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고 작은 충돌, 이별 통보, 재결합. 전 세계 축구판을 요동치게 만든 리오넬 메시와 FC 바르셀로나의 작별은 잠시 늦춰졌을 뿐이다.
FC 바르셀로나는 전 세계 축구를 상징하는 구단이다. 그리고 그 중심에는 리오넬 메시가 있다. 메시는 세계에서 가장 보편적인 종목인 축구에서 신이라는 칭호를 얻고 있다. 2010년대 바르 셀로나의 ‘티키타카’는 세계 축구의 트렌드를 선도했고 그 핵심에는 메시가 있었다. 하지만 지난 8월 충격적인 일이 벌어졌다. 축구의 상징과도 같던 바르셀로나와 메시 사이에 균열이 생기기 시작했고, 그들은 믿을 수 없는 패배를 당했다. 바르셀로나는 유럽축구연맹 챔피언스리그 8강전에서 바이에른 뮌헨에 2-8로 완패했다. 세계 축구 역사에 남을 대패였다. 여파는 경기 후 점점 커졌다. 이 패배로 경질된 키케 세티엔 감독을 대신해 새로 선임된 로날드 쿠만 감독과 메시가 면담까지 했는데, 쿠만 감독이 이 자리에서 메시에게 “특권은 없다”고 말하면서 결정적으로 서로 등을 돌렸다. 메시는 “바르셀로나에서는 내 미래가 보이지 않는다”고 결별을 예고했다. 메시는 바르셀로나의 상징과도 같은 선수다. 20년간 바르셀로나에서만 뛰며 발롱도르 6회, 34번의 우승 등 전무후무한 업적을 쌓은 그는 ‘전설’이 됐다. 메시가 직접 결별을 요구했다는 소식 하나만으로도 유럽 축구 시장은 크게 요동쳤고 자금력 있는 몇몇 부자 구단은 발 빠르게 메시 측과 접촉하며 영입을 노렸다. 바이에른 뮌헨전 대패는 마치 한 시대의 종말을 알리는 듯한 한판이었다. 메시가 더 이상 바르셀로나 유니폼을 입고 그라운드를 누비는 모습을 볼 수 없을 것이라는 전망이 이어졌다.
가장 먼저 메시와 바르셀로나가 왜 틀어졌는지에 대해서 알아야 과거와 현재, 미래를 알 수 있다. 메시는 최근 감독 선임부터 전력 보강까지 구단 수뇌부와 크고 작은 충돌이 있었다. 세티엔 전 감독과는 여러 가지 문제로 뜻이 맞지 않는 모습을 보였다. 더 과거로 돌아가면 메시가 바르셀로나에서 스스로의 한계를 느꼈다고 봐야 한다. 바르셀로나는 메시와 함께 전성기를 누린 사비 에르난데스와 안드레스 이니에스타가 떠난 뒤 메시 의존증이 극심해졌다. 메시가 바르셀로나에서 절대적인 존재였던 건 맞지만 주축 선수들이 떠난 뒤 메시에 기대하는 바가 더 커졌다. 물론 메시는 스스로 팀을 이끌어 나가며 이런 기대에 부응했다. 하지만 메시는 최전방에서 공격에만 집중하는 게 아니라 후방까지 내려와 직접 공을 받아 움직여야 했다. 네이마르가 떠난 뒤에는 거액의 이적료를 들여 영입한 필리페 코티뉴, 우스만 뎀벨레, 앙투안 그리즈만 등이 모두 적응 실패와 부상 등으로 제몫을 하지 못하고 있다. 2008-2009 시즌 사비, 이니에스타, 세르히오 부스케츠 등과 트레블을 기록하면서 세계 최강의 팀으로 떠오른 시기와 비교하면 메시가 너무 많은 역할을 해야 한다. 메시에게 바르셀로나라는 팀에 대한 충성심은 있지만 그도 이 팀에서 지쳐갔다.
이런 가운데 세티엔 감독과 의견 충돌이 잦아졌고 바이에른 뮌헨전 대패는 큰 상처로 다가왔다. 여기에 새로 부임한 쿠만 감독은 본인의 철학과 맞지 않는 선수들은 단칼에 쳐내는 스타일이다. 그는 2007년 스페인 발렌시아 감독에 부임한 뒤 주장 다비드 알벨다, 주전 골키퍼 산티아고 카니사레스, 미드필더 미겔 앙헬 앙굴로의 방출을 선언했다. 이들은 발렌시아에서 10년 가까이 팀의 중심이었다. 물론 이후 선수단 분위기가 무너졌고 쿠만 감독은 부임 6개월 만에 경질됐다. 쿠만 감독이 메시와의 면담 자리에서 “특권은 없다”고 선을 그은 건 사실상 메시 위주로 돌아가는 바르셀로나의 체질을 바꾸겠다는 것이었다. 당연히 20년 동안 바르셀로나에 헌신한 메시의 입장에선 기분이 나쁜 정도를 넘어 형용하기 어려운 감정이 들었을 것이다. 지금의 바르셀로나를 만들어온 메시로서는 쿠만 감독이 이끄는 바르셀로나에서 함께하는 걸 받아들일 수 없었을 것이다. 메시가 “바르셀로나에서는 내 미래가 보이지 않는다”고 말한 건 이 모든 상황을 돌이켜봤을 때 어느 정도 수긍이 가는 말이다. 또 큰 틀의 체질 개선이 필요한 상황에서 ‘메시 의존증’을 버려야 한다는 쿠만 감독의 입장도 이해 못하는 바는 아니다.
메시의 이적은 잠시 뒤로 미뤄졌다. 이적이 ‘취소’된 게 아니라 ‘보류’됐다고 하는 게 맞는 표현일 것이다. 2021년 바르셀로나와 계약이 만료되는 메시는 “매 시즌이 끝난 뒤 10일 이내에 자신이 이적에 대한 뜻을 밝히면 팀을 떠날 수 있다”는 조항을 내세워 7억 유로(약 9천8백30억원)의 바이아웃(최소 이적료) 없이 떠나겠다고 주장했지만 바르셀로나의 입장은 달랐다. 일반적으로 시즌이 종료되는 6월이 지났기에 이 조항은 효력이 상실됐다는 주장을 내세웠다. 메시 측은 2019-2020 시즌은 코로나19 여파로 일반 시즌과 다르게 진행됐기에 조항을 발동하는 데 문제가 없다고 맞섰다. 그러다가 결국 메시가 한발 물러났다. 메시는 지난 9월 5일 “구단은 바이아웃 제안이 있어야 나를 보내겠다는 입장이다. 이는 사실상 불가능하기 때문에 바르셀로나에 남기로 했다”며, “법정 분쟁까지 갈 수 있었지만 바르셀로나는 나에게 모든 것을 줬다. 나 역시 바르셀로나에 모든 것을 줬다. 바르셀로나와 법정까지 갈 생각은 없다”며 잔류를 결정했다. 메시는 법적 다툼을 피해 계약기간을 다 채운 뒤 자유롭게 이적하는 쪽으로 생각을 굳혔다. 바르셀로나는 메시를 억지로 눌러 앉혔고 메시는 ‘굳이 이적에 힘 빼지 말고 계약이 끝날 때까지 기다리자’고 생각한 것이다.
메시가 자유의 몸이 된다면 이적에 가장 큰 걸림돌인 거액의 이적료는 사라진다. 메시와 충돌한 주제프 바르토메우 바르셀로나 회장은 계속 직책을 유지하고 있는 가운데 내년 3월에야 다음 회장 선거가 열린다. 바르토메우 회장이 사임하지 않으면 메시의 잔류 가능성도 극히 낮다. 바르셀로나가 할 수 있는 선택은 많지 않다. 내년 1월 겨울 이적 시장에서 이적료를 받고 메시를 팔지 않으면 여름에는 이적료 없이 메시를 떠나보내야 한다. 아니면 메시의 마음을 돌려 재계약하는 방안도 있지만 이는 현재 메시의 상황에서 현실적이지 않다. 메시와 바르셀로나의 작별 시기는 잠시 늦춰졌다. 메시를 노리는 구단들도 잠시 숨고르기에 들어갔다. 더군다나 메시가 내년 7월 FA 자격을 얻으면 다른 팀은 메시 영입 부담이 한결 줄어든다. 유럽축구연맹은 클럽 재무 관리기구의 조사에 따라 구단의 수익과 지출을 관리한다. 번 돈만큼만 쓸 수 있도록 강제하는 이 규정을 재정적 페어플레이 (FFP)라고 한다. 토트넘의 조세 모리뉴 감독은 메시 영입 의사를 묻는 질문에 “메시는 오직 FFP 규정을 지키지 않는 팀에만 갈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토트넘은 확실히 아니다”라는 말을 하기도 했다. 이적료가 붙어 있는 메시는 FFP 규정을 위반하지 않고는 데려갈 수 없지만 이적료가 없어 지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다들 내년 7월 FA가 되는 메시를 기다리고 있다. 울며 겨자 먹기로 바르셀로나에 잔류하게 된 메시는 이제 바르셀로나 구단과 1년간 불편한 동행을 할 예정이다. 감정적으로 당장의 법적 분쟁을 피한 메시에게 더 유리한 상황이다. 내년 여름이 되면 다시 한번 전 세계 축구계가 들썩일 것이다. 바르셀로나는 올 시즌 메시가 떠나는 건 막았지만 ‘포스트 메시’ 시대를 일찌감치 준비해야 한다. 그들이 메시의 마음을 돌리는 건 어려운 일이다. 팀의 상징과도 같은 메시가 떠난 다면 바르셀로나는 기나긴 추락을 경험할 수도 있다. 글 / 김현회(스포츠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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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영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