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ULTURE

우석훈의 책무

2011.03.03GQ

우석훈에게 <88만원 세대>는 원죄다. 문제를 제기한 자로서 답을 찾아야 할 의무도 짊어졌다. 우린 우석훈의 답을 애타게 기다리고 있다.

오후 2시에 일어난다고.
보통 아침에 잠든다. 2시 정도에 일어나서 급한 사무들을 보고, 저녁엔 술을 마시거나 사람들을 만나고 다시 책을 읽고 글을 쓰면 아침이다. 그렇게 산다.

요즘은 무슨 책을 쓰고 있나?
<문화경제학>이란 책이다. 문화 산업 종사자들에 대한 책이라고 할 수 있다. 얼마 전에 돌아가신 고 최고은 시나리오 작가 이야기를 듣고 많은 생각을 했다. 마침 내가 그 분야에 관련된 책을 쓰고 있었기 때문에 말미에 최 작가님에 대한 생각을 써넣을까 하다가 말았다.

왜 문화경제학인가?
지금 20대와 30대가 가장 일하고 싶어 하는 분야가 문화 산업이 아닌가 싶어서다. 정부나 대기업 일자리는 한계가 있다. 아무리 늘려도 취업 희망자들을 모두 감당할 수 없다. 경제적으로 취약한 20대와 30대 구직자들이 문화와 서비스 분야에서 일자리를 찾으려면 어떤 구조적인 문제들을 해결해야 하는지 살펴보고 싶었다.

결국 <88만원 세대>의 각론이거나 해법이라고 할 수 있겠다.
원죄이자 책무라고 생각한다. 나 같은 학자가 할 일은 답을 찾는 것이다. 실행으로 옮기는 일은 행동가들의 몫일 거다. 나 역시 잠시 행동가의 영역에서 활동한 적이 있다. 녹색당을 만들어 정치에 몸담았는데 잘 되지 않았다. 정치는 안 맞는다. 현장 싸움은 다른 사람들의 몫이더라. 정치가나 기자들 말이다. 대신 학자로서 내가 할 일을 해내고 싶었다.

그래서 이번엔 해법에 조금이라도 다가섰나?
문화 산업 쪽 일자리도 2003년을 정점으로 조금씩 줄어들고 있다. 스포츠나 영화도 마찬가지다. 문화 산업 자체의 활기가 줄어든 탓도 있겠지만 토건 같은 경쟁 경제 분야에서 돈을 빨아들이고 있기 때문이다. 문화 산업 역시 열정 착취 산업이 된 지 오래다. 고 최고은 작가의 경우가 대표적일 거다. 해결해야 할 일이 많다.

왜 20대와 30대가 먹고사는 이야기에 관심을 갖게 됐나? 당신은 경제학자다. 경제 공부하면 부자가 되거나 출세를 하고 싶어하는 게 보통이다.
난, 이미 누릴만한 영광은 다 누리고 살았다. 현대그룹에 입사해서 월급도 꽤 받고 직장 생활을 했다. 한때 오디오 취미도 있었다. 돈 잡아먹는 취미다. 그래서 요즘은 아내한테 카메라 하나 사달라고 졸라도 들어주질 않는 모양이다.

얼마나 벌었기에 다 누렸나?
그냥 남부럽지 않게 살았다. 남들보다 일찍 집도 샀으니까. 내가 원래 생태경제학 전공자다. 말 못하는 짐승 녀석들과 인간이 어떻게 하면 잘 어우러져 살 수 있는지 고민하는 학문이다. 문득 생각했다. 사람들 중에도 말 못하는 존재들이 있더라. 20대들이었다. 그들은 자신의 경제적 주권을 빼앗긴 채 앞선 세대한테 착취 당하면서 살고 있었다. 경제를 공부한 내가 그들을 위해 뭘 해줄 수 있을지 고민하게 됐다.

얼마 전 TV에서 박경철 원장과 안철수 의장이 김제동 씨에게 했던 말이 생각난다. “젊은 친구들한테 맨 먼저 해주고 싶은 말은 미안하다는 말”이라고 했다.
나 역시 같은 미안함에서 출발했다. 그렇게 <88만원 세대>를 썼는데 이젠 그 책이 제시한 문제들을 해결해야 하는 원죄를 떠안게 됐다. 사실 20대의 문제가 정권을 바꾸면 해결되느냐 하면 그건 또 아니다. 구조적인 문제이기 때문이다. 난 학자로서 한국 사회에 새로운 설계도를 제시하고 지금의 모순을 완화시킬 방법을 연구해야 할 의무가 있다.

하지만 20대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선 정치가 더 필요한지도 모른다. 일본 젊은이들이 무기력해진 건 경제 구조가 왜곡된 상태에서 정치적 야심까지 거세됐기 때문일 거다. 경제를 바꾸려면 정치 권력을 얻어야 한다.
한국 정치에서도 20대는 과소 대표돼 있고 40대 이후는 과잉 대표돼 있다. 나 역시 20대들한테 말해주고 싶다. 돈에 힘이 따라가는 게 아니라 힘에 돈이 따라붙는 거라고. 자신들의 경제적 이해를 관철시키려면 정치적 목소리를 더 키워야 한다.

문제는 한국의 20대들도 점차 정치적 의식을 갖기보단 경제적 이익에만 매달리기 시작했다는 점이다. 취직 준비에 매달리고 금융 투자에 관심을 갖는다. 젊은이들의 관심사는 온통 경제로만 쏠려 있다. 거기엔 그들한테 돌아갈 돈이 없는데 말이다.
대기업 들어가는 길은 빤히 정해져 있는데 국회의원 되는 길은 눈에 보이지 않아서가 아닐까. 국회의원이 되는 거나 대기업에 들어가는 거나 진입 장벽이 높긴 마찬가지다. 그런데 한국에선 국회의원이 되는 건 너무 어려운 일처럼 얘기하고 대기업 사원이 되려면 무슨 책을 보고 어떤 언어를 공부해야 하는지는 친절하게 알려준다. 만약 다음 번 총선에서 20대 비례대표라도 나온다면 생각들이 좀 달라질까.

한국 사회가 20대와 30대를 어린아이 취급하는 게 문제일 수도 있다. 40대 이상 세대들이 자기들을 위해 젊은 세대들의 야심을 꺾어버리곤 한다.
예수가 그 모든 기적을 다 행하고 돌아가신 나이가 33세다.

20대와 30대의 진취성이 사라지면서 경제의 역동성도 없어져버렸다.
한때 한국에서도 벤처 붐이란 게 있었지만 지금은 조짐조차 없다. 진화라는 건 돌연변이가 등장하면서 시작된다. 한국 사회는 20대에 돌연변이가 생겨나지 않은 지 오래됐다. 모두가 똑같은 존재들만 복제되고 있다. 젊은 세대 안에서의 질투도 한몫한다고 본다. 자신들의 영웅을 만들 생각을 하지 않고 그들을 질투한다. 앞선 세대가 자기 세대의 영웅을 죽이는 걸 보고만 있는 거다.

일찍부터 경쟁에 노출된 탓은 아닐까. 개인 아니면 모두가 경쟁자라는 인식 때문에 연대가 되지 않는 거다.
과도한 경쟁 의식도 일부 작용한다고 본다. 거기에 한국 사회의 구조적인 모순과 앞선 세대의 이기심이 결합되면 젊은 세대의 착취 구조가 만들어지는 거다.

얼마 전에 한 경제지에서 ‘X+세대’라는 걸 들고 나왔다. 1970년대생으로 1990년대 학번인 사람들 얘기다. 20대 땐 X세대라고 불렸던 그들이 이제 30대 중반을 넘어서면서 사회적 중추로 떠오르자 다시 X+세대라는 이름으로 정의해버리더라. 세대론의 무서운 점은 언어로 규정지어버린다는 것이다. 그런 식으로 새로운 세대를 규정해서 결국 기존 체제에 포섭해버리는 효과를 낳는다. 88만원 세대라는 이름도 그런 부정적인 영향이 있지 않았을까.
‘네이밍’의 부정적인 부분이다. 나 역시 88만원 세대라는 언어의 틀을 만든 이후론 끊임없이 그 틀을 부수는 작업을 하고 있는 건지도 모르겠다. 20대와 30대들도 마찬가지일 거다. 88만원 세대라는 이름을 떠올릴 무렵 이탈리아에서 1000유로 세대가 등장했다. 그런데 1000유로 세대는 이탈리아 청년들이 스스로 지은 이름이다. 누군가 붙여준 게 아니다. 한국의 청년들은 자신들의 이름조차 스스로 짓지 못했단 얘기다. 언론들은 지금도 자기들 멋대로 이름 붙인다. 그 안에 가둬버리려는 거다.

88만원 세대는 우석훈이란 경제학자에게 영원한 숙제다.
때가 되면 <88만원 세대>로 벌어들인 인세는 적절한 방식으로 20대들한테 돌려줄 생각이다. 그 책으로 돈을 벌고 싶진 않다. 나마저 20대들을 착취하면서 살 수는 없지 않나.

2.1 연구소의 소장으로 일하고 있다. 소장님이라고 불러야 하나?
이계안 전 의원과의 개인적 인연으로 시작하게 됐다. 한국의 출산율이 2.1명이 될 수 있게 하려면 어떤 사회를 만들어야 하는지를 연구한다.

대안 연구소가 더 필요하단 생각이 든다. 경제 관련 민간 연구소들은 한 줌밖에 안 된다. 나오는 통계 자료들도 천편일률적인 경우가 많다. 경제 연구소가 민간 싱크 탱크 역할을 해줘야 한다. 같은 생각들이 모여서 체계를 만들어내려면 꼭 필요한 과정일 거다.
솔직히 사람이 없다. 한국 사회에서 경제를 공부하면 먹고살 수는 있다. 다들 민간 연구소 연구원보단 대학교나 대기업 쪽으로 가려고 하기 때문에 같이 일할 사람들을 구하기가 어렵다. 국책 연구소마저 지방으로 이전하면서 연구원들을 놓쳐서 안달하는 판국이니까. 예전엔 기아경제연구소처럼 꽤 괜찮은 민간 연구기관들이 많았다. 아쉬운 일이다.

청년들이 흔히 기업가 정신을 가져야 한다고 말한다. 모두가 대기업이나 공무원만 바라본다. 그렇다고 창업을 하라고 무작정 내몰 수도 없는 노릇이다.
정책적 뒷받침이 있어야 벤처 생태계란 것도 만들어질 수 있다. 정부가 아파트 생태계에만 관심을 갖기 때문에 젊은이들이 일할 새로운 경제 생태계가 나타나지 않는 거다. 그러다 보니 젊은이들이 결혼도 하지 않고 집에서 고양이 한 마리 키우면서 혼자 살게 되고, 결국 출산율이 떨어지는 악순환이 되고 있다.

우석훈의 화두는 결국 돈인가? 이계안 의원과의 대화에서도 흥미로운 대목이 있었다. “돈이 얼마든지 나눠질 수 있기 때문에 얼마든지 협상할 수 있다.”
나 역시 돈이 어디에서 어디로 가느냐에 관심이 많다. 돈은 보편의 용어이면서 치사한 용어다.

그런데 왜 돈을 안 벌려고 하나.
요즘 모두의 관심사는 노동이 아니라 금융으로 돈을 버는 방법이다. 경제로 사기 치고 싶지 않다. 경제라는 건 사기는 사기인데 사기 친 사람이 없는 사기판이다. 나는 경제에서 더 이상 사기 당하는 사람이 없게 되길 바란다. 그러면 돈 따는 사람도 없겠지만.

역사상 많은 지식인이 자본주의와 불화를 겪었다. 문학가들은 자본주의를 떠나려고 했고 경제학자들은 자본주의의 대안을 만들려 애썼다. 자본주의를 고쳐보겠다고 나선 사람들도 있었다. 하지만 자본주의가 문제라고 한 사람도 결국 자본주의로 돈을 번 게 아닌가? 반자본주의도 돈이 된다.
나는 자본주의가 인류 역사상 마지막 체제가 될 거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돈은 결코 인간한테 행복을 주지 못한다. 돈이 더 있으면 행복할 거라고 믿게 만드는 체제가 자본주의다. 중국과 인도가 자본주의를 받아들였다고 해서 더 행복한 나라가 됐나? 복지 사회는 돈이 많고 적고로 결정되는 게 아니다. 한국은 이미 영미식 자본주의로 흘러갔다. 하지만 이제라도 돌이킬 수 있다. 시행착오라고 생각하면 된다. 미국에서도 뉴욕 모델이나 워싱턴 모델만 있는 게 아니라 복지와 성장을 둘 다 챙기는 중서부 모델도 있다. 다만 우리 세대는 자본주의의 방향성에 대해 치열한 논쟁을 벌일 뿐 복지 사회의 혜택을 제대로 누릴 순 없을 거다. 그 논쟁의 성과를 다음 세대가 누릴 수 있길 바랄 뿐이다.

    에디터
    신기주(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