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주현이란 이름이 떠올랐다. 박주현의 얼굴을 자꾸 떠올리게 됐다.
그래서 <인간수업>의 규리와 지수는 어떻게 됐을까요? 열린 결말로 끝났지만 둘은 결코 행복하지 못할 거예요. 많은 사람에게 상처를 줬고, 잘못을 뉘우치거나 죗값을 치른다 해도 없던 일이 될 수 없어요. 평생 마음의 짐으로 남겠죠.
시즌 2의 가능성도 열려 있나요? 저도 궁금해요. 누구 한 명이 하고 싶다고 해서 작품이 제작되는 건 아니니까요.
<인간수업>은 넷플릭스에서 전편이 한 번에 공개됐는데, 어떤 상황에서 어떻게 봤어요? 홍보 인터뷰를 하러 가는 길에 공개되어 기대도 되고 걱정도 됐어요. 다들 보고 있을 텐데, 정작 저는 확인하지 못하고 있으니까. 일정을 마치고 집으로 가는 길에 보기 시작했어요. 5편을 연달아 보고, 잠깐 쉬었다가 정주행했어요. 떨면서 봤어요.
지금까지 몇 번이나 봤나요? 5~6번 정도요. 처음 한두 번은 제 연기 위주로, 그다음에는 모니터링하듯 봤어요. 그리고 시청자 입장에서 다시 보려고 했지만 쉽지 않더라고요. 다섯 번째 정도 되어서야 마음 편하게 본 것 같아요.
<인간수업> 하면 제일 먼저 떠오르는 감정은 뭔가요? 엄청 벅차요. 데뷔작인 데다 주인공을 맡으면서 처음에는 부담스럽기도 했지만 규리라는 캐릭터를 만들어갈 시간이 벅차고 설렜거든요. 저한테는 의미가 큰 작품이라 지금 같은 인기를 얻지 못했더라도 사랑스러웠을 거예요.
마음에 특별히 남았거나 배우로서 한 발짝 더 나아갔다고 생각되는 장면이 있을까요? 규리가 다친 지수를 부축해서 데리고 나가는 마지막 장면요. 촬영 당일 제대로 더위를 먹었거든요. 작년 중 가장 더운 날인 데다 조명을 켜둔 상태로 오래 찍었어요. 운동 신경이 좋고 체력은 어디 가도 빠지지 않거든요. <인간수업>을 찍는 동안 유일하게 그날 100퍼센트 컨디션이 아니었어요. 촬영을 미룰까 논의도 했지만 그러고 싶지 않더라고요. 배우로서의 책임감도 있고 아름답게 마무리하고 싶은 마음에 어떻게든 해냈던 것 같아요.
원하는 대로 잘 나왔나요? 그런 것 같아요. 처음에는 눈을 가리고 제대로 못 봤어요. 아쉬움이 남아서. 하지만 컨디션이 안 좋다고 해서 대충 연기하진 않았다는 걸 저는 알잖아요. 최선을 다했으니 괜찮다는 생각으로 다시 봤어요.
여전히 작품의 여운이나 미련을 느끼나요? 그런 게 길게 남을 줄 알았는데 마지막 촬영이 끝나는 순간 싹 사라졌어요. 모두 쏟아 부었더니 오히려 후련한 느낌? 워낙 털털한 성격이기도 해요.
극 중 규리는 자신을 포장하거나 위기를 모면하기 위해 감정을 곧잘 컨트롤해요. 본인은 어떤가요? 감정 표출에는 자신 있지만 감정을 잘 숨기진 못해요. 본심을 숨겨야 하는 규리를 연기하면서 그 부분이 어려웠어요. 저는 행복하면 엄청 티가 나요. 입꼬리가 자꾸 실룩거리거든요. 눈물도 많은 편이에요. 어릴 때 누가 놀리거나 툭 건드리면 바로 눈물부터 났어요. 그게 부끄러워서 <7번방의 선물>, <하모니> 같은 영화를 보면서 일부러 눈물을 참는 연습을 하기도 했어요.
듣는 순간 마음이 흔들리게 만드는 단어는 뭔가요? 가족이란 말이 저를 울리는 버튼이에요. 입 밖으로 꺼내면서도, 들을 때도 울컥해요. 부산에서 살다가 서울로 대학을 오면서 가족과 떨어져 산 지 7년쯤 됐어요. 늘 그리운 존재이자 원동력이기도 해요.
연기를 하고 싶다는 꿈은 언제, 어떻게 갖게 됐나요? 원래 예체능에 끼가 있었어요. 아버지가 체대 출신이시고, 어머니가 무용을 잠깐 하셨어요. 할머니도 음악을 하셨고요. 그 영향인지 모르지만 음악, 악기, 운동을 좋아했고 특히 노래에 관심이 많았어요. 가수가 될 수 있는 기회도 있었지만, 그저 노래가 순수하게 좋았죠. 꽂히는 게 생기면 깊게 파고드는 편이거든요. 노래를 잘하고 싶었는데 연기를 배우면 도움이 될 거라는 조언을 들었어요. 그렇게 해서 연기를 막상 해보니까 재미있고 잘할 수 있을 것 같다는 자신감이 막연하게 생겼어요. 그래서 고3 때 진로를 결정했어요.
<인간수업>을 통해 단박에 시선을 사로잡았어요. 배우로서 특별한 점이 있다는 의미인데, 뭐라고 생각해요? 목소리인 것 같아요. 외모와는 다르게 좀 허스키해요. 예상치 못한 반전을 줄 수 있어 경쟁력이라고 생각하는데 예전에는 목소리 때문에 오디션에서 많이 떨어졌어요. 프로필 사진이나 제가 나온 광고를 보고 매우 여성스러울 줄 알았다는 얘기를 많이 들었어요. <인간수업>의 규리가 제 목소리와 잘 맞았던 거죠.
노래를 들어본 적 없지만 매력적인 음색일 것 같아요. 맞아요. 노래를 좋아하게 된 것도 목소리 때문이에요. 어디까지나 제 생각이지만 노래를 부르면 다양한 느낌을 낼 수 있을 것 같았어요.
보컬을 하기도 했죠? 고등학교에서 밴드부를 결성하기도 했다는 이야기를 들었어요. 음악이 너무 좋은 나머지 고등학교 밴드부를 창설했어요. 오디션을 보고 멤버들을 하나하나 영입했죠. 악기를 잘 다루지 못하는 친구들은 붙잡고 가르쳤어요. 선생님들이 그렇게까지 할 필요가 있냐고 하실 정도로 열심히 했어요.
밴드 이름은 뭐였어요? ‘인 더 클럽 In The Club’. 투애니원의 노래 제목이기도 해요. 밴드부가 가장 처음 리메이크한 곡이거든요. 지금 생각해도 밴드 이름으로 괜찮은 것 같아요.
박주현이 어떤 사람인지 어렴풋이 알 것 같네요. 별명이? 독불장군. 하하. 저를 잘 아는 친구들은 그렇게 불러요. 스무 살 전까지만 해도 철없고 자유분방하고 뭐든 하고 싶으면 했고, 싫으면 안 했어요. 현재만 사는 사람 같았죠. 그러다 인생에서 처음으로 뭔가를 진지하게 결정한 게 바로 연기예요. 어쩔 수 없이 포기해야 하는 것들이 있지만 큰 고민 없이 받아들였어요. 그땐 순수했기 때문에 가능했던 것 같아요.
지금은 그때와 다른 사람일 수도 있다는 말처럼 들리네요. 여전히 털털하고 솔직해요. 호불호가 나뉠 수 있지만 이 일을 하기 위해 성격을 바꿔야 한다는 생각은 없어요. 박주현이 배우라는 직업을 선택했지, 저를 포기하고 싶지는 않아요. 다만 이런 변화는 어쩔 수 없더라고요. 저는 잘 못 느끼지만 작품을 끝내고 나면 주위에서 말투나 행동이 성숙해졌다는 얘기를 해요. 앞으로 어떻게 될지 모르지만 중심을 잘 잡고 나아가야겠죠.
자존감이 높은가 봐요. 다른 사람에게 피해를 주지 않는 선에서 자유로웠으면 좋겠어요. 대학교 2학년을 마치고 배우라는 직업에 대해 치열하게 고민하면서 마음이 가지 않는 건 하지 말자는 원칙을 세웠어요. 그래야 연기를 사랑하며 오래 할 수 있을 것 같아요.
초심을 잃지 않거나 본래 모습을 지키기 위해 특별히 하는 게 있나요? 일기를 꾸준히 쓰는 이유가 바로 그 때문이에요. 일기를 자주 꺼내 보는데, 현재의 내가 과거의 나를 만나면 순수해질 수밖에 없어요. 사회생활을 하면서 유치하게 느껴지거나 무뎌지는 감정이 다시 되살아나기도 해요. 또 연기를 시작하고 대사 한 줄, 장면 하나가 간절했던 시절에 썼던 일기를 보면 최선을 다하게 돼요.
처음 만났지만 멋진 사람이라는 확신이 들어요. 자신은 어떤 사람이 멋지다고 생각해요? 자기 일을 사랑하며 즐기는 사람요. 그렇게 되려고 노력 중이고, 그런 사람이 이상형이기도 해요.
박주현은 누구의 팬인가요? 베네딕트 컴버배치와 김혜자 선생님. 베네딕트 컴버배치는 캐릭터에 자기만의 매력을 입히는 게 대단해요. 오직 그만이 할 수 있는 연기죠. 김혜자 선생님은 오래 연기를 하셨지만 항상 발전하고 다른 모습을 보여주신다는 게 신기하고 존경스러워요. 음악 쪽으로는 DPR 크루를 진짜 좋아해요. 음악성도 부럽고 음악을 즐기면서 하는 게 느껴져요.
넷플릭스에서 즐겨 보는 리스트는 뭔가요? <블랙 미러>, <나르코스> 그리고 액션, 서스펜스 스릴러, 공포물. 화끈하고 시원한 장르를 즐겨 봐요.
나중에 이 인터뷰를 보게 될 미래의 박주현에게 전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을까요? 봉사 활동과 적은 금액이지만 기부를 꾸준히 해오고 있거든요. 아무리 바쁘고 힘들더라도 그것만큼은 잊지 않았으면 해요. 그리고 이 말은 꼭 해주고 싶어요. 마음이 가지 않는 건 하지 말자는 원칙을 지키길 바라지만, 너답지 못한 선택을 해야 하는 상황이 생기더라도 너만은 네 편이 되어 너를 사랑해주면 좋겠다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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