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콩의 우산혁명, 태국의 반정부 시위, 미국 대선까지, 그 중심에는 Z세대가 있다. 해시태그를 통해 옳지 않은 일을 적극적으로 비판하는 신인류의 활약상.
1997년 홍콩의 중국 반환 이후, 2047년까지 홍콩이 다른 정치, 경제, 사법 체제를 유지케 하겠다던 중국 정부는 약속을 어겼다. 홍콩 시민들이 원했던 홍콩 행정장관 직선제를 거부하고, 미리 뽑아놓은 후보 세 명 중 하나를 고르게 했다. 자유의 파도가 치던 곳에 ‘하나의 중국’이라는 방파제를 세운 셈이다. 2014년, 다수의 대학이 동맹 휴학을 선언하고, 학생과 일반 시민들이 거리로 나섰다. 경찰은 최루액을 쐈다. 시위대는 이에 대항해 우산을 펼쳤다. 홍콩 민주화 시위가 이른바 ‘우산혁명’으로 불리게 된 계기다. 이 역사적 사건의 중심에 Z세대가 있었다.
Z세대는 약간의 편차는 있지만 시기적으로는 1996년을 전후해 태어난 세대이며, 물리적으로는 ‘스마트폰과 소셜 미디어를 제 몸처럼’ 사용하는 세대로 규정된다. 홍콩 우산혁명은 ‘물 흐르듯 모여서 행진하고 철수’해서 ‘유수·Be Water’식 시위라 불리기도 하는데, 그러한 유연함과 응집력이 가능케 한 원동력은 스마트폰과 소셜 미디어였고, 해시태그는 지휘부였다. 이런 면모들로 인해 Z세대는 ‘디지털 원주민 세대’라 불리기도 한다.
중국 정부의 탄압으로 ‘우산혁명’은 점차 기세가 꺾였다. 2020년 7월 시행된 홍콩보안법(국가에 반하는 활동 등을 처벌할 수 있는 법안)이 결정타였다. 시위 전면에 나섰던 네이선 로(1993년생)는 해외로 망명했고, 조슈아 웡(1996년생)과 아그네스 차우(1996년생)는 체포되어 실형을 선고받았다. 그러나 시위가 끝난 것은 아니다.
2020년 9월 개봉한 영화 <뮬란>의 주연배우는 중국 출신 유역비였다. 유역비는 홍콩 시위 당시 자신의 SNS에 “홍콩 경찰을 지지한다. 홍콩은 부끄러운 줄 알라”라고 올렸다. 각국의 Z세대가 이에 반응했다.(소셜미디어는 과거를 삭제시키지 않는다. 유예한다.) 이들은 아그네스 차우의 구속을 비판하며 해시태그를 달았다. #TheRealMulan. ‘뮬란’ 보이콧 운동의 중심에는 세 나라가 있었다. 홍콩, 태국, 대만. 이른바 ‘밀크티동맹’이다. 자본가에 대항한 국제 노동자들의 “만국의 노동자여, 단결하라!”라는 연대 구호는 Z세대가 중심이 된 2020년 태국 시위에서 ‘밀크티동맹’이라는 이름이 되었다.
태국 반정부 시위 역시 정치, 경제 민주화에 대한 열망이 중심에 있다. 태국 Z세대들은 ‘세 손가락 경례’를 통해 크게 세 가지 사항을 요구했다. 쿠데타로 집권한 군부 출신 총리의 퇴진과 기존 의회 해산, 군주제 개혁. 계층 이동 가능성이 극히 좁은 태국의 Z세대들에게 군주제를 비롯한 기존 체제는 불평등한 상황을 고착하는 ‘옳지 않은 것’에 불과하다. ‘옳지 않은 일’에 대한 적극적 비판은 Z세대의 주요 활동 무대인 SNS의 거대 조류 중 하나다. 세대 연구를 담은 보고서들이 Z세대가 ‘공정하지 못한 것에 저항하는 윤리적 유전자’를 내재하고 있음을 자주 언급한다는 분석도 있다.
태국 정부의 시위 진압에 맞서 시위대는 ‘시위 직전 시위 장소를 소셜 미디어에 공개’하며, 리더의 지휘 없이 상황에 맞춰 다 같이 시위대를 움직였다. 그리고 이를 해시태그로 표현했다. #everybodyisaleader. 리더의 통솔이 필요치 않는 Z세대의 특징은 시위를 새로운 양상으로 이끌었다. 태국의 반정부 시위는 최루가스 물대포를 막기 위해 우산을 사용하는 등 여러 면에서 홍콩 우산혁명을 닮았다. 단순히 특징만 모방한 것은 아니다. 국경을 넘어선 연대 전선을 형성했다. 조슈아 웡은 구속 전 홍콩 주재 태국 영사관 앞에서 태국 시위대와 뜻을 함께한다는 팻말을 들었다. 대만의 Z세대 역시 세 나라가 홍차에 우유를 섞은 밀크티를 즐겨 마신다는 것에 기반해 해시태그로 #MilkTeaAlliance를 달며 홍콩과 대만의 시위에 마음을 보탰다.
사실상 반 중국 동맹이다. 그러나 눈여겨봐야 할 부분은 중국이 아니다. Z세대의 활동 반경이다. 과거에는 ‘세대와 세대 변화가 국가의 틀 내에서 이해되어 왔다’면, Z세대는 글로벌 차원에서 일어나는 일들에 대해 ‘초국가적 대응을 하는’ 첫 번째 세대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중국과 한국의 Z세대도 예외가 아니다. 이러한 초국가적 결속에 가속을 더하는 대표적인 Z세대에 방탄소년단(BTS)과 중국의 BTS Army가 있다.
방탄소년단(BTS)은 2020년 10월 밴플리트상을 수상했다. 벤플리트상은 ‘코리아 소사이어티’가 한·미 관계 발전에 기여한 인물에게 수여하는 상이다. BTS는 수상 소감으로 “한국과 미국이 (6.25 전쟁 당시) 함께 시련을 겪었다”라고 밝혔다. 이 말은 6.25 전쟁 당시 중국인의 희생을 외면했다는 이유로 일부 중국 시민과 중국 정부의 심기를 건드렸다. 시민들의 불매운동뿐만 아니라 정부 차원에서 BTS 관련 내용들을 검열하고 나섰다. 이후 BTS는 2021년 시즌 그리팅(국내에서는 연말연시에 아이돌 및 가수들이 발매하는 각종 굿즈 세트 모음을 의미한다) 영상에서 노란 우산을 쓰고 나왔다. 노란 우산은 홍콩 우산혁명을 상징하는 물건이다. SNS에서는 BTS가 중국 정부에 굴하지 않고 홍콩 시위를 지지한 것으로 받아들이는 분위기다. 우연이 아니라면 BTS 역시 Z세대의 윤리적 유전자를 발현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중국의 일부 아미 Army들도 자국 중심주의적 사고에서 벗어나 해시태그를 통해 자신의 생각을 드러내고 있다. #방탄소년단을만나더나아진자아. 소셜 미디어의 글로벌한 성격은 이를 아낌없이 활용하는 Z세대의 자아를 확장시키고 있다.
자신을 둘러싼 환경이 변하면 자아 정체성 역시 영향을 받기 마련이다. 미국의 Z세대가 2020년 미국 대선에서 드러낸 표심을 보면 이들의 자아가 구체적으로 어디를 향하고 있는지 유추할 수 있다. 이들을 대표하는 해시태그는 인종 차별에 반대하는 #BlackLivesMatter이다.
미국 선거 분석 결과에 따르면 2020년 대선의 사전투표율은 2016년 대선에 비해 주별로 3~5배가량 높다. 이번 선거에서 첫 번째 투표 권리를 행사하는 Z세대의 다수가 사전투표율을 끌어올렸다. 이들은 전통적으로 공화당 강세 지역인 텍사스, 조지아, 사우스캐롤라이나에서 민주당 후보인 바이든을 더 많이 지지함으로써 선거 결과를 흔들었다. 그 바탕에는 인종 차별 정책을 펼친 트럼프에 대한 비토가 깔려 있다. 미국 Z세대들에게 인종 차별은 비윤리적인 행태를 넘어선다. 2015년 미국 18세 이하 인구의 거의 절반이 흑인, 히스패닉, 아시아계로 구성된 상황에서 트럼프의 인종 차별성 발언과 정책은 Z세대를 둘러싼 환경에 대한 거부이자, 다양성이 문화적 풍성함을 위한 수단이 아니라 삶의 전제 조건에 가까운 Z세대의 정체성을 부정하는 것이었다. 인종 차별 반대 시위와 선거 참여 독려 시위는 거리를 점거하고 행진하는 것뿐만 아니라 #BlackLivesMatter, #VOTE2020이라는 해시태그로 이어졌고, 결국 트럼프를 백악관에서 반쯤(여전히 트럼프는 공식적으로 선거 패배를 인정하지 않고 있다) 몰아내는 데 성공했다.
Z세대가 다른 세대에 비해 더 정의롭다고 단정하는 것은 시기상조다. 세대론은 구멍이 뚫린 비닐봉지 같은 것이라 특정 세대의 특징을 모두 주워 담을 수 없다. 그러나 이렇게 말할 수는 있다. 과거, 혁명은 ‘젊은이들의 피를 요구하는 흡혈귀’ 같은 것이었다. 지금도 일부는 피를 흘리고 있지만 과거만큼은 아니다. Z세대는 해시태그를 통해 피를 덜 흘리면서도 새로운 사회에 대한 자신들의 욕망을 현실화시키고 있다. 글 / 김기창(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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