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준혁의 은퇴는 화려했다. 동시에, 18년 동안 프로야구를 지탱하던 큰 기둥 하나가 덜컥 빠졌다.
당신에게 연락을 취하려고 삼성 라이온즈에 전화를 했더니 “더 이상 저희 선수가 아니라 다른 쪽으로 연락하셔야 합니다”라고 하는데 기분이 이상했다.
나도 처음엔 좀 낯설었다. 10월 26일, 마지막으로 구단에 인사하면서 다 정리하고 나오는데 덜컥 겁이 좀 났다. 두려움이랄까. 은퇴하고 나면 분명 공허한 마음들이 생길 걸 알았는데도 정작 그 상황이 되니 울컥했다.
삼성에서 연수 보내주기로 하지 않았나?
구단에서 보내주겠다고 얘기는 했다. 그런데 아직까지 확실히 결정된 건 아무것도 없다. 나도 고민하고 있는 상황이고. 12월이 되어야 알 것 같다.
시즌 중 은퇴 발표는 갑작스러웠지만, 한편으로 극적이기도 했다. 올스타전에서 그렇게 보란 듯이 홈런을 날려놓고 은퇴 선언이라니.
나이를 먹으면서 팀이 날 필요로 하지 않는 상황이 오면 깨끗하게 유니폼을 벗겠다고 몇 년 전부터 마음먹고 있었다. 올 시즌 초 벤치에서 거의 한 달간 시합을 못 나갔고, 벤치에 앉아 있는 게 가시방석 같았다. 때가 왔다 싶었고 올스타전 열흘 전쯤 결정했다. 구단에서도 안 말렸다.
안 말려서 섭섭했나?
안 서운했다면 거짓말이다. 그렇지만 어떡하겠나. 구단에선 젊은 선수를 키우려고 하는데. 딴 팀에서 오라고도 했지만 내가 좋아하는 팀에서 은퇴할 수 있는 것도 큰 행복이라고 생각한다.
전반기 동안 주로 벤치에 있었지만, 팬들 사이에선, 삼성이 포스트시즌에 진출한다면 당신이 한 건 해줄 거란 기대가 있었다. 그런 게 베테랑의 몫이기도 하고. 시즌 후에 은퇴하는 것은 생각해보지 않았나?
그건 팬들의 기대감이었고, 실제로 경기를 운영하던 사람들은 생각이 달랐던 것 같다. 나로선 백 번이고 더 뛰고 싶었다. 마지막 한국 시리즈에서 내가 조금이라도 힘을 보태 우승한다면 그것보다 근사한 피날레가 어디 있을까.
김재현 선수를 보면서 많이 부러웠겠다.
정말 많이 부러웠다. 물론 내가 은퇴식은 화려하게 했지만, 마지막으로 큰 경기에서 한번 마음껏 휘두르고 끝내고 싶었는데 그런 기회가 없었다. 원래 포스트시즌 올라가면 엔트리에 등록하기로 했었는데, 감독이 젊은 선수를 키우고 싶어 하니 어쩌겠나. 따라갈 수밖에.
‘올해의 양준혁’을 꼽자면 아무래도 올스타전에서 3점 홈런을 친 순간이다. 그런데 홈런 치고 나서 베이스를 정말 덤덤하게 돌았다. 열흘 전에 은퇴 결정을 했고, 은퇴경기를 제외하고 현역 마지막 경기에서 친 홈런인데. 그것도 대구에서.
보기엔 덤덤해 보였겠지만 마음속으론 울면서 뛰었다. 마지막 타석이었고, 마지막 경기였으니까. 그렇지만 굳이 표내고 싶지 않았다. 감정이나 그런 것들은 어떻게 보면 개인적인 부분이니까. 올스타전이 내 은퇴식도 아니고. 당시 내가 은퇴한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도 선동렬 감독과 김성근 감독밖에 없었다.
은퇴식에선 정말 서럽게 울었다.
진짜 더 이상 그라운드에 설 수 없으니까. 또 팬들이 전전날부터 텐트 치고 줄 서서 입장을 기다리고, 경기장 분위기가 엄청났지 않나. 경기 당일 비도 왔고. 그런 모든 요소가 내 마지막을 함께해준다는 느낌을 받았다. 감동적이었다.
그러고 보니 당신의 아버님도 은퇴식에서 많이 우셨다. 갑자기 은퇴하겠단 얘기를 꺼냈을 때 어떻게 받아들이셨나? 많이 놀라셨을 것 같다.
좀 더 하지 그러냐고 하시기에 그만한다고 했더니 더 이상 별말 없으셨다.
심히 ‘경상도적’이다. 다른 얘긴 없었나?
“그만두겠습니다.” “좀 더 하지 그러냐.” “여기서 그만둘랍니다.” “알았다.” 정말 그게 다였다.
그래도….
고향이 대구라고 하지 않았나? 잘 알 텐데. 아버지와 얘기 많이 안 한다. 사이가 멀어서 그런게 아니고, 진짜 서로를 알아주는 거다. 굳이 뭘 말로 하나. 난 우리 아버지 진심으로 인정하는 게, 아버지가 평생 야구 뒷바라지만 50년 했다. 삼촌부터 사촌형, 그리고 나까지. 나만큼 야구를 사랑하시는 분이다. 항상 표시 안 내고 묵묵하게 도와주셨다. 보통 학부형들은 별나게 하는데 우리 아버진, 나 야구한다, 그러면 야구장에 왔다가 조용히 보고 그대로 집에 가셨다. 그런 분이다. 사실 학부형이 나서서 선수 잘되는 걸 본 적이 없다.
그 은퇴 경기 때 당신이 안타나 홈런을 못 쳐서 다행이란 생각을 했다. 땅볼을 치고 1루까지 전력 질주하는 모습이야말로 진짜 양준혁이지 않나.
진짜 죽기 살기로 뛰었다. 팬들과의 약속을 지키고 싶었다. 마지막으로 1루까지 전력으로 뛰겠다는 약속을 했는데, 지킬 수 있어서 다행이었다.
원래 몇 살까지 하고 싶었나?
정식으로 야구 시작하면서 마흔둘까지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하다 보니 마흔다섯까지는 충분히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은퇴 선언 후 SK에서 당신에게 영입제의를 한 걸로 알고 있다. 옮겨볼 생각은 없었나? 삼성의 프랜차이즈 스타로 남는 것도 좋지만, 당신 말대로 마흔다섯까진 충분히 할 수 있을 것 같은데. 옛날에 해태나 LG에서도 잘하지 않았나.
당시 해태로 갈 때 안 좋게 팀을 나갔다. 만약 내가 SK로 갔다면, 또 똑같은 수순을 반복했을 것이다. 나이 들어 자기가 뛰었던 구단하고 멀어지면 힘들다. 선수 생명은 연장될지라도 은퇴 후에 갈 곳이 없어서 방황하게 된다.
당신 같은 타자조차 그런 걱정을 해야 한다니. 시즌 초 당신이 벤치에 앉아만 있는 게 좀 이해가 안 갔다. 부진해서라기보다, 기회가 아예 주어지지 않는다는 느낌이었다. 작년에 3할 2푼 9리를 친 타자를 벤치에 앉혀둔 건 무슨 의미였을까?
글쎄…. 은퇴시키고 싶었나 보지. 선수는 힘이 없다. 그렇다고 구단에 섭섭하거나 그런 건 아니다. 오해할 수 있으니 이 얘긴 그만하자.
방송 카메라도 당신을 유독 쫓아다녔다. 타격 순서도 아닌데 혼자 덕아웃 앞에서 타격 연습을 하거나, 명단에서 빠진 채 경기를 지켜본다거나 하는 모습. 표정이 유난히 안 좋아 보여 안타까웠다.
시즌 초부터 올해 좀 못하면 은퇴해야 할지도 모른다는 분위기를 감지했다. 연습하고 있어도 신경 안 쓰고, 무시하고 그런 게 반복되다 보니 별로 날 안 쓰고 싶어 하는구나 싶었다. 날 별로 필요로 하지 않는구나. 그래서 불안했다.
그런 상황에선 은퇴라는 선택이 최선의 결정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은퇴 후 마음이 너무 홀가분하다. 출전 못하고 멍하니 그라운드만 보고 있으면 내 맘이 어떻겠나. 팬들, 기자들 눈에도 내 표정이 보이는데. 전반기 마치고 나니 3개월 동안 어떻게 더 그러고 있나 싶었다. 이제 정말 시원하고 편안하다. 결정을 내리고 나니 미련이 안 남더라. 아직도 양준혁이 더 뛰고 싶어 하지 않을까 걱정하는 사람들이 많은데 전혀 그렇지 않았다. 발표하고 나서부터 공은 쳐다보지도 않았다. 후련해서.
마지막으로 ‘선수 양준혁’을 본 건 한국시리즈였다. 엔트리에 포함되지 않은 선수 덕아웃에 들어올 수 없다는 규정에 따라 덕아웃 출입이 금지되었다. 김경문 감독과 달리 원칙을 고수한 김성근 감독에 대한 서운함은 없나?
전혀. 그분은 그분 나름대로 SK 와이번스의 감독으로서 최선을 다한 거다. 어떻게 보면 날 인정해준 것 아닌가? 뛰지도 않는 은퇴한 선수가 그냥 벤치에 앉아 있는 것뿐인데, 내 영향력이나 존재를 인정해 준 거다. 오히려 감사하다. 물론 벤치에 못 들어가서 서러웠다. 내가 야구를 18년이나 했는데, 마지막 시리즈를 버스에서 봤다. 그건 구단에서 엔트리에 넣어 정상적으로 플레이하게끔 만들어줘야지 마지막인데. SK가 잘못한 것 하나도 없다.
하지만 결국 덕아웃에 들어왔다. 퇴장당할 수도 있는 상황이었다. 그렇게 되면 마지막인데, 불명예스럽지 않나.
너무 게임이 쉽게 흘러가니까 퇴장당할 각오로 들어갔다. 차라리 김성근 감독이 어필해줬으면 했다. 분위기 반전이라도 되게. 후배들을 독려하려는 마음이 컸다. 여기서 네 번 지면 팬들이 얼마나 실망하겠나.
삼성은 한국시리즈에서 왜 그렇게 쉽게 무너졌을까?
큰 경기 경험이 없으니까. 구심점 역할을 해줄 사람이 필요했는데, 다들 너무 어렸다. SK는 그런 걸 잘 활용한다. 박재홍이나 김재현 같은 선수들. 김성근 감독은 경기 내적인 부분뿐만 아니라 정말 야구의 모든 면을 세 수, 네 수 앞까지 본다.
항상 김성근 감독과 김응용 감독을 은사로 얘기한다. 그 둘과 야구할 때 가장 즐거웠나?
같이 할 때는 별로 안 행복했다. 두 분 다 워낙…. 그런데 그분들은 선수들을 진심으로 아끼는 마음이 있다. 김응용 감독님은 말씀하실 때마다 욕이 떨어지질 않는다. 그런데 그 속을 들여다보면 선수를 진정으로 사랑하는 마음이 있다. 김성근 감독님과 김응용 감독님 두 분은 선수의 마음을 사는 분들이다. 야구를 가르친다기보다 인생의 멘토랄까. 똑같은 욕을 해도 그게 감정적인 게 아니라 나 잘되라고 하는 게 팍팍 느껴진다.
굉장한 능력이다.
그러니까 그 나이 되도록 하는 거다. 젊은 감독들이 아직 못 따라가지 않나. SK 애들 움직이는 것 좀 봐라. 그게 훈련만 한다고 되는 게 아니다. 자발적으로 죽기 살기로 하도록 만들어서 그렇다. 제자들이 따를 수밖에 없다. 같이 있을 땐 힘들지만 나중에 다 생각난다.
두 감독과도 은퇴를 상의했나?
누구와도 특별히 논해본 적이 없다. 내 운명을 남에게 맡길 정도로 상의하진 않는다. 부모님께도 그냥 결정하고 나서 말씀드렸다. 얘기하면 맘이 약해질 것 같았다.
그 두 사람 같은 지도자가 되고 싶은 게 앞으로의 목표인가?
김성근 감독님같이 선수들의 마음을 움직이는 지도자. 그렇지만 그렇게 스파르타식으로 죽기 살기로 하고 싶진 않다. 그러면 성적은 잘 나오겠지만, 야구 선수들도 삶의 질이 있어야지…. SK 애들 진짜 불쌍하다. 사람이, 가족하고 여행도 한 번씩 가고 그래야 하는데 걔들은 그러질 못한다. 감독님의 철학은 닮고 싶지만, 방법론적으론 그렇게 안 할 거다. 김성근 감독님의 혼이 실린 야구에, 로이스터 감독의 미국식 자유분방함을 혼합시킬 수 있으면 좋겠다. 경기 중엔 정말 혼신의 힘을 다해 플레이하지만 동시에 쇼맨십도 좀 있고, 당당하게 아무도 의식하지 않고 시원하게 플레이할 수 있는 야구. 32년 동안 야구를 해왔지만 아직까지 배울 게 너무 많다. 비유하자면 난 아직 2루까지밖에 못 갔다. 홈에 들어오려면 20~30년은 더 해야 한다.
20~30년이라니 그래서 감독은 언제 하나.
꼭 감독을 하겠다는 말은 아니다. 굳이 감독, 코치를 하고 싶은 맘도 없다. 야구계에는 분명히 남아 있겠지만 좀 더 큰일을 하고 싶다. 유소년 야구나 청소년 야구에 보탬이 되고 싶은 바람도 있다. 내가 늙어 죽어도 야구를 다 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공부도 그렇다지만 야구는 정말 끝이 없다. 선수로서 내가 최다출장 경기며 오래 하고 길게 한 건 거의 다 갖고 있는데 그래도 멀었다. 지금 투수들이 던지는 구질만 15개다. 나 그거 다 못 외우겠다.
당신은 변화구를 잘 치는 걸로 유명했다. 그래도 15개는 좀 버거웠나?
체인지업이나 포크볼같이 떨어지는 변화구는 아무래도 치기 어렵다. 예전엔 포크볼을 김용수, 정명원, 조계현 세 사람밖에 못 던졌다. 지금은 아무나 다 던진다. 못 던지면 살아남을 수가 없는데, 뭐. 국내 프로야구가 일본 프로야구 못지않게 수준이 올라 있기 때문에 선수도 지도자도 계속 공부해야 한다.
은퇴 후 동료들의 폼을 교정해주는 모습을 자주 봤다. 배팅볼도 수시로 던졌고. 후배들 중 기대되는 선수가 있나?
최형우가 많이 좋아질 것 같다. 박석민, 조동찬도 기대된다. 셋 다 재능은 뛰어난데 어느 선 이상 치고 올라가질 못한다. 아직 프로정신이 약한 것 같다. 성적 좀 나오고 남들이 잘한다 잘한다 하니까 스스로 만족하는 거다.
정신력 문제란 건가?
정신적인 부분이다. 내가 겪어봐서 안다. 난 그랬기 때문에 더 큰 선수가 못 됐다. 그런 부분을 승엽이를 보면서 늦게 깨달았다. 승엽이는 홈런 20개 치면 30개 치려고 했고, 30개 치면 40개 치려고 했다. 50개 쳐놓고 또 타격폼을 바꾸기에, “넌 왜 50개 치는 폼을 왜 바꾸냐? 임마 진짜 바보네” 그랬다. 승엽이는 어릴 때부터 나보다 훨씬 더 높은 델 보고 있었던 거다. 자기가 만족할 때까지 폼을 계속 바꾸더라. 결국 56개 치고 신기록 세우지 않았나. 그래야 발전한다. 한 2할 8푼에 홈런 20개쯤 치면 주변에서 잘한다 잘한다 하니까 안주하기 마련인데, 그러면 안 된다.
당신이 본 최고 타자는 이승엽인가?
그렇다고 생각했는데, 요즘 보면 이대호가 더 잘 치는 것 같다. 홈런 40개 때리면서 3할 5푼 치는 건 약점이 없단 얘기다. 승엽이는 홈런은 더 많았지만 그만큼 약점도 많았다. 같은 업계에 있는 사람들이 볼 땐 이대호 기록이 더 대단한 거다. 상품성은 승엽이보다 떨어질지 몰라도, 팀에는 이대호 같은 존재가 더 필요하다.
곧 아시안게임이다. 당신은 이승엽이나 이대호와 달리 국가대표와 큰 인연이 없다. 왜 KBO는 그렇게 당신을 뽑지 않았을까? 군 문제야 진작 해결했지만, 그래도 하고 싶지 않았나?
엄청 하고 싶었다. 그런데 해태 시절 슈퍼게임에 나갔을 때 후배들 선동해서 선수협 만든 이후론 안 불러주더라. 아무래도 우리나라에서 제일 잘 치고 잘 던지는 선수들이 모인 자리에서 뭔가를 선동하는 데 협회가 부담을 가진 것 같다. 나뿐만 아니라 선수협 이끌던 사람들은 거의 선발 안 됐다. 송진우 선배는 좀 특별한 케이스지만 김재현, 마해영, 양준혁은 아예 제쳐놓고 뽑았다. 특히 난 그중에서도 제일 고약했으니.
해외 진출 욕심은 없었나? 지금 김현수에게 쏟아지는 타격 천재라는 둥, 마음만 먹으면 홈런을 40개 칠 거라는 둥 하는 찬사 모두 15년 전에 당신이 듣던 얘기 아닌가.
일단 해외 진출을 제일 먼저 한 게 박찬호니까, 난 시대를 늦게 타고났다. 내가 박찬호 후배였으면 했을지도 모르겠지. 우리 때만 해도 길이 거의 없었다. 이종범은 당시 해태가 어려워서 팔아넘긴 거고. 난 더군다나 삼성에 있었지 않나. 삼성에서 선수 팔아넘기는 거 본 적 있나? 2002년 FA가 되었을 때 선수협 문제 때문에 8개 구단에서 양준혁 데려가지 말라고 담합 비슷한 걸 하기에 급하게 에이전트 시켜서 알아본 적은 있다. 그때 뉴욕 메츠에서 오라고 했다. 내 사사구가 많은 걸 그쪽에서 인정해줬다.
통산 출루율이 4할 2푼이 넘는 걸로 알고 있다.
보통 스카우트할 때 웬만해선 선수를 직접 보는데 메츠에서 내 기록과 비디오만 보고 콜을 해왔다. 사람들이 내 기록 중 제일 가치 있게 여기는 게 뭐냐고 물으면 항상 사사구 많은 거, 살아 나가는 게 중요하다고 얘기하는데 그런 걸 인정해주는 것 같아 좋았다.
그런데 왜 안 나갔나?
당시 난 선수협 때문에 전 구단에 찍혀 있는 상태였다. 나갈 때는 나가겠지만, 돌아오면 아무 데서도 안 받아줄 것 같았다. 겁먹었었다.
이종범 선수와는 친한가? 유일하게 ‘신’이라 불리는 두 사람이다.
별로 안 친하다.
당신과 이종범을 비교하는 기사를 볼 때면 어떤가?
종범이는 모든 걸 다 갖춘 선수다. 수비에 주루까지. 나보다 훨씬 뛰어난 선수라고 생각한다.
진심인가?
전성기 때도 내가 항상 그 친구의 그늘에 많이 가렸었다.
언론에서 두 사람 모두 “내가 낫다”고 말하는 걸 본 적 있는데.
그런 말 한 적 없다. 사실 나도 그 기사를 봤다. 딱 한 매체에서 그렇게 쓴 적이 있다. 그 기자가 원래 소설을 좀 잘 쓰는 분이다. 난 이종범보다 뛰어나다고 얘기해본 적이 단 한 번도 없다.
최근엔 “시즌 끝난 뒤 연예계 진출” 같은 기사도 쏟아졌다. 물론, 믿진 않았다.
기자가 오버한 거다. 클릭수 좀 올려보려고. 11월에 바쁜 건 사실이다. 방송이며 대학 강연도 많고. 토크 위주의 예능 프로그램은 간간히 나간다. 그런데 <세 바퀴>, <뜨거운 형제들> 같이 사람 많고, 좀 콘셉트 강한 예능 프로는 잘 안 나가려고 한다. 토크쇼도 이야기가 내 중심으로 흘러가야 나간다. 여럿 중에 하나 껴서 하는 거면 안 하고.
이를테면 <강심장>?
맞다. 그런 것도 들어온다. 그런데 안 한다.
중심에 서야 직성이 풀리는 성격인가? 아니면 그냥 방송이 어색한 건가?
난 전문 개그맨도 아니고 전문 방송인도 아닌데 그렇게 말 잘하는 사람들이 중간 중간 끼어들면 말 못한다. 방송 보면 알겠지만 한마디 한마디 탁탁 잘라먹고 받아치지 않나. 내 친한 사람들, 날 같이 올려줄 수 있는 사람들이랑 할 때만 나간다. 난 말을 중간에 자르면 ‘말발’이 안 선다.
언론에 대한 거부감 같은 건 없나?
전혀 없다.
선수협 결성 당시 구단 측에서 언론플레이를 많이 하는 바람에 상처를 많이 입었던 걸로 기억한다.
그 당시에는 그런 게 있었다. 그렇다고 당시 상황을 아주 이해 못하는 것도 아니고. 이제 와서 거부감이라고 표현하긴 좀 그렇고…. 그때 좀 섭섭하긴 했다.
참 뒤끝이 없는 사람이란 생각이 든다. 해태에 트레이드되면서 삼성을 떠날 때 유니폼을 벗겠다고 말할 만큼 상처를 입고 떠났지만, 결국 다시 돌아왔다. 언론을 대하는 태도도 그렇고.
실제로 좀 그렇다. 아까도 얘기했지만 구질구질한 것 싫고, 뭘 해도 자존심 지키려고 했고, 뒤끝 없이 남자답게 살려고 하고 있다. 모든 걸 내가 스스로 감당하지 남 탓은 절대 안 한다.
아직 결정된 건 아무것도 없다고 했지만, 다시 현장으로 복귀한다면 삼성으로 돌아오는 건가? 삼성 출신 코칭스태프를 갖는 일은 오랜 삼성 팬들의 간절한 염원 아닌가. 이만수, 양준혁….
그렇다. 팬들의 그런 안타까움을 내 눈으로 봤기 때문에 삼성에서 그만뒀다. 안 그랬으면 딴 팀 갔지. 내가 삼성 유니폼을 입어야 팬들이 날 좋아해주는 거다. 딴 유니폼 입으면 과연 그럴까? 삼성에서 영구 결번까지 됐는데 팬들을 실망시키고 싶지 않다.
- 에디터
- 유지성
- 포토그래퍼
- 장윤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