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자기를 코치로 뽑았냐고 홍명보 감독에게 묻지 않았다. 스스로 충만한 사람에게 다른 사람의 ‘이유’는 중요하지 않았다.
신의손
부득이하게 헤어, 메이크업과 인터뷰를 함께 진행해야겠다. 상관없다. 하지만 보다시피 머리카락은 없다.
‘신의손’이란 이름이 상징인 것과 같은 의미다. 알았다.
‘신의 손’은 이제 축구가 아닌 다른 곳에 쓸 일이 더 많겠다. 오히려 선수 때보다 훈련이 많아서 그렇지도 않다.
평생 훈련만 하면서 살 셈인가. 뭘 그렇게 열심히 하나. 이미 선수일 때 엄청나게 훈련했기 때문에 나 역시 코치가 되면 좀 다를 거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적어도 경남 FC 코치로 있을 땐 그 정도까지는 아니었는데, 겸직을 하게 돼서 그렇다.
남자 청소년 대표 팀과 여자 실업축구 팀인 대교 캥거루스, 양쪽 스케줄 조율하는 것도 힘들 것 같고, 물리적으로도 힘들 것 같다. 힘들고 어려운 점은 없나. 아무래도 여자와 남자의 차이가 있어서, 양쪽을 다 잘하려면 균형 감각이 필요하다. 초반에는 그런 점들 때문에 좀 힘들었다. 하지만 이제는 경험이 꽤 쌓여서 아무런 문제없이 잘하고 있다. 휴식시간이 줄어들었다는 점은 확실하게 느끼고 있지만.
대안을 찾지 않고 겸직을 부탁한 건 당신이 꼭 필요한 사람이었다는 건데, 홍명보 감독에게 제안 받았을 때는 어떤 느낌이었나? 기대한 적이 없었다. 전혀 뜻밖이었다. 한국 대표팀은 전담 지도자 팀으로 구성되는데, 내가 거기에 끼는 건 구조적으로 힘들거라고 예전부터 생각했다. 처음 나를 초대했다는 말을 듣고도, 그게 한국에서 현실적으로 가능한 일인가 하는 의심이 먼저 들었다. 아무래도 나 이전에 비슷한 예가 한 번도 없었기 때문에.
홍명보 감독과 현역 때 아무런 인연이 없었나? 인연이라면 포항 대 일화의 경기에서 맞붙은, 적군으로서의 인연이 전부다. 개인적인 관계는 한 번도 없었다. 올스타 경기 때 만나서 안녕하세요, 하고 인사한 정도?
커피 한 잔 마신 적도 없다고? 그래서 놀랐다. 한국은 감독이 팀을 구성할 때 사적인 관계를 중요시한다고 알고 있었는데, 날 불렀으니 말이다.
그건 오로지 경기력만 가지고 평가해서 뽑은 코치가 당신임을 말해주는 것 아닌가. 어깨에 힘 좀 들어가도 괜찮겠다. 홍명보 감독의 꿍꿍이는 뭐였다고 생각하나? 나는 정확히 모르겠다. 그가 알겠지. 갑자기 전화 와서 파주에서 합숙하니까 오늘 좀 와봐라, 해서 오전에 대교 캥거루스 훈련한 뒤 샤워하고 밥 먹고 바로 갔다. 가서도 별말 없었다. 악수하고 인사하고 일합시다, 그게 끝이었다.
말 안 한다고 안 물어보나? 밥 먹으라고 안 하면 밥도 안 먹을건가. 왜 불렀습니까 묻지도 않았고, 왜 불렀다 말해주지도 않았다.
나를 인정해주는 사람이 왜 날 인정하는 건지 궁금하지 않았나? 말했듯이, 일부터 먼저 했다. 그리고 시간이 지나면서, 합숙도 여러 번 하고 개인적으로 친해지고 나서야 그 얘기를 할 기회가 왔다. 그제야 남자 청소년 대표 골키퍼들이 기존 한국의 방식으로 훈련받지 않았으면 좋겠어서 당신을 부른 거라고 말해주었다.
그래도 어떤 검증 과정 없이 그렇게 발탁했다는 건 단번에 이해가 가지 않는다. 당신이 어떻게 뛰었는지 잘 아니까, 그냥 당신이 뛰던 대로 가르쳐달라고 말했다. 관습적인 한국 식의 골키퍼 훈련을 타파하고 싶어 했다.
한국의 골키퍼 코치와 신의손 코치 사이에 어떤 중대한 차이점이 있는 것일까? 어떤 점이 다르냐고 직설적으로 물어본다면, 일단 나는 보다 효과적으로 훈련시킨다고 대답하겠다. 누구나 효과적으로 가르친다고 생각하겠지만, 내 생각에 게임 상황에 가장 적합한 훈련이 가장 효과적인 훈련이고, 내가 그렇게 가르치고 있다고 본다. 훈련을 위한 훈련은 게임하고 동떨어지기 십상이다.
구체적으로 예를 든다면? 훈련은 게임에 있는 요소들을 떼어온 것뿐이다. 그건 그 요소들을 게임에 원위치시켜도 똑같을 수 있게 만든다는 의미다. 예를 들면, 다이빙 훈련 1백 개, 이렇게 시키는 건 그다지 효과가 없다. 체력이 다 떨어져서 1백 개를 채우느니 열 개를 하더라도 정확하게 연습해야 한다. 그런데 한국에서는 다이빙 1백 번, 이렇게 시킨다는 점이 다르다.
당신이 남자 청소년 대표 팀과 같은 나이에 러시아에서 그렇게 교육 받았나? 그때와는 축구를 대하는 태도가 다르고, 골키퍼 코치도 별로 없었다. 선배들 하는 것과 다른 애들이 어떻게 하는지 보고 배울 뿐이었다.
스스로의 경험으로 정립한 골키퍼 훈련 방식이란 건가? 기본기 배양은 스스로 해야 한다. 그리고 기본기는 그때나 지금이나 큰 차이가 없다.
신의손 코치는 그때 어떤 청년이었나? 하도 오래돼서 뭐라고 말하기 힘들다. 딱 하나 생각나는 건, 나는 내 일을 너무나 사랑했다는 거다. 그때 내 인생에서 필요한 건, 공 그리고 공을 찰 수 있는 공간 말고는 없었다.
여자 친구고 돈이고 간에? 그때는 그랬다. 축구가 너무나 좋았기 때문에 내 훈련 시간마다 온 정성을 쏟아 부어서 훈련에 임했다. 그때는 몰랐는데, 지나고 생각해보니까 내가 내 일을 참 좋아했구나, 사랑했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
당신의 청소년기와 비교하면 지금 남자 청소년 축구대표 팀 친구들은 어떤가? 열정은 비교하기 어렵다. 다만 솔직하게 얘기해서 내가 그 나이 때 못했던 걸 이 친구들은 하고 있다. 내가 열여덟 살부터 프로 팀에서 뛰었는데도 그렇다.
재능이 전부는 아니지 않은가? 재능이든 환경이든 모든 면에서 이 친구들이 좋은 위치에 있다. 하지만 지금의 위치가 이들의 미래를 보장해줄 수 있는 건 아니다. 앞으로 해나가야 할 일이 많다. 그저 지금 상황이 그렇다는 것뿐이다. 현재에 만족하고 만다면, 지금이 이 친구들 인생의 마지막 황금기가 될 거다.
약주고 병주고 하는 것 같다. 물론 재능이 있는 건 없는 것보다 낫다. 하지만 이런 큰 재능을
가진 친구들에게 필요한 건 열정과 연습과 경험을 잘 결합시키는 것이지 재능만이 아니다. 잘 결합만 된다면, 미래에는 좋은 결과라 부를 만한 일이 있을 거다. 재능 있는 친구들은 벌써 숱하게 봐왔지만, 꽃피운 친구들보다는 그렇지 못한 친구들이 훨씬 더 많았다. 재능은 20퍼센트 정도밖에 안 된다고 생각한다.
지금 그 재능 있는 친구들에게 느끼는 책임감은 어떤 종류인가? 코치의 삶이란, 내가 잘하느냐 못하느냐의 문제가 아니라 가르침 받는 친구들이 어떤 결과를 내느냐, 어떻게 발전해 나갈 수 있는가, 하는 문제다.
메이크업이 끝났고, 인터뷰도 끝났다. 헤어가 없어서 좋은 점도 있다.
긍정적인 당신에게 한 가지만 더 물어보자. 이집트 세계 남자 청소년 축구대회에서의 가능성은 어느 정도라고 보나? 전망 말인가? 이겨야지. 이기는 것밖에 없지. 이기지 못하면 찬스가 없지.
- 에디터
- 패션 에디터 / 박나나, 박태일, 문성원, 정우영
- 포토그래퍼
- 김보성
- 브랜드
- 에르메네질도 제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