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의 이효리라는 사람은 그 자체로 과거와 현재, 미래를 모두 담고 있는 캐릭터다.
“조심할게. 잘못했어.” 지난 7월 11일 방송된 MBC <놀면 뭐하니> 50회에서는 ‘린다G’라는 ‘부캐’로 활약 중인 이효리가 문제가 됐던 윤아와의 노래방 라이브 논란을 언급하며 눈물을 흘렸다. 며칠 동안 호되게 화살을 맞은 뒤에 흘린 그의 눈물은 유재석의 농담 섞인 “조심 좀 해”라는 말처럼 최근 인기를 끌고 있는 ‘싹쓰리’의 성공을 위해 연출된 것이 아니었다. 이효리의 눈물과 조심스러운 한 마디는 현재 코로나19 사태로 한껏 예민해진 사람들의 화살이 특정인에게 향하고, 여기에 무력감을 느끼고 응수할 수밖에 없는 연예인 개인의 상황을 드러내고 있었다.
지금의 이효리라는 사람은 그 자체로 과거와 현재, 미래를 모두 담고 있는 캐릭터다. 코로나19로 인해 야기된 문제가 연예인들에게 어떤 식의 부담으로 작용하는지 보여주는 것이 현재의 이효리라면, 여기에 레트로 내지는 뉴트로 열풍으로 인기를 끄는 ‘싹쓰리’의 중심축이 그라는 것까지 이효리라는 명성이 지닌 현재성을 보여준다. 동시에 그는 과거의 이야기를 하는 사람이기도 하다. 1990년대에 데뷔해 2000년대에 최고 전성기를 살았던 이효리라는 여성은 여전히 하나의 아이콘으로 기억된다. 여전히 각종 예능 프로그램의 배경음악으로 <10 Minutes>이 깔리고, 이효리의 전성기는 곧 2000년대 여성 솔로 가수의 존재와 동일시되기 때문이다.
의미 있는 것은 이효리의 이러한 과거와 현재가 미래의 어떤 순간을 예견할 수 있다는 점이다. 이효리 본인이 의도했든 의도하지 않았든 그는 결혼 전후로 자신의 삶을 주체적으로 디자인하는 자신의 캐릭터를 대중에 각인시키며 지금의 자리에 올랐다. “나 돈 많다”는 말을 하면서 뮤지션인 남편과 새벽 요가를 하던 그가, <놀면 뭐하니>에서는 “유기농 생리대 광고가 하고 싶다”며 유재석과 비를 당황시킨다. 여성 연예인이 자신의 부나 성취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이 어렵던 시절에도 당당하게 하고 싶은 말을 했던 그는 “유기농 생리대”라는 한 마디로 웃음과 동시대를 사는 후배 여성들에게 이런 메시지를 던진다. ‘그래, 하고 싶은 말이 있으면 해.’
남성들과 스스럼없이 웃으며 생리대 이야기를 꺼낼 수 있게 만들고, 톱스타라는 자신의 위치를 상기하면서도 현재 연예인들에게 엄격하게 가해지는 사회적 거리두기의 잣대에 대해 다시금 생각해보게 만드는 사람. 그런 사람이 과거에도 현재에도, 그리고 미래에도 높은 인지도와 부를 누리며 살아가는 세상이란 의외로 연예인들의 삶을 이야기할 때 언급되는 상대적 박탈감보다 닮고 싶은 부분이 많은 한 스타가 제시하는 의미 있는 성찰로 남을 수 있다. 노래방에서 신나게 노래를 부르던 그를 옹호하고자 하는 말이 아니다. 이효리에게 지금 던져지는 비난과 쏟아지는 칭찬, 속 시원한 대리만족 같은 것들이 모두 2020년을 전후한 우리의 과거-현재-미래를 대변하고 있음을 이야기하고 싶을 뿐이다. 이효리처럼 언제든 시대의 아이콘이 될 수 있었던 사람은 정말로 흔치 않으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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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에디터
- 글 / 박희아(대중문화 저널리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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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MBC