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성민이 어디로 갈진 그 자신도 모른다. 배구계가 놓아줄 것 같지 않아서다. 월드리그에서 월드스타가 돼 돌아왔지만….
월드리그 끝나자마자 대학배구대회에 나가야 하다니. 잘해서 좋기만 한 건 아니네요.
저번 주에 열흘간 휴가 갔다 온 게 오 년 만에 처음으로 쉰 거예요.
여행이라도 다녀왔어요?
집에 가서 부모님 얼굴 보고 모교에서 운동도 하고.
와, 금의환향이었겠어요. 후배들이 다 우러러봐요? ‘축 월드스타 문성민 모교 방문’같은 건 안 걸려 있었어요?
에이, 그냥 왔나 보다예요.
시간 많은 대학생들이 부럽겠어요.
일학년 때는요 정말로 엄청 부러웠거든요. 근데 지금은요, 적응이 돼가지고요, 그냥 그런가 보다 해요.
대학생이라 그런지 생각하는 게 참 순박하네요. 프로에 가서 본격적으로 음주가무를 배우면 달라지겠지만.
술 먹는 걸 별로 안 좋아해요.
월드리그에서 세계적인 선수들과 맞붙어보니 어때요? 별거 아니죠?
아니요. 그거보다는, 신장이나 체격, 힘, 점프, 탄력 이런 게 확실히 차이가 나는구나, 란 느낌을 받았어요. 이번에 3대2로 진 게임이 많았으니까 조금만 더 보완하면 3대2로 이길 수 있겠단 생각도 했고.
개인적으론 세계배구의 흐름에 어느 정도 따라가고 있는 걸로 봤는데요.
비슷하게 하려고는 하는데 아직 플레이가 전체적으로 느린 것 같아요. 일본은 벌써 그걸 따라갔는데 저희는 이제 막, 뭐랄까 늦은 감이 있어요. 좀 다듬는다면 나아지지 않을까….
이번 경기들을 통해 확실히 느낀 건, 정점까지 올라가 내려찍는 공격이 줄었단 거예요. 대부분 빠르고 낮게 공격하다 보니 블로킹 타이밍을 잡기가 더 어려워졌고요.
토스가 낮게 올라오니까 전체적으로 흐름이 빨라요. 정신이 없어요. 다들 그렇게 플레이 하는데 저희는 아직 빠르지가 않아요.
월드스타란 말 별로 안 좋아하지만, 이 말에 대한 가장 명백한 증거는 당신에게 상대팀 선수들의 신경을 마구 긁어놓을 만한 스피드가 있다는 거죠.
옛날에는 키만 크면 됐을지 모르지만, 요즘은 스피드도 있어야 하고 기교도 있어야 하고 힘도 있어야 돼요. 배구 추세를 보면 그중에서도 스피드가 제일 중요한 것 같은데, 그 흐름이 저랑 잘 어울리는 것 같아요.
혼자 그렇게 잘했지만, 경기는 대부분 졌죠.
제가 성공 못 시킨 게 많아서 졌어요. 주공격수기 때문에 마지막 세트에는 80~90% 정도 저한테 공이 올라오거든요.
대체로 당신은 잘했어요.
잘했다면 이겼겠죠.
혼자 잘한다고 되나요.
그렇긴 하지만….
전체적으로 조금씩만 더 받쳐줬으면 하는 아쉬움이 남아요.
경험도 부족하고, 리시브가 불안했던 것도 문제였고. 그래도 (여)오현이 형이 혼자 여러 명 커버하느라 힘들었을 거예요.
아, 반사신경이 놀랄 만큼 뛰어난데 표정까지 밝았던 그 리베로 말이죠?
저한테 공이 오면 제가 받아야 하잖아요. 근데 좀 약하게 온다 싶으면 오현이 형이 다 받아줬어요. 저는 공격에 집중할 수 있었지만 형은 정말 정신 없었을 거예요.
그 리베로야말로 세계 레벨이에요.
세계 최고죠. 제가 봐도 정말 잘해요. 그리고 파이팅이 좋아서 항상 힘이 돼요. 감독님처럼 든든하다고 할까.
김요한은 어때요? 이제 비교당하는 거 지겹죠.
언론에서 자꾸 비교한 게 약이 돼서 더 열심히 한 것 같아요. 형네 학교랑 붙으면 저희가 질 때가 많았으니까.
둘이 별로 안 친해 보여요.
예전엔 언론에서 하도 라이벌 라이벌 해가지고요, 멀어졌었는데요, 지금은 많이 가까워졌어요. 그땐 친해지고 싶어도 그럴 수가 없었어요. 시합에서 지면, 저도 자존심이 상하잖아요.
당신이 국가대표 감독이고 문성민과 김요한 둘 중에 꼭 한 명만 뽑아야 한다면 누굴 뽑겠어요?
요한이 형. 제가 잘하는 걸 요한이 형이 못할 수도 있고 요한이 형이 잘하는 걸 제가 못할 수도 있어요. 형은 높은 데서 때리는 스타일이고 저는 스피드를 이용하는 편이고.
국가대표팀의 주공격수는 문성민이에요.
제가 포지션이 원래는 레프튼데 잠깐 라이트로 가 있잖아요. 그러다 보니 저한테 볼이 많이 올라오는 거예요.
지금 대한민국의 에이스는 누구라고 생각해요?
(이)경수 형이요.
당신이 아니고요?
전체적으로 보면 경수 형이 나아요. 전 수비가 너무 안 좋아요. 블로킹도 잘 하는 편이 아니고. 서브와 공격에만 자신이 있어요. 그리고 경수 형 대학교 때 엄청 잘했어요. 시합을 보러 갔었는데 마지막 5세트에서 혼자 13개를 때리더라고요. 그 경기를 한양대가 15 대 13으로 이겼어요. 다들 경수 형이 때릴 걸 알았는데 아무도 못 잡았어요.
우리 선수들이 대부분 젊으니까 다음엔 더 잘할까요? 해설위원이 된 김세진은 방송에서 그렇게 얘기하던데요.
월드리그 삼 년째 나간 거거든요. 처음엔 정신이 없었어요. 키 큰 애들이 점프만 하면 막 때려 대니까. 이 년째 나갔을 땐 몇 번 괜찮은 플레이를 했던 것 같고, 이번엔 확실히 실력 발휘를 할 수 있었어요. 경기 흐름도 알고 여유도 조금은 생기니까.
리시브가 약하다고 했는데, 러시아랑 붙은 경기를 보니 대책이 없겠던데요. 그렇게 세게 들어오는 서브를 안정적으로 받는다는 게 말이 돼요?
한국에는 강하게 때리는 선수가 없잖아요. 많이 받아 보면 받을 수도 있겠는데. 경험의 차이인 것 같아요. 다른 나라의 리시브 잘하는 선수들하고 비교하면 저희가 특별히 리시브를 못하는 건 아니거든요.
그렇기 때문에 당신이 해외에 진출해야 하는 거예요.
예….
계약은 잘 진행되고 있어요?
저요?
그럼 누구겠어요.
저는 모르는 일이에요. 그냥 운동만 하고 있어요.
그럼 당신은 모르고, 부모님이 알아서 진행한 건가요?
며칠 전에 집에 갔다 왔잖아요. 그런 말씀 안 하셨는데. 부모님이 저랑 얘기도 없이 결정할 일도 아니고.
그래서 기회가 오면 가겠단 거예요, 남겠단 거예요?
들은 얘기가 없어서 잘 모르겠어요.
당신이 해외에 진출하면 경기대학교는 지원금 1억5천만 원을 포기해야 해요. 선수 개인의 의사와 상관없이 드래프트에 참가해야 하고, 이를 어기면 향후 오 년 동안 국내에서 뛸 수 없다는 게 말이 된다고 생각하나요?
프로팀에 있는 형들 중에선 나가고 싶은 형들도 있고 정말 제의를 받은 형들도 많을 텐데요, 그게 다 놓아주질 않아서 못 가는 거예요. 야구나 축구 같은 종목은 잘 나가는 데 배구만 그러니까 좀….
이경석 감독님은 뭐라고 해요? 간다고 하면 보내주실 것 같아요?
네. 보내주시지 않을까요. 에휴, 복잡해요. 지금은 뭐라고 말씀해 드릴 수가 없어요.
날씨 참 좋네요. 방학 때도 늘 학교에 있어요. 밖엔 안 나가요?
주말에만 외박이 돼요.
빨리 대학 졸업하고 싶겠어요.
어차피 4학년이잖아요. 뭐라 하는 사람 없어서 편해요.
후배들이 유니폼도 빨아주고요?
네. 청소도 해주고 아침에 깨워도 주고.
당신 일학년 때랑 비교하면 빨래는 어느 쪽이 더 잘하는 것 같아요?
지금 애들 하는 것 보면 맘에 안 들어요.
기합도 많이 빠졌어요?
오냐오냐 자라서 그런지 개념 없는 애들이 많아요.
문성민은 개념이 있는 요즘 애고요?
전 뭐 튀지도 않고 조용히….
월드리그 갔다 오니까 후배들이 뭐래요?
이름이 기억 안 나는데, 러시아의 그 선수 잘 하냐고.
뭐라고 대답해줬어요?
잘한다.
원래 그렇게 무뚝뚝해요.
제가 부산 출신이다 보니.
부산을 욕되게 하지 마세요.
처음엔 낯을 좀 가려요. 그런데 친해지면 가진 걸 다 보여줘요.
화끈한 부산 남자네요. 어쩐지 스파이크도 시원시원하더라니.
- 에디터
- 이우성
- 포토그래퍼
- 한종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