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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린&슬기의 무대가 특별한 이유

2020.07.22박희아

공포물 장인이 되어 돌아온 레드벨벳-아이린&슬기의 무대 리뷰.

‘난 어둠 속의 Dancer / 온몸 뚝뚝 꺾어 / 침대 가까이 갈게.’ 레드벨벳-아이린&슬기가 최근에 발표한 앨범 타이틀곡 [Monster]의 가사 일부분이다. ‘하나의 조명 왜 그림자는 둘이야?’, ‘차가운 땅 / 잿더미에서 일어났어 / 황혼에서 새벽 / 난 여전히 존재해’ 등 청자의 머릿속에서 구체적인 그림을 그릴 수 있도록 이 곡은 섬세하고 자유롭게 공포물 시리즈의 어떤 장면들을 묘사한다. 그리고 마침내 ‘이 광기가 싫지 않아’라며 괴물이 되기를 주저하지 않는 두 여성의 단호한 태도를 거대한 거미를 형상화한 안무로 확실하게 각인시킨다.

그동안 걸그룹 유닛들은 많았다. 레드벨벳-아이린&슬기의 소속사 선배인 소녀시대부터 단발성 유닛인 f(x)의 루나와 엠버를 비롯해 오렌지캬라멜, 레인보우, 구구단 등 여러 걸그룹에서 유닛을 내놨다. 이중 대표적으로 소녀시대 태연, 티파니, 서현이 모인 TTS(태티서)가 큰 인기를 끌었고, 애프터스쿨의 나나, 리지, 레이나가 모인 오렌지캬라멜도 유행가 여럿을 탄생시켰다. 이 두 유닛 그룹은 TTS의 세련됨과 오렌지캬라멜의 엉뚱함처럼 각자가 지닌 색깔이 뚜렷했고, 이런 키워드를 바탕으로 오랫동안 대중에게 사랑받고 있다. 명절이나 아이돌 경연 프로그램에서 이 두 그룹의 곡이 여러차례 후배 가수, 연습생들에 의해 커버되는 것만 봐도 알 수 있는 부분이다.

레드벨벳-아이린&슬기를 같은 맥락에서 바라보자면 이들의 키워드는 명백히 ‘공포’다. 이 공포는 기존에 레드벨벳이 ‘피카부’, ‘Bad Boy’, ‘RBB’ 등으로 꾸준히 보여줘 왔던 이미지와 이어달리기 하듯 연결된다. 피카부의 뮤직비디오 엔딩은 레드벨벳의 아지트에 피자 배달을 온 청년이 감쪽같이 사라지는 섬뜩한 내용이며, ‘Bad Boy’와 ‘RBB’에는 날카롭게 고성을 지르는 목소리나 늑대와 같은 어둠의 상징들이 가득 들어차 있다. 이런 레드벨벳의 기묘한 요소들을 털이 잔뜩 난 독거미 혹은 식인거미의 형상으로 만들어낸 [Monster]의 안무는 ‘작지만 위험한 날 누가 거부하겠어’라는 자신감으로 완성된다. ‘피카부’의 섬뜩한 결말도, 할로윈 데이의 장난기를 닮은 ‘RBB’도 거부하지 못했던 누군가에게 [Monster]는 또 하나의 재미있는 해석거리가 된다.

하지만 이 유닛에서 가장 흥미로운 점은 공포라는 키워드로 모든 콘텐츠의 연결고리를 집어삼키는 듯 하면서도 놓지 않은 서사의 끈이 있다는 점이다. SM 엔터테인먼트는 아이린과 슬기라는, 데뷔 전부터 자사의 연습생 공개 포맷인 SM Rookies를 통해 키워온 브랜드를 그대로 이어간다. 이미 레드벨벳이 되기 전 가장 먼저 유닛의 모습을 선보였던 두 사람의 오묘한 케미스트리를 퀴어적인 연출로 [Monster]에서도 적극적으로 활용하고, 후속곡 ‘놀이(Naughty)’에서는 몸매가 고스란히 드러나는 옷을 입고도 보는 사람에게 주는 성적인 자극보다 아이린과 슬기 두 사람이 엮어서 만들어내는 안무의 특징에 더 주목하게 만든다. 특정 신체 부위를 두드러지게 강조하는 안무 대신에 두 사람이 직접 악마 같은 유혹적인 존재를 연기하며 충분히 흡입력 있는 여성 아이돌의 콘텐츠와 두 사람만의 서사를 완성해낸 것이다.

조금 더 파워풀하고 과감하기를 원하는 사람도 물론 있을 수 있다. 시종일관 나른하고 기묘한 분위기로만 가득한 트랙 리스트에서 최근 들어 많이 요구되는 힘과 에너지가 모자라다고 느낄 수도 있다. 그러나 이런 아쉬움의 목소리조차도 오랫동안 힘을 쌓아온 SM 엔터테인먼트의 작품이기 때문에, 동시에 아이린과 슬기라는 콘텐츠가 지닌 훌륭한 브랜드 때문에 나오는 것이다. 그렇다면 지금은 조금 더 기다려봐도 좋을 시기다. 이 유닛의 미래가 계속된다면, 지금 보고 있는 것보다 훨씬 더 강렬하게 선을 훅 넘어버리는 곡과 퍼포먼스가 기다리고 있을 테니 말이다. 적어도 지금 이렇게 세련된 방식으로 용감한 일을 벌일 수 있는 회사와 멤버들에 대한 믿음은 팬들 사이에서도 굳건하게 지켜지고 있다. 단, 아이린과 슬기의 유닛이 지닌 공포스런 분위기가 누군가에게는 도저히 범접할 수 없는 캐스팅과 프로듀싱 능력에 대한 공포로 다가올 수도 있다. K팝은 늘 이렇게 흥미진진한 공포를 여러 사람에게 안기는 장르다.

    에디터
    글 / 박희아(대중문화 저널리스트)
    사진
    SM엔터테인먼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