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ULTURE

金 [MEN OF THE YEAR – 김현우]

2014.12.10유지성

김현우는 레슬링 그랜드슬래머다. 올림픽, 세계선수권, 아시아선수권에 이어 2014 인천 아시안게임에서도 금메달을 땄다. 남은 목표는 여전히 선명하지만, 요즘 그는 레슬링을 즐기려 한다. 쉽고 멋지게.

셔츠와 보타이, 턱시도 재킷과 팬츠는 모두 비앤테일러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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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슬링 선수의 몸은 유독 단단해 보여요. 어디 하나 약한 부분이 없어 보인달까? 맞아요. 레슬링 선수는 어느 한 부분을 훈련하는 게 아니라 몸 전체의 밸런스가 맞아야 하니까. 그러다 보니 훈련량이 많아요. 강해질 수밖에 없죠.

거울로 자기 몸도 자주 보나요? 볼 수밖에 없어요. 하루에 네 번 운동하는데 끝나면 매번 샤워하니까. 씻으면서 어떤 부분이 좋아졌는지 체크해요. 그렇다고 거울 보면서 몸 좋다… 이런 생각을 한 적은 없고요.

2012 런던 올림픽에선 유력한 우승 후보가 아니었어요. 영국 언론에선 ‘깜짝 금메달’이라 표현하기도 했고요. 사실 지금도 김현우란 이름은 어쩐지 좀 생소해요. “눈에 시커멓게 멍들었던 레슬러”라고 하면 그제야 그때 그 얼굴을 떠올리게 돼요. 김현우라고 하면 다들 잘 기억을 못해요. 흔한 이름이고, 생긴 것도 특이하지 않아서. 올림픽 끝나자마자는 사람들이 다 알아봤죠. 근데 멍이 없어질수록 점점 못 알아보더라고요. 어린 맘에 서운했죠. 멍 싹 빠지고 나서 청와대 만찬을 갔는데, 당시 이명박 대통령께서도 저를 보고 누구냐고 하시는 거예요. “아, 저 올림픽 레슬링 금메달리스트입니다” 라고 하니까 “아아!” 이러시면서 멍 그리고 다니라고… 하하. 아팠지만 임팩트는 있었던 것 같아요.

사람들이 알아봤으면 좋겠어요? 처음엔 그랬어요. 스타가 된 것 같고. 나중엔 불편했어요. 집 앞 마트 갈 때도 신경 쓰이고. 연예인병 걸린 것 같아요. 하하.

2016 리우데자네이루 올림픽을 앞두고는 모두가 김현우를 우승 후보로 꼽을 거예요. 그런 순간을 기다리기도 해요? 비인기 종목 선수로서 가장 큰 스포트라이트를 받는 순간이잖아요. 4년에 한 번밖에 없는. 아직 그때 생각은 안 했어요. 전 항상 바로 앞의 일을 생각하거든요. 큰 계획은 있지만, 단계를 나눠요. 일단은 내년 대표 선발전을 거쳐서 국가대표가 되는 게 목표죠. 그 다음엔 세계선수권에서 6위 안에 들어야 해요. 그래야 올림픽 출전 티켓이 나오거든요.

며칠 전 우승한 전국체전에선 모든 경기를 테크니컬 폴로 이겼어요. 같은 체급에선 적수가 없는 거죠? 원래는 다른 선수들이랑 실력 차가 그렇게 많이 안 났어요. 그런데 큰 무대를 많이 경험하고 나니까 클래스가 높아졌다고 해야 하나? 너무 솔직하게 말하면 재수 없게 볼 수도 있을 것 같은데, 저도 몸으로 그걸 느껴요. 미안하기도 했어요. 후배들한테 중요한 대회인데, 그 자리까지 빼앗는 건 아닌지.

지난 10월, 인천 아시안게임 결승에서도 꽤 여유로워 보였어요. 경기 끝나고도 힘이 남은 것처럼 보였죠. 저도 많이 힘들었어요. 세계 랭킹 5위 선수인데, 이번에 제 분석을 많이 하고 나왔더라고요. 금메달 따고 별로 안 기뻐하는 것 같다는 얘기도 들었어요. 속으로 진짜 좋았거든요. 솔직히 올림픽 금메달만큼 기쁠 순 없죠.

다 이루었다는 생각이 들었나요? 올림픽, 세계선수권, 아시아선수권에 이은 네 번째 금메달. 그랜드 슬램이었죠. 아시안게임은 올림픽이랑은 별개였어요. 제가 2010 광저우 아시안게임에서 실패했잖아요. 독기를 품은 거죠. 주위에서 그랜드슬램 얘기를 많이 하시는데, 솔직히 깊게 생각하진 않았어요.

올림픽 금메달은 어떻게 보관하고 있어요? 진열장에 뒀더니 색이 조금씩 변하는 것 같더라고요. 그래서 케이스에 넣어놨어요. 겉에 칠을 좀 하면 영구적으로 보관할 수 있다는데, 그렇게 했는지는 잘 모르겠어요. 저보다는 부모님이 신경 쓰시거든요. 당연히 메달은 소중하지만, 내가 땄다는 거 다 아니까. 메달보다 내가 해냈다는 게 중요한 거잖아요. 제가 좀 그런 스타일이에요. 오래 기억하기보다 앞의 것을 봐요.

운동선수에게 좋은 성격 아닌가요? 진 게 떠오르면 억울해서 못할 테고, 이긴 걸 생각하면 안주하게 될 테고. 맞아요. 아예 딱 운동선수로 태어난 것 같아요. 골격도 통뼈고 몸도 유연하고. 정신은 나태해졌을 때도 있지만, 좋은 은사님들 만나서 다 뜯어고쳤어요.

그게 돼요? 사람은 안 바뀐다는데. 의지가 있으면 돼요. 광저우 아시안게임에서 지고 충격을 받았어요. 체육관 나와서 울면서 멍 때리고 있었죠. 그때 김인섭 코치님께서 나만 믿고 2년만 따라오라고, 너 올림픽 때 금메달 따게 해주겠다고 말씀하셨어요. 그 말 듣는 순간 싹 잊히더라고요. 그리고 2년을 올림픽 아니 레슬링에 미쳤어요. 런던 올림픽 때는 정신 상태가 달랐어요. 눈 퉁퉁 부어도 덤볐거든요. 막 헤드버팅 들어와도 안 피했어요. 갖다 박아라…. 그러면 상대가 쫄거든요. 시합 딱 들어가서 눈을 보거나 손을 잡아 보면 정신 상태가 느껴져요. 패기로 이긴 것 같아요.

 

니트 쇼츠는 아메리칸 어패럴.

니트 쇼츠는 아메리칸 어패럴.

 

지난해 올림픽 핵심 종목 제외 논란을 겪으며 레슬링 규칙이 바뀌었어요. 2분 3회전 세트제 대신 3분 2회전 총점제가 도입됐죠. 아무래도 힘보다 체력이 강점인 한국 선수들에게 유리한가요? 우리나라 선수들이 워낙 훈련량이 많아서 후반에 강해요. 외국 선수들이랑 싸워보면 1회전은 비등비등해요. 워낙 힘이 좋으니까. 그런데 후반으로 갈수록 체력이 떨어지는 게 보여요. 스탠딩 상태에서 붙는 걸 맞잡기라고 해요. 맞잡기 하면서 상대방의 체력을 서서히 빼놓는 요령을 많이 연습하죠. 그런 스타일이 재미없어 보일 수도 있어요. 하지만 그게 저희한테 맞는 방식이라 어쩔 수 없어요.

바뀐 규칙에 따르면 5점짜리 기술 하나, 또는 3점짜리 기술 2개를 성공시키면 경기가 끝나요. 큰 기술을 권장하는 흐름이라 말할 수 있죠. 드는 기술을 많이 쓰는 선수로서 반가운 룰이죠? 룰 자체가 공격적인 선수한테 유리하게 바뀌었어요. 예전엔 라운드마다 30초씩 파테르를 하니까 선수들이 1분 30초를 그냥 버티다가 거기에서만 승부를 보려고 했어요. 그러니까 올림픽 퇴출 같은 얘기도 나온 거겠죠. 재미없다고.

심권호 대한레슬링협회 이사가 인천 아시안게임 이후 “김현우가 안주하지 말고, 절반의 성과를 거두었다고 생각해야 한다. 이제 나를 넘어섰으면 좋겠다”고 얘기했어요. 심권호는 48킬로그램과 54 킬로그램, 두 체급에서 그랜드슬램을 달성했죠. 뛰어넘는다는 생각은… 레슬링 하면서 딱 한 번 해봤어요. 중학교 3학년 때였나? 방송 인터뷰에서 어린 마음에 “지금은 안 될 것 같은데 나중엔 넘을 수 있을 것 같다”고 했어요. 다들 웃었죠. 심권호 선배님 같은 선수는 전 세계에 없어요. 넘어서고 싶지만, 솔직히 모르겠어요. 일단 제 목표를 이룬다면 제 나름대로는 선배님을 넘었다고 생각할 수 있을 것 같아요.

그 목표는 뭔가요? 일단 2016 리우데자네이루 올림픽 우승이죠. 두 체급 그랜드슬램은 못 달성하겠지만, 올림픽 2연패라는 제 목표가 있으니까. 그리고 나중에 국제 레슬링 연맹 명예의 전당에 오르고 싶어요.

3연패도 생각해봤나요? 2020 도쿄 올림픽까지. 아니요. 레슬링 훈련 아시잖아요. 저도 살아야죠. 훈련 중에 이러다 죽겠다는 생각도 해요. 그만큼 힘드니까.

레슬링, 복싱 같은 투기는 전통적으로 ‘헝그리 정신’이 강조되는 종목이었죠. 하지만 김현우는 ‘헝그리 정신’으로 덤빈다기보다, 잘하는 걸 신나게 하는 인상이에요. 어, 올림픽 때도 그랬어요? 지금은 좀 다르죠. 잘하는 사람은 노력하는 사람을 이길 수 없고, 노력하는 사람은 즐기는 사람을 이길 수 없다고 하잖아요. 이제 즐기는 단계로 올라간 것 같아요. 여유가 생겼죠. 상대를 리드할 수 있게 됐어요. 그러다 보니 레슬링 쉽게, 멋있게 한다는 얘기도 듣고요. 레슬러들은 보면 알거든요. 저도 다른 사람들이 그런 부분을 알아채는 걸 즐기는 거죠.

이젠 대회 전에도 별로 긴장하지 않나요? 매번 달라요. 그렇지만 호랑이는 토끼를 잡을 때도 최선을 다한다고 하잖아요. 작은 시합도 집중하려고 해요.

“항상 1인자일 수는 없고, 언젠가는 내려오게 되어 있다”고 했어요. 겨우 스물일곱인데, 벌써 내리막에 대해 생각하나요? 저는 더 이상 올라갈 수가 없어요. 올림픽 2연패를 하더라도 더 올라가는 건 아니죠. 올림픽 금메달을 이미 땄으니까. 유지라고 생각해요. 커리어로는 쌓이는 게 맞지만. 레슬링 선수로서의 수준은 언젠가 떨어질 수밖에 없어요. 그 속도를 천천히 잘 조절하고 싶어요. 확 떨어지지 않도록, 마지막에 멋진 경기를 하고 은퇴할 수 있게.

정상에서 은퇴하는 것이야말로 모든 선수의 꿈이죠. 원래는 빨리 그만두고 싶었어요. 너무 힘든 운동이라. 올림픽 전에는 재미를 못 찾았었거든요. 금메달 따면 바로 그만둬야겠다고 생각했죠. 그런데 이후에 계속 욕심이 생겼어요. 마지막 순간이 언제일지는 몰라요. 그런데 그 경기는 이겼을 거예요.

 

러닝 쇼츠는 아메리칸 어패럴.

러닝 쇼츠는 아메리칸 어패럴.

 

    에디터
    유지성
    포토그래퍼
    안하진
    스타일리스트
    박현주
    헤어 스타일링
    한빛
    메이크업
    소윤
    어시스턴트
    최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