들여다보고 싶을 만큼 매혹적인 레드 포인트 다섯.
RED FACE
왕의 붉고 묵직한 망토를 두른 듯 서 있는 모습이 썩 담대하다. 크롬 그릴 중앙에 새긴 사자의 엠블럼을 함께 두고 보면 고풍스럽다가, 또 차체를 감싸듯 마감한 실루엣에서는 둥글고 매끈한 립스틱이 떠오른다. 이쯤 되면 2008의 마스크를 보며 끊임없이 연상되는 다음 이미지들을 채집해보는 재미가 제법 즐겁다. 뭉뚝하게 깎이거나 잘리지 않고, 또 멋대로 솟아오른 구석 없이도 2008의 붉은색 마스크는 입체적으로 드러난다. 세련된 구도 없이, 그저 프레임을 한가득 채우고 서있어도 답답하거나 투박해 보이지 않는 마법은 2008의 매력들이 만들고 뽐내는 재주 중 하나에 불과하다.
RED EYE
Q2의 헤드라이트는 순간으로 번쩍이지 않고, 피어나듯 은은하게 빛을 띄운다. 그렇게 눈꺼풀을 서서히 들어 보인 눈매는 날카롭지 않고 또렷하다. 진하고 길게 빠진 라이트 라인은 여성의 잘 다듬어진 속눈썹과 닮았는데, 그 모습이 부드러우면서도 선명하고, 단순하면서도 세련된 묘한 멋이 있다. 그런 헤드라이트 뒤로는 촘촘하게 배열된 LED가 있다. 하지만 Q2의 묘한 눈매에 매료되는 것이 일반적이어서, 아쉽지만 LED가 어디에, 어떻게 설계된 것인지는 쉽게 관심을 두거나 눈치채기 어려운 일이다.
RED SKIN
방 안에 가구를 배치하듯 빨간 피스들을 차 안 이곳저곳에 올려두었다. 앞 유리로 넘어온 그림자는 기블리의 빨간색 시트와 대시보드만 덮지 못했다. 그리고 그 사이사이로 스며든 그림자 속에서 기블리의 실내는 다시 더 빨갛게 살아났다. 이탈리아 스포츠카의 뜨거운 레이싱 감성을 기블리는 그렇게 곳곳에 새겨두었다. 레이싱 DNA를 요란하거나 현란하게 포장하지 않고, 마세라티의 근사한 품격 안에서 피어날 수 있게 다듬어 보였다. 습관처럼 삼지창 엠블럼으로 먼저 향하는 시선을 충분히 돌릴 정도로 감각적이다.
RED BODY
뒷자리에 앉아서 바라보는 운전석이 이토록 매혹적이거나 다이내믹했던 적이 있었을까. 그것도 세단 안에서. 파나메라의 넓은 실내 공간을 비집고 들어선 건 마땅하게도 포르쉐의 스포티한 디자인이었다. 그래서 파나메라는 단순한 스포츠카가 아니라, ‘세단이 꿈꾸는’ 스포츠카의 모습에 가깝다. 세단으로서의 파나메라는 넓은 공간과 승차감의 기운만 살짝 남겨뒀을 뿐, 존재로서의 기능은 꽁꽁 숨겨두고, 대신 스포츠카로서의 이상은 보란 듯이 드러냈다. 양보와 정도, 정체와 자존 그 균형점에 파나메라가 있다. 세단과 스포츠카의 로맨스가 새로운 세계를 열었다.
RED BACK
건강한 혈관을 닮은 파나메라의 테일램프는 소멸하듯 이어지고 다시 선명하게 살아나는 입체적인 생동감을 가졌다. 그 생동감은 어둠을 바탕으로 했을 때 더 아름다워지는데 무엇보다 포르쉐 로고를 과감하고 시원하게 가로지르는 램프 디자인이 으뜸이다. 활주로처럼 이어진 라이트 라인을 가까이서 들여다보면 가늘고 굵은 빛이 층층이 가득인데 다시 멀리서 바라보면 베일 듯이 예리하게 늘어지는 잔상이 또 새롭다. 가까이서든 멀리서든 시선을 홀리듯 당기는 매력이 있다.
- 에디터
- 신기호
- 포토그래퍼
- 김래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