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ULTURE

코로나19로 휘청이는 축구 생태계

2020.07.31GQ

천문학적 숫자놀이는 끝났다. 막대한 자본력으로 덩치를 키운 축구 생태계도 팬데믹의 전방 압박에 뻥뻥 뚫리고 말았다.

독일 프로축구단 카이저슬라우테른은 한때 알아주는 팀이었다. 분데스리가에서 네 차례 정상에 선 이 팀은 미하엘 발라크와 미로슬라프 클로제, 유리 조르카에프 등 수많은 스타가 거쳐간 팀이다. 그런데 카이저슬라우테른이 지난달 결국 재정 악화로 독일 당국에 파산 보호 신청을 했다. 이들의 파산 보호 신청이 받아들여지면 구단은 채무를 유예받고 회생 절차를 밟게 된다.

회생 방향은 어떤 식으로든 축구단으로 존속하도록 하는 데 맞춰질 전망이다. 하지만 이건 카이저슬라우테른만의 문제가 아니다. 분데스리가의 샬케 역시 구단 존립이 불투명할 정도로 심각한 재정 위기를 겪고 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이후 전 세계 축구계가 휘청이고 있다. 팬데믹으로 축구 생태계가 빠르게 변하고 있다. 아마 예전 같은 축구로 돌아가지 못할 것이라는 걱정도 팽배하다. 코로나19는 축구의 많은 부분을 바꿔놓고 있다.

코로나19 여파로 구단들이 휘청이고 있다. 지난 5월 국제축구연맹(FIFA) 산하기관에서 주최한 토론회에서는 앞으로 6개월 동안 최소 1백 개에서 최대 2백 개의 축구 구단이 파산할 것이라는 전망이 나왔다. 구단의 연쇄적인 파산으로 축구계가 대변화를 맞이할 것이라는 관측이다. 카이저슬라우테른이나 샬케 같은 팀이 무너지면 그 여파는 다른 구단으로 번질 수밖에 없다. 유럽의 소규모 구단들은 언제 파산을 선언해도 이상할 게 없을 만큼 힘겨운 시간을 보내고 있다.

코로나19 여파로 유럽 빅클럽 유명 스타들의 몸값도 바닥을 치고 있다. 당장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의 손흥민만 하더라도 몸값이 2백억원 가량 하락한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전 세계 축구선수 시장 가치를 다루는 ‘트랜스퍼마르크트’는 지난해 12월 손흥민의 이적료를 약 8천만 유로(약 1천60억원)로 추정했다. 토트넘의 유럽축구연맹 챔피언스리그 준우승과 2018 자카르타-팔렘방 아시안게임 금메달로 병역 특례 혜택을 받으면서 몸값 1천억원 시대를 연 것이다.

하지만 트랜스퍼마르크트는 지난 4월 손흥민의 몸값을 6천1백만 유로(약 8백50억원)로 추정했다. 약 20퍼센트나 하락한 것이다. 세계 최고 몸값을 자랑하는 킬리안 음바페도 예외는 아니다. 2억 유로에서 1억 8천만 유로로 몸값이 하락했다. 1억 유로가 넘는 네이마르와 리오넬 메시의 몸값도 나란히 20퍼센트씩 떨어졌다. 국제스포츠연구소는 유럽 5대 리그 선수 가치 총액의 28퍼센트에 해당하는 12조 6천억원이 사라질 것이라는 보고서를 내놓기도 했다.

선수의 몸값이 떨어지면 이 선수를 노리는 구단에서 덥석 영입하면 될 일이지만 문제는 구단에 돈이 없다는 점이다. 선수들의 이적료가 내려가도 데려갈 수 있는 팀이 없다. 당장 FC 바르셀로나와 레알 마드리드가 각각 선수단 임금의 70퍼센트와 20퍼센트를 삭감했을 정도로 구단에는 돈이 없다. 한 달, 한 달이 지날수록 이자를 담당하기가 어려운 공실 오피스텔과 다를 게 없다. 유벤투스도 재정적인 문제를 이유로 최고 연봉자인 크리스티아누 호날두의 매각을 고려 중이지만 그가 매물로 나와도 당장 거액을 들일 구단이 없다.

최근에야 서서히 무관중 경기를 시작했다고는 하지만 이전까지 유럽 축구는 사실상 마비됐다. 선수들의 주급이 지출되는 상황에서 구단들은 관중 수익과 중계권료 수익이 모두 막히고 말았다. 1~2주만 이런 일이 지속되어도 엄청난 손해인데 유럽은 사실상 6개월간 축구를 하지 못했다. 그나마 무관중 경기를 치르며 조금씩 살아나기 위해 발버둥치고 있지만 무관중 경기로 천문학적인 선수들의 급료를 채워줄 수는 없다. 유럽 빅클럽이 지갑을 닫을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빅클럽들이 위축되면 축구 생태계가 파괴된다. 작은 클럽은 중간 규모 클럽에, 중간 규모 클럽은 1부 리그 클럽에 유망한 선수를 팔아 수익을 올리던 생태계는 올여름 큰 혼란에 빠질 것으로 보인다. 빅클럽이 쓰는 수천억 원의 돈이 멈추면서 공존하던 소규모 구단들은 숨도 쉬지 못할 만큼 어려운 시기를 보내고 있다. 대기업이 일을 줄이면 하청업체가 연이어 도산하는 것과 같은 맥락이다. 중소 규모 구단에서는 선수 판매 수익이 구단 운영의 절대적인 비중을 차지했던 터라 그들이 이 생태계에서 살아남기란 더더욱 어려운 상황이다.

축구계에도 ‘할부’가 있다. 이적료가 비싼 선수들을 영입할 때 원소속 팀에 이적료를 분할로 지급하는 경우다. 하지만 코로나19 여파로 축구계 자금이 꽁꽁 얼어 분할 이적료를 지급하지 못하는 일이 생겨날 것이라는 우려가 크다. 이렇게 될 경우 원소속 팀이나 이적료를 지급해야 하는 팀 모두 불어나는 부담을 감당할 수가 없다. 코로나19 여파를 전혀 생각하지 못하고 이적료 분할 지급 조건으로 선수를 영입한 팀의 걱정이 커지고 있다. 선수 주급은 계속 빠져나가고 거기에 이적료까지 분할로 지급해야 하는데 경기장 입장 수익은 못 내는 악순환이다.

이러면서 변화가 생기고 있다. 살 방법을 찾고 있다. 같은 리그에서의 이적이 전보다 더 빈번하게 이뤄지고 있다. K리그도 마찬가지다. 외국인 선수가 K리그에 입단할 경우 2주 동안 자가 격리를 한 뒤 메디컬 테스트도 따로 진행해야 한다. 이후 경기에 투입하기 위해 몸을 만드는 과정까지 고려하면 거의 한 달은 선수를 쓸 수가 없다. 가뜩이나 올 시즌 경기수가 축소된 리그에서 한 달을 기다려주기란 쉽지 않다. 결국 이미 검증된 국내 선수 혹은 국내에서 뛰는 외국인 선수를 영입하는 쪽으로 가닥이 잡히고 있다.

또한 이적료가 없는 베테랑 선수가 인기를 끌고 있다. 원소속 팀에 천문학적인 이적료를 지불하지 않고 즉시 쓸 수 있는 자원을 영입하는 게 현명하다는 판단에서다. 코로나19 여파로 이적 시장은 얼어붙었지만 올여름 계약이 만료되는 에딘손 카바니(33, PSG), 윌리앙(31, 첼시), 다비드 실바(34, 맨시티), 마리오 괴체(28, 도르트문트), 애덤 랄라나(32, 리버풀), 얀 베르통언(33, 토트넘), 조 하트(33, 번리) 등은 여전히 여러 팀에서 러브콜을 받고 있다. 각 구단은 이적료를 지급하지 않고 전력을 수급하기 위해 맞트레이드나 임대를 통한 영입에도 관심을 기울이고 있다.

앞으로는 베팅 업체가 축구계에서 더 큰 영향력을 끼칠 가능성도 높다. 코로나19 여파와 별개로 잉글랜드 프로축구 1부 리그에서 4부 리그까지 92팀 중 65팀은 적자를 보고 있었다. 그러면서 신성시 되던 축구에 베팅 업체가 광고를 하는 시대가 됐다. 적지 않은 축구팀이 베팅 업체와 손을 잡았다. 잉글랜드의 프리미어리그와 챔피언십 44팀 중 61퍼센트에 해당하는 27팀이 베팅 업체에 유니폼 후원을 받고 있다. 그나마 ‘돈줄’이 되는 베팅 업체가 거대한 축구 시장의 주류로 자리매김할 가능성이 커지고 있다.

아마도 이런 현상은 팬데믹 이후에도 축구계의 흐름이 될 것으로 보인다. 코로나19 여파를 이겨내기 위해서는 오랜 시간이 필요하고, 그러려면 결국 구단들은 지갑을 닫은 채 얼마나 버티느냐, 혹은 돈을 적게 쓰고 얼마냐 전력을 끌어올리느냐를 고민해야 하기 때문이다. FIFA도 샐러리캡, 이적료 상한제 도입 등을 검토하는 등 구단 간의 과열된 경쟁을 자제시키기 위한 방안을 마련하고 있다. 코로나19 이후 팬데믹은 막을 수 없는 현상이 됐다. 이제는 이 어쩔 수 없는 흐름을 받아들이고 현명한 선택을 하는 팀이 승자가 될 수 있다. 글 / 김현회(스포츠 칼럼니스트)

    피쳐 에디터
    김영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