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준수가 뮤지컬 배우로 데뷔한 지 10년째다. 그가 초연, 재연에 이어 세번째로 주연을 맡은 뮤지컬 <드라큘라>는 코로나19 상황 속에서도 관객몰이 중이다. 배우로서 김준수는 도대체 무슨 매력이 있는 걸까?
“난 그저 그녀에게 영원한 생명을 주고 싶었을 뿐이죠.” 뮤지컬 <드라큘라>에서 김준수가 맡은 드라큘라 백작은 산 것도, 죽은 것도 아닌 채로 살아가기 위해 다른 인간의 피를 탐해야만 한다. 익히 알려진 소설 <드라큘라>의 이야기는 과거에 아주 끔찍한 호러 소설로 여겨졌지만, 끝없이 영생을 탐해온 인간의 역사가 담긴 이 소설 안에서 태동한 뮤지컬은 장르의 힘을 빌려 더욱 직설적으로 말한다. “다른 이들은 구걸을 하고 애원을 하고 영혼을 팔아서라도 얻고 싶어했던 거야!”
화를 가누지 못하고 날카롭게 쏘아붙이며, 빈정대다가도 원하는 것이 생기면 유혹적인 시선과 몸짓으로 상대를 갈구하는 두려운 존재. 비단 <드라큘라>만이 아니라 그동안 김준수가 참여했던 수많은 작품들 속에서 만날 수 있었던 캐릭터다. 이제는 가수보다 뮤지컬 배우라는 수식어가 익숙해진 그의 첫 작품은 <모차르트!>였고, 그는 천재라는 수식어 안에서 끊임없이 고뇌하고 미쳐가며 예민해진 인간을 연기했다. 하지만 정작 가장 큰 호응을 얻었던 <엘리자벳>의 토드(죽음)는 인간이 아닌 환상 속의 존재였고, 자유를 갈망하는 엘리자벳을 죽음의 나락으로 빠뜨리는 악에 가까운 존재였다. 이후 그가 연기한 <데스노트>의 엘, <도리안 그레이>의 도리안 그레이 등도 마찬가지다. 자신을 신격화하거나 신이라는 존재에 의심을 품은 판타지 속의 인물들은 히스테릭한 악인 혹은 악마처럼 보였다. 어둡고 타락한, 혹은 검고 음습하며 쾌락을 거부하지 않는.
남성 배우들 사이에서 흔히 찾아보기 힘든 날카로운 하이톤의 보이스와 광기 어린 몸짓이 살아난 이 몇 개의 캐릭터들은 사실 연기로 보여줄 수 있는 감정의 고저보다 상상 속 인물로서의 특성이 더 부각된 역할들이다. 실제로 드라큘라 백작의 실제 모델이 된 15세기 루마니아 왈라키아의 왕자 블라드 3세는 전쟁 포로들을 잡아 잔인하게 처형하는 것을 즐긴 악인이었다. 그러나 새빨간 머리, 반면에 핏기 없는 얼굴로 처절하게 사랑을 갈구하는 김준수의 드라큘라는 단 한 개의 가치 앞에서 결국은 영생을 포기하기에 이른 환상 속 인물이다. 그리고 그 가치가 바로 사랑이라는 점은 매우 극단적이고 과장된, 동화적인 결말과 함께 김준수가 지금 한국 뮤지컬계에서 맡아둔 자리가 무엇인지 상징한다. 연기를 잘 하는 배우는 많다. 그러나 자신을 곧 신이라 믿던 존재가 처절하게 무너지고, 스스로 목숨을 끊는 극단적인 결말까지도 어렵지 않게 납득시키는 이 배우는 무대에서 판타지를 가장 판타지답게 만드는 사람이다. 이런 뮤지컬 배우는 분명히 드물다.
- 에디터
- 글 / 박희아(대중문화 저널리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