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기에 손석희가 있었다. JTBC <뉴스룸>은 저녁 8시부터 100분 동안이다.
4월 22일 JTBC <뉴스 9>에서, 그는 “사고 엿새째입니다”라는 말로 뉴스를 열었다. 이후에도 날짜를 헤아리는 방식의 오프닝은 한동안 이어졌다. 이어 말했다. “오늘 저희들은 사고의 초기로 되돌아가겠습니다. 사고 전후에 대체 어떤 일이 있었고 어떻게 대응했는지를 알지 못한다면 이 참사와 관련된 그 어떤 것도, 한 걸음도 나아갈 수가 없기 때문입니다.” 정론이었다. 그들은 그야말로 꾸준히, 누군가는 ‘지쳤다’고 말할 정도로 세월호 참사에 신중하고 끈질기게 접근했다. 이날은 세월호 유족 김중열 씨와의 인터뷰가 예정돼 있었던 날이기도 했다. 손석희가 말했다. “김중열 씨의 따님이, 시신이 발견돼서 연결을 못하게 됐습니다. 시청자 여러분께 말씀을 드리고 다음 순서로 넘어가겠습니다.” 문장 사이사이의 머뭇거림, 뭔가 꾹 삼키려고 애쓰는 게 분명했던 목소리. 그는 앵커석에서 참아냈고, 덕분에 그 모습을 본 우리 모두가 그를 대신해 조금 더 울 수 있었던 날이었다.
세월호 참사를 다루는 손석희와 당시 <뉴스 9>의 자세는 거의 유일하게 여겨질 만큼 침착했다. 예의와 뜨거움 또한 잃지 않았다. 리포팅을 하는 모든 기자의 눈빛에는 다른 어떤 뉴스에서도 볼 수 없는 결기가 있었다. ‘과연 진짜 기자들이 저기 있구나’ 무턱대고 믿고 싶을 만큼. <중앙일보>와의 인터뷰에서 손석희는 이렇게 말했다. “우리 기자들은 최고다. 립서비스가 아니라 진심이다. 밖에는 나만 부각되곤 하는데 우리 기자들의 열정이 없다면 불가능한 일이다. 단독 취재가 부쩍 늘었고, 생방송 리포팅도 어느 방송사보다 뛰어나다고 생각한다. 내가 그럴 필요 없다고 하는데도 대부분의 기자들이 생방송 리포팅을 전부 외워서 한다. 잘해보겠다는 마음이 없으면 안 되는 일이다.”
<시사IN>은 2014년 언론 분야 신뢰도 조사 결과를 ‘JTBC의 그랜드슬램’이라고 썼다. JTBC는 가장 신뢰하는 매체 2위였다. 가장 신뢰하는 프로그램에선 KBS <뉴스 9>와 함께 1위였다. 손석희 개인은 가장 신뢰하는 언론인 1위, 작년에 이어 두 해째였다. 올 4월 16일 세월호 참사를 둘러싸고 대중의 언론에 대한 실망, 좌절, 환멸이 그 어느 때보다 깊을 때, 그 매캐하고 좁은 틈 사이로 손석희와 <뉴스 9>는 과연 언론으로서, 그들이 할 수 있는 최선을 보여주었다. 이 수치들은 그들이 있어서 참 다행이었다는, 모두의 마음이 응축된 결과 아닐까?
<뉴스 9>에서 <뉴스룸>으로 이름을 바꾸고 시간을 늘린 지금도 달라진 건 없다. 다만 시청자 입장에서, 우리가 더 다채롭고 깊은 뉴스와 진짜 인터뷰를 볼 수 있다는 호사를 누릴 수 있게 됐을 뿐. 이젠 JTBC <뉴스룸>이 보도하는 모든 꼭지는 오늘을 살아내기 위해, 또 내일을 버티기 위해서도 반드시 알아야 하는 상식 같다. 뉴스를 배치하는 순서, 리포팅과 리포팅 사이의 멘트, 오프닝부터 클로징까지 그들이 준비하는 모든 순간에는 다만 언론으로서 지켜야 하고 시민으로서 해석해야 하는 섬세한 결이 있다는 것 또한 이제는 안다. “우리 모토는 건강한 시민사회 편에 서자는 것이다. 건강한 시민사회란 내가 생각하기에 극단적이 아닌 합리적 사고로 여론을 형성할 수 있는 집단을 말한다.” 같은 인터뷰에서, 손석희가 한 말이다.
‘다사다난’이라 하기에는 지나치게 슬펐고 ‘가까스로’라 하기에는 너무 빨리 지나간 한 해였다. 모든 말과 글이 무력하게 느껴지는 순간마다, 오로지 사실만이 판단의 근거로서 자격이 있다는 깨끗한 명제를 <뉴스룸>을 통해 떠올릴 수 있었다. 한 해 동안 우리 모두는 손석희와 JTBC 기자들이 꾸린 <뉴스룸>에 참 많은 걸 받았고 또 의지했다. 덕분에 조금 더 맑은 시야로 세상을 볼 수 있었다. “내일도 저희들은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매일 밤 <뉴스룸>은 이 말과 함께 끝난다. “진실을 말하겠습니다. 치우치지 않겠습니다. 귀담아 듣겠습니다. 그리고 당신 편에 서겠습니다.” JTBC 홈페이지에 있는 손석희 앵커 페이지에는 이렇게 쓰여 있다. 지금까지 흔들림 없이 지켜왔기 때문에 앞으로도 믿을 수 있는 말, 누군가 우리 편에 서 있다는 말이 유난히 고마운 한 해였다.
- 에디터
- 정우성
- 포토그래퍼
- 이희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