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ULTURE

제시가 세상에 전하고 싶은 이야기

2020.10.08박희아

[놀면 뭐하니?]의 제시의 모습을 보며 더 극명해졌다. 제시의 매력은 그 자체로 ‘활력’이라는 사실.

@jessicah_o

MBC <놀면 뭐하니?>의 새로운 프로젝트 ‘환불원정대’에서 제시는 끊임없이 말을 한다. 늘 시끌벅적한 분위기를 주도하는 그가 조용해질 때는 몇몇 순간들 뿐이다. 한국어를 잘 알아듣지 못해서 머릿속으로 바쁘게 해석하기 시작하는 잠깐의 시간, 혹은 매니저들과 언니들이 빚어내는 혼란스러운 상황을 마주하는 잠깐의 시간. 하지만 다른 예능인들의 사례와 달리, 제시의 침묵은 오히려 ‘환불원정대’ 안에서는 또 하나의 웃음 포인트가 된다. 한국어에 서툰 그가 바쁘게 머리를 굴리는 모습과 멍해진 모습을 본 지미유(유재석)이 “제시, Come on!”을 외치는 순간, 시청자들은 엉터리 영어에 황당해하는 제시의 모습을 보며 웃음을 터뜨리기 때문이다.

가장 시끄럽고 말이 많았던 여성이 조용해지는 순간이 오히려 웃음을 낳는다는 점이 아이러니하게 들릴 수도 있다. 그러나 제시의 침묵에 따르는 웃음은 그동안 그가 일관되게 보여줘 왔던 당당한 수다쟁이의 모습에서 비롯된 것이다. 언제나 거침없이 말을 하는 여성, 쉴 틈 없이 몰아치듯 상대방에게 말을 건네는 여성. Mnet <언프리티 랩스타> 이후로 제시는 어디에서나 자신의 이야기를 해왔고, 프로그램의 성격을 정확하게 이해하고 자신이 이해한 바를 토대로 행동하며 “This is competition!”이라고 외쳤다. 무례하게 구는 몇몇 남성 MC들에게 “그런 말을 왜 하냐”고 소리치며 어이없어 하는 표정을 짓거나 화를 낼 때도 있었다. 이처럼 몇 년간 그가 해온 모든 말과 행동들이 합쳐지면서 제시는 침묵하는 순간조차도 어떤 이야깃거리를 마음속에 품고 있는 사람이라는 기대를 걸게 만드는 인물이 되었다.

그리고 그 이야깃거리는 ‘환불원정대’라는 프로젝트에 커다란 활력을 불어넣는다. 프로그램이 지지부진하게 진행되고 있다는 비판 속에서도 제시가 음악에 관한 자신의 의사를 밝히고, 언니들과 화사에게 “너무 좋아한다”, “너무 보고 싶었다”고 애정표현을 하는 모습은 늘 활기 넘친다. 나아가 가슴 크기나 모양에 대해 이효리와 함께 신나게 떠들고, “보여줄까요?”라며 언니들을 방으로 데려가려고 하는 모습은 제시의 의도든 아니든 간에 시청자들에게 요즘 2030세대의 변화를 직접 체감하게 하는 효과가 있다. 이효리가 앞선 ‘싹쓰리’ 프로젝트에서 “유기농 생리대 광고를 하고 싶다”고 말했을 때만 해도 당황했던 시청자들은 이제 이효리보다 어린 제시가 자신의 몸에 대해 거침없이 털어놓는 모습을 보며 서서히 세상의 변화에 익숙해진다. 경쟁을 두려워하지도 않고, 몸에 관한 이야기를 부끄러워하지도 않으며, ‘여자의 적은 여자’라는 거짓 명제가 왜 거짓인지 보여주는 풍성한 애정표현들. 이제 사람들은 제시를 통해 또 다른 이야기를 시작할 준비가 되었다.

    에디터
    글 / 박희아(대중문화 저널리스트)
    사진
    피네이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