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의 움직임과 피 한 방울로 게임 중독을 판별할 수 있다고 한다. 과학적 근거를 따지기 전에 날카롭게 의심을 던져야 한다.
꿈처럼 느껴지던 미래 기술을 현실화시킨 한국 연구팀이 있다. 역시 한국은 세계 최고의 기술 강국이다. 피 한 방울로 사람이 어떻게 살아갈지 결정하는 미래를 그린 영화 <가타카>의 세계가 펼쳐질 날이 머지않았다. 정부에서 주관한 뇌과학원천기술개발사업의 일부인 ‘게임 디톡스 사업’으로 만들어진 결과다. 12억의 세금이 들어간 이 연구의 결과로 피 한 방울이면 게임 중독 여부를 판별할 수 있게 됐다.
특정 유전자가 인터넷 게임 중독 유발 가능성에 관여한다는 게 2020년 1월 말 실제 특허가 등록된 이 연구의 골자다. 이 유전자가 후천적으로 발현된다는 내용도 있지만, 선행 연구를 펼친 결과 유전적 요인이 48퍼센트를 차지한다며 선천적 조건을 강조했다. 그러니까, 피 한 방울이면 인터넷 게임이 무엇인지 아예 모르는 사람도 게임에 중독될 가능성이 있는지 예측할 수 있다는 뜻이다. 유전자 검사로 신체적인 질병의 발병 가능성이나 위험 수준을 판별하는 연구는 꾸준히 있어 왔다. 이번 연구의 성과는 같은 방식으로 마음의 병도 진단했다는 점이다. 어마어마한 미래 기술이다. 참으로 대단하다.
다른 연구도 있다. 게임 화면을 보는 사람의 안구 전도, 즉 눈의 움직임을 측정해 게임 중독을 판별한다. 측정값으로부터 심리적 갈망 상태를 판단해 중독 여부를 가릴 수 있다. 이 연구도 마찬가지로 2020년 1월 실제 특허가 등록됐다. 음식에 반응하면 비만 위험군이라는 논리와 비슷해 보이지만, 어쨌든 똑똑한 분들이 돈 펑펑 써가며 연구한 내용이니 틀릴 리가 없다. 그래야만 한다. 그렇지 않으면 피땀 흘려 낸 세금의 가치가 폄하되지 않나.
이게 끝이 아니다. 약 30억의 예산을 집행해 30여 건의 논문이 나왔다. 산술적으로 편당 1억씩 들어간 셈이다. 박사님들 모셔놓고 연구하니 인건비가 많이 들어갈 법도 하다. 보통 인문사회학 논문의 경우 SCI급도 연구비가 1천만원 안쪽이긴 하지만 뭐 어떤가. 몸값 비싸고 실력 있는 연구자를 많이 모셔왔다고 생각하면 마음 편할 일이다.
게임 중독이 뭐냐, 중독의 기준이 뭐냐, 병이냐 아니냐, 게임 중독을 질병화시키는 진짜 이유가 뭐냐 등등 게임 중독 자체에 대한 논쟁은 두말하면 입이 아픈 오래되고 해묵은 주제다. 육체적 의존성이 없다는 전제하에 사회 주류 문화의 향유는 중독이 아니다. 학생들이 주말마다 친구들과 PC방에 가면 게임 중독이고, 높으신 분들이 한 달에 20일씩 골프를 치면 운동이자 사교 활동이다. 이런 상황을 따져봐야 의미 없다. 아무리 그 위상이 높아지고 시장 규모가 커졌다 해도 부모 세대가 보기에 게임은 아직도 애들 장난이고 방해물이니까. 영화나 만화, TV 방송 등 다른 문화 콘텐츠처럼 시간이 해결해야 할 일이다.
진짜 문제는 게임 중독의 실존 여부와 질병 등재가 아니다. 이 틈을 타 게임 산업에 끼어들려는 전문가로 위장한 비전문가, 별로 관심 없던 영역이 돈이 된다고 하니 달려드는 기회주의자들이다. 이들이 올바른 논의와 정상적인 발전을 저해한다. 전문가의 타이틀을 달고 나오는 연구 결과와 주장이 게임 중독의 개념을 모호하게 하고 논점을 흐린다. 인터넷 중독과 게임 중독의 혼용은 너무 당연하고 당당해 이의제기가 민망한 수준이고, 케케묵은 게임뇌 이론을 다시 꺼내는 일도 다반사다. 개념과 용어 정립, 선행연구 검토조차 안 된 연구라는 의미다.
게임 중독을 침과 한약으로 치료한다는 한의원도 있다. 게임 중독이 치료해야 하는 병인지는 차치하고라도, 그런 요술 침과 마법의 약이 정말로 존재하는지부터가 궁금하다. 같은 한의학계조차 의심의 눈초리를 보내는 이런 행위가 공공연히 자행된다. 몇몇 한의원에서는 학생들의 뇌는 성인보다 게임 중독에 취약하고, 사태가 더 악화될 수 있다는 말로 학부모의 불안감을 자극했다. 정신과 진료 기록이 남지 않으니 안심하라는 말과 함께. 한 달 수십 만원의 한약 처방도 당연히 따랐다. 여기에는 다른 문제도 있다. 게임 중독은 질병분류기호(KCD)상 정신 질환의 일종으로 등재될 가능성이 높다. 하지만 대부분의 한의사는 신경정신과 전문의가 아니다. 게임 중독을 전문 분야가 아닌 일반 한의사가 치료, 처방하게 된다. 제대로 된 진단과 처방이 가능할지 의구심이 들 수밖에 없다.
2013년 보건복지부 지원으로 개발된 인터넷 게임 중독 테스트인 ‘IGUESS’ 역시 1996년 나온 인터넷 중독 테스트와 큰 차이가 없다. 총 9개의 문항에 각각 0점에서 3점까지 점수를 매겨 10점 이상 나오면 게임 중독인 간단한 방식이다. 이 모델의 분석을 맡은 중앙대학교 게임 경영전략 연구소가 IGUESS를 중앙대 경영학 전공 대학생들에게 적용하자 전체의 21.2퍼센트가 게임 중독으로 조사됐다고 한다. 다른 연구에서는 약 7.5퍼센트의 학생이 게임 중독이라는 결론이 나왔다. 두 연구의 결과가 너무 다르다. 중독 테스트의 신뢰도에 금이 갈 수밖에 없다. 아니면 중독의 심각성을 강조하고자 하는 질병 등재 찬성파의 의도 섞인 기준일 수도 있고.
게임 디톡스 사업은 연구 과제를 만드는 측도, 연구 과제를 수행하는 측도 게임 중독이 정확하게 무엇인지도 잘 몰랐던 모습이 적나라하게 보인다. 자기가 뭘 하는지도 모르니 제대로 된 연구가 진행될 리 만무하다. 게임을 잘 모르고 관심도 없는 연구진이 기존 연구에 게임을 슬쩍 얹었다. 떠올린 방법이 채혈이나 안구 전도를 통한 게임 중독 진단이다. 교차 검증도 안 되고 실험군도 적은 데다 유의미한 차이도 확인하기 어려운 결과가 쏟아졌다.
기술 자체를 폄하하는 게 아니다. miRNA 연구는 아직 초기 단계지만 다양한 질병을 확인할 수 있는 수단으로 평가받고 있다. 안구 전도 기술도 마찬가지다. 카메라 없이 눈동자의 움직임을 추적, 사지 마비 환자도 자유롭게 글을 쓸 수 있게 하는 안구 마우스 등 다양한 분야에서 응용하는 기술이다. 문제는 이 기술을 게임 중독과 엮은 방식이다. 내용을 조금만 꼼꼼히 살펴보면 이런 연구를 게임에 얹은 방식이 얼마나 엉망인지 바로 알아볼 수 있다. 비전문가들이 모여 전문가를 자임한 결과는 수년의 시간과 수십억의 예산이다.
게임 중독 연구에 시간과 비용 투입하는 걸 반대하자는 말도 아니다. 중독뿐 아니라 역사, 종류, 전략, 개념 정립이나 성과 분석 등 산업 전반에 대한 다양한 학문적 접근이 필요하다. 급격하게 발전하고 변화한 만큼 제대로 된 연구가 이뤄지면 게임 산업의 미래를 예측하고 영감을 줄 수 있다. 단, 게임 산업을 정확하게 꿰뚫을 수 있는 경험과 역량을 갖춘 사람이 전제되어야 한다. 게임 산업의 과거와 현재의 흐름을 이해하는 사람이 필요하다. 그래야 게임 중독도 원인과 치료를 알코올 중독, 도박 중독과 비슷한 개념으로 접근하는 지금의 방법에서 벗어나 제대로 된 진단과 치료가 가능해진다.
게임 산업은 매해 급격하게 성장하고 있다. 정부에서도 주목하고 있다. 당연히 이해관계가 다양해졌다. 급성장하는 산업에 숟가락을 얹으려는 시도가 많아졌다. 이들은 소위 전문가를 내세워 각자의 의도에 따라 사안을 부풀리거나 왜곡, 은폐한다. 아님 말고 식의 자극적 발언이나 공포 마케팅도 서슴지 않는다. 이익에 도움이 되지 않는 사람들의 열변은 무시한다. 그들은 전문가가 아니니까. 아주 효과적인 전략이다. 아직까지 게임은 건드려서 손해볼 것 없는 만만한 동네북이다. 게임 중독 논란도 그 일부일 뿐이다.
얼마 전 e스포츠산업진흥원이 출범했다는 기사가 나왔다. 참석자들은 게임 전문가라고 보기엔 다소 거리가 있었다. 각 참가자 약력에 기재된 조직도 정확히 어떤 일을 하는지 알기 어려웠다. 심지어 약력을 사칭한 사람도 있었다. 냄새가 난다. 이런 단체가 많아지면 그럴듯한 간판으로 온갖 자극적인 말을 경쟁적으로 내뱉는다. 권위 있어 보이는 집단에서 말하는 그런 말들 말이다. 과연 이들 단체의 목적이 순수하다고 볼 수 있을까. 말이 많아지면 필요한 말을 놓치는 법이다. 누군가는 기우라 하겠지만, 우리는 이미 발작적으로 뱉는 말이 진실을 가리는 모습에 익숙하지 않나. 이것이 진짜 문제다. 숟가락 얹으려고 기웃거리던 사람들에게 밥상까지 뺏기는 일. 누가 밥상 주인인지 모르게 되는 일. 글 / 김강욱(게임 칼럼니스트)
- 피쳐에디터
- 이재현
- 사진
- 영화 [가타카] 스틸컷