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들은 요즘 자동차에서 잠을 자는 게 힐링이라고 말한다. 알다가도 모를 것 같은 이상한 행동 같지만, 이게 바로 차박의 본질이다.
차박이 인기다. 멀쩡한 집을 두고 사람들은 자동차에서 잠을 잔다. 오토캠핑이란 개념과는 사뭇 다르다. 자연을 즐기는 과정 없이도 차박 자체가 목적이 된다. 집과 캠핑, 일상과 본격적인 취미 활동 사이의 미묘한 경계에서 새로운 놀거리로 자리 잡은 것이다. 차에서 불편하게 잠을 자는 것이 뭐가 좋을까? 그건 경험해본 사람만이 안다.
스물네 살 무렵 첫 차를 샀다. 회상해보면, 마치 날개를 단 것 같은 기분이었다. 원하는 장소에 마음대로 갈 수 있다는 사실이 큰 혜택처럼 느껴졌다. 20대의 혈기 왕성한 남자에게 자동차는 이동 수단 이상의 존재였다. 재미있는 장난감이었고, 움직이는 개인 창고였다. 자동차라는 친구가 삶의 반경뿐 아니라 라이프스타일 전반을 변화시켰다. 더는 무거운 가방이 필요 없어졌고, 옷차림은 계절에 상관없이 한결 가벼워졌다. 트렁크라는 커다란 요술 주머니는 비밀 창고였다. 목적 없는 물건들이 철저하게 준비되어 있었다. 세차 용품, 노트북, MP3 스피커, 배드민턴, 의자, 침낭, 텐트, 심지어 비상식량까지 트렁크에 넣고 다녔다. 언젠간 활용하게 되리라 생각하면서….
어느 가을이었다. 강원도에 일이 있어서 갔다가 새벽 3시쯤 서울로 돌아오게 됐다. 가로등도 없는 캄캄한 산길 수십 킬로미터를 달리고 있었다. 너무 집중한 탓일까? 피곤함을 심하게 느꼈다. 잠깐 눈을 붙이려고 산 중턱 안전지대에 차를 세웠다. 그러곤 능숙하게 뒷좌석을 접은 후 트렁크에서 침낭을 꺼내서 누웠다. 내 몸의 상체는 차의 뒷자리에 있었고, 하체는 트렁크 안쪽에 있었다. 이게 요즘 기준에선 차박의 기본 형태다.
그렇게 몇 시간을 자다가 햇살 때문에 눈을 떴다. 오전 7시 20분. 차가운 새벽 공기가 자동차 유리창을 성에로 채웠다. 잠이 덜 깬 상태로 밖으로 나갔다. 그리고 침낭을 한 손에 든 채로 그 장면과 조우했다. 키가 큰 나무가 있는 숲 한가운데, 안개 사이로 햇빛이 하늘에서부터 길을 만들며 조명처럼 지면을 비췄다. <내셔널지오그래픽> 표지에 어울릴 만한 그런 장면이었다. 얼음처럼 차고 신선한 공기가 폐 깊숙이 들어찼다. 그 순간은 고요했지만, 생동감이 느껴졌다. 인생을 통틀어 그렇게 완벽했던 순간이 또 있었을까 싶을 정도다. 뜨거운 커피 한 잔이 그리웠을 뿐. “커피포트도 가지고 다닐걸.”
그렇게 우연히 차박의 매력을 경험하고 나는 자동차에서 잠자는 행위가 특별하다는 걸 알게 됐다. 그 이후로도 몇 번 더 그런 경험을 했다. 오토 캠핑장처럼 인공적인 장소가 아니라 자연 속에서 하룻밤을 보낸다는 것은 특별한 경험이었다. 캠핑 마니아들의 전유물로 여겨졌던 백패킹의 매력을 쉽고 안전하게 즐길 수 있다는 것이 장점이었다. 그런 관점에서 차박은 일상에 여유가 없는 현대인에겐 접근하기 쉬운 힐링 수단이 분명하다.
최근 한 온라인 쇼핑몰에서 차박용 에어 매트의 매출이 작년 대비 8배나 높아졌다는 소식을 접했다. 실제로 주변에도 차박을 목적으로 구입할 자동차를 추천해달라거나, 차박 모임을 주선하는 지인들도 늘어나는 추세다. 코로나 바이러스로 사회적 거리 두기가 중요한 시대에 독립된 공간에서 신선한 공기를 마실 수 있다는 매력 때문에 차박이 각광 받는 건 이해가 된다.
사실 요즘 사람들이 즐기는 차박은 이전에 내가 경험한 것과는 조금 다르다. “지난 주에 지방 XX 호텔 근처 주차장에서 차박했는데 좋았어요.” 지인의 이야기였다. 호텔이 있으면 호텔에서 자면 되는데. 차에서 잘 거라면 굳이 호텔 근처에 가야 하나? 이런 질문에 돌아온 답은 예상 밖이었다. 커뮤니티에선 지방 호텔 주변이 차박 하기에 좋은 장소로 꼽힌다는 것이다. 안전하고, 주차 공간도 쾌적하면서, 필요할 때 편의점이나 사우나 같은 인프라를 사용할 수 있다고 했다.
호텔 주차장이든 휴게소 주차장이든, 그나마 교외로 나간 사람은 오토캠핑의 연장선이라고 볼 수 있다. 반면 요즘의 차박 트렌드는 ‘일상 속 차박’이다. 말 그대로 도심 한가운데 자동차를 주차할 수 있는 곳이라면 어디든 하룻밤이 가능하다. 이 카테고리는 ‘노지 차박’ 혹은 ‘도시 차박’으로 시작됐다. 그러곤 콘텐츠 크리에이터들에 의해 비가 오는 날은 ‘우중 차박’, 혼자 즐기면 ‘솔로 차박’ 등으로 포장되며 유행처럼 번지고 있다.
“우리 캠핑 가서 놀래?” 지금까지 오토캠핑은 특정 장소에서 벌어지는 경험이었다. 요즘의 차박은 접근부터 다르다. “늦게까지 공연 보고, 차박 할래?”처럼 라이프스타일 어디에나 대입할 수 있다. 차가 머물 특별한 장소도 그리 중요하지 않다. 자동차로 갈 수 있고, 분위기가 좋은 곳이라면 어디든지 목적지가 된다. 오죽하면 차박 인구가 몰리는 목적지가 ‘화장실이 있는 무료 노지’겠는가. 개인적으론 도심 속 차박은 노숙과 한 끗 차이라는 생각이다. 공원에서 잠을 자나, 공원 옆에 주차된 차에서 잠을 자나 크게 다르지 않아 보인다. 해석하기 나름일 뿐이다. 차 안에서 음식이나 술을 마시는 것도 인생에서 한두 번은 매력적일 수 있다. 그래도 상식적인 관점에선 아름다운 광경은 아니다.
차박을 목적으로 자동차를 구입하는 사람도 심심찮게 눈에 띈다. 다음은 한 지인의 사례다. 서른 아홉 살이 되도록 그는 자동차를 구입하지 않았다. 그게 이상하다는 건 아니지만 이유가 다양했다. 출퇴근 거리가 멀지 않다는 점, 술을 좋아해서 자동차가 종종 번거롭게 느껴진다는 점, 기계를 좋아하거나 운전 자체를 즐기지 않는다는 점 등이다. 그런 그가 차박을 하겠다며 7인승 SUV인 쉐보레 올란도에 대해 물어왔다. 내심 놀랐다. 누군가의 삶의 방식을 완전히 바꿔놓을 만큼 차박이 인기라는 사실이. 이 사건 이후 차박에 대해 좀 더 깊숙이 들여다보게 됐다.
요즘 캠핑 전문 잡지에는 차박 콘텐츠가 꽤 많은 비중을 차지한다. 시즌 프로그램으로 럭셔리 차박을 기획하는 호텔도 늘어나는 추세다. 차박 장소와 용품을 대여해주기도 한다. 자동차 회사들도 차박 유행에 맞춰 다양한 액세서리를 제공하고 있다. 르노삼성, 쉐보레, 쌍용 등은 자사의 제품에 맞춤화된 에어 매트와 카 텐트 같은 액세서리를 직접 판매한다. 자동차 회사가 제공하는 차박 관련 액세서리는 코로나 바이러스 이전과 비교할 때 매출이 30배 정도 늘었다고 한다. 국산차와는 다르게 일부 수입차 회사들은 캠핑 레저 브랜드와 협업해 SUV 고객에게 차박 용품을 증정하는 이벤트로 눈길을 끈다.
커뮤니티를 중심으로는 차박을 하기 좋은 자동차의 기준과 사양, 공간 활용성에 대한 정보들이 쏟아진다. 특히 일부 전기차는 ‘유틸리티 모드’를 지원해 차박러들에게 인기를 얻고 있다. 유틸리티 모드는 전기차 구동에 필요한 전원은 차단하면서 대용량 배터리의 도움으로 냉난방 시스템과 220V 전기 콘센트를 사용할 수 있게 해준다. 시동을 끈 차에서도 스마트폰이나 노트북 충전이 가능하고, 빔프로젝터나 조명 기구를 사용할 수 있어 무척 편리하다.
차박의 유행은 사회적으로 빠르게 전파됐다. 규모 면에서도 엄청나다. 자동차를 가졌다면 누구나 시도해볼 수 있을뿐더러, 사회적 거리 두기로 활동이 제한되는 분위기에 맞물려 대중문화의 일부로 자리 잡는 중이다. 건전하고 좋은 취미이지만, 무턱대고 휩쓸릴 필요까지는 없다. 대중문화의 흐름은 언제든 바뀔 수 있다. 한순간에 뜨거워졌다가 순식간에 식어버린 앞선 사례들을 떠올려보자. 반짝하고 있는 차박 유행만 예외란 법은 없다.
- 에디터
- 글 / 김태영(자동차 저널리스트)
- 사진
- Getty Image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