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매일 노상호는 다른 곳을 탐험한다.
SNS에 쏟아지는 이미지들을 수집한 뒤 재조합, 재생산하는 작업을 이어오고 있다. 이미지 선택의 기준은 뭔가? 보통은 인물이 포함된 이미지에 끌리고, 작업 당시의 관심사가 반영되기도 한다. 최근에는 3D 그래픽 이미지, 짤방, 패션 화보, 앨범 재킷을 많이 본다.
아뜰리에 에르메스의 그룹전 <다른 곳 Elsewhere>에 참여했다. ‘다른 곳’이라는 단어를 맞닥뜨렸을 때 무엇이 떠올랐나? 내 작업 방식과 연결해 생각했다. 이미지를 건져내는 웹 가상 공간 자체가 ‘다른 곳’이며, 수집한 이미지들을 조합해 생산한 이미지가 또 ‘다른 곳’을 형성하기도 한다.
출품작들에서 수많은 이미지가 서로 연관되고 충돌하며 구현하는 세계는 어떤 곳을 은유하나? 이번 작업은 지난 1월부터 8월까지 내 SNS 피드에 대한 총합이며 ‘나’라는 필터를 거친 결과물이다. 어떤 세계를 뚜렷하게 구현하기보다 매일 반복해서 본 이미지들에 즉각적으로 반응하며 드로잉 작업을 이어왔다.
매일 한 장 분량을 그리고 이야기를 짓는 ‘데일리 픽션’ 작업으로 유명하다. 이를 기반으로 어떻게 진화해왔다고 생각하나? 나 자신에 대해 “이미지가 소비되고 파편화되는 것. 그리고 그 이미지가 가상 환경 속에서 어떻게 살아남는지에 대해 주목한다”라고 자주 표현한다. 이 문장을 바탕으로 작업이 바뀌었다. 초창기에는 내러티브적 요소에 집중했다면 요즘은 보고 듣는 것의 환경과 변화하는 감각에 관심이 많다. 작업 주제에서 이야기를 짓는 과정이 중요하지 않게 됐다. 하루 한 편의 이야기와 드로잉에서 하나의 드로잉과 제목으로, 그리고 하나의 드로잉과 이를 기록하기 위한 숫자 파일명으로 작업 형태를 줄여갔다.
심리적으로나 물리적으로나 불안한 시대다. 팬데믹이 작업에 미친 영향이 있을까? 그동안 내가 폐쇄적으로 살았다는 걸 깨달았다. 팬데믹 후에도 내 생활은 별반 달라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작업에는 변화가 생겼다. 올해 그린 그림들에는 불, 폭발 장면 등 재난 이미지가 빈번하게 등장한다. 의도한 건 아니다. 최근 SNS 피드에 그런 이미지가 많아지다 보니 자연스럽게 작업에 반영됐다.
전시에 무채색의 회화 작업을 처음 선보이기도 했다. ‘다른(Else)’이라는 단어의 의미를 구현한 것이다. 내 그림은 색이 다양하고 화려한 편인데 색을 빼면 어떻게 될지 궁금했다.
‘다른 곳’을 향한 시선은 현실을 직시하고, 더 나아지길 바라는 태도를 반영하기도 한다. 현실이 만족스러울 때는 언제인가? 스스로 독립적이라고 느낄 때 그런 만족감이 든다. 경제적으로나 정신적으로. 이를 테면 새로운 작업물을 선보이면서 다른 사람의 의견이 궁금하지 않을 때, 남들로부터 자유로워지고 스스로 좀 더 독립적인 사람이 됐다고 느낀다.
자신에게 ‘다른 곳’이라 할 수 있는 곳은 어디인가? 아버지께서 여행을 좋아하지 않지만 여행 프로그램을 즐겨 보신다. 그 이유를 물었더니 “TV만 봐도 다 경험할 수 있는데 뭘 힘들게 여행을 가냐”고 하셨다. 마침 이름 모를 과일을 먹는 장면이 나오길래 저 맛은 알 수 없지 않냐고 되물었다. 아버지께서는 “그런 게 어딨어. 다 있는 맛이지. 저건 사과랑 배의 중간쯤 될 것 같은데?”라고 농을 건네셨다. 세상에는 내가 경험하지 못한 곳이 존재하지만 이런 느낌이 든다. ‘왠지 이런 거겠지. 이런 거 아닐까?’ 그래서 특별히 다르지 않다고 느끼는 모든 곳을 ‘다른 곳’이라 여긴다. ‘다른 것’도 마찬가지다. 그게 어디든, 어떤 것이든 사과와 배의 중간쯤 되는 그냥 그런 거라 할 수 있다.
- 피쳐 에디터
- 김영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