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네딕트 컴버배치는 다섯 번 죽을 고비를 넘겼다. 그는 여섯 번째 삶을 살고 있다.
베네딕트 컴버배치는 다섯 번이나 거의 죽을 뻔했다. 첫 번째는 아기 때 저체온증이 일어났다. 두 번째는 학생 시절에 폭탄이 터졌다. 세 번째는 여행 중에 탈수와 굶주림을 겪었다. 네 번째는 인질로 잡혀 묶인 뒤 자동차 트렁크에 실려 모르는 곳으로 끌려갔고, 무릎을 꿇고 앉은 그의 뒤통수를 차가운 총구가 겨눴다. 물론 총성이 울리진 않았다. 당시 그는 배우였다. 이 모든 이야기는 사실이다. 그러나 다섯 번째 죽을 뻔한 경험은 실제로 일어나진 않은 일이다. <셜록>의 두 번째 시리즈 마지막 편에 일어난 일로, 성 바톨로뮤 병원 꼭대기에서 그의 분신과도 같은 벨스타프 코트를 바람에 펄럭이며 뛰어내렸다. 물론, 죽음을 가장하려고 한 방법이지만.
컴버배치의 주변 사람들, 이를테면 그의 친구, 동료 스타, 감독과 이야기해보면 컴버배치의 인생을 바꾼 순간, 즉 그를 호평받는 배우에서 유명 인사로 만들고 나아가 세계적인 스타로 만든 것은 <셜록>이라고 할 것이다. 이는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하지만 컴버배치와 이야기하다 보면 더 깊은 이유를 알 수 있다. 30대에 찾아온 주류에서의 성공에도 불구하고 속도를 늦추지 않는 그의 경력, 14편의 연극, 17개의 TV 배역, 서른 편의 영화 등 촘촘한 경력에도 불구하고, 그는 이제 막 시동을 걸었다.
엔터프라이즈호의 승무원들보다 돋보이는 거대 악당 칸으로 출연한 <스타트렉 다크니스>와 줄리안 어샌지 역을 맡아 기묘한 연기를 펼친 <제5계급>이 개봉된 작년 여름 이후, 겨울에는 세 편의 영화에 출연 했다. 오스카의 사랑을 받은 <노예 12년>에선 친절한 노예 주인, 가족을 위한 블록버스터 <호빗: 스마우그의 폐허>에선 무시무시한 용 스마우그, <어거스트: 가족의 초상>에선 망나니 백수를 연기했다. 그리고 바로 시작한 <셜록>의 새로운 시리즈와 암호해독가 앨런 튜링의 전기 영화 <이미테이션 게임>, 연극 <햄릿>에 출연했다.
<이미테이션 게임>에 함께 출연한 매튜 구드는 친구로서 말한다. “그가 연극과 다른 영화를 막 끝낸 뒤 우리 집에 함께 왔던 기억이 나네요. 아내가 ‘잘 지내요 벤’ 이라고 하니까 그는 ‘네, 음, 잘 지내요, 그러니까, 난 지금 백수예요…’ 라고 했어요. 단 이틀 동안 일이 없었는데요!” 거의 죽을 뻔한 세 번째 경험을 떠올릴 때는 이렇게 말한 것이다. “이런 엄청난 일들을 통해 죽음의 신성함을 알게 되죠. 사소한 일에 얽매이지 않고 그저 삶을 즐기게 됩니다.” 네 번째로 죽을 뻔한 경험을 회상할 때면, 그는 좀 더 분명히 이야기한다 “그런 경험을 거치면 조바심이 생겨요. 내 인생에 많은 것을 쑤셔 넣고 싶어지죠.” 말하자면 컴버배치는 외상 후 스트레스 덕분에 슈퍼스타가 되었을지도 모른다. 살면서 누구나 그렇겠지만 컴버배치에게는 위기의 순간이 더 많았다.
컴버배치의 최초의 기억은 하늘을 바라본 것이다. 둘 다 배우인 부모님은 런던의 켄싱턴에 있는 아파트 꼭대기 층에 살았다. “1970년대에 한 3천 파운드 정도에 구입했죠.” 그리고 베네딕트가 울면 부모님은 유모차를 옥상으로 끌고 가서 그에게 하늘을 가리키곤 했다. 그러면 그는 잠잠해지고, 미소를 짓다 끝내 잠이 들었다. 그는 아직도 ‘하늘의 광경’에 대해 느꼈던 놀라움을 기억한다. 그가 처음으로 한 말은 헬리콥터였다. “헬리콥터는 하늘에 있는 가장 큰 물건이었죠.”
이 즈음에 그는 첫 번째 죽음을 피했다. 어머니가 첫 번째 결혼에서 얻은 배 다른 누나 트레이시가 한겨울에 그를 돌보고 있었다. 그녀는 울고 있는 베네딕트를 달래기 위해 한두 번 정도 옥상에 데려갔다. 컴버배치는 웃으며 말했다. “그 다음에… 나를 잊어 버렸어요! 재미있죠. 그녀는 친구들과 부엌에 있다가 갑자기 창밖으로 눈이 내리는 걸 봤죠.” 그녀는 위층으로 달려갔고 베네딕트가 얌전하게 있는 것을 발견했다. 이를 덜덜 떨었지만 여전히 미소를 지으며 그는 부모님이 집으로 돌아오실 때까지 라디에이터에서 몸을 녹여야 했다. “난 새파랬어요.” 하지만 그는 어린 시절이 평온했다고 기억한다. 심지어 여덟 살에 기숙학교에 입학했을 때도. 그는 일찍 연기를 시작했다. 학교 성탄극에서 요셉 역할을 맡았을 때를 기억한다. 상대역인 마리아가 대사를 잊어버리자 무대 밖으로 내몰았다. “그건 정말 신사답지 못한 일이었죠.” 자신감이 문제된 적은 없었다. 자신의 능력에 대한 믿음도 마찬가지다. 어린 시절에는 거의 모든 주연을 맡았다. 그리고 그때부터 연기가 자신에게 맞는 일이라는 것을 의심하지 않았다. “연기를 할 때 항상 내 재능을 믿었던 것 같아요. 그래야만 하죠.”
연극을 공부하기 위해 맨체스터 대학에 들어갔고, 방황하는 시절을 보냈다. 여자, 술, 클럽, 마약? “맨체스터의 학생이었죠. 음, 묵비권을 행사할게요.” 하지만 아팠다. “1학년 때 아주 아팠어요. 선열에 걸렸죠. 조금 자제할 필요가 있었죠. 몸 상태가 최악이었어요.” 졸업 후 그는 티베트에서 영어를 가르치며 여행을 하기로 했다. 그리고 그때 세 번째로 죽을 뻔한 경험을 했다. 그는 친구들과 하이킹을 하다가 조난을 당했다. 네 명이 갖고 있는 음식이라고는 비스킷 하나와 치즈 한 조각이 전부였다. 얼음투성이 바위 사이를 지나 반쯤 언 강으로 들어갔다. 따뜻하길 바라며 야크의 똥을 찔러본 일도 떠올렸다. “우리가 문명에서 얼마나 멀어질 수 있는지 보려고 그랬죠.” 마침내 수목 한계선을 넘어 어떤 셰르파 목동의 집 근처에서 무릎을 꿇고 “손을 입으로 가져가는 만국공통의 음식 요청 몸짓”을 했다. 그는 시금치와 고기로 만든 음식을 얻었고, 그걸 먹자마자 설사를 했다. 그러나 그것은 그가 먹은 최고의 음식이었다. 그가 자신이 정말로 죽을 것이라고 생각한 것은 네 번째 경험이었다.
사실 베네딕트 컴버배치를 인터뷰하는 일은 투우사가 되는 것과 비슷하다. 그것도 계속해서 방향을 바꾸는 투우사 말이다. 컴버배치의 집은 북런던의 햄스테드와 햄스테드 히스 바로 밑에 있다. 우리는 컴버배치가 사는 길가 맨 끝에 있는 펍에서 만났다. 그는 빅토리아 양식 건물의 맨 위 2개 층을 소유하고 있다. 그는 진한 색 청바지에 흰색 티셔츠, 그리고 보라색 피코트를 입고 날렵한 회색 납작모자를 썼다. 모자를 벗자 오른 쪽으로 깔끔하게 넘긴 구불거리는 앞머리와 짧은 옆머리, 뒷머리가 드러났다.
그가 무례하다는 말은 아니다. 그는 너무나 예의 바르고, 재미있고, 넉넉하게 시간을 내주었으며 훌륭한 친구였다. 다만 그가 어떤 문장을 말하기 시작하면 듣는 사람은 그 안에 갇히게 되고, 혹여 중간에 끼어들려고 해도 보통 그는 개의치 않고 계속 말을 이어간다. 컴버배치와 10년 이상 알고 지낸 친구라면, 인터뷰 며칠 전에 나에게 이렇게 말해주었을 것이다. “그는 시간을 내주고 자신의 생각을 이야기하지만, 어떤 요점을 끝까지 이야기하는 것을 좋아하죠. 하지만 그게 맘에 들어요. 그리고 그런 점이 그의 연기를 훌륭한 지점에 놓는 것 같아요. 그는 A에서 B로 가면서 어떤 면도 명료하게 끝내죠.” 또한 그런 모습은 언론이 그를 오해하게 한다. 하지만 잘못 인용되지 않으려고 왜곡 없이 정확한 문장과 정확한 입장을 말하다 보니 그런 것일 뿐이다. 그런 사건이 있었다. 그가 <라디오 타임스>에서 “특별한 배경 때문에 ‘비난받는’ 느낌”이라고 말한 것을 두고 타블로이드 신문들이 왜곡하며 소란을 떨었다. 아마도 거기에서부터 시작되었을지도 모른다.
“다양한 방식으로 상류층을 향한 낚시질이 계속되고 있죠. 정말로 진부하고, 촌스럽고, 멍청한 일이죠.” 공개적으로, 컴버배치는 자신의 사회적 지위에 대해 이렇게 이야기한다. “난 상류층 중에서는 평범한 편이죠. 그걸 상류층으로 간주한다는 걸 알지만, 내가 상류층이라 부르는 사람들은 나처럼 말하지 않아요.” 그리고 당분간 그는 미국에 가지 않을 것이다. 컴버배치와 언론 간의 싸움은 이것만이 아니다. 사실, 그를 다룬 스크랩북은 기자들과의 신경질적인 언쟁으로 얼룩지기 일쑤였다. 심지어 <할리우드 리포터>는 그를 ‘새로운 A급 스타’의 주요 인물로 선언했지만 커버 스토리는 어딘가 날이 서 있었다. 기사는 다음과 같은 문장으로 시작됐다. “베네딕트 컴버배치와 45분 동안 인터뷰를 하고 있는데, 솔직히 잘되고 있지는 않다.” <제5계급>의 홍보를 위한 <가디언>과의 최근 인터뷰는 컴버배치가 첼시 매닝(결혼 전 성은 브래들리)의 투옥에 관한 자신이 생각이 다르게 인용되었다고 말하며 마무리된다. 그리고 그는 기사의 온라인 게재에 대해 확인을 요청했지만 게재되었다. “그렇게 하는 건 정말 무책임한 행동이었죠. 그건 나의 이미지를 규칙을 어긴 사람은 꼭 처벌 받아야 한다고 말하는 덩치 큰 학생처럼 만든 것과 같아요.” 이러한 태도가 결국 그의 사회적 신분을 파헤치는 것으로 돌아오는 것은 아마도 우연이 아닐 것이다.
우리는 정치, 내부 고발자, 테러에 대한 그의 진심으로 이 기사의 분량을 채울 수 있을 정도로 꽤 상세히 이야기 했다. 하지만 그의 입장은 대부분의 사람들처럼 흑백논리가 아니라고만 해두자. 그는 내부 고발자의 실상과 정부기관이 그들을 처벌하려는 이유를 알고 있다. 하지만 그의 속마음은 자유주의자이며, 매닝의 처벌을 바라지 않는다. 그는 보안 전문가가 아니다. 그러나 인권과 대중의 보호 사이에서 벌어지는 복잡한 균형 잡기를 이해하고 있다. 이는 완전히 합리적이고 균형 잡힌 입장이며, 나 역시 동의하고 있다고 그에게 말해주었다. “하지만 그런 입장을 취하고 있으면 좌시한다는 비난을 받게 되죠.”
코트는 벨스타프, 터틀넥 몽클레르, 팬츠는 랄프 로렌 퍼플 라벨.
한편, <셜록>의 세 번째 시리즈 촬영 도중, 컴버배치는 근처를 맴도는 파파라치들을 향해 다음과 같은 내용의 종이 한 장을 내밀었다. “이집트에서 사진을 찍어 세상에 중요한 게 있다는 걸 보여줘라.” 이후, 그가 인권에 관해 작성한 네 페이지 분량의 논문은 <가디언>과 신문의 입을 막으려는 정부의 노력을 다루었다. 하지만 이미 쓰러진 사람을 걷어찬 것은 또 <가디언>이었다. 이번에는 마리나 하이드의 기사였는데, 다음과 같은 제목으로 그의 신분을 언급했다. ‘일반 대중의 계몽은 베네딕트 컴버배치의 주요 사명.’ “당시 벌어지고 있던 일에 대해 정말로 충격을 받았죠. 그래서 이렇게 생각했을 뿐이에요. 대중문화가 내게 이렇게 집착한다면, 나도 부탁을 하기 위해 이를 이용해도 되겠지. 대중문화를 비난하려던 것은 아니었어요. 전 <셜록>의 사진을 찍으려는 사람들의 취향을 업신여기지 않아요.” 그는 한숨을 쉰다. “그건 대중매체에 대한 나의 가장 친밀한 구애였어요. 내 말이 잘못 해석되고, 내 생각이 편집되어 활자화되어도 이 점은 분명해요. 난 그 종이를 들고 있을 거예요.”
베네딕트 컴버배치는 걱정이 많다. “알아요. 그 점은 나아지고 있어요. 셜록의 촬영 도중에 일어난 일인데, 누군가 내게 ‘당신은 참 예민하네요’라고 했어요. 그건 마치, ‘내가 또 저질렀네. 또 저질렀어’라고 말하는 것 같았어요. 그러니까 나에 대해 예민하다는 말이 나온다면 내가 확실히 예민하다는 뜻이죠. 하지만 배우고 있어요. 어떻게 하면 예민하지 않게 보일 수 있을까? 지난 시간 동안 예민했던 걸 후회한다면 좀 지나친 것 같고요.
하지만 이 모든 걱정에는 명백하고 놀라운 이면이 존재한다. 그건 그의 놀라운 열정이다. 그는 모든 것에 대해 걱정하는 만큼이나 흥분과 즐거움을 느낀다. 그는 우리가 주문한 커피(바텐더는 플랫 화이트 때문에 애를 먹었다), 어떻게 잡지가 돌아가는지, 햄스테드 히스에서의 노천 수영, 주문한 버거, 심지어 펍을 나설 때 내 자전거에 대해 정말 신나게 말했다. 그는 걸어서 집에 가고, 나는 싱글 스피드 경주용 자전거를 타고 갔다. 그는 프레임의 아름다운 만듦새를 알아봤다. 바이크 마니아인 나는 감동 받았다.
그의 열정은 기대하지 않았던 사소한 것들인데, 두 가지를 생각할 수밖에 없었다. 먼저 끊임없이 이어지는 왕성한 열정은 대부분 그의 순수함 때문이다. 그 덕분에 <셜록>에 함께 출연하는 마틴 프리먼이 그를 ‘골탕 먹이기’ 쉽다고 했을까? “그는 거의 아이들처럼 상냥하고 너그럽죠. 카드 놀이를 할 때 그 점을 이용할 수도 있어요.” 그리고 방사능 시설에서 <스타트랙 : 다크니스>를 촬영 중이므로 피폭을 막으려면 특별한 얼굴 크림을 발라야 한다고 사이먼 페그가 컴버배치를 속인 방법을 이해하게 되었다. 베네딕트는 감사를 표했고, 심지어 자신이 계속 대사를 틀리는 이유가 방사능 때문이라고 확신했다. “여러분, 미안해요. 진짜 투통이 오고 있어요. 이온이 영향을 주기 시작한 것 같아요.” 하지만 컴버배치에 비하면 난 문제에 대한 대처를 쉽게 생각하며 살아가는 사람 같다. 그에게는 모든 것이 휘황찬란할까? 가시돋친 말들이 더 날카롭게 찌른다고 해도 그의 태양은 훨씬 더 밝게 빛날 것이다.
나쁜 쪽으로든 좋은 쪽으로든 이러한 예민함이 그의 연기를 어떻게 살찌웠는지 상상하는 건 어렵지 않다. 그는 남들보다 더 잘 느끼고, 더 잘 알아차릴 수 있고, 더 많이 들을 수 있다. 이건 그의 천성이다. 그는 살아 있는 소리굽쇠 같다. 어린 시절 그는 어디에 가든지 녹음기를 가져가서 재미있는 것을 찾으면 녹음하고, 목소리를 시험하고, 소리를 연습했다. 오랫동안 이어지지는 않았지만, 덕분에 그는 녹음기 같았다. 함께 보낸 세 시간 동안 언급된 모든 사람에 대해 그는 몸짓, 목소리 모든 것을 절대 음감을 지닌 사람처럼 흉내 냈다. 그의 성대모사는 기묘했다. 그는 그들에게 빙의됐다. 첫 번째는 마돈나 – “마돈나는 ‘당신이 그 이상한 이름을 가진 사람이군요’라고 말했죠. 난 ‘예, 맞아요’라고 답했어요.”, 두 번째는 메릴 스트립 – “그녀는 이렇게 말했죠. ‘그냥 당신의 연기가 좋아요.’”, 세 번째는 테드 댄슨 – “오스카 전야의 파티였는데 그는 사람들이 가득 찬 방에서 비명을 질렀죠. ‘맙소사! 당신 셜록이잖아! 당신 셜록 맞군요! 오 하느님!'” 그는 이걸 순서대로 이어갔다. 그 모습을 보고 있으니 세계 최고의 1인극을 보고 있는 기분이 들었다.
<그레이엄 노튼 쇼>에서 그가 <스타워즈>에 나오는 츄바카를 흉내 내자 바로 옆에 앉아 있던 해리슨 포드는 거의 의자에서 뛰어오를 정도였다. “그는 훌륭한 귀를 갖고 있죠.” <셜록>의 공동 작가인 스티븐 모팻의 말이다. “사람들의 특징을 정말로 빨리 잡아내죠. 내 흉내도, 당신의 흉내도 낼 수 있어요. 그는 얼마 전에 자신이 상류층으로 분류되었다고 말해 곤경에 처했죠. 하지만 ‘난 모든 걸 다 할 수 있어’가 그의 말뜻의 전부예요. 하지만 어떻게 보면 그는 상류층에 속해 있는 것이 맞아요. 왜냐하면 그는 티모시 칼튼의 아들이잖아요. 상류층 소년이죠.” 최근 컴버배치가 <타임>에 등장했을 때 – 그는 “믿을 수 없는 영광이죠”라고 말했다- 다음과 같은 문구가 붙었다. ‘천재 배우’. 이는 지난 수년 동안, 이미 20대에 그가 TV 전기물에서 스티븐 호킹 역으로 놀라운 등장을 했을 때부터 따라다닌 진부한 표현이다. 다소 이상하지만 천부적인 재능을 지닌 인물을 연기한, 이를테면 빈센트 반 고흐(역시 TV 전기물), 줄리언 어샌지, 셜록, 칸, 그리고 최근의 튜링 역을 맡으면서 그의 연기에 대한 천재성은 공고해졌다. 하지만 그는 그것 말고도 <네 얼간이>의 인질협상가, 스필버그 감독의 <워호스>의 소령, <어톤먼트>의 강간범, <팅커 테일러 솔저 스파이>의 게이 스파이와 같은 다양한 역할을 연기했다.
“현재의 모든 연기에 셜록의 느낌이 있다는 점을 알고 있어요. 다들 그런 어둡고 복잡한 ‘안티 히어로’를 원하죠. 물론 난 그런 연기를 자주 하고요. 하지만 <어거스트 : 가족의 초상>의 찰스, <노예 12년>의 포드, <스튜어트: 어 라이프 백워즈>의 알렉산더와 같은 연기도 하죠. 스튜어트(톰 하디가 연기하는 노숙자)는 정말 비밀이라고는 없고, 영리한 사람이죠. 스튜어트는 복잡함 그 자체예요. 알렉산더는 평범한 사람이죠. 그는 놀라운 추리, 암호 해독, 알고리즘 분석과는 거리가 멀죠. 난 그것을 한데 섞었어요.” 컴버배치가 맡은 배역들에서 알 수 있는 점은 그가 천재나 지성인을 연기한다는 것이다. 배우에게 까다로운 일 중 하나다. 지성을 ‘연기’하는 것은 냉정을 가장하는 것과 조금 비슷하다. 억지로 되는 것이 아니다. 연극에서 프랑켄슈타인 역과 <스튜어트: 어 라이프 백워즈>의 알렉산더, 그리고 <셜록>에 이르기까지 이 모든 역을 아우르는 건 근본적인 경이로움이다.
컴버배치를 만난 날은 미국에서 <제5계급>이 개봉한 다음 주 월요일이었다. 그리고 이 영화는 완전히 망했다. 약 3천만 달러의 예산이 투입되었지만 미국 전역의 1천7백69개 극장에서 고작 1백70만 달러의 흥행을 올렸고, 이는 2013년 주요 작품 중에서 최악의 개봉 첫 주 기록이었다. “글쎄요, 디즈니와 드림웍스는 이런 전문적인 주제와 어울리기 힘든 파트너라고 늘 생각했어요. <소셜 네트워크>는 비슷한 주제지만 다들 페이스북을 사용하는 반면 위키리크스는 그렇지 않죠.” 컴버배치는 이렇게 덧붙였다. “팝콘을 사먹는 멀티플렉스에서 상영할 영화는 아니었죠.”
현재 업계에서 선두를 달리고 있는 그가 흥행 성적에서 조바심을 내야 할 사항 중 하나로 보인다. 그날 아침, 버라이어티는 다음과 같은 제목의 기사를 내보냈다. “<제5계급>은 선두주자인 컴버배치에게 치명적인 타격이 될까” 그가 말했다. “아무렇지도 않아요. 나를 그런 종류의 배역을 맡을 수 있는 사람으로 자리매김시켜준 것에 감사할 따름이죠. 그리고 영화의 성공 여부와 관계없이 내 연기에 대한 다른 사람의 반응은 큰 도움이 되었어요. 아시겠지만 그건 영화에서 맡은 첫 주연이었고 엄청난 관심을 일으켰죠.” 하지만 오스카 수상을 할 수 있을까? “탈 수도 있겠죠. 하지만 그걸 기대해본 적은 없어요.” 그는 TV에서도 슈퍼스타가 되길 기대하지 않았다. 하지만 그가 원하지 않았어도 그는 슈퍼스타가 되었다. <셜록>은 여름에 방송되고, 일정보다 먼저 나왔고, 최소한으로 홍보했지만, 2010년 7월에 나온 <셜록>의 첫 번째 에피소드는 9백만 명의 시청자를 끌어모았다. 컴버배치는 하룻밤 사이에 스타가 되지 않았다. 그는 단 90분 만에 스타가 되었다. 최고의 조합이었다. 고통받으면서 한 분야에 뛰어난 외톨이는 그의 전문 분야다. 그리고 공동 제작자인 마크 게티스의 말처럼 “어떻게 조명을 비추면 그의 얼굴은 완전히 외계인 같아요. 그런데 다른 조명에서 그는 완벽한 미남처럼 보이죠.”
세 번째 시리즈의 자세한 내용은 꽁꽁 싸여 있지만, 컴버배치는 많은 것을 이야기해주었다. 재회가 이루어지고, 해명(셜록이 죽음을 가장한 방법), 결혼, 연설과 새로운 악당이 등장한다. “겉보기에는 모리어티와 반대되는 인물이죠. 끔찍할 정도로 사실적이고, 있을 법한 인물이고, 그게 소름 끼치는 점이죠. 그리고 또 다른 살 떨리는 마지막 장면이 있어요. ‘그걸 보면 이게 뭐야’라는 말이 나올걸요. 그리고 긴 추리 독백이 있는데 사람들은 그걸 별로 아쉬워하지 않을 거예요. 그렇게 말해도 두 번째 에피소드는 거의 하나의 독백 그 자체니까요.”
그리고 셜록이 새로운 머리 모양을 하게 된다.
“꽤 오랫동안 셜록이 다른 헤어스타일을 하자고 말했죠. 내 머리카락이 짧은 것을 꽤 좋아하거든요. 아시겠지만 2년이 지났잖아요. 그 빌어먹을 외모를 바꿔보자고, 뭔가 다른 걸 해보자고.” 그래서 허락을 받았을까? “사실은, 아니에요.”
지금으로서는 상상하기 힘들지만(특히 컴버배치의 극성팬 집단에게는 더더욱 그렇겠지만) BBC는 컴버배치를 맘에 들어 하지 않았다. 그가 충분히 매력적이지 않다는 이유 때문이었다. “우린 계속해서 BBC에 말했죠. 섹시한 셜록 홈즈를 만들어주겠다고. 그리고 BBC가 했던 말이 기억나요. ‘정말? 셜록이 섹시하다는 생각은 안 드는데’ 그런데 이제 그는 세상에서 가장 섹시한 남자죠.” 모팻의 말이다. 그 말 때문에 질문을 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헌신적인 여성 추종자들이 셜록 또는 컴버배치와 자고 싶어 하는지?
“리타 헤이워드가 했던 말이 생각나네요. 문제는 사람들이 길다와 침대에 들어가고 싶어 하지만, 나와 함께 일어난다는 점이죠.” 게티스의 말이다. 여자에 관한 한 컴버배치도 선택이 어려울 것이 틀림없다는 추측에 매튜 굿은 다른 견해를 말했다. “하하. 다들 아시겠지만, 그는 그렇게 늙지 않았어요. 하지만 30대의 끝을 향하고 있죠. 그래서 ‘장기적인 상대’를 찾는 중이에요. 하지만 올바른 짝을 만나기 위해서 몇 가지를 극복해야 한다면, 그는 그걸 전혀 귀찮게 여기지 않을 것이 확실해요. 분명히 최고의 여자가 그에게 나타날 거예요. 그는 마음껏 즐기겠죠.” 컴버배치 본인은, 그저 이렇게 말할 뿐이다. “여자 만나기가 더 어려워졌죠. 왜냐하면 사람들은 실제로 아는 것보다 나에 대해 정말 많이 안다고 생각하거든요. 그리고 그런 생각을 막을 수 없어요. 나에 대한 인식을 통제할 수는 없죠.” 어쨌든 간에 그는 노력하는 것처럼 보인다.
지금 하는 이야기는 2004년에 남아프리카공화국에서 <투 디 엔즈 오브 더 어스>라는 미니시리즈를 찍던 중에 일어난 거의 죽을 뻔한 사건에 대한 컴버배치의 기억이다. 그는 함께 출연하는 데니스 블랙, 테오 랜디와 함께 있었다. 그들은 더반 북쪽의 콰줄루-나탈 지역에서 스쿠버다이빙을 하며 조용한 주말을 보내고 돌아오는 중이었다. 야간에 모잠비크 국경 인근의 고속도로를 달리고 있었다. 컴버배치는 마리화나를 한 대 피우면서 카오디오로 라디오헤드의 음악을 들으며, 자신이 지금 얼마나 한없이 행복한지를 느끼고 있었다. 그런데 오른쪽 타이어가 터지면서 차가 길가에 처박혔다. 트럭들이 빠르게 지나갔다. 일행들이 바퀴를 빼서 여분의 타이어로 바꾸기 시작했을 때 무장한 남자 6명이 풀숲에서 튀어나왔다. 그들은 컴버배치와 친구들의 몸을 뒤지고 돈과 마약, 그리고 무기를 요구했다. 일행은 신고 있던 신발의 끈으로 손을 묶인 뒤 차에 실려 끌려갔다. 차도는 아니었다는 것이 그의 기억 전부다.
컴버배치는 조수석에 앉은 블랙의 무릎 위에서 이상하게 구겨진 채로 앞 유리창에 붙어 있었다. 차가 파인 곳을 지날 때면 그의 등과 머리가 유리창에 부딪쳤다. 컴버배치는 초현실적인 순간을 기억한다, 엉덩이로 카오디오를 쳤더니 불이 들어오며 갑자기 톰 요크가 노래했다. 그는 흥얼 거렸다. “난 여기에 없어, 이건 사실이 아냐….” 그가 약간 불편한 자세로 있었기 때문에 무장괴한들은 차를 멈추고 그를 트렁크에 넣기로 결정했다. 그는 머리에서 피가 흘렀던 것, 심한 경련을 겪었던 것, 곧 기절하리라 생각했던 것을 기억한다. 또한 자신을 죽이지 않는다면 인질이 되리라고 생각했던 것도 기억한다. 그런 생각이 위안이 되었다. 괴한들이 자신을 어디에 잡아두게 될 지를 생각했다. TV에서라면, <침묵의 목격자>에 나올만한 감옥? 하지만 일행은 황야로 끌려가는 중이었다. 갑자기 차가 멈췄다. 그는 트렁크 밖으로 끌려 나와 처형 자세로 무릎을 꿇었다. 그의 머리 위로 총성을 줄이기 위한 담요가 씌워졌다. 그는 이렇게 생각했다. “살면서 사랑을 얼마나 받았든, 죽을 때는 혼자다.”
그는 괴한들을 설득하려 했다. 날 죽이는 것은 정말 최악의 생각이며, 당신이 사람을 죽이고 싶은 건 아니지 않냐고 말했다. 어느 정도인지 가늠이 잘 안 되는 순간, 실은 고작 몇 분 정도였지만 몇 시간처럼 길게 느껴진 간격이 있은 뒤, 그는 납치자들이 가버렸다는 사실을 알았다. 컴버배치와 친구들은 유일하게 보이는 불빛을 향해 달려갔고, 약 10분 정도 멍한 상태에서 달린 뒤 자동차 주차장 밖에서 카트를 몰고 있던 여자들과 마주쳤다. 그는 묶여 있던 자신을 풀어준 검은 피부의 손을 기억한다. 순수한 감사를 느꼈다. 그리고 그 여자들은 같은 나라 사람이 저지른 일에 대해 울음을 터뜨렸다. 같은 말을 반복하며 울었다. 부끄러워라. 그들은 울었다. 부끄러워라, 부끄러워라…. 그 역시 울기 시작했다. 그리고 멈출 수 없었다. 컴버배치는 이 끔찍한 만남을 다양한 방식으로 회상했다. 그가 아직 언급하지 않은 것은 그 사건 이후의 영향이다. 다음 날 아침에 일어난 그는 머무르고 있던 집의 발코니로 가서 바다를` 바라보았다. “그러자 얼굴에 열기가 느껴졌죠. 그리고 멀리 바라보며 생각했어요. ‘저 바다에서 수영하고 싶다. 저 모래언덕을 걷고 싶다, 배우들 보고 싶다. 내 몸의 세포 하나하나가 세상의 일부가 될 수있을까? 난 아직 살아 있으니까.’”
그는 상담치료사를 만났고, 치료사는 이렇게 말했다, “그 이야기를 글로 쓰고 사람들에게 들려주세요, 그리고 뭐든지 운동을 하세요. 그러면 기억이 당신의 일부가 될 거예요.” 컴버배치는 상담사가 말한 세 가지를 실천했다. 길가에서 경찰을 기다리는 동안 겪은 일에 관해 네 페이지짜리 글을 쓰고, 그 다음 날 스카이다이빙을 하러 갔고, 일에 복귀해서 모든 사람에게 그 일에 대해 이야기했다. “숙제를 바로 끝냈죠. 목록이 정말 단순했으니까요.”
사건이 일어난 그 다음 주 부모님이 떠난 뒤, 그는 납치되었던 그 지역을 다시 방문했다. “사람들은 ‘정말로 그러고 싶어’라고 물었고 난 그렇다고 답했죠. 다시 마주치자 벌레들까지도 기억이 났죠. 당신은 상상도 못할 거예요.” 그가 느낀 유일한 트라우마는 몇 주 뒤에 <투 디 엔즈 오브 더 어스>의 촬영을 재개하면서 일어났다. 부두의 지붕이 덮인 구역에 정박한 보트의 갑판 아래에서 촬영 중이었다. 컴버배치는 한숨 돌리고 담배를 한 대 피우다가 입구의 셔터가 닫히기 시작하는 것을 목격했다. “햇빛이 차츰 가려지는 것을 보고 이렇게 말했죠. ‘이봐, 저걸 멈출 수 있나’ 셔터는 계속 내려오는 중이었고 난 이런 심정이었죠, ‘제발, 계속 열어둬!’ 그는 공황상태에 빠져 밖으로 뛰쳐나왔다. “벽돌담을 주먹으로 서너 번 후려갈겼죠.” 그 일을 회상할 때도 그의 눈엔 눈물이 고였다. 왜냐면 그 이미지는 컴버배치에게 자동차 트렁크를 떠올리게 했던 것이다. “공포, 그리고 내가 갇혔던 곳을 떠올리게 된 것에 대한 분노 때문이었죠. 그리고 이렇게 생각한 기억이 나네요. ‘더 이상 분노가 이어지지 않게 하자.’”
인터뷰 이후 그와 계속 연락을 했다. 그는 다음 날 인터넷으로 채팅을 하자고 연락했고 데니스 블랙과 남아프리카공화국, 그리고 자신이 그녀를 얼마나 그리워하는지에 대해 이야기했다. TV를 통해 국립극장의 50주년 기념행사 <로젠크란츠와 길덴스턴은 죽었다>에서 연기한 그의 모습을 보았다. 우리는 짧게 문자도 주고받았다. 나는 그의 모습 중 모든 일의 원동력처럼 보이는 그의 놀라운 예민함이 정말로 그의 본성인지, 그리고 그 놀라웠던 경험들이 컴버배치 자신을 어떻게 변화시켰는지 물어보았다. 그는 내게 그런 경험들이 어떻게 그를 바꾸었는지에 대해 문자 메시지로 길게 설명했다. 그리고 이렇게 끝을 맺었다. “행운의 과자 문구로 가득 찬 짧은 농담 자습서 같은 소리로 들릴 것 같은데요!” 하지만 내가 그런 질문에 답이 과연 있을지, 그토록 복잡한 것을 너무 간단하게 설명하는 건 불가능한 일이 아닐지 고민하고 있을 때, 그의 문자 메시지를 받았다. 그 메시지는 심각하지도, 화려하지도, 일종의 인생 교훈 같지도 않았다. 하지만 내게는 정말 진실하게 느껴져 등대처럼 순수하게 길을 비췄다.
“이런 일을 당신이 직접 경험해봐야 해요.”
- 에디터
- 글 / Stuart McGurk
- 포토그래퍼
- 플라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