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태풍이 팀을 옮기자, KBL 지형도가 거꾸로 바뀌었다. 이름 참 잘 지었다.
새 소속팀 오리온스가 무려 6년 만에 플레이오프 진출을 노리고 있다. 역시 전태풍 효과인가? 처음 오리온스 들어올 때 목표는 우승이었다. 지금은 일단 6강에만 들면 맘이 편할 것 같다.
당신답지 않은 말이다. KCC에서 첫해 준우승했을 때도 “너무 화가 난다”고 했는데. KCC랑은 차이가 크다. KCC엔 베테랑 선수가 많았다. 분위기가 안 좋아도 시합 뛸 때 집중하면 이길 수 있었다. 그런데 오리온스는 젊은 선수가 많은데다, 6년 동안 플레이오프에 못 올라갔다. 회사나 구단 분위기가 조금씩, 조금씩 바뀌어야 한다. 스텝 바이 스텝.
오리온스는 주전만 놓고 보면 화려하다. 최진수, 김동욱, 윌리엄스. 벤치 멤버가 좀 아쉽나? 구단에서 벤치 멤버들의 자신감을 키워줘야 한다. 연습할 때 일대일을 시키는 것도 방법이다. 혼자 두면 안 된다. 다 실력 있는 선수들이다. 연습 엄청 하는데 시합을 자주 못 뛰어서 아쉽다.
역시 추일승 감독은 주전 선수들을 믿고 가는 쪽인가? 스타팅 멤버들, 그리고 핵심 백업 멤버 몇 명 빼고는 잘 안 믿으신다. 그래서 벤치 멤버들이 자신감이 없다.
고참으로서 어필을 해보는 건 어떤가? 조금 했다. 많이 하면 감독님 좀 삐칠 거다. 하하.
오리온스에선 통역 쓰나? KCC에선 자주 못 쓰게 한 걸로 알고 있다. 일부러 안 쓴다. 통역 쓰면 한국말 실력이 더 떨어질 거다. 또 난 한국 국적이고, 한국 사람처럼 살고 싶은데, 통역 쓰면 ‘내가 아직 한국 사람이 아닌가’ 싶은 맘이 들기도 한다. 계속 한국말로만 하고 싶다.
어쨌든 포인트가드니까, 코트에 들어가면 지휘자의 역할을 해야 한다. 그거랑은 다르다. 한국말을 잘 못하니까 라커룸 안에선 얘기를 많이 안 한다. 근데 시합 뛸 땐 얘기 많이 한다.
인터뷰는 어떤가? 좋다. 한국 선수들은 원하는 걸 얘기 못한다. 인터뷰 때 그나마 할 수 있다.
이렇게 말할 수 있는 게 몇 명 안 된다. 위계질서가 확실하니, 주로 빤한 이야기가 많다. “우리 감독님 좋고요”, “나머지 선수들 좋고요.” 이런 거 재미없다. 그럴 거면 인터뷰 왜 해. 다 로봇 같다. 난 이렇게 말해도 혼혈이라서 좀 다르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
대학 시절엔 어땠나? 스테판 마버리, 크리스 보쉬의 모교인 조지아 테크에서 4년간 주전 포인트가드로 뛰었다. 오우, 완전히 말 많았다. 시합 뛸 때도 그렇고 라커룸에서도 그렇고.
고교 시절 조지아 주의 ‘미스터 바스켓볼’로 선정될 정도로 유망주였는데, NBA 진출엔 실패했다. 너무 속상했다. 솔직히 깜짝 놀랐다. 유럽에서 뛰면서도 이건 아니라는 기분이 들었다. 돈은 잘 벌었지만 계속 실패란 생각이 들었다. 대학교 때 구단들이 “아, 넌 2라운드 중반이나 후반에 뽑으면 돼” 이렇게 얘기했었다. 그런데 갑자기 안 뽑았다. NBA 구단이나 선수들이랑 자주 소통했어야 되는데, 너무 안 했던 것 같다. 확실히 NBA 갈 줄 알았으니까.
NBA 선수 중 질투나는 선수가 있나? “내가 쟤보단 잘하는 것 같은데” 싶은. 하하. 벤치 멤버 가드 전부 다. NBA 팀엔 포인트가드가 보통 세 명 있다. 그런데 두 번째, 세 번째 포인트가드 보면 막 짜증난다. “아 쟤는, 아 얘는 뭐야 이거.”
제일 좋아하는 선수는 지금도 크리스 폴? 크리스 폴, 스티브 내쉬, 그전엔 앨런 아이버슨, 앨런 아이버슨 전엔 아이재이아 토마스. 작고 수비 잘 뚫는 가드 중심의 쇼타임 농구를 좋아한다.
아무래도 허재 감독이 좀 그립나? 우리 허재 감독님 좀 보고 싶다. 처음 KCC 올 때만 해도 허재 감독 스타일을 몰랐다. 욕도 많이 하고, 눈으로 레이저도 막 쏴서 기분 나빴다. 그런데 뒤에선 “야, 너 하고 싶은 대로 해. 제치면 3점 슛 그냥 쏴” 그렇게 말해줬다. 대신 다른 사람 앞에서는 팀을 컨트롤해야 하니까 “야, 너 자꾸 이렇게 할 거야?” 그러고.
술도 같이 좀 마셨나? 소주 네 병까지 마신다고 들었다. 조금, 조금. 이젠 많이 마시면 필름 꺼진다. 하하. 요즘 사우나를 엄청 많이 간다. 경기 끝나면 바로 가야 된다. 안 가면 아프다.
야투율이 작년에 비해 5퍼센트 이상 떨어졌다. 야투율은 체력과 긴밀한 관계가 있는데. 몸의 문제가 아니라 머리의 문제다. 난 좀 프리 스타일이다. 속공하고 싶으면 치고 나가고, 3점 쏘고 싶으면 3점 쏘고. 그런데 오리온스는 좀 더 꽉 짜인 팀이다. 자연스럽게 몸이 가는 대로 해야 하는데, 이번 시즌엔 생각을 많이 하다 보니 그런 것 같다.
때 아닌 지역방어의 전성시대에, 3초 룰도 없어졌다. 빠른 가드에겐 악조건 중의 악조건이다. 답답하다. 한 명 뚫어도 또 수비가 나온다. 대표팀 때문에 이렇게 하는 것 같다. 다른 나라엔 3초 룰이 없으니까. 그렇지만 스포츠는 엔터테인먼트다. 재미있는 경기를 보여줘야 한다.
대표팀에 뽑히고 싶어서 귀화했는데, 한 번도 안 뽑혔다. 2010년엔 이승준, 2011년엔 문태종…. 아직 기회가 있다고 생각하나? 되게, 되게 하고 싶었는데 이제는 별 느낌이 없다. 꼴등 아니라는 거에 만족한다. 이승준, 문태종, 그 다음. 꼴등 아니다.
하필 대표팀에 빅맨이 너무 귀할 때였다.
빅맨이 없긴 했다. 그런데 빅맨이 있다고 우리 팀이 이기는 것도 아니다. 그러면 좀 바꿔볼 수 있지 않나? 좀 잘 제치는 가드, 패스 잘하는 가드로..
좀 더 빨리 한국에 올 생각은 안 했나?
했다. 스물네 살 때부터 KBL에 계속 연락했다. 그리고 라스베이거스에서 용병 캠프 있을 때마다 매년 갔다. 그런데 KBL 커미셔너가 매년 “아직 안 될 거야, 지금 안 될 거야” 그랬다. 4년 동안 계속 갔다. 사람 만나고, 얘기하고….
20대의 전태풍의 경기 방식은 지금과 많이 달랐나? 오우, 완전히! 훨씬 더 재미있었다. 개인기가 좋았고, 대신 리딩은 잘 안 했다. 다른 선수들 생각 안하고 혼자 했다. 하하.
은퇴하고도 한국에 살 건가? 할아버지 될 때까지. 한국 농구는 틀에 박혀 있다. 젊은 친구들을 답답하게 한다. 그런 걸 꼭 바꾸고 싶다. 김선형 같은 선수가 필요하다. 난 정말 선형이 팬이다.
그래도 가드 중엔 전태풍이 1등 아닌가? “그럼! 선형이 2등. 완전 2등.”
소문난 트래시 토커다. 수비수에게 무슨 얘길 하나? 아무거나 얘기한다. “야, 넌 쓰레기야.” 하하. 기분 나쁘게 하려고 하는 게 아니라, 내가 그런 게 필요하다. 설렁설렁 뛰면 플레이가 잘 안 나온다. 나랑은 서로 다 트래시 토크 한다. “왜 이 쓰레기야, 너도 쓰레기야.” 하하.
당신을 흥분시키는 건 이미 ‘핵-어-샤크’ 같은 하나의 전략이 된 것 같다. 사실 내 스타일은 원래 흥분하는 거다. 화나면 더 열심히 뛴다. 그런데 그렇게 하면 감독님들은 싫어한다. 나 좀 놔두지. 심판이랑 좀 싸우기도 하고, 열정 보여주면 관중들도 좋아한다.
경기하면서 안 보일 때 찌르고, 때리고 하는 건 어떤가? 아, 그건 싫다. 정말 싫다. 왜냐면 내가 다른 선수들한테 그럴 땐 심판들이 잡아내는데, 상대방 선수가 나한테 하면 안 분다.
여전히 경기장에서 차별을 느끼나? 휴, 지금도 똑같다. 언젠가 막 무릎에 피 나고 그랬는데도 자유투 한 번도 못 쐈다. 난 KBL 최고의 포인트가드다. 다른 팀에서 벤치 멤버, 신인 내보내서 때리고 괴롭혀도 심판은 모른 척한다. 앞으로 우리 경기할 때 보면 안다.
KBL 최초의 드래프트 출신 귀화 혼혈 선수이자 가장 성공한 귀화 혼혈 선수로서, 어떤 선수로 남고 싶나? “태풍은 완전 달랐어. 그냥 보통 선수 안 하고, 그냥 자기 마음대로, 마음대로 했어. 태풍은… I didn’t follow the trend. 얘 혼자서, 혼자 길로 다녔어.”
- 에디터
- 유지성
- 포토그래퍼
- 안하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