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모시 샬라메와 우드스톡에 숨어들었다. 예술가이자 슈퍼스타인 이 배우는 스스로 어떤 사람이 되고 싶은지 끊임없이 고민해왔다. 혼돈의 시대에 어른이 되는 것은 어떤 의미인지 그가 솔직하게 말했다.
“다시 우주로 돌아가고 싶어요. 느낌을 좇아서요.”
2018년 아카데미 시상식, 이미 변화되었던 모든 것이 한 번 더 바뀌었다. 티 모시 샬라메는 시상식 몇 달 전부터 이름을 알리기 위해 노력했다. 컬트 적인 인기를 얻은 동시에 평단의 호평이 이어진 <콜 미 바이 유어 네임> 에 출연했고, 그 영화에서의 호연으로 80년 만에 가장 어린 오스카 남 우주연상 후보로 지명되었다. 동시에 그는 젊은 여성이나 나이 든 남성, 그리고 인구통계학적으로 그 가운데에 위치한 모든 이에게 사랑받는 보기 드문 스타가 되었다. 티모시는 초가을부터 아카데미 시상식을 위 해 쉬지 않고 뉴욕과 로스앤젤레스를 왕복했다. 보워리 호텔과 선셋 타 워의 로비, 공항의 1등석 라운지 등에서 한동안 생활했다.
오스카 시상식이 끝난 다음 날, 시계가 자정을 가리키고 그의 마차가 호박 으로 변한 순간, 티모시는 모든 환상이 시작되기 전의 바로 그곳, 뉴욕 으로 다시 돌아왔다. 그에게는 신용카드도 아파트도 없었으며, 세상 의 관심에 대응하기 위해 복잡하게 짜인 스케줄에 대한 요구도 없었 다. 그의 귀환을 목격한 사람들은 이 스물둘의 청년이 많은 부와 영향 력을 지녔다고 여겼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는 겨우 10센트를 들고 갑자기 돌아왔다. 아마 동전 대여섯 개였을지도 모르겠다. 그는 가족 이나 친구들과 함께 머물기를 주저하고 있었다. 물론 그들은 방금 일 어난 화학 반응을 이해할 수 없었다. 그들이 여전히 수소와 산소라면, 티모시 샬라메는 갑자기 물이 된 셈이었다.
티모시는 3주 동안 로어 이스트 사이드의 벽지 사이로 사라졌다. 자세히 말하면 프랑스의 스트리트 아티스트인 JR이 뉴욕에 방문하는 협업자 들이 묵을 수 있게끔 잡아둔 작은 아파트의 벽지 말이다. 티모시는 늦 겨울의 추악한 뉴욕 날씨와 맞닥뜨렸다. 그리고 그가 할 수 있는 유일 한 일은 대사 연습이었다. 유명세를 치른 이후 티모시가 선택한 첫 번 째 영화는 <더 킹: 헨리 5세>. 당시 그는 다시 연기하고 싶다는 마음이 간절했다. 이미 인터넷을 통해 알아볼 수 없는 형태로 형성된 자신에 대한 신화적 아이콘을 지워버릴 필요가 있었다.
내가 티모시를 처음 만났을 때 그는 막 얻은 명성에 당황하고 있었다. 그리 고 이것은 두 번째 인터뷰, 그 이후에 일어난 일에 관한 이야기다. 2018년 뉴욕에서 보낸 3주는 이 모든 것의 시작이었다. 티모시는 올 여름 우드스톡에 있는 소박한 오두막집 뒤편의 현관에 함께 앉아 이 모든 것에 대해 이야기하면서 그 3주를 떠올렸다. “내가 겪던 세상이 완전히 뒤집혔었어요.” 그가 말했다. “친구들과 함께 발로 차듯 무시 해버리면, 여전히 그대로인 것처럼 느낄 수도 있었어요. 저는 이 두 가 지 현실에 적응해보려고 했어요. 하지만 당시에는 제가 무슨 일을 벌 인 것인지도 몰랐나 봐요. 불협화음은 실제로 있었거든요. 정말 다행 이죠. 적응하기 위해 노력했더라면, 사이코패스와 비슷한 존재가 됐 을 것 같은 기분이 들었거든요.” 지난 2년 반 동안 그에게 어떤 일이 있었을까? 그는 자신이 얻은 큰 행운에 대해 변함없는 감사를 표했다. 그러나 동시에 혼란과 긴장감을 표현했다. 그는 자신이 말하거나 행동 하거나 생각하는 모든 것이 잘못 받아들여질 수 있음을 깊이 염려하 고 있었다. 그러한 염려의 순간에 깊게 중독되어 있었다. 그는 계속해 서 말을 되짚거나 독자에게 공개하고 싶지 않은 이야기를 뒤섞었다. 기사에 쓸 수는 없더라도 자신이 겪은 일의 맥락을 전달하기 위해서 내가 알고 있는 것이 중요하다는 이유였다.
그는 우리 모두와 같은 세상에 살고 있다. 단지 그에 대한 평가와 사랑이 극 단으로 갈릴 수 있는 가능성이 최고조로 증폭되었을 뿐이다. 그는 처 음에는 자신의 본능을 믿는 것처럼 보이다가도, 자신이 그 본능을 확 신하는 순간, 한 번 더 숙고를 거치는 것처럼 보였다. 그것은 매우 지치 는 일이다. 편안한 티셔츠와 반바지를 입은 그가 갑자기 일어나서 머 리카락을 뜯으며 서성거릴 때는 마치 과부하에 걸린 기계에서 연기가 나는 것 같았다. 그는 진심을 표현하기 위해, 정확한 감정을 느끼기 위 해, 올바른 방식으로 살기 위해, 자신과 얽힌 사람들을 위해 이토록 노 력하고 있었다. 여러 잡음에도 불구하고 최선을 다했다.
티모시는 그 집을 7월 한 달 동안 빌렸다. 약간은 도피에 가까웠지만 기회 이기도 했다. 그는 새로운 전기 영화에서 밥 딜런을 연기할 예정이었 다. 언제 촬영할지는 알 수 없었다. 그러나 지금으로서는 지난 몇 년 동 안 가졌던 시간보다 더 많은 시간을 그 자신을 위해 쓸 수 있었다. 그것 은 아마도 우드스톡의 밥 딜런에 흠뻑 취할 시간을 의미했다. “저와 연결되어 있는 느낌이 없다고 해서 딱히 고생스러운 건 아니지만, 여 기에는 분명히 저와 통하는 것이 있어요.” 그가 말했다. 도착했을 때, 좁은 집 안에 밥 딜런에게 헌사를 바친 벽이 있다는 것을 발견했다. 그 건 1960년대 후반 밥 딜런이 우드스톡에서 잠시 휴식을 취하는 동안 에 녹음한 음반을 추앙하는 벽이었다. 티모시는 에어비앤비에 머물던 첫날, 벽 위에 붙어 있는 것을 음미했다. 한 인간이 일관성을 갖고 무언 가를 밀어붙이면, 온 우주가 도움의 신호를 주기 마련이었다.
그는 이 오두막 때문에 자신이 스스로를 너무 심각하게 생각하는, ‘예술가 처럼 자신을 가꾸는’ 젊은 배우처럼 보일지도 모른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하지만 그는 한 달 내내 우드스톡과 뉴욕을 오가며 렌터카 업 체에서 빌린 혼다 세단을 타고 고속도로를 왕복했다.(그는 <뷰티풀 보 이>에서 운전하는 법을 배웠다.) 그러는 동안에도 그의 머릿속에는 온통 밥 딜런뿐이었다. 티모시는 뒤늦게 밥 딜런을 알게 된 셈이었지 만, 어쩔 수 없이 빠져들었다. 밥 딜런의 가사와 말을 자주 인용하면서 예술과 페르소나 둘 다에 집착했다. 한 예술가가 세상에 지대한 영향 을 끼친 모습에 경탄하면서도, 한편으로는 음악과 노래 속의 가상 인 물, 노랫말 속에 실존하는 자기 자신을 철저히 숨긴 점에 대해서도 경 탄을 금치 못했다. 우리는 뉴욕에서 그리니치 빌리지 주변을 돌아다 녔다. 티모시는 사람들이 알아볼 수 없도록 마스크에 버킷 햇과 선글 라스를 썼다. 그는 예전에 밥 딜런이 살던 아파트의 주소를 찾아낼 수 있었는데, 딜런의 회고록인 <바람만이 아는 대답>을 읽으며 간직해 온 메모를 들고 여기저기로 움직였다. 티모시는 스물네 살의 배우로, 경력의 2단계와 3단계 사이에 잠시 멈춘 틈을 타서, 앞으로 몇 년 동안 어떻게 연기할 것인지 열심히 생각했다.
우드스톡에 있는 집을 빌렸으니 혼자만의 작은 공간을 가질 수 있었다. 그 는 망쳐도 괜찮은 사생활을 간절히 원하고 있었다. 아직 어리기 때문 에 작은 실수를 저질러도, 나중에 걱정할 필요가 없을 것이라 생각했 다. 그는 언젠가 일어날 실수를 아직 저지르지 않았다. 그것이 그를 불 편하게 하고, 조심스럽게 만들었다. 우드스톡에서의 한 달 동안은 마 치 화상을 치료하는 것 같았다. 가장 천진난만한 방법이었다. 티모시 는 평화롭게 기타와 하모니카를 연습하고, 누구의 평가도 받을 필요 없이 ‘엉망진창 파스타’를 만들어서 먹고, 자신이 계속 성장할 수 있는 여유를 허락했다. 그는 오두막에 머무르며 잠시 소파에 앉아 지난 몇 년 동안 만져보지 못했던 ‘쿠션의 주름’과 다시 익숙해질 수 있었다. 고요함, 저기 나무 사이로 들어오는 햇살. 잠시 숨을 고를 수 있었다. 조금 더 잠들 수 있었다. 하지만 그 달콤함이 다시금 그를 불안하게 만 들었다. 언제쯤 돌아가야 할까? 그는 휴대 전화에서 인스타그램을 삭 제했다. 트위터도 그만두었다. 다시 좋아하는 책을 읽었다. 음악을 쭉 듣기 시작했다. 그는 속도를 조금 늦췄다. 지난 2년 반 동안의 삶은 어 땠을까? 여러 가지 일이 있었던 것 같지만, 그 끝이 거기에 있었다. 잠 들기 좋은 기분이었다.
제 영웅들이 의미 있는 존재일수록, 그들에게 고마움을 느낄수록, 그들과 제가 다르다는 점을 알게 되었어요.
우드스톡으로 이어진 30개월의 대장정이 시작되려는 찰나, 티모시는 JR에게 스튜디오 열쇠를 넘기고 유럽으로 가서 <더 킹: 헨리 5세>를 촬영했다. 그가 맡은 배역은 그동안 연기한 어떤 인물과도 달랐다. 거기에서 그는 왕이라고 불리는 어떤 인물의 중심을 관통하는 연기를 해내면서, 한편으로는 새롭게 얻은 명성과 배우로서의 인정, 자아를 향한 새로운 유혹 사이의 균형을 유지하려고 애를 썼다.
그해 여름 뉴욕으로 돌아왔을 때 그는 마치 어색한 자세로 대기권에 재진입하는 우주선 같았다. 지난 몇 년간의 패턴이 그랬다. 차분하게 일에 몰두하다가, 작품이 끝나면 그의 표현대로 ‘목적이 사라지고 남은 찌꺼기’뿐이었다. 그것은 2018년 가을에 그레타 거윅, 시얼샤 로넌, <레이디 버드>의 스태프와 다시 만나 <작은 아씨들>을 촬영했을 때도 마찬가지였다. 단지 그곳에 ‘우정의 언어’가 존재하고 있었을 뿐이다. 지금까지 티모시의 경력은 다른 세대의 인물과 나눈 우정으로 가득 차 있다. 티모시의 인생에는 대부분 그보다 나이 많은 사람들이 있다. 아미 해머, 키드 커디, 그레타 거윅 등. 내가 거윅에게 <레이디 버드>부터 <작은 아씨들>까지 가까이에서 티모시를 관찰하면서 알게 된 과정에 대해 언급해달라고 부탁했을 때, 그녀는 이렇게 썼다. “나는 그와 이야기하는 것을 좋아한다. 우리는 전화로 한 시간 넘게 이야기를 나눌 수 있다. 나는 주로 늙고 행복한 기분을 느끼고, 그는 재미있고 불안하다가도 기뻐한다.” 여기에는 티모시가 겪는 이상한 아이러니가 있다. 그는 최근 뉴욕에서 할머니를 만났는데, 할머니의 충고가 그를 놀라게 했다. “또래 사람들과 좀 더 자주 어울렸으면 좋겠다. 그건 정말 이상할 거야.” 그는 쿡쿡 웃었다. 아마도 할머니의 말이 맞을지 모른다. 그러나 그 자신이 그토록 오랫동안 동경해온, 이 창조적인 천재들이 겪어왔던 궤도에서 그가 어떻게 벗어날 수 있을까?
2019년 겨울, 오스카 시상식과 관련한 행사에서 그는 다시 혼란스러운 기분을 느꼈다. 티모시는 자신을 뺀 모든 것이 처음과 정확히 똑같다고 말했다. 그는 여전히 누구도 부정할 수 없는 연기를 펼쳤지만, 아마도 오스카 회원에게는 낯선 사람과 나누는 첫 키스보다는 조금 덜 자극적이었을 것이다. 그는 전처럼 같은 공간에 있었다. 똑같은 점심과 저녁 식사, 칵테일 파티에서, 가장 신선한 비스킷을 조금씩 얻어먹기 위해 모든 자리에 나타나는 똑같은 오스카 회원들과 악수를 나눴다. 그리고 “아직 넌 내 표를 받지 못했”다는 등, 불길한 일에 대해 으르렁대는 이야기를 들어야 했다. 그는 <뷰티풀 보이>로 후보에 오르지 못했다. 하지만 항상 그랬던 것처럼 신선한 공기가 다음 영화 촬영장으로부터 전해졌다. 웨스 앤더슨의 영화 <프렌치 디스패치>는 가상의 영문 잡지에 관한 내용으로, 영화의 구조가 마치 잡지처럼 여러 단편으로 구성되어 있다. 티모시는 그중 두 번째 장편 영화에 제피렐리라는 이름의 68년 5월 학생-시위대 지도자로 출연하며, 그를 취재하는 중년의 기자로 프랜시스 맥도먼드가 출연한다. 앤더슨이 다음과 같은 이메일을 보내왔다. “<레이디 버드>와 <콜 미 바이 유어 네임>에서 티미를 봤어요. 저는 단 1초도 이 역할에 다른 배우를 고려해본 적이 없습니다. 그가 가장 잘 어울릴 거라고 생각했어요. 게다가 그는 불어를 할 줄 알며, 실제로 에릭 로메르 영화에서 걸어 나온 것 같은 외모예요. 1985년경, 파리에서 출발한 완행 기차, 배낭, 악천후 속에서 열흘 동안 해변. 어떤 타입으로도 그를 규정할 수 없겠죠. 하지만 누벨바그가 그에게는 가장 잘 어울릴 겁니다.” 티모시가 가진 명성의 특권은 함께 일할 감독을 고를 수 있다는 점이다. 그가 <프렌치 디스패치>에서 맡은 역할은 사소하지만, 그것은 웨스 앤더슨이 만드는 옴니버스 영화다. 티모시가 어릴 때 시간을 보냈던 동네인 앙굴렘에 도착했을 때, 다른 스토리 중 일부는 이미 촬영되고 있었다. “마치 캐리커처같이 정말 프랑스다웠죠.” 그가 말했다. 이후에 티모시는 제프리 라이트, 빌 머레이, 그리고 웨스 앤더슨 사단의 다른 노련한 배우 등 같이 출연하지 않았던 몇몇 선배 배우들과 함께 할 기회가 있었다. 앤더슨은 “우리 일행과 처음 노는 느낌이 아니었다”고 설명했다. “어찌 된 일인지 우리 가족의 일부, 막내가 되었어요.”
티모시는 몇 년 동안 맥도먼드를 알고 있었지만 접근할 수 있는 사람이라고 느껴본 적은 없었다. 그는 “우리는 같은 소속사에 있었다”고 운을 떼었다. “아직 영화에 출연한 적이 없었어요. 이건 연기를 하면서 얻은 선물 같은 특권인데, 나는 정말로 배우 공동체의 일원이 된 것 같은 기분이 들어요. 좀 가식적으로 들릴지 모르지만, 우리의 대화는 성공과 실패로 얼룩진 사다리에 대해 말하는 게 아니에요. 우리는 오래 지속할 수 있는 커리어에 대해 이야기해요. 창작을 하는 파트너 겸 컨설턴트와의 결혼생활이 어떤지 알려주고요. 맥도먼드는 경험이 많고 현명한 여자고 그녀의 남편인 조엘 코엔이 이상주의적이고 순진한 소년이라고 해도 그들은 같은 위치에 있게 되는 거예요. 그것이 바로 내가 다른 세대들과 만들어 나가길 원하는 관계죠.”
어느 날 밤, 맥도맨드가 티모시 없는 장면을 촬영하고 있을 때, 그녀의 남편인 조엘 코엔은 티모시에게 스테이크를 먹으러 가자고 청했다. 저녁 식사를 하면서 티모시는 코엔에게 딜런에 대해 물었다. 그는 코엔이 팬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으며, <인사이드 르윈>에 푹 빠져 있었다. 티모시는 그가 그런 얘기를 나누는 걸 엄청나게 지겨워했던 것 같다고 했다. 그러나 코엔은 딜런의 정말 위대한 점에 대해 알려주었다. 바로 초창기 몇 년 동안 진행한 엄청난 작업량이었다. 짧게 연속해서 작업한 것, 한 장의 획기적인 앨범을 만들고 곧이어 연속해서 또 만들어내는 것. 즉, 밥 딜런의 위대한 점은 질보다는 양이었다. 이 말은 티모시의 마음속에서 깊게 울렸다. 특히 2020년 여름부터, 잠시 멈춰 서서 보낸 일이 없었던 순간을 반추하면서 말이다. 밥 딜런이 쏟아낸 작품을 보면서 티모시는 더 열심히, 길게, 더 나은, 많은 일을 하고 싶어졌다.
지난봄, 그는 프랑스에서 헝가리로 돌아와 드니 빌뇌브 감독의 <듄 Dune>을 촬영하기 시작했다. <더 킹: 헨리5세>를 촬영하는 동안 머물렀던 부다페스트의 바로 그 아파트였다. 그는 독립 영화 촬영장에서 어떻게 매 순간 연기해야 하는지 이해하고 있었지만, 블록버스터는 완전히 다를 것이라는 점 역시 알고 있었다. 단지 세금을 많이 내게 될 촬영의 규모 문제가 아니었다. <듄>의 규모는 할리우드에서의 입지를 새롭게 증명하는 시작점으로서 충분했다. 드니 빌뇌브 감독은 티모시가 폴 아트레이드를 위한 “처음이자 유일한 선택”이라고 말했다. 그들이 이 영화에 대해 논의하기 위해 만났을 때, 빌뇌브는 티모시에게 마침내 만나게 된 것이 얼마나 기쁜지 말했다. 그리고 티모시는 이미 전에 만난 적이 있다는 점을 그에게 상기시켜야 했다. 티모시는 빌뇌브의 <프리즈너스> 오디션을 본 적이 있었다. 빌뇌브가 기억했다. “오디션은 훌륭했지만, 신체적으로 맞지 않았어요. 내가 뽑지 않아서 아마 욕을 하고 있었을 거예요.” 티모시에게는 이런 에피소드가 많이있다. 그가 유명해지기 전에 영화계의 영웅들과 어긋났던 일 말이다.
“지금 이 지구상에는 폴 아트레이드를 연기할 수 있을 것 같은 존재가 단 한 명 있다고 느꼈다.” 빌뇌브는 1965년에 프랭크 허버트가 쓴 <듄>의 원작 소설에 등장하는 주인공을 예로 들면서 말했다. 그는 겸손한 왕위 계승자에서 구세주, 카리스마 있는 아웃사이더, 모든 남녀, 그리고 갯지렁이 괴물까지 지배하는 인물이 된다. 나는 올여름 처음으로 <듄>을 읽으며 큰 충격을 받았다. 이 소설에서 빌려온 문화를 내가 얼마나 소비했는지 알게 되었다. <스타워즈>, <에일리언>, <매트릭스>, <왕좌의 게임>. 그러므로 폴은 우리가 잘 알고 있는 캐릭터다. 티모시는 빌뇌브가 원했던 특징을 가지고 있다. “폴은 눈에 깊고 깊은 지능을 가지고 있어야 합니다. 감출 수 없어요. 폴은 총명하면서 매우 지적이고 강해요. 관객이 그런 모습을 그의 눈에서 봐야 합니다. 동시에 매우 성숙한 영혼을 가지고 있죠. 관객은 그가 이미 삶을 여러 번 겪었다고 느끼지만, 카메라 앞에서는 매우 젊어 보여야 해요. 어떤 경우에는 거의 열네 살처럼 보이죠. 외모에서는 이런 종류의 일반적인 젊음이 있고, 눈에는 성숙한 영혼이 담겨 있습니다. 그는 자신의 나이보다 삶에 대해 더 많이 알고 있죠. 마지막으로 그는 아름다운 록스타의 카리스마를 가지고 있어요. 나중에는 행성의 모든 사람을 지배하게 될 것이기 때문이죠. 티모시는 1920년대 할리우드 스타들에게서나 볼 수 있는 그런 순간적인 카리스마를 스크린에 표출할 수 있어요. 뭔가 낭만적인 아름다움이 있죠. 귀족이자 동시에 부랑자가 되는 것. 티모시는 내게 폴 아트레이드 그 자체였어요.” 나는 빌뇌브에게 티모시가 대규모 영화 제작에 적응하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것을 전혀 눈치채지 못했느냐고 물었다. 그는 이렇게 대답했다. “촬영장에서는 그리 고생하는 것 같지 않았어요. 하지만 내 생각에 그가 처했던 가장 큰 어려움은 촬영장에서 자신만의 거품을 만드는 일이었겠죠. 그래서 그는 모든 사람과 잘 지내려 애쓰지 않았어요. 더 작은 규모의 촬영장에서는 25명이 있을 때, 그들 모두와 친하게 지낼 수 있죠. 그렇지만 주변에 800명이 있으면 800명과 친구가 될 수는 없어요.” 그는 껄껄 웃으며 말을 이었다. “너무 많잖아요. 어떻게 에너지를 절약하고 집중할 것인가, 어떻게 하면 자신의 거품 속에 머무르면서 스스로 존경받도록 할 것인가가 가장 중요하죠.” 언제나처럼 티모시는 촬영장에서 조금 더 나이가 많고, 현명한 사람들과 특별한 친밀감을 가지고 있었다. 빌뇌브는 또한 티모시와 동료 배우들과의 관계에 대해 설명했다. “티모시가 강렬한 유혹을 받은 것 같아요. 아닐 수도 있지만, 어린아이가 큰 형들과 어울리면서 느끼는 그런 관계 같았습니다. 티모시는 세트장에서 작은 아이였어요. 모두가 그를 사랑했죠. 영화에서 티모시가 제이슨 모모아의 품으로 달려드는데, 제이슨이 강아지처럼 그를 잡아 깃털처럼 공중으로 들어 올리는 장면이 나와요. 실제로 연기한 장면이에요. 그들은 서로를 정말 사랑했던 것 같습니다. 이 젊은이가 자신이 존경하는 사람으로부터 영향을 받는 순간은 정말 아름다웠죠.”
“그의 긍정적인 에너지는 전염성이 있다”고 이 영화에서 그의 가장 가까운 동료였던 젠데이아가 말했다. “함께 어울리기에 너무 재미있는 사람이에요. 우리는 취향이 잘 맞아서 오랫동안 농담을 계속할 수 있지만, 카메라가 돌아가고 일할 때가 되면, 그는 눈부시도록 열정적으로 변신해요. 보고 있으면 정말 멋지죠.” 빌뇌브 역시 에너지라는 말을 강조하면서, 우리가 만나기 전날 밤 티모시를 본 것에 대해 설명했다. “아름답고 강력한 순수함”에 경탄했다고 말이다.
빌뇌브는 “티모시가 일하는 모습을 보면 마치 무언가가 탄생하는 것을 보고 있는 것처럼 심오한 느낌이 들었다”고 덧붙였다. “그저 저와 일했을 때만 그렇다는 게 아니라, 그가 지금까지 해온 모든 영화에서 그 탄생을 느끼기 때문입니다. 광적인 잠재력을 가진 사람이라는 느낌이 들어요. 그래서 나는 그가 지금 하고 있는 일을 전부 다 이루길 바라고 있어요. 단지 때때로 누군가의 앞에 있을 뿐인데도, 강력한 예술가와 접촉하고 있다는 느낌을 받게 되는데, 그 예술가는 여전히 자신의 정체성을 성장시키면서, 스스로를 이룩하고, 그 경계를 배우고, 그것의 일부를 보호하는 방법을 배우고 있는 거죠. 지금 우리는 아름다운 것을 목격하고 있다고 생각해요.”
다음 주에 트럭에 부딪친다면, 아마 스무 살에서 스물셋으로 보이겠죠? 당신이 그걸 감당할 수 있을까요?”
티모시는 지난여름을 1년 동안 사귀었던 릴리 로즈 뎁과 함께 <더 킹: 헨리 5세>를 홍보하는 데 보냈다. 그는 뎁과의 지난 관계를 혼자 간직하는 것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하고 있었다. 하지만 자신처럼 갑자기 엄청난 명예를 얻은 인간의 사생활에 따라오는 위대하면서도 끔찍한 스펙트럼을 요약한, 아주 달콤하고, 아주 재미있고, 매우 슬픈 일화를 말해주었다. 베니스 영화제가 끝난 후 그와 릴리 로즈는 카프리에서 며칠을 보냈다. 그때 파파라치에게 사진이 찍혔다. 특히 그들이 배의 갑판 위에서 키스하는 모습을 담은 한 이미지가 사람들에게 회자되었다. 키스를 하려고 몸을 구부린 티모시의 모습이 다소 어색해 보였던 것이다. 많은 사람이 웃었다. 그리고 어떤 사람들은 이 사진이 홍보를 위한 것이었다고 말했다. 티모시는 “그날 밤은 내 생애 최고의 날 중 하루였다고 생각하며 잠자리에 들었다”고 말했다. “정말 사랑하는 사람과 하루 종일 이 배를 탔다고 생각하면서, 눈을 감으며 두말할 나위 없이 멋졌다고 생각했어요. 그리고 다음 날 아침에 일어나 이 모든 사진을 보면서 창피함을 느꼈죠. 내가 진짜 바보처럼 보였을까? 멍청하게? 게다가 어떤 사람들은 홍보 전략이라고 떠들었죠. 홍보라고요? 그 사람들 앞에서 그렇게 보이고 싶었을까요?”
그 뒤로 그는 네 편의 영화를 연속해서 촬영하면서 다시 사라져버렸고, 조금 변한 시대가 개막했다. 그리고 작년 연말 시즌에 공개된 <작은 아씨들>과 함께 그는 완전히 새로운 방식으로 미디어에 모습을 드러냈다. 이 영화는 자매애, 여성성, 그리고 예술과 상업에 대한 페미니즘 비평이 따라붙은 작품이었다. 그리고 티모시는 여전히 많은 팬에게 촬영장에서 가장 빛나는 존재였다. “나는 열다섯 살 소녀들에게 티모시의 머리카락에 대한 대답을 해주는 데 매우 익숙하다”고 시얼샤 로넌이 나에게 농담을 했다. 로넌은 지난 3년 동안 샬라메와 두 편의 작품을 함께하면서 그에 대해 누구 못지않게 확실하고 특별한 의견을 갖고 있다. “그는 엄청난 기회를 얻었고, 그 기회를 놓치지 않았어요.” 그녀가 말했다. “자신의 일은 물론 함께 일하는 사람들과 관련해서도 믿을 수 없을 정도로 친절하고 고마운 사람이에요. 배우로서 점점 더 마음의 문을 열게 된 것 같아요. 그는 자신의 재능이 무엇인지 더 잘 이해하게 된 것 같아요. 티모시는 요즘 더 열심히 일하는 것 같아요. 전에는 그렇지 않았지만 이제는 자신이 책임져야 하는 프로젝트가 더 많아졌기 때문이죠. 그리고 물론 이제는 관심과 악명이 아예 다른 수준으로 동시에 존재하는 영역에 던져졌죠. 그래서 그는 자신의 믿을 수 없는 명성과 관심 사이에서 균형을 맞춰야 하는데, 저라면 완전히 기겁할 일이죠.” 난 로넌에게 티모시 옆에 앉아 있으면 사람들의 관심이 어느 정도 느껴지는지 물어보았다. “저는 항상 충격을 받아요. 한 인간이 사람들의 삶을 완전히 장악하는 것처럼 느껴지거든요.” 그녀는 약간 믿을 수 없다는 듯이 웃으며 말했다. “젊은 남자 배우들은 티모시와 같은 방식으로 관객들을 사로잡기가 쉽지 않아요. 그는 매우 매력적이고 아름다운 외모를 가졌어요. <작은 아씨들>을 작업할 때 많이 이야기했던 것 중 하나는, 우리가 연기한 인물은 물론 우리 둘 다 남성성과 여성성을 동등하게 가지고 있다는 것이었어요. 제 생각엔 그게 그의 장점 중 하나예요. 믿을 수 없을 정도로 여성스럽고 예민하고 관능적일 수 있다는 거죠. 그리고 티모시는 여자들이 매력을 느끼는 남자이기도 하고요. 그래서 많은 인기를 얻을 수 있는 거예요. 티모시는 귀엽고, 사람들이 그에게 사로잡혀 있지만, 결국에 다른 방법을 깨닫게 될 거예요. 나는 그가 촬영장에서 일할 때, 다른 모든 것과 자 신을 분리하는 기술을 익히는 걸 보아왔어요.”
티모시는 6월 초에 자기 자신에 대해 질문하며 시간을 보냈다. ‘내가 무엇 을 할 수 있을까?’, ‘이 모든 일에서 나의 역할은 무엇인가?’ 그는 행동 에 나설 때나 가만히 있을 때 모두 갈등을 느꼈다. 그러나 그가 조지 플로이드 사건의 여파로 로스앤젤레스에서 수백, 수천 명의 다른 사 람들과 함께 익명으로 행진할 때보다 덜 불확실하고 덜 자의적으로 느낀 순간은 없었다. 그것은 적극적인 참여 방법이었다. 의미심장한 행동이었고, 명성이나 권력을 과시하지 않는 행동이었다. 그는 무슨 짓을 해도 공격당할 것 같았기 때문에 겸손하고 책임감 있게 느껴지 는 것에 대한 본능을 따르려고 애썼다. “내가 이해한 사실은 정치적으 로 조직화된 집단으로부터 힘이 생긴다는 점이에요. 얼마나 많은 집 단을 함께 도모할 수 있느냐에 달린 문제죠.” 그가 말했다. 그는 사라 지는 대신에 오히려 그 자신을 벗어버리고, 많은 사람과 한 집단이 되 어 공간을 점유하고 분명한 내용을 주장했다. 그는 “마스크, 후드, 모 자, 안경으로 얼굴을 가렸다”면서 “말 그대로 그 집단이 물리적인 형 태를 보이고 있었다”고 설명했다. 선거에서 투표한 것과 같이 한 공간 에 모인 하나의 집단에는 민주주의가 익명으로 구현되어 있다. 그는 다른 사람들과 같은 힘을 가질 뿐이었다. “사람들은 표리부동하다고 생각할지 모르지만, 저는 정말로 근거가 있는 행동이라는 것을 알았 어요.” 그는 말했다. “전혀 어색하지 않았어요. 몇 년 동안 이런 군중 속에 있었던 적이 없었지만요.”
그는 여름 내내 그가 겪은 문화적, 정치적 순간에 대응하는 방식에 대해 다 른 사람들과 이야기를 나눴다. 그는 “집회가 끝나면 나는 친구들에게 기분이 좋으냐고 물어볼 것”이라고 말했다. “만약 기분이 좋다면 그 게 바람직할까요? 아니면 잘못된 이유로 시위에 참여하고 있다는 것 을 의미하는 것일까요? 소셜 미디어에 집회에 참여했다는 것을 얼마 나 알리고 싶겠어요. 하지만 집회에 참여하는 게 소셜 미디어에 올릴 법한 미덕을 갖춘 일일까요? 그렇지만 소셜 미디어야말로 가장 실천 을 도모하는 일 아닌가요?” 나는 그가 이런 질문을 자신에게 수십 개 씩 하는 것을 들었다. 그는 잘하는 것, 옳은 일을 하는 것에 진심으로 신경을 쓴다. 그러나 그는 자신의 명성과 특권을 남용해서 다른 사람 이 말해야 하는 순간을 지워버리고 싶지 않았다. 다른 목소리들이 중 심을 잡는 데 도움을 주고 싶었다. 그는 로스앤젤레스에서 행진이 열 리는 첫 주 동안 매일 비디오를 인스타그램에 업로드했다. 카메라를 통해 특정한 주장을 내세우지는 않았다. 다만 팔로워들에게 암묵적 으로 드러냈을 뿐이다. 집회에 참여해서 사람들의 말을 듣고, 한 집단 이 되자는 주장 말이다. 티모시는 결국 자신이 원한 대로 일을 진행했 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 그러나 부와 권력의 정상에서 끊임없이 말하 는 것이 더 좋은가? 아니면 입을 다물고 안경을 쓰고 후드를 뒤집어 쓴 채 많은 개인 중 한 명으로서 신념에 따라 살고 행동하는 것이 더 좋은가? 시위하고, 투표하고, 말보다는 행동으로 주장하는 것. 계속 움직이고, 드러내면서, 한 집단이 되는 것. 모든 사람이 지켜보는 가운 데 자신의 가치관에 충실한 삶을 살기 위해 어떻게 해야 하는지 연습 하려면 이보다 좋은 시작이 없을 것이다.
티모시는 ‘세대를 아우르는 동료들’과 밥 딜런, 그리고 그가 찾을 수 있는 다른 모든 사람의 도움을 받아 올바른 길과 사람들을 찾고 있다. 그들 이 가진 지식과 경험의 혜택을 원하고, 그 교훈이 더딘 성장이라고 해 도 크게 상관없다. 지난 몇 년 동안 그는 ‘성인은 단지 조금 더 나이 든 아이일 뿐’이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올여름 로스앤젤레스에서 뉴욕 으로 돌아왔을 때, 그는 어릴 적에 살던 아파트나 지인의 집에 머무르 지 않았다. 대신 맨해튼의 좁은 구석에 있는 자기 소유의 첫 번째 아파 트로 돌아왔다. 그리고 자기 집을 마련하는 즐거움에 빠졌다. 가구점 CB2에 처음 구경 갔던 것에 대해 이야기할 때는, 마치 어떤 사람이 영 화 촬영장에 처음 가본 것을 설명하는 것 같았다. “하지만 사람들이 제 아파트가 어떻게 생겼는지 봤다면 ‘아! 이 녀석 완전히 살림을 꾸릴 줄 모르는구나’라고 생각했을 거예요.” 그는 너무 어리고 동시에 너무 늙었다. 이것은 그의 재능이다. 따분해서 가만히 있지 못하는 순간을 참을 수 있다면 그는 대부분의 경우 인내심을 발휘한다. 일에 집중하 면 자신감이 넘치는 반면, 남은 인생에 대해 질문하면 계속 골똘히 생 각하며 몰두한다. 앞으로도 항상 이렇게 살게 될까? 이토록 유연하고 개방적으로? 자기반영적이면서 동시에 특별한 의도를 갖고? 그는 자 신이 얻게 된 새로운 인생을 신뢰하지 않지만, 자신의 재능을 믿고 있 었다. 그게 가장 중요한 것이었다. 아직 자기 자신을 어떻게 연기해야 하는지 알아내려고 노력하고 있지만, 다른 사람을 연기하는 데 능하 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우리는 우드스톡과 뉴욕에서, 그리고 전화로 앞으로 그의 경력이 어떻게 흘러갈지에 대해 이야기를 나눴다. 그는 아주 겸손하게 자신의 능력 을 인정했다. 그러나 그는 선천적이고 초월적인 재능과 숙련의 차이에 대해 많은 생각을 해왔다. 숙련은 미성숙한 위대함의 바닥으로부터 현실에 드러난 잠재력까지 올라가기 위해 요구되는 것이었다. 하지만 그는 자신의 경력이 완전히 다른 방향으로 바뀔 수 있다는 것을 알고 있을 정도로 현명했다. 세상이 바뀌거나 기회가 사라지거나.
그는 나에게 “다음 주에 트럭에 부딪친다면, 저는 아마 스무 살에서 스물 세 살로 보일 텐데 당신이 그걸 감당할 수 있을까요?”라고 말했다. 그 는 배우라면 평생을 찾아 헤맬 법한 유니콘 같은 영화인 <콜 미 바이 유어 네임>과 함께 등장했다. 그리고 즉각적으로 오스카상 후보가 되 어 배우로 활동하면서 특별한 검증을 위해 시간을 낭비하지 않아도 되었다. “나는 배우라는 것을 증명하려고 머리를 벽에 부딪치지는 않 을 것”이라고 그는 말했다. “제 다리 위로 기차가 지나갈 수도 있을 거 고, 영원히 선로를 떠날 수도 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에게 진입 점은···.” 그는 뜸을 들이며 말했다. “바로 좋은 느낌이에요.”
“저는 제가 일을 처리하는 방식을 살피는 중이에요.”
그는 디카프리오, 베일, 피닉스, 뎁 등 관객들이 기대할 수 있는 모든 배우 의 경력을 살핀다. 그들의 경력을 일일이 분리해서 이해하기 위해 최 선을 다하며, 자신의 연기에 적용할 수 있는지 살핀다. 하지만 그 배우 들이 보여준 성공적인 연기와 관련된 모든 규칙은 오래 인기를 유지하 기 위한 방식과 관련 있다. 이 규칙들은 이제 의미가 없다. 할리우드는 변했고, 미디어와 팬들도 변했다. 영화와 세상도 역시 변했다. “제 영 웅들이 의미 있는 존재일수록, 그들에게 조언을 얻을 때 고마움을 느 낄수록, 이제는 그들과 제가 단지 다를 뿐이라는 점을 알게 되었어 요.” 그리고 티모시는 앞으로 몇 년 동안 스스로 자신에게 걸맞은 길 을 찾아다니게 될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다. 최근에는 이 단계를 어둠 속에서 손전등을 비추는 것처럼 생각한다. 그를 상당히 흥분시키는 잠재적인 프로젝트들이 있는데, 그중 어떤 것은 제작 단계에도 좀 더 깊숙이 관여하고 있다. 물론 밥 딜런의 전기 영화도 있다. 하지만 할리 우드 영화 대부분의 제작이 여전히 중단된 한 해의 남은 시간을 어떻 게 보낼 것인가 하는 문제가 남아 있다. 그는 “남은 한 해 동안은 트럼 프 생각만 하려고 한다”고 말했다. 하지만 그 후 잠시 유럽으로 갈까? 우드스톡에서의 실험은 그가 원했던 대로 이루어졌다. 작은 공간, 낯 선 곳. 그는 또다시 다른 공기를 마시고 싶어 할 것이다.
- 글
- Daniel Riley
- 포토그래퍼
- Renell Medrano
- 스타일리스트
- Mobolaji Dawodu