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ictorial

소니 홀의 완벽한 평온함

2020.03.24GQ

시인이자 패션계의 독보적 신성인 소니 홀은 결국 삶이 자신을 제대로 된 곳으로 데려다주리란 믿음으로 산다. 확신이 들기 전 그의 삶은 모순투성이였다. 시를 쓸 때의 충동은 파괴적이지 않다. 그는 그 광기를 절대적이고 완벽한 평온함으로 설명한다.

레드 플레어 울 빈티지 코트 6백40만원, 블루 실크 크레이프 셔츠 1백20만원, 라벨 디테일 블랙 파나마 울 팬츠 1백50만원, 블랙 리자드 레더 솔 부티 가격 미정, 모두 구찌.

그레이 비스코스 재킷 3백30만원, 블루 실크 크레이프 셔츠 1백20만원, 옐로 빈티지 캔버스 팬츠 가격 미정, 실크 타이 30만원, 블랙 코튼 니트 비니 38만원, 블랙 림 선글라스 가격 미정, 선글라스 체인 51만원, 모두 구찌.

지오메트릭 프린트 재킷 3백90만원, 핑크 골드 비스코스 자카드 셔츠 1백24만원, 실크 타이 30만원, 모두 구찌.

라벨 디테일 블루 데님 재킷 5백70만원, 라이트 블루 데님 팬츠 2백28만원, 화이트 블루 코튼 스트라이프 셔츠 74만원, 블랙 리자드 레더 솔 부티 가격 미정, 실크 타이 30만원, 모두 구찌.

카스피안 울 재킷 3백30만원, 캐러멜 실크 크레이프 셔츠 1백55만원, GG 패턴 실크 타이 30만원, 퍼플 팬츠 99만원, 레이저 컷 블랙 레더 솔 부티 2백17만원, 홀스빗 디테일 블랙 라지 톱 핸들 백 4백10만원, 모두 구찌.

스티치 디테일 재킷 2백82만원, 블루 레드 스트라이프 코튼 셔츠 74만원, 빈티지 트리코틴 팬츠 1백33만원, GG 로고 벨트 76만원, 실크 타이 30만원, 화이트 림 선글라스 가격 미정, 모두 구찌.

블랙 파나마 울 재킷 4백20만원, 베스트 1백50만원, 팬츠 1백50만원, 블랙 리자드 레더 솔 부티 가격 미정, 모두 구찌.

엠브로이더리 디테일 핑크 테크노 셔츠 1백28만원, 라벨 디테일 블루 데님 팬츠 가격 미정, 블랙 리자드 레더 솔 부티 가격 미정, 모두 구찌.

레드 멀티 컬러 스트라이프 니트 가격 미정, 라벨 디테일 파나마 울 팬츠 1백50만원, 홀스빗 디테일 블랙 레더 백팩 3백10만원, 모두 구찌.

블랙 파나마 울 재킷 4백20만원, 베스트 1백50만원, 팬츠 1백50만원, 모두 구찌.

더블 G 패턴 브이넥 니트 99만원, 오프화이트 그린 스트라이프 실크 셔츠 가격 미정, 벨벳 팬츠 1백8만원, GG 패턴 브라운 베이지 실크 타이 30만원, 모두 구찌.

브라운 드릴 재킷 3백30만원, 옐로 블루 스트라이프 터틀넥 1백30만원, 브라운 코튼 팬츠 1백55만원, 그린 코튼 니트 비니 38만원, 모두 구찌.

레드 멀티 컬러 스트라이프 니트 가격 미정, 라벨 디테일 파나마 울 팬츠 1백50만원, 모두 구찌.

레드 플레어 울 빈티지 코트 6백40만원, 블루 실크 크레이프 셔츠 1백20만원, 라벨 디테일 블랙 파나마 울 팬츠 1백50만원, 바이올렛 옐로 스트라이프 실크 타이 30만원, 블랙 리자드 레더 솔 부티 가격 미정, 모두 구찌.

카스피안 울 재킷 3백30만원, 캐러멜 실크 크레이프 셔츠 1백55만원, GG 패턴 브라운 베이지 실크 타이 30만원, 모두 구찌.

정신질환과 천재적 창조성 사이의 연결고리는 오랜 시간 논쟁의 대상이었다. 실비아 플라스나 버지니아 울프만 봐도 그렇다. 그들은 위대한 작품을 쓰기 위해서는 창조성과 정신적 또는 심리적 문제들이 한데 뒤섞여야 한다는 생각에 힘을 실어주었다. 고대 그리스의 철학자 아리스토텔레스는 “약간의 광기도 없는 위대한 천재란 있을 수 없다”라는 말을 보탰다. 어쩌면 소니 홀이 그 증거일 수도 있다. 런던에서 나고 자란 그는 이제 스물한 살이지만 대다수의 또래와는 전혀 닮지 않았다. 감정을 억누르고 세상을 차단하기 위해 10대 시절 대부분을 마약과 알코올에 빠져 지냈고, 생모가 세상을 떠난 열일곱 살 무렵부터는 더 어두운 삶을 살았다. 그는 중독치료센터로 보내졌고, 그곳에서 창조가 갖는 치유의 힘을 발견함과 동시에 시를 쓰기 시작했다. 그때의 일기를 묶어 홀은 시집을 출판했고 문학계의 남다른 아이콘이 되었다. 동시에 케이트 모스 에이전시와 계약해 패션 브랜드의 러브콜 또한 자주 받고 있고. 지금 소니 홀이 준비하고 있는 몇 가지가 더 있다. 그리고 할 말은 훨씬 많다.

당신의 어린 시절이 궁금하네요. 원래 저는 약과 알코올 중독이 그저 일상이었던 노동자 계급 가정 출신이에요. 환경이 그랬으니 태어나자마자 혼돈 그 자체였죠. 그러다 네 살에 입양되면서 사우스웨스트 런던으로 이사 갔고, 그때부터는 사정이 나아졌어요. 양부모님은 사랑이 많으셨고 집안도 제법 안정적인 중산층 가정이었거든요. 따듯한 가정에서 평범하게 자랐어요. 매번 밥을 안 먹어서 걱정을 끼치기도 했는데 왜 그랬나 모르겠어요. 아주 어렸지만 거부하고 싶은 것이 많았던 것 같아요. 그냥 뭔가 다 모순되었다고 생각한 것도 같고요. 잊고 싶은 기억이에요.

쌍둥이 동생 하비와 함께 자랐죠? 지금은 동생과 어때요? 하비는 제겐 아주 특별해요. 고작 9분 차이 나는 형이지만 내 동생이 훌륭한 사람이란 걸 자주 느껴요. 어둡고 혼란스러운 시기를 함께 견디다 보면 유대감 이상의 감정이 생기잖아요. 뭐랄까, 일체감 같은 거? 하비는 나무 치료 전문가가 되었고 신기하게도 매일 일찍 일어나요. (휴대 전화 벨이 울리자 흘깃 보더니) 흠, 하비가 건 전화예요. 또 뭔가 통했나 봐요. 이런 순간들이 신기해요. 하비 말고는 탐신이라는 여동생이 있어요. 탐신은 다른 집으로 입양됐어요. 이복 남동생 바비와 이복 여동생 태미도 있고요. 상황이 이렇다 보니 이래저래 신경 쓸 일이 많죠. 하지만 그건 어느 집안이나 마찬가지일 거예요. 안 그래요?

런던에서 패션 학교에 입학했는데 1년도 못 채우고 그만뒀다면서요. 모든 게 불확실할 때도, 옷을 좋아한다는 사실만은 스스로 분명히 알고 있었죠. 알렉산더 맥퀸 같은 디자이너를 보면서 새로운 뭔가를 만드는 일에 관심을 갖게 되었어요. 창작의 원동력이 궁금했고요. 소호에 있는 런던 컬리지 오브 컨템포러리 아트에 입학해서 영화와 패션 디자인을 공부했는데, 사실 수업을 거의 빼먹었어요. 그런 와중에도 런던의 크리에이티브들 사이에서 뜻이 맞는 무리를 찾았으니 운이 좋았죠. 다들 여전히 제 삶에서 아주 중요해요. 뮤지션인 바카는 제가 열여섯 살이 됐을 때 만났는데 저에게 많은 걸 가르쳐줬어요. 그를 비롯한 몇몇이 저를 동생처럼 챙겨줬죠.

캠든에서 스카우트되어 모델 일을 시작한 것도 열여섯 살이었죠? 잭과 함께 캘리포니아에서 온 어떤 밴드의 공연을 보러 갔어요. 아, 잭은 제 시집의 삽화를 그린 친구인데 가장 오래된 친구 중 하나예요. 저는 그 밴드에 관심이 별로 없었지만 누군가 오라고 해서 그냥 간 거여서 잭과 같이 주변을 슬슬 어슬렁거리고 있었어요. 그런데 갑자기 낯선 여자가 오더니 “너희들을 생 로랑 모델로 써야겠어!”라고 하더라고요. 투모로 이즈 어나더 데이라는 모델 에이전시 담당자였고, 그렇게 데뷔하게 됐어요. 갈 마음이 없던 공연에 갔다가 그런 일이 생겼으니 어쩌면 운명적으로 모델이 된 거겠죠.

첫 시집 <우울함은 좋은 소식과 함께 찾아온다>는 재활 치료 중의 일기를 바탕으로 쓴 작품들이죠? 시는 제 삶의 치료약 같은 거예요. 저는 하루도 빠짐없이 시를 써요. 태어나서 처음으로 제 자신과 어떤 것이 단단하게 연결되어 있다고 느끼게 해준 것 중 하나가 시예요. 시를 쓰고 싶다는 충동은 정말이지 강해서 온몸에서 에너지가 막 넘쳐나는 기분이었어요. 그런 식으로 파괴적이지 않은 충동이 있다는 게 엄청나게 생소하게 느껴졌고요. 제게는 이게 카타르시스예요. 이젠 마약도 술도 다 끊었지만 광기는 여전히 갖고 있어요. 저뿐 아니라 우리 모두에겐 각자의 광기가 있어요. 시 쓰는 법을 따로 배운 적이 없어서 독학으로 천천히 익혔어요. 제게 스탠자에 대해 뭘 아냐고 묻는 사람들이 있어요. 시의 기초 단위? 운율? 구성? 맞아요. 그런 걸 정식으로 배운 적은 없어요. 하지만 제 시는 그 자체로 순수한 형태예요. 제가 실천에 옮기는 충동이란 거죠. 일기를 쓰다가 시작한 건데, 당시엔 말도 안 되는 헛소리만 끄적였을 뿐이죠. 어떤 면에서 보자면 첫 시집은 제겐 부활의 의미예요. 난생처음 제가 겪고 느끼는 것들을 완전히 인식하게 되었거든요. 첫 시집을 내고 나서야 마음에 안 드는 점이 보였고, 그리고 창작 방식의 어느 부분을 점검해야 하는지 깨닫게 되었어요. 그리고 그런 경험을 바탕으로 새 시집에 들어갈 작품을 매일매일 썼어요.

새로 나올 시집은 또 어떨까요. 시와 사진이 함께 있어요. 시각적인 요소가 많아서 어쩌면 사진집처럼 보일 거예요. 포토그래퍼 닉 나이트와 함께 만들었어요. 닉과는 몇 년 전에 촬영을 하다 알게 되었죠. 요즘은 아주 쉽게 타인에 의해 어떤 한 가지 프레임이 씌워지지만, 한편으로는 스스로 자신을 위해 다양한 작은 프레임들을 만들기도 그만큼 쉬워요. 저는 시인이라는 한 가지 틀에 갇히기는 싫어요. 시가 제 삶, 그 플로의 일부인 건 맞지만 그게 저라는 사람을 규정하는 전부는 아니거든요. 그래서 닉과 함께 만들고 싶은 이미지들을 상상해서 그를 찾아갔어요. 새 시집에 담긴 이미지들은 변형과 탈바꿈을 의미해요. 사진으로 스토리를 전달하는 닉의 능력이 워낙 강하니까 낱장의 사진들은 각각 굉장히 많은 것을 보여주죠. 우리는 애벌레가 나비로 변하는 것처럼 한 개인이 거치는 죽음과 삶, 그리고 부활을 묘사하는 시나리오를 기반으로 함께 작업했어요. 제가 나오는 사진은 없어요.

좋은 작업을 위한 자극은 주로 어디에서 얻나요? 제 작업은 언제나 스스로를 위한 것이었고 앞으로도 늘 그럴 거예요. 타인을 위해 시를 쓰기 시작한다면 진심이 오염되겠죠. 제가 쓴 글을 듣거나 읽은 사람들의 진실된 호응을 직접 보니까 더 확신이 생겼어요. 뉴욕에서 발간 기념 행사를 했는데, 그 자리에 모인 사람들은 출신과 배경, 성별과 나이가 다 제각각이었어요. 그들의 공통점은 단 하나였어요. 어떤 순수함과 솔직함을 찾는다는 거요. 제가 하고 싶은 게 바로 그거예요. 사람들의 마음을 열고 순수함을 느낄 수 있게 돕고 싶어요.

선을 그어둔 주제들이 있나요? 아니면 모든 게 시의 주제가 되나요? 혹시 당신 생각을 너무 많이 드러냈다는 생각이 드는 때도 있나요? 저에게 무슨 일이 일어나든, 제가 무슨 생각을 하든, 어느 때 어떤 감정을 느끼든 모두 시로 말할 거예요. 하지만 시만 쓰고 있진 않을 거예요. 시를 쓰는 건 제게 일상적인 행위지만, 가끔 다른 식으로 충족을 느낄 필요도 있겠죠. 삶이 저를 제대로 이끌어줄 것이라는 믿음이 있어요. 그런 확신을 갖기까지 꽤 허송세월했죠. 한 달 후면 약을 끊은 지 3년이 돼요. 그렇게 깨끗하게 지내는 동안 더욱 명확하게 생각할 수 있게 됐고요. 특히 지난 1년은 아주 평화로웠어요. 지금껏 한 번도 누려본 적 없는, 절대적이고 완벽한 평온함 말이에요.

인스타그램 팔로워가 13만6천 명이 좀 넘죠. 소셜 미디어가 작업에 영향을 끼치거나 창작을 독려하기도 하나요? 저는 인스타그램을 좋아하지 않아요. 주로 일 때문에 사용하죠. 아이러니하게도 인스타그램에는 사람들을 세상으로부터 단절시키는 요소가 너무나 많아요. 여러 방면으로 도움이 된 건 맞지만 크리에이티브의 측면에서 보자면 제가 인스타그램으로부터 얻을 건 하나도 없어요. 그걸 아니까 목적에만 맞게 사용해요. 어린 친구들이 인스타그램을 사용하는 방식을 보고 있자면 완전히 잡아먹히는 것 같아요. 어제 어떤 파티에서 본 두 친구는 그 자리와 순간에 몰입하는 대신 각자 셀피를 찍느라 정신이 없었어요. 한마디 할까 하다가 참았어요. 그냥 입술을 꽉 깨물었죠.

지금은 케이트 모스 에이전시 소속이죠? 그녀와는 어때요? 꽤 좋아요. 우리 둘 모두를 아는 친구가 많기도 하고 어떤 식으로 보면 케이트와 전 비슷한 길을 걷고 있기 때문에 통하는 게 많죠. 서로의 세계가 밀접하게 엮여 있기 때문인지 케이트는 제게 먼 가족 같아요. 자주 만나고, 그녀의 남자친구 니콜라이와 함께 휴가를 다녀오기도 했어요. 케이트가 크로이던 출신이고 저도 런던 남쪽에서 자랐기 때문인지 더 친근하기도 하고요. 제가 재활센터에 갈 수 있도록 도와준 새디 프로스트가 저를 케이트 모스에게 소개시켜줬는데 매번 고맙다고 인사해요. 지금의 에이전시는 그냥 저랑 딱 맞거든요.

타투가 많네요. 첫 타투에 관한 얘기를 들려주세요. 첫 타투는 “scumbag(쓰레기 같은 녀석)”이라고 썼어요. 저는 다분히 충동적이고 기분을 완전히 따르는 편인데, 때로는 충동이 좋은 거라고 생각해요. 내부에서 시작된 거잖아요. 당시 제 안에 어느 정도의 쓰레기가 쌓여 있고, 그 쓰레기는 유년기에서 비롯된 거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제 몸의 타투는 각자 무언가를 의미하죠. 아무 생각 없이 받은 타투는 없어요. 다리에 “sunny sometimes(가끔씩 햇살)”이라고 새겼는데, 제 이름에 오타를 내면 서니(sunny)가 되죠. 그와 동시에 두 가지 면을 갖는 쌍둥이자리를 나타내는 것이기도 해요. 다른 쪽 다리에는 제가 직접 새긴 타투가 있어요. 런던 지하철 로고 안에 “love(사랑)”라고 적혀 있죠. 사랑은 정거장일 수도 있지만 종착지 없이 끊임없이 가야 해요. 하트 모양 타투도 있는데 그건 우리 모두 사랑을 필요로 하기 때문이에요. 지금 22개의 타투가 있는데 한동안 새로 만들진 않았어요.

당신이 스물한 살이란 사실을 자꾸 잊어요. 경험이 많아서 훨씬 성숙한 걸까요? 미래에 본인이 어떤 모습일지, 무엇이 되고 싶은지, 그리고 뭘 더 하고 싶은지 생각해봤어요? 앞으로 좋은 일들이 생길 거라고 믿어요. 결국 자신의 삶을 믿으라는 제 철학에 관한 얘기예요. 현시점에서 저는 분명히 삶을 믿고 있고, 그렇기 때문에 앞으로의 일들이 기대되기도 해요. 마치 제 새 시집처럼 말이에요. 가까운 미래의 계획으로는 우선 시집에 담긴 사진들을 크게 출력해 런던의 갤러리에서 전시를 열 거예요. 연기 수업도 받고 있고, 대본을 써서 영화를 만들어보고 싶기도 해요. 캐릭터 묘사나 시나리오 작업이 꽤 재미있어요. 연기는 제게 완전히 새로운 세계예요. 시도해본 적 없는 분야이기 때문에 올해나 내년 중에는 도전해서 그 벽을 넘어보고 싶어요. 더 먼 미래에 대해서는, 그게 불과 5년 후의 미래라 해도 솔직히 잘 모르겠어요. 지금까지는 꽤 순조롭게 흘러가고 있지만요.

    에디터
    패션 에디터 박나나
    포토그래퍼
    JDZ Chung
    헤어
    Benjamin David
    메이크업
    Jinny Kim of Gary
    대표
    Filorga
    캐스팅
    Cristine Hwang
    프로덕션
    37N34 Production
    Kati Chitrakor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