곧 명절이다. 결혼, 취업, 재테크 등 명절마다 지긋지긋하게 듣는 잔소리가 벌써부터 걱정이라고? 제일 지겨운 잔소리가 대체 뭔지, 어떻게 대처하는지 20-30대 남자들에게 물었다.
“결혼 언제 하니?”
외동아들인 내가 30대가 된 이후 명절마다 부모님께 듣는 잔소리는 “결혼은 언제 하니?” 였다. 엄마는 계속해서 직접 이야기하기가 뭐했는지 제사 지낼 때 “우리 아들 좋은 배필 만나서 좋은 며느리 들어오게 해주세요. 관세음보살” 하고 나 들으라고 큰 목소리로 기도를 드렸다. 조상님께 기도 드려서 좋은 사람 만나 결혼하게 되면 그건 그것대로 좋은 거니까 못들은 척 가만히 있지만, 계속해서 내게 잔소리를 하면 결혼하기 싫어서 안하는 것도 아닌데 답답하다.
(주영인, 36세, 디자이너)
“재테크는 하고 있어?”
취업 한지 1년밖에 되지 않았는데, 명절에 친척 어른을 뵈면 “재테크 좀 하고 있냐?” 라고 묻는다. 내가 하기 싫어서 안 하는 게 아닌데… 지방에서 올라와 자취를 하다보니 월세 내고 생활비 쓰면 적금이고, 주식이고, 재테크할 돈이 없다. 이렇게 구차하게 설명드릴 수도 없고 매번 우물쭈물 거리다가 끝나는 식이다. 요즘 애들은 돈 안 모은다고 구박하면 할 말 없지만 저도 사정이 있다고요. 이럴 땐 일일이 설명을 드려도 잔소리만 길어질 뿐이니, 짧게 대답하는 게 정답이다. “네, 해야죠”
(김승현, 28세, 전시 기획자)
“공부 언제까지 할거니?”
공무원 준비를 오래하다 결국 포기하고 회사에 취업했다. 그 전까지 가장 많이 들었던 잔소리는 “공부 언제까지 할거니? 혹시 잘 안되면 다른 거 준비해야하지 않겠니?” 난 정말 열심히 하고 있는데, 아무 생각 없이 걱정한다고 해주는 어른들의 잔소리를 들을 때마다 사기 저하에 자존감까지 낮아졌다. 뭔가 당장 해야할 것만 같은 심적 압박과 부담이 들어, 치킨집이라도 열겠다고 해야할 것 같았다.
(윤지훈, 34세, 회사원)
“이직 준비는 잘 되고 있는 거야?”
국제 개발을 전공해서 해외에서 잠깐 근무를 했었는데, 명절 때 휴가를 내어 한국에서 친척들을 만날 때마다 “얼른 한국 들어 와야지. 이직 준비 잘 하고 있니?” 라고 물어보실 때마다 난감했다. 이직이라는 게 마음 먹는다고 바로 되는 게 아닌데, 라는 말이 턱 끝까지 올라왔지만 왠지 지는 기분이 들어 오히려 성심성의껏 ‘나는 더 큰 걸 기다리고 있기 때문’이라는 식으로 성실히 대답했다. 이 문제에 대해서는 실제보다 더 거창하게 설명하는 편이 서로 편하다.
(장한준, 34세, 국제 개발 활동가)
“회사에서 잘하고 있니?”
명절만이라도 회사 얘기 좀 그만 듣고 싶은데 또래 사촌들이 많은 덕에 명절 때마다 학교성적 물어보듯 친척 어른들이 회사 생활을 물어본다. “너희 사촌 형, 누나는 다들 고과 잘 받고 승진 제때 하는데 우리 OO도 할 수 있지?” 이런 얘기를 들을 때마다 속으로는 ‘아니, 회사가 다르고 상황이 다른데. 그리고 형, 누나는 완전 착실하고 똑똑한 에이스잖아!’ 라는 생각을 하지만 그런 얘기 해봤자 핑계 댄다고 할까봐 입을 꾹 다문다.
(양도형, 29세, 회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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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상희(프리랜스 에디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