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7년에 데뷔한 주희정은 올 시즌 프로농구 통산 900경기 출장을 달성했다. 지금부터 그가 뛰는 모든 경기가 기록으로 남는다.
이제 ‘테크노 가드’라고 부르는 사람은 드물죠? 그렇죠. 제 입으로 말하긴 좀 민망하지만 이후에 주키드, 레전드, 주느님… 같은 별명이 생겼죠. 90년대엔 테크노춤이 한창 유행했잖아요. 아무래도 그 춤처럼 당시 제 플레이나 동작에 파워풀한 이미지가 있었던 것 같아요.
당시엔 그런 포인트가드가 드물었어요. 강동희와 이상민 모두 굳이 구별하자면 부드럽게 경기를 조율하는 쪽에 가까웠죠. 덕분에 김승기 같은 신예 가드도 ‘터보 가드’라는 별명으로 주목받았고요. 남들하고 똑같이 하면 경쟁에 밀릴 거라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좀 다른, 특이한 테크닉을 구사하기 위해 계속 연구했고요. 살아남기 위한 저만의 방식을 찾은 거죠.
고려대에 진학했을 때, 선배인 신기성과의 경쟁에서 밀리면서 그런 생각을 하게 된 건가요? 그렇죠. 기성이 형이 1년 선배인데, 제가 한 수 밀렸다고 생각해요. 서글펐죠. 동료한테 져서 그런 게 아니라, 스스로한테 졌다는 것에 대해. 집안 형편도 어려울 때라 2학년 올라갔을 때 농구를 접고 고향 부산으로 내려가려고 했어요. 그런데 운 좋게 대학교 때 코치님이 프로팀 코치로 가면서 연습생으로 입단시켜주셨어요.
하지만 프로농구 초대 신인왕을 받았죠. 소속팀(나래 블루버드) 형들이 나이가 좀 많았어요. 어느 경기 전날 주전이던 형이 발목을 다치는 바람에 제가 조금씩 경기에 나가게 된 거죠. 식스맨으로 10분, 20분…. 적응이 빨랐던 것 같아요. 기라성 같은 선배님들과 경기할 때도 두렵거나 무섭지 않았어요.
강동희, 이상민 같은 선수들과도 할 만하다 싶던가요? 음, 처음부터 그렇진 않았어요. 강동희 선배님 같은 경우엔 초등학교 때부터 워낙 팬이라서 코트 위에 있는 것만으로도 설 죠. 그런데 경기를 할수록 이겨보고 싶은 욕심이 생겼어요. 잘하는 선배들의 장점을 제 걸로 만들려고 하다 보니까 1년, 2년 가고 한 5년 차 지나고 나니까 넘게 되더라고요. 아, 이게 승부의 세계고 경쟁의 세계구나, 재미있구나, 싶었어요.
하지만 농구대잔치 스타들에 비해 주희정이란 선수는 계속 저평가를 받았던 것 같아요. 첫 번째는 제가 대학교 때 주전이 아니었기 때문에. 그래서 기자 분들이나 관계자들이 예의 주시를 안 했던 거죠. 두 번째는 제가 가드치고 3점 슛이 되게 안 좋았어요. 그래서 잘하긴 하는데 2퍼센트 부족한 선수, 아니면 반쪽짜리 포인트가드란 오명이 몇 년간 따라다녔던 것 같아요. 삼성 시절 통합 우승했을 때(2000~2001 시즌)부터 3점 슛이 조금씩 들어가기 시작했죠.
세간의 평가와 상관없이 기록은 남기 마련이에요. 비록 당대엔 정당한 평가를 받지 못했지만, 나중에 기록으로 보여주겠다는 다짐 같은 것도 좀 해봤나요? 어떤 기록이든 주희정이 최초라는 얘기를 듣고 싶었어요. 선수생활 초반부터 스포트라이트를 받진 못했지만, 서서히 받을 수 있게끔. 그리고 그렇게 되기 위해 KBL에 오래 남아야겠다는 생각을 했죠.
2000년대엔 이상민, 신기성, 김승현과 함께 ‘4대 포인트가드’로 불리곤 했죠. 이제 그중 누군가, 또는 전부 다 넘어섰다고 생각하나요? 이상민 감독님은 나이 차이가 좀 있기 때문에 비교하기가 그렇고, 다른 가드들은 넘어서지 않았나…. 그리고 살아남았고.
프로 통산 900경기 출장 기록을 달성하고 이렇게 말했어요. “나는 지나가는 선수지만 후배들은 계속 농구를 해야 한다. 500경기 출전도 드문 만큼, KBL이 500경기 이후에는 마케팅적인 측면에서 선수들을 챙겨줬으면 한다.” 앞서 말한 네 명의 선수 중 마케팅의 혜택을 가장 입지 못한 선수였는데. 저는 지난 선수잖아요. 저를 통해 후배들이 기록을 세웠을 때 혜택을 많이 받았으면 좋겠어요. 적어도 기록을 세우면 뿌듯할 수 있도록 만들어줘야죠. 제가 뭐 이제 와서 혜택을 누리고 싶고 그런 건 없어요.
그 900경기 중 가장 기억나는 게임은 언제예요? 최고이자 최악이라면 데뷔 첫 경기죠. 11월 11일 창원 LG와의 원정 경기. 경기 전에 정말 잘할 수 있겠다고 생각했는데 끝나고 나선 농구하기 싫을 정도였어요.
그날 기록이 어땠는데요? 4득점 4리바운드 2스틸? 형들은 괜찮다고 했어요. 이제 스물한 살인데 왜 그러냐고. 나름 욕심이 컸나 봐요. 야망도 있고.
프로농구 통산 최다 출장, 어시스트, 스틸, 트리플 더블(국내 선수 1위) 등의 기록을 갖고 있어요. 그중 가장 잘했다 싶은 건 뭔가요? 경기수랑 트리플 더블이요. 일단 농구는 정말 900경기까지 뛰기 어려워요. 몸싸움도 치열하고, 스피드도 좋지 않으면 살아남기 어려우니까. 트리플 더블은 (현)주엽이 형이랑 7개로 타이였는데, 그걸 넘고 싶었어요. 결국 8개를 했고요. 키 작은 선수도 트리플 더블을 할 수 있다는 걸 보여주고 싶었거든요.
포인트가드인데 통산 리바운드도 4위예요. 원주 동부의 김주성은 “리바운드는 의지”라고 말했죠. 그런가요? 동의하죠. 그리고 일단 빅맨이 리바운드를 잡았을 때랑 포인트가드가 잡았을 때랑은 경기 내용이 달라져요. 작은 선수가 리바운드를 잡으면 빠른 농구가 훨씬 많이 나올 수 있어요. 바로 치고 나갈 수 있으니까. 제가 또 달리는 걸 정말 좋아했거든요. 리바운드가 어디에 떨어지는지 연구도 많이 했어요.
올해가 2년 계약의 첫해예요. 계약이 끝나면 마흔 살이 되죠. 1천 경기 출장을 달성하려면 산술적으로 한 시즌 더 계약을 연장해야 하는데, 거기까지도 염두에 두고 있나요? 그런 대기록은 선수가 하고 싶다고 되는 게 아니에요. 제가 말할 수 있는 건, 만약 1천 경기를 뛴다면 그 안에 부상을 당하지 않을 자신은 있다는 거죠.
70년 가까운 역사의 NBA에서도 20시즌 이상 뛴 선수는 네 명뿐이에요. 카림 압둘 자바, 로버트 패리시, 케빈 윌리스, 케빈 가넷. 최장기록은 21시즌. 그리고 네 선수 모두 다 빅맨이죠. 가드는 전례가 없어요. 올해가 연습생 시즌까지 포함하면 19번째인데, 만약 22번째 시즌을 뛰게 된다면 그건 세계 뉴스가 될지도 몰라요. 아, 생각만 해도 좋네요 정말. 행복하네요.
새로운 목표를 드리고 싶은 거예요. 1천 경기 출장도 목표가 아니었어요. 솔직히 이룰 거 다 이뤘어요. 뛸 만큼 뛰었고, 상도 받을 만큼 다 받았고. 그런데 주위에서 목표가 뭐냐고 계속 물어보다 보니 1천 경기 출장이 목표가 된 거예요. 그걸 바꿀 순 없죠.
주전으로 다시 신나게 뛰어보고 싶지 않아요? 처음에는 되게 스트레스 받았어요. 그렇지만 지금은 팀이 정말 잘하고 있고, 김선형이라는 훌륭한 후배가 있으니까요. SK 나이츠에서 제 역할은 식스맨이에요. 물론 출전시간이 좀 늘어났으면 싶긴 해요. 하지만 그렇다고 선수들이나 감독님한테 그런 맘을 내비치면 저 하나로 팀 분위기가 어수선해지는 거잖아요.
언제가 전성기였다고 생각해요? 스물여섯 살에 첫 태극마크 달았을 때요. 당시엔 이렇게 오래 할 줄 몰랐어요. 서른한 살부터 서른다섯 살 때까지도 또 다른 전성기였던 것 같고요. 그때만 해도 다이내믹했죠. 지금 그런 건 선형이의 몫이고, 저는 안정된 리딩을 해주는 역할이고.
리딩이란 개념은 굉장히 막연해요. 슛이나 리바운드가 좋은 선수는 경기나 기록을 보면 알 수 있지만 리딩은 그렇게 눈에 드러나는 부분이 아니니까요. 포인트가드로서, 리딩을 잘한다는 건 뭔가요? 일단 선수들의 장단점을 잘 알아야 돼요. 그래서 미스매치를 유도해야죠. 상대팀 선수의 단점과 우리팀 선수의 장점을 매치시키는 거예요. 쉽게 골을 넣을 수 있게. 그리고 순간순간 상대팀 수비 패턴을 공략할 줄도 알아야죠. 판단력도 빨라야 되고. 예를 들어 속공 상황이라면 우리 선수가 어디로 달려 나갈지, 어느 쪽에서 슛을 잘 넣는 선수인지 최대한 빨리 파악해야 돼요.
농구의 전성기라 할 수 있는 90년대에 데뷔해서 2000년대를 지나 지금은 2015년이에요. 새삼스레 묻고 싶어요. 주희정에게 90년대란? 날개란 표현을 쓰고 싶어요. 스포트라이트를 받으면서 경기를 했죠. 정말 경기장에 팬이 많았고, 저한테 날개를 달아준 거죠. 날개 달린 주희정. 그만큼 신나게 뛰어다녔어요.
그렇게 긴 경력을 마치고 주희정이란 선수가 어떻게 기억됐으면 해요? 놀라운 선수? 불가능을 가능케 하는 선수. 아, 저 선수는 멈추지 않고 계속 새로운 걸 추구하던 선수였구나. 트리플 더블이든 뭐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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