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밀의 숲> 시즌 2와 <악의 꽃>을 나란히 시청하면 새로운 재미가 보인다. 일단 감정을 전혀 느끼지 못하는 주인공이 나온다는 점에 초점을 맞춰본다.
“넌 아주 잘 드는 칼이야. 이가 나가도록 휘두르고 끝나면 위험한 물건이라고 도로 서랍에 처박힌다.” tvN <비밀의 숲> 시즌 2에서 동부지검장 강원철(박성근)은 시즌 1 당시에 자신을 궁지까지 몰아넣었던 후배 검사 황시목(조승우)에게 이렇게 말했다. 대사는 아주 날카롭고, 이를 말하는 강원철은 차분한 것처럼 보이지만 황시목을 두려워하고 있다는 사실이 드러날 정도로 긴장한 티가 역력하다. 하지만 정작 화를 내거나 인상이라도 써야 할 황시목은 이런 이야기를 듣고도 아무런 반응을 보이지 않는다. 그는 여전히 감정을 느끼지 못하는 사람이다.
“난 그런 마음 몰라.” 아내 차지원(문채원)을 사랑하냐는 누나의 물음에 백희성이라는 신분으로 살아가고 있는 도현수(이준기)는 답한다. 연쇄 살인범의 아들이자, 감정을 전혀 느끼지 못하는 반사회적 인격장애를 지닌 사람인 그는 종종 감정 변화를 표현하는 방법을 알려주는 유튜브를 보며 인간의 표정을 익히는 모습을 보여준다. 상대가 어떤 생각을 하는지 관심을 두지 않고, 직선적으로 행동하는 황시목과 달리 도현수는 자신의 원래 신분을 숨기기 위해 끊임없이 사회 안에서 적응하려는 노력을 해야 한다. 그리고 그는 조금씩 감정을 느끼는 사람으로 변해간다.
두 인물은 모두 감정을 느끼지 못한다는 점에서 같지만, 사회적 낙인으로 고통스러운 성장기를 겪은 도현수와 엘리트 검사의 길을 걸으며 타인의 눈치를 보지 않는 황시목의 인생은 다르다. 그렇다 보니 이 두 사람이 당면한 문제와 문제를 풀어가는 방식도 다를 수밖에 없다. 도현수가 자신의 과거를 알고 있는 친구를 감금하고 협박하면서도 눈 하나 깜짝하지 않는다면, 황시목은 상사가 시키는 일을 유능하게 해내고, 술자리에서 “막내가 먼저 가는 걸 못봤다”고 말하는 부장검사에게 “예”라고 한 다음 망설임 없이 뒤돌아설 수 있다.
황시목이 엘리트라는 점, 그가 속한 곳이 검찰청이라는 한국 최고의 권력기관 중 하나라는 사실은 그가 변하지 않아도 되는 이유를 설득한다. 반면에 처음으로 지키고 싶은 것이 생겼다며 가족 이야기가 나오면 미묘하게 웃음을 짓는 도현수의 삶은 어떤 권력도 누릴 수 없는 평범한 사람의 현실로 다가오며 그의 변화를 납득시킨다. 마치 변하지 않아도 되는 삶을 사는 제1세계 1%의 사람과 변화하지 않으면 살아갈 수 없는, 즉 손에 쥔 자본이 없다는 이유로 힘과 애정을 공유하지 않고는 살아갈 수 없는 제3세계 생존자의 이야기를 보는 듯하다. 어떤 사람은 변화할지 말지를 선택할 수 있지만, 어떤 사람은 선택할 수 없는 현실에 놓여있다.
<비밀의 숲> 시즌 2는 황시목의 불행을 그의 직업에 어울리는 이점으로 승화시킬 수 있다. 하지만 <악의 꽃> 속 도현수의 불행은 그저 불행에 지나지 않는다. 이처럼 계급의 간극을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황시목과 도현수는 공교롭게도 모두 같은 채널인 tvN에서 탄생한 인물이다. 이 두 편의 드라마는 지금 이 시대를 반영하는 트렌디 드라마가 지닌 동시대성을 공유하면서도 같은 시대에 같은 장애를 겪는 두 주인공의 불행을 각각 다른 방식으로 전시한다. 그리고 이 점을 깨닫는 순간, 세상의 주류와 비주류를 나누는 경계는 매우 뚜렷해진다. 어떤 시청자는 같은 소재를 다룬 두 개의 작품 안에서 어느 주인공이 사는 삶이 더 나와 가까운지, 더 정의로운 세계에 가까운지 고민하게 될 것이다. 2020년에도 분리된 삶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인정하면서.
- 에디터
- 글 / 박희아(대중문화 저널리스트)
- 사진
- tv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