골키퍼 김승규는 해안도시 울산에서만 살았다. 브라질 월드컵 벨기에전에선 파도처럼 몰아치는 슛을 막고 또 막았다.
벨기에전이 끝나고 “경험으로 삼지 않고 실패했다 생각하고”라고 말했어요. 실패는 처음이었어요. A매치나 다른 대회에서 경험을 쌓는 이유가 최종 목표인 월드컵에서 잘하기 위해서잖아요. 월드컵은 제 생각보다 훨씬 큰 무대였고, 그렇기 때문에 실패도 되게 큰 실패였죠.
작년에 소속팀 울산이 우승을 놓친 건 실패가 아닌가요? 포항과의 최종전에서 후반 추가시간에 실점하며 다 잡았던 우승을 놓쳤어요. 그건 경험이에요. 전 작년부터 프로 경기를 본격적으로 뛰기 시작했어요. 신인이라는 각오로 시즌을 치렀어요.
2008년 프로 데뷔전에 승부차기를 막기 위해 출전했고, 결국 팀을 플레이오프에 진출시켰어요. 2011년 준플레이오프에서도 페널티킥을 두 개나 막았고요. 그런데 같이 월드컵에 다녀온 이범영은 지난 런던 올림픽 8강전 승부차기 이후 스타가 됐어요. “페널티킥은 이범영이 더 잘 막는다”는 말은 어때요? 페널티킥요? 뭐, 맞닥뜨리면 자신 있는 부분이에요. 차는 사람이 부담스러우니까. 근데 범영이 형 특기도 그거예요. 다른 팀으로 붙어서 제가 지면 남들이 그렇게 말해도 인정할 수 있을 듯해요.
가운데로 차면 좀 얄밉기도 한가요? 막기도 어려워요. 저희는 미리 예측하고 몸을 던지니까요. 근데 포항이랑 할 때 상대 선수가 가운데로 찬 걸 한 번 막았더니, 이후엔 거기로 잘 안 차더라고요.
장점으로 반사신경이 꼽히곤 하죠. 그래도 막기 어려운 코스가 있나요? 아무래도 타이밍이 빠른 슛이죠. 준비된 상태에서 막는 건 쉬운데, 예측 못하는 타이밍에 쏜 슛. 뭐, 코스는 크게 상관없어요.
어제 수원전(7월 9일)에선 세 골을 실점했어요. 올 시즌 2실점 경기도 한 번뿐인데. 3실점은 올 시즌 처음이에요. 시즌 시작할 때 한 경기에서 한 골 이상 먹지 말자고 목표를 세웠는데 세 골이나 먹어서 좀….
수원 소속인 정성룡 골키퍼는 출전하지 않았어요. 맞대결을 좀 기다리기도 했나요? 나오실 줄 알았어요. 범영이 형도 전 주말 경기는 쉬고 9일 경기는 나온다고 했거든요. 솔직히 이기고 싶은 맘이 있었어요. 팀이 지기까지 해서 더 아쉬워요.
월드컵에선 정성룡이 대량 실점하는 경기를 벤치에서 지켜봐야 했어요. 골키퍼들은 다 알 거예요. 주변에서 라이벌이라고 많이 얘기하지만, 대회에선 골키퍼끼리 서로 정말 큰 힘이 돼요. 성룡이 형이 첫 경기는 잘 했는데, 두 번째 경기는 제가 뛴 것처럼 안타까웠어요.
정성룡 대신 벨기에전에 나서서 7개의 유효슈팅을 막았죠. 형들도 불안했을 거예요. 한 달 넘게 경기를 못 뛰다가 출전해서 긴장을 많이 했어요. 다행히 한두 번 펀칭도 하고 그러니까 자신감이 붙었어요.
무엇보다 수비진과 말을 많이 하는 모습이었어요. 목에 핏대 세워가며 소리를 지르고. 그냥 공 나가고 그랬을 때 맨투맨 같은 걸 체크했어요. 집중하라고.
수비수한테 반말해요? 예전에 히딩크 감독은 그렇게 시켰다던데. 네. 경기장에선 그렇게 해요. (김)영권! 영권! 이렇게. 빨리빨리 얘기해야 되니까 짧게 부르죠.
영국 언론에선 “앞뒤로 움직이는 움직임이 좋다. 골문을 비우고 나오는 판단력이 뛰어나다”고 칭찬했어요. 크로스가 올라올 때 나갈지 말지 미리 판단해야 돼요. 그리고 확실히 쳐내야죠. 큰 경기에 나가면 판단력이 많이 흐려지긴 하는데, 벨기에전에선 잘 맞아떨어진 것 같아요. 제 첫 경기지만 마지막 경기일 수도 있었기 때문에, 하고 싶은 걸 다 하고 싶었어요. 그래서 자신 있게 한 것 같아요.
1998년 월드컵 네덜란드전에서 5:0으로 지고 있을 때, 스무 살의 이동국이 교체 출전해 자신감 있는 모습으로 상대 진영을 휘저었죠. 보는 사람은 지더라도 그런 맹렬한 모습을 원해요. 감사하긴 한데, 저도 어쨌든 팀의 일원이기 때문에 좋은 평가를 받아도 맘이 좀 불편하고 그래요.
월드컵 전에 “김승규는 주전감이 아니다”란 주장의 근거는 경험과 안정감 부족이었어요. 모호하고 주관적인 기준이었죠. 프로와 연령별 대표팀을 거치며 1백 경기 가까이 뛴 골키퍼에게 경험 부족이란 말은 좀…. 벨기에전에서 제가 실수를 하거나 많이 흔들렸으면 그런 말이 다시 나왔을 거예요. 이번 대회에서 약점으로 꼽힌 점이 다음 대회부터는 제 최대 강점이 될 수 있는 거니까, 앞으론 더 좋은 위치에서 경쟁할 수 있을 것 같아요.
1994년 미국 월드컵에서 최인영 골키퍼가 ‘알까기’를 한 이후 이운재 골키퍼가 등장했죠. 이후 김병지와 경합하며 오랫동안 대표팀 골문을 지켰고요. 2010년 남아공 월드컵에선 정성룡이 대회 직전에 이운재를 제치고 주전으로 낙점됐어요. 골키퍼는 한 번 자리를 잡으면 오래가지만, 그만큼 갑작스럽게 바뀌곤 해요. 이번에 경쟁할 때 2010년 당시 이운재 선배님과 성룡이 형 생각을 많이 했어요. 그때도 이운재 선배님의 장점은 경험과 안정감이었고, 성룡이 형은 저랑 비슷한 상황이었던 것 같아요. 그래서 저도 충분히 가능성이 있다고 생각하고 준비를 많이 했어요.
울산은 하필 전통적으로 골키퍼가 강한 팀이었어요. 최인영, 김병지, 서동명, 김영광…. 그래도 버티길 잘했다고 생각하나요? 어릴 땐 임대로라도 다른 팀에 가고 싶었어요. 프로에 늦게 들어온 또래들보다 경기를 못 뛰었으니까요. 그런데 기다리면서 많이 배웠어요.
지금은 반대로 김영광 골키퍼가 임대를 갔죠. 가면서 무슨 말을 했나요? 이제 편하게 대표팀에서 만나자고 했던 것 같아요.
벨기에전 당일에 정성룡 골키퍼는 어떤 얘길 했나요? 끝나고 인사 도는데 형이 오늘 네가 제일 잘했다고 말해줬어요. 마냥 좋다기보다 묘한 기분이었어요.
선수 기용을 두고 나온 ‘홍명보의 아이들’이라는 말은 어떤가요? 김승규는 거기에 반쯤 걸쳐 있는 것 같은데. 그 말은 2009년 저희가 U-20 월드컵 8강에 진출한 이후부터 나온 것 같아요. 잘될 때는 되게 좋게 봐주시다가 이번엔 좀 안 좋게 끝났는데, 음… 뭐라 말할 게 없네요. 감독님 사퇴 소식을 듣고 죄송한 맘이 컸어요. 저희가 한 걸로 평가를 받으시는 분이니까.
월드컵에서 복귀 직후 K리그 주간 MVP를 받았어요. 각오가 남달랐나요? 팀이 어려울 때 제가 빠져 있었어요. 돌아와서 도움을 줘야겠단 생각이 컸어요.
작년엔 K리그 베스트 일레븐이었죠? 2012년까진 벤치 멤버였는데. 초반엔 경기를 못 뛰어서 올해도 똑같이 흘러가겠다 싶었는데, 영광이 형이 다쳤어요. 제가 여덟 경기 정도 뛰고 나면 형이 돌아와서 다시 벤치로 갈 거라 생각했고요. 그런데 뛰다 보니 욕심이 나서, 매일 마지막이란 생각으로 간절히 준비했어요.
울산 현대중, 현대고를 거쳐 울산 현대에 입단했어요. 다른 곳은 안 궁금해요? 저 울산에서 태어났어요. 여기가 편해요. 다른 데 가면 내비게이션 찾기 바빠요.
바다 좋아해요? 네. 쉴 땐 캠핑 많이 가요. 어릴 때도 친구들이랑 거의 바다에서 살았어요.
공도 차고 그랬어요? 공은 안 차고 종일 수영했어요. 입술 색 변할 때까지 바다에 있었어요.
입술 색이 변해요? 바닷물 색이 되는 거예요? 에? 약간 변하는 건데. 좀 파래져요.
남미 선수들은 모래밭에서 축구를 하며 크기 때문에 개인기가 좋다는 말이 있죠. 초등학교 때 감독님이 그렇게 많이 시키셨어요. 도움이 됐는지는 모르겠는데, 전 공을 차는 게 아니라 막는 거였으니까요. 5학년 때부터. 감독님도 절 골키퍼로 원하셨는데, 이전까진 아빠가 안 시켜줬어요.
왜 반대하셨나요? 당시 김병지 골키퍼가 울산에서 뛸 즈음이었는데. 이왕 할 거면 막는 것보다 넣는 걸 하라고 말씀하셨어요. 그리고 초등학교 때는 볼보이가 없어서 경기하다 슛이 밖으로 나가면 골키퍼가 공을 주워와야 했어요. 그게 보기 안 좋으셨대요.
그런데 사투리 하나도 안 쓰네요? 저요? 네. 다들 그 얘기하네. 어릴 때도 이랬어요.
어떻게 그럴 수가 있죠? 저도 잘 모르겠어요. 진짜 울산에서만 살았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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