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어떤 음악을 들어야 하나? 계보를 논하기보다 당장 오늘이 떠오르는, 그래서 더 펄떡이는 음악가 11명을 만났다.
퍼렐 윌리엄스 PHARRELL WILLIAMS
“잠들지 않는 남자”
10:57 a.m. / 웨스트 할리우드의 유니클로 매장 퍼렐이 두 명의 여자 어시스턴트와 차에서 내렸다. 유니클로는 특별한 이벤트를 위해 비벌리 센터 매장의 문을 닫아둔 상태였다. 30여 명의 노숙자 어린이들이 마음껏 쇼핑하는 날. 유니클로와 디자인 협업을 진행하기도 한 퍼렐이 바로 이 행사의 깜짝 게스트였다. 퍼렐은 어린이들과 사진을 찍고, 같이 옷을 둘러봤다. 사실 많은 아이들은 그가 누구인지 잘 모르는 것 같았다. 일곱 살 짜리 애들에겐 다소 생경한 얼굴일 수도 있다. 그들은 퍼렐이 한 달 동안 라디오에서 나오는 음악의 43퍼센트를 만든 남자란 것을 알 리가 없다. 그렇다고 퍼렐이 코치로 출연하는 <더 보이스>를 보지도 않을 것이다. ‘Blurred Line’이란 노랠 어디선가 들어봤더라도, 그 노랠 만든 주인공이 곡을 부른 로빈 시크가 아니라 퍼렐이라는 것도 모를 것이다. 퍼렐은 전혀 개의치 않는 듯 보였다. 아이들을 이끌고 유니클로 매장 구석구석을 돌아다녔다.
11:48 a.m. / 카후엔가 거리 북쪽으로 향하는 길 퍼렐이 자신의 캐딜락 에스컬레이드 앞좌석에 다시 올라탔다. 그는 지금 <더 보이스> 촬영장으로 가는 중이다. 이동 중인 퍼렐에게 전화가 왔다. 그의 음반 매니저였다. “T.I. 건은 썩 기분이 좋진 않았어.” 퍼렐이 쓴 곡이 포함된 T.I.의 < Paperwork > 음반에 대한 얘기인 듯하다. “라디오 플레이를 감안해서 곡을 녹음한 건데, 전혀 방송에 노출되지 않았으니. 그래서 그 노래 대신 홍보한 다른 노래로 얼마나 팔았는데?” 한편 기자들과 얘기할 때 그는 마치 예언가나 점쟁이 같아 보인다. “다 숫자예요. 우리 몸 안에 있는 뼈의 숫자는 정해져 있잖아요. 얼굴엔 일곱 개의 구멍이 있고요. 태양계엔 아홉 개의 행성이 있고, 태양은 한 개죠. 모든 것은 숫자로 계량할 수 있어요.” 이런 얘기엔 많은 뜻이 함축되어 있겠지만…. 만약 퍼렐과 그를 둘러싼 음악 산업에 대해 알고 싶다면, 그를 인터뷰하는 건 별 소득이 없다. 그보다는 캐딜락 에스컬레이드 뒷자리에 앉아 다른 이들과 나누는 대화를 엿듣는 편이 낫다. “켈리는(켈리 클락슨에 대해 말하는 것 같다), 내 생각에 우리가 소니에서 그녀를 빼와야 할 것 같아. 켈리의 음악을 <선즈 오브 아나키>나 <하우스 오브 카드>에 넣는다고 생각해봐. 엄청 잘 어울릴 것 같지 않아? 켈리의 새 음반은 정말 끝내줘.” 마지막으로 퍼렐이 음반 매니저와 나눈 얘기는 한 위기의 뮤지션에 대해서였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있을지 모르겠어. 진짜 심각해 보여. 음악만의 문제가 아닌 것 같아. 아, 지금 우리 차에 기자가 앉아 있거든. 그래서 돌려 말하는 거야.”
12:52 a.m. / 유니버설 시티의 <더 보이스> 녹화현장 10분쯤 뒤, <더 보이스>의 8번째 시즌을 위한 사전녹화가 시작된다. 심사위원이자 코치인 퍼렐, 블레이크 셸턴, 애덤 리바인, 크리스티나 아길레라가 모두 모일 예정이다. 퍼렐은 차에서 새 노래를 만들고 있었다. 헤드폰을 쓰고 있기 때문에 어떤 노래를 쓰고 있는지는 알 수 없다. 그저 키보드를 두드리는 마찰음만 들릴 뿐. 퍼렐이 마침내 헤드폰을 벗고 자신의 어시스턴트인 캑터스에게 말했다. “빅션한테 이메일 보내서 미사일 하나 날아간다고 전해줘.” 하지만 퍼렐은 너무 기쁜 나머지 곧장 빅션에게 직접 전화를 걸었다. “지금 보낸 노래 받았어? 우리가 얘기했던 그런 노랜 아닌데, 완전 끝내줘!”
1:15 p.m. / <더 보이스>의 녹화현장 근처의 스튜디오 코치들이 마침내 모습을 드러냈다. 그들이 스튜디오에 등장하자마자 인터뷰어가 따라붙었다. 코치진 인터뷰야말로 <더 보이스>를 홍보하기 위한 좋은 뉴스거리가 된다. 한 인터뷰어가 코치들에게 질문을 던졌다. “<더 보이스>의 새로운 시즌을 세 단어로 표현한다면요?” 애덤 리바인은 “석탄, 말도 안 되는, 라벤더”라고 대답했다. “영감, 페퍼민트, 구름. 전 지금 구름위에 올라탄 기분이거든요.” 그웬 스테파니는 질문이 썩 맘에 들지 않는 듯하다. 퍼렐은 “행복한, 총체적인, 선물”이라고 말했다. “가능성 때문이에요. 재능 넘치는 사람들을 한 번에 볼 수 있잖아요.”
3:32 p.m. / <더 보이스> 녹화현장 방청객 호응을 유도하는 스태프가 객석을 뜨겁게 달궈놓은 뒤, 네 명의 코치들이 폭발적인 공연을 선보였다. <더 보이스>에 대한 기대가 한껏 치솟았다.
8:37 p.m. / 할리우드의 W호텔 옥상 오늘 밤 퍼렐은 그웬 스테파니와 새 노래를 녹음할 예정이다. 퍼렐의 어시스턴트 캑터스, 아트 디렉터 피, 안무가 파티마가 퍼렐과 함께 있었다. 힙합은 한때 테스토스테론이 들끓는 장르였지만, 오늘 퍼렐 주변엔 여자들뿐이다. “여자들은 자신의 의견을 솔직하게 표현하는 방법을 알고 있어요. 전 예민한 사람이고, 그래서 그만큼 예민한 사람들과 같이 일하고 싶어요. 지금 이 공간의 여자들은 모두 마법 같은 존재들이죠. 어떤 일이 생기기 전에 이미 알아채는 사람들이에요.”
12:30 a.m. / 버뱅크의 글렌우드 플레이스 스튜디오 퍼렐이 스튜디오 콘솔 앞에서 치킨 수프를 먹으며 스눕 독과 그웬 스테파니를 위한 노래 작업을 하고 있다. 퍼렐의 표현을 빌리자면 밝은 녹색에 가까운 노래. 퍼렐은 팝스타인 동시에 다른 음악가들의 컨설턴트 같은 존재다. 뮤지션들은 히트곡이 필요할 때 그를 찾아오고, 퍼렐은 뮤지션들을 알맞은 길로 인도한다. “인터뷰하듯 얘기를 나눠요. 그러다 그 인터뷰가 음악이 되는 거죠. 어떤 날은 말을 한마디도 안 할 때도 있어요. 그냥 분위기를 느끼는 거죠. 공간의 분위기를. 지금 당신은 평범한 옷을 입고 있지만, 내면이 아주 복잡한 사람이에요. 집중력이 높은 완벽주의자이기도 하고요.” 퍼렐은 그렇게 같이 있는 사람을 관찰하고 이해하려 한다. 이 사람에겐 솔직해져도 좋겠다는 느낌이 들게 한달까? 퍼렐을 만나서 얻을 수 있는 건 히트곡이 전부가 아니다. “저는 오로지 제 호기심에만 끌려 다녀요. 지겨웠던 적이요? 없어요.” 모두가 그의 노래를 부르고 싶어 하고, 퍼렐은 그런 기대만큼이나 많은 곡을 만든다. 다행히 그는 곡을 무척 빨리 쓴다. ‘Blurred Line’은 30분 만에 완성한 곡이다. 오늘도 수많은 일정을 소화하고 다시 스튜디오로 돌아왔지만 여전히 그는 작업 중인 노래를 틀어놓고 새 멜로디와 악기를 추가하고 있다. 마치 우주에서 자신만이 그 노래를 제대로 들여다볼 수 있다는 듯, 바짝 집중한 채로.
세인트 빈센트 ST. VINCENT
“21세기 데이비드 보위” ‘팝’이라 부를 법한 멜로디지만 어딘가 낯설다. 세인트 빈센트가 기타를 잡으면 그렇다. 방울뱀과 트랜스젠더 왕자들에게 바치는 비틀린 서정시. 그녀는 좀 다른 세상의 사람 같아 보이기도 한다. 2007년 데뷔 음반을 냈지만, 지난해 발표한 < St. Vincent >야말로 그녀의 미래지향적인 면모를 잘 드러낸다.
샘 스미스 SAM SMITH
“솔의 새 얼굴” 그는 2년 전 런던의 한 펍에서 화장실을 청소하던 중, 데뷔 제안을 받았다. 첫 음반 < In The Lonely Hour >는 8개 나라의 음반 차트 1위를 휩쓸었다. 알고 들었든 모르고 들었든, ‘Stay With Me’의 후렴구를 이끄는 합창단의 강렬한 목소리만큼은 꽤 익숙할 것이다. 음반의 나머지 노래들도 황홀하긴 마찬가지다.
마크 론슨 MARK RONSON
“파티의 신사” 그가 퓰리처상 수상 작가인 마이클 샤본과 협업한 음반을 만들었다고 발표했을 때, 사람들은 의아해했다. 어떤 노래가 탄생할지 예상하기 어려웠기 때문이다. 에이미 와인하우스의 프로듀서이자 그 유명한 파티 디제이인 마크 론슨은 그렇게 ‘Uptown Funk’와 함께 돌아왔다. 브루노 마스의 지원사격과 함께. 그리고 행복하게도, 더 이상 어떤 예측이나 생각을 할 필요가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춤추면 그만이니까.
킴 고든 KIM GORDON
“언더그라운드의 여왕” 소닉 유스의 두 멤버(이자 부부)인 더스턴 무어와 킴 고든의 결별은 조용했다. 하지만 킴 고든의 거친 회고록 < Girl In a Band >엔 그동안 알지 못했던 진짜 얘기들이 있다. 둘 사이의 관계에 깊숙이 다가가는 것은 물론, 인디 록 신에서 가장 오랫동안 사랑받았던 밴드에 대해 더 확실히 알게 될 것이다.
“전통적인 록 밴드식 회고록을 쓰고 싶진 않았어요. 대신 제 삶을 반영하는 글을 쓰려고 했죠. 제 삶이 그렇게 순탄하진 않았거든요.”
FKA 트위그스 FKA TWIGS
“비요크와 알리야 사이” 적어도 음악을 듣는 동안엔, FKA 트위그스가 로버트 패틴슨과 만나는 중이라는 사실은 잊는 게 낫다. 몽환적인 분위기와 자유로운 리듬은 그녀의 귀를 잡아끄는 목소리가 아니었다면 갈피를 잃고 제각기 흩어졌을 것이다.
제임스 블레이크 JAMES BLAKE
“전자음악 전도사” 으스스한 동시에 종교적이다. ‘Retrograde’ 같은 노래의 성공에 힘입어, 제임스 블레이크는 지금 전 세계 20대들의 영적 리더처럼 보인다. 다음 음반엔 카니예 웨스트가 피처링을 할 예정이라는 소문이 돌고 있다.
드레이크 DRAKE
“불꽃보다 뜨겁게” 그는 지난 4년간 랩 신을 이끌어왔지만, 2014년에 나온 음악들은 유독 더 화끈한 언더독 같은 인상이었다. 블로그에 불쑥 ‘0 to 100’, (아이러브마코넨과 합작한) ‘Tuesday’ 같은 곡들을 공개하기도 했다. 어떤 방식으로든 내기만 하면 인기를 끌었다. 누가 이 남자를 힙합 신의 정상에서 끌어내릴 수 있을까?
영 터그 YOUNG THUG
“환각의 노래” 이 애틀랜타 출신 괴짜 래퍼의 첫 히트곡 제목은 ‘Stoner’(속어로 마약을 즐겨 하는 사람을 뜻함)다. 랩은 주로 듣다 보면 잠이 깨는 쪽에 가깝지만, 영 터그의 랩을 듣고 있으면 꽤 몽롱해지고 만다. < Black Portland >와 < Rich Gang: Tha Tour Part 1 >은 놓치기 아까운 믹스 테이프다.
나스 NAS
“오래된 라임” 재발매와 기념음반의 홍수 속에서, 나스의 1994년 데뷔 음반 < Illmatic >이야말로 다시금 주목해야 할 음반이다. 관련 다큐멘터리 < Time is Illmatic >을 통해 사람들은 베일에 가려져 있던 나스의 진짜 삶에 좀 더 다가갈 수 있게 되었다. 20년이 지난 지금까지 다행스럽게도, 나스는 여전히 무대에 있다.
“< Illmatic > 수록곡인 ‘Halftime’에서 난 ‘인종차별을 하는 경찰들은 지옥에나 가’라고 했어요. 그런데 지금도 우리는 똑같은 일에 대해 얘기하고 있잖아요.”
이기 아잘레아 IGGY AZALEA
“언프리티 랩스타” 이기 아잘레아야말로 지금 가장 뜨거운 뮤지션이 아닐까? 수많은 히트곡과 뒤따른 무수한 논란의 주인공. 이것은 모두 그녀의 패기 넘치는 음반 < The New Classic >에서 비롯되었다. 어쨌든 백인 여자도 자신의 방식대로 주류 랩 신에 끼어들 수 있게 되었다는 사실만은 확실하다.
“만약 제 경력이 짧게 끝난다 해도, 최소한 불꽃 정도는 일으켰다고 말할 수 있을 거예요. 사람들이 힙합이라고 생각하는 것의 범위를 넓혔다는 측면에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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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에디터
- 데빈 프리드먼(Devin Friedman)
- 사진
- PARI DUKOVIC