건 나중의 일이고요. 지금 가인은 누구를 향해 노래해요? 제 또래 여자들을 향해 노래하고 있다고 생각해요. 그 친구들과 나눌 수 있는 음악을 하고 싶어요. 제가 스물여섯 살에 ‘피어나’를 했는데, 그야말로 여자 나이 스물여섯의 첫경험, 그것에 대해 안다고 말해도 누가 뭐라 하지 않는 나이잖아요. 이번에 나올 노래는 그 몇 년 후의 얘기가 될 거예요.
‘피어나’에 비해 좀 더…. 좀 더 요망하죠. 하하, 발칙하고요. 그게 나쁜 건 아니잖아요.
누가 뭐래요? 남자들 정신 바짝 차려야겠네요. 맞아요. 가만 보면 나이가 많든 적든 남자들은 저를 애기 취급하려고 해요. 이번 노래에도 그런 감정을 넣었어요. 남들이 하는 말들, 소문들, 착각들…. 근데 제가 쉬워 보여요? 남자들끼리 그런 얘기 하잖아요. 손 한번 잡을까 말까 해놓고, 걔랑 잤냐? 그러면 잤다고 헤헤거리잖아요. 말하자면 저는 이제 그런 얘기를 들어도, 언제 잤냐고 따지지 않아요. 그냥 웃고 마는 거죠.
가소롭군요. 그래, 그러고 다녀라.
어떤 성숙이라고 생각하나요? 시간만큼 뭔가 쌓이는 것 같아요. 모이고 모여서 달라지는 거겠죠. 무엇보다 술을 배우고 나서 확실히 달라졌고요. 뭔가 한 꺼풀 벗었달지, 내려놓았달지, 술을 통해 말하는 법을 새롭게 배운 것 같아요.
혼자서도 마셔요? 와인만 마셔요. 퐁테까네 좋아해요. 너무 드라이한 건 싫어요. 무겁고 부드러운 맛이 좋은데, 2만원짜리 와인에서도 그런 맛이 날 때가 있어요. 딱히 술자리가 아니어도 그냥 한잔 마시는 편이에요.
진짜 즐기는 사람이 하는 말이네요. 정말 좋아해요. 좀 더 많은 자유가 생긴 것 같아요. 이번 뮤직비디오를 보면, 쟤가 가인이구나, 가인만 할 수 있는 걸 했구나 그런 생각이 드실 거예요..
말투가 갑자기 수줍어요. 남자랑 같이 찍어서요.
베드신은 전에도 있었잖아요. 웬만한 베드신보다 수위가 셀걸요? 어느 누구도 따라할 수 없어요 그냥 나로부터 나온 거예요.
뭔가 한방이 나올까요? 새삼스럽지만 가인이라는 이미지는 묘하게 신선해요. 다르게 얘기하면 한 방이 없었달 수도 있죠. ‘아브라카다브라’도 있고 ‘돌이킬 수 없는’도 있고, ‘피어나’도 있지만 그걸 어느새 또 지웠어요. 맞아요. 그 말이 좋네요.
얼굴 때문일까요? 빈 도화지 같은 거요? 흐흐, 저는 제 얼굴이 재밌어요. 틀이 없어요. 메이크업 하는 대로 변해요. 아무래도 대중이 원하는 건 뭔가 딱 정해진 이미지일 텐데….
대중은 따라오는 거라고 생각해요. 먼저 눈치를 보기 시작하면 발목을 잡힐 뿐이죠. 알아요. 자기가 아무리 좋아해도 인기가 없으면 결국 틀렸다 판단하고, 좋아하지도 않으면서 인기만 많으면 금세 ‘짱’이라 그러죠. 하지만 그렇게 생각하더라도, 제가 용기를 내는 것과는 다른 문제 같아요. 자꾸 흔들리니까요. 근데 자꾸 대중의 시선이나 취향이나 수준에 맞추려 들면 내가 그 이상을 뚫고 나가질 못할 것 같아요. 발전할 수 없잖아요. 그럴 땐 귀를 막고 나에게 집중해야겠죠.
맞아요. 뭔가 접점을 찾으려는 수법으로는 절대 좋은 작품이 나올 수 없어요. 끝까지 밀어붙여야죠. 용기를 내야겠네요.
우스운 남자를 우스워하는 대신, 멋진 남자에게 반하는 기회를 찾으면서요. 저는 똑똑한 사람이 좋아요. 무시를 당해도 상관없어요. 다른 쪽으로 웬만한 건 제가 다 아니까요. 책을 많이 읽는 사람이 좋아요. 어줍잖게 비슷한 건 짜증나요. 아예 다른 사람, 전혀 모르는 사람에게 매력을 느껴요.
꼼짝 못하게 만들 남자가 필요하겠어요. 그런 남자가 여기에 있을까요? 본받고 싶은 남자, 존경하는 남자와 결혼하고 싶어요.
결혼할 때 하더라도 지금은 우선 노래를 해야죠. 가인이 더 좋은 가수가 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작사 작곡을 직접 해야 하나? 그런 생각도 해봤는데, 왠지 재미없을 것 같아요. 자기한테 갇힐 것 같아요. 저는 제가 작사 작곡을 안 하기 때문에 음악을 할 때 더 아슬아슬하고 불안해서 거기서 재미가 나오는 거라고 생각해요. 글쎄요, 더 좋은 가수가 되려면, 뻔한 말일까요? 노력해야 해요. 연습해야 해요. 점점 그 말이 와 닿아요. 점점 연습 안 하게 되거든요. 연습은 안 하면서 뭔가 아는 건 많다고 여기거든요. 능청스러워지고, 쉬운 방법을 찾고. 안 되겠네요. 당장 몸을 움직여야겠어요
- 에디터
- 장우철
- 포토그래퍼
- 목나정
- 스탭
- 스타일리스트 / 오선희, 헤어 / 백흥권, 메이크업 / 고유경, 어시스턴트 / 이채원, 박현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